
남들 칭찬을 잘하고 친절한 척해서 그렇지, 원래 나의 종자는 싸움닭이다. 말도 안되는 글을 보면 피가 끓고, '좋다! 한판 붙자'는 마음이 솟았다. 상대의 허점을 허접한 논리로 논박하면서, 그리고 상대로부터 상소리를 들으면서도 쾌감을 느끼는 걸 보면, 난 타고난 싸움닭인 듯하다. 그러던 내가 요즘 알라딘에서 착하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으니, 스스로도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아침, 기차 예약을 하려고 컴을 켰다가 습관적으로 알라딘에 들어갔고, 거기서 어느 분이 달아놓은 코멘트를 발견했다.
[정말 몰이해스러운 건 이 평을 쓴 분이시네요.
1. 등 따습고 배부르면 고민을 가지면 안되나요? 그럼 남자들은 뭐가 그렇게 모자라서 밖에서 여자를 찾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그러죠?
2. 시댁 제사 안 챙기는 것만 흠인가요? 그 남편은 친정 제사 챙기나요?
3. 왜 xx(아내이름)의 성만 무분별하죠? 남편의 바람은 당연해요?
4. 왜 애는 xx만 길러야 해요? 남편은 애들 아버지 아닌가요?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그 짐을 다 그녀에게 떠맡기는 게, 실제 현실에서 그런다고 해도 온당한 건 아니잖아요.
일하는 남편은 가정일에서 손떼도 되고 직장여성은 힐난받아야 하다니. 끔찍합니다]
이 코멘트로 인해 그간 억눌려 있던 싸움닭의 본성이 되살아났다. 오독을 해도 이렇게 심하게 하다니! 출근하는 내내, 난 어떻게 보복을 할 것인가 그 생각만 했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학교에 가자마자 무시무시한 답글을 날렸다.
[서재활동을 별로 안하는 님의 성향으로 볼 때, 코멘트로 답을 달면 님이 못보실 것 같아 메일로 보냅니다. 솔직히 답도 하기 싫었지만, 그게 예의라고 생각해서 답을 드리니, 읽고 또 답을 주시든, 아니면 아예 읽지 마시든 좋으신 대로 하십시오.
알라딘에서 님의 이름을 이따금씩 봤습니다. 300편이 넘는 리뷰를 쓰신 대표적인 독서가시니, 여기저기 다니다보면 님의 흔적을 발견할 때가 있지요. 전 책을 많이 읽은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환상이 있습니다. 실제로 알라딘서 서재활동을 하면서 만난 알라딘 분들은 평균적인 네티즌의 수준을 넘어서는 분들이더군요. 글도 잘쓰고, 예의도 바르고. 알라딘에서 마이리뷰에 코멘트를 달게 해준 건 바로 그런 믿음 때문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님의 코멘트를 보니, 읽은 책의 권수가 많다고 꼭 훌륭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님의 질문은 제게 딴지로 읽혔고, 글 전체에서 짙은 혐오감이 느껴지네요. 코멘트의 목적이 대화라고 할 때, 이 글이 과연 대화하기 위한 것인지 의문이 갑니다. 여성주의는 남자를 적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여성의 정신으로 이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저로서는, 님의 딴지가 영 뜬금없습니다....중략]
당연한 일이지만, 그 역시 열을 받았고, 장문의 반박이 날라왔다. 짜증이 난 나는 이런 글을 남겼다.
[더이상 계속하는 건 의미가 없는 듯하니, 그만 합시다. 이 말만 하죠. 글을 오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화를 내는 건 건강에 좋지 않을 듯 싶습니다]
원래 "그만하자"고 하면, 듣는 사람은 자기가 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라, 꼭 한마디를 더하게 된다. 그의 반격, "마태우스 씨야말로 의사 소통을 원하신다면 일방적으로 벽문을 닫고 무례한 글을 날리는 건 좋지 않습니다"
리뷰에 코멘트를 만든 건 생산적 대화를 하라는 취지일 텐데, 이런 대화에 무슨 생산성이 있겠는가.
