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아는 사실이지만, 여름이 성큼 와버렸다. 어제, 그제는 기온이 30도를 넘었단다. 더위에 약한 나로서는 앞으로 석달은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이런 나를 구해주는 건 나처럼 더위를 타는 여인들, 그리고 아이스크림일 것이다.

난 아이스크림을 참 좋아한다.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난 유독 좋아한다. 학생 때 점심 대신으로 빵빠레만 3개 먹고 만 적도 있을 정도고,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열 개쯤 사 놓으면 형제자매들이 먹을까봐 하룻밤에 몽땅 먹어치우곤 했다. 지금도 난 통에 든 아이스크림을 혼자 퍼먹을 때를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꼽는다. 군것질을 하지 않는 나지만, 아이스크림은 예외다.

고3 때, 친구 어머니들이 공부하는 아이들을 격려한다면서 점심으로 뷔페를 사준 적이 있다. 한창 먹성이 좋은 때였기에 내가 두접시를 먹고 아이스크림을 퍼오자 다들 놀랐다.
"너 벌써 다먹었냐?"
그때 내가 한 대답, "난, 디저트가 주식이야!"
그 말에 웃던 친구들은 내가 아이스크림을 세 번, 네 번째 퍼오자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일곱 번, 여덟 번째 아이스크림을 비우는 걸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몸을 팔아서라도 웃기고 싶었던 그 시절이었으니, 내가 그렇게 많이 아이스크림을 먹은 건 웃기고자 하는 마음도 분명 있었으리라. 여덟 번째 그릇을 비웠을 때도 배가 너무 불렀지만, 난 한 그릇을 더 먹었고, 열그릇을 채우려고 하다가 못먹고 남기고 말았다. 그래서 애들을 웃기긴 했지만, 난 그날 밤부터 몸살이 나 사흘간을 앓았다. 그게 아이스크림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옛날 내가 어릴 때는 브라보콘이 가장 유명했지만, 난 그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을 질보다 양으던 난 아이스크림의 양이 많은 빵빠레가 등장했을 때 몹시 열광했다. 그걸로 몇 년을 버티다 빵빠레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자 실망했었는데, 나중에 나온 '와'는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난 이비복스가 '와'를 선전해서 그걸 좋아하는 것처럼 말하고 다니지만, 사실은 양이 내게 딱 맞아서 먹는거다. '와'를 앞에 두고 앉아 있으면 매우 든든하다. 하지만 우리 학교 매점에서는 더 이상 '와'를 취급하지 않아, 요즘은 잘 못먹는다. 양 말고 맛으로 따지자면, 서주아이스가 가장 맛있다. 어릴 때도 그 맛에 반했었는데, 한동안 명맥이 끊겼다 요즘 다시 나온다. 서주아이스라면, 난 하루에 열 개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빨이 좋아야 먹을 수 있는 비비빅도 주면 먹는다. 붕어 사만코처럼 과자 안에 아이스크림이 든 것, 그리고 찰떡 아이스처럼 떡 안에 크림을 넣은 것 등은 별로 안좋아하는데, 그것들이 아이스크림의 정신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콘 종류를 안좋아하는 것도 아이스크림은 과자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때 선풍을 일으켰던 메로나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아이스크림의 정신은 바닐라에 있다는 생각에 그리 가까이하진 않는다.

엑설런트 아이스크림도 내가 좋아하는 