얼마 안있어 갈대님의 페이퍼를 보게 되었다. 갈대님이 오래 전에 쓰신 리뷰에 이런 코멘트가 달렸다고 한다.
[당신이야말로 위험한 사람이군 책을 더 보던가 생각을 더 하던가 해봐. 당신 스스로가 증명하듯 인간은 인간이 파악하기에는 복잡해. 거부감이란 그 자체로 비겁한 것일지도 몰라]
졸x 재수없는 코멘트 아닌가? 내게 이런 코멘트가 달렸다면 화염병을 들고 알라딘 본사로 찾아갔을지도 모른다. 갈대님 역시 화가 났다.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분노가 일었다. '당신'이라는 호칭도 무례하다고 생각했고 다자고짜 반말인 것도 거슬렸다. 낯선 사람으로부터의 공격에 나는 흥분했고 화가 났으며 당황했다. 알라딘 서재를 쓰는 동안 이런 식의 비판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아니, 고작 작년에 쓴 리뷰 하나를 보고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건가? 나를 얼마나 안다고!!]
하지만 이어지는 갈대님의 말에 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저 분 말이 옳다. 감히 내가 어떤 사람을 판단할 만한 자격은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거부하고 밀어내는 행동은 비겁한 것이다. 나는 위험한 아집에 빠져 편견에 치우친 채 알지도 못하면서 리뷰를 썼다. 리뷰뿐만 아니라 나라는 인간도 그랬다. 아니 과거형이 아니니까 지금도 그렇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러더니 이런 결론을 내린다.
[그동안 너무도 친절한 서재주인장분들의 칭찬에 익숙해져 있었나 보다. 낯선 분의 일침이 이토록 쓰게 느껴지는 걸 보면 말이다. 몸에 좋은 건 쓰다고 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덕분에 나태한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혹 이 글이 코멘트를 쓰신 분께 누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 정도는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한다]
우와! 이건 거의 성인의 경지가 아닌가! 성인은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우리 주위에 살고 있었다! 내 소설에는 이따금씩 배신자로 나오지만 사실은 정의의 사도인 냉열사님이 반박을 했다.
[비판과 비방은 구분되어져야 합니다. 리뷰에 적어도 저 정도의 코멘트를 남겨 주신 분이라면 떳떳하게 자신을 밝히셨어야 함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리고 님의 리뷰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와는 다른 부분이 있었다면, 증거를 들어 논박을 했어야 함이 설득력을 지니고 타당함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름 모를 그 분의 코멘트는 이 모든 것들이 배제된, 단순한 즉자적인 감정의 발로였다고 봅니다]
다시 갈대님의 리플. [비판이 아니라 감정적인 비난이라면 저도 무시하고 말았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가 된 책을 읽고 제가 쓴 리뷰를 보면 위에서 말한 충고가 어느 정도 타당하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충고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고 그것이 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었지만요. 어쨌거나 다른 분들과 민감한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네요^^]
정말이지 감동적인 리플이다. 갑자기 난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리뷰를 엄청나게 잘 쓰는, 그래서 이주의 마이리뷰에 단골로 선정되는 갈대님이 이러시는데, 난 왜 그렇게 여유를 가지지 못했을까. 내가 그 코멘트에 기분이 나빴던 것은 여성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나에게 누군가가 딴지를 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인 나로서는 여성을 아는 게 한계가 있고, 그 책에 대한 리뷰도 오해의 소지가 없진 않았다.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보다, 내 입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면 생산적인 대화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해서 그와 화해하고픈 마음은 없다. 그에게는 예의란 게 없었다 (나중에 그는 이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지우려고 했는데 답글이 벌써 달려서 당황했다고 했다). 서로를 잘 모르는 온라인이니 좀더 신중했어야 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이유로, 난 갈대님같이 성인이 아니다. 갈대님 만세.
* 사람들한테 마치..."나 건드림 다 죽어!"라고 협박하는 것 같은 느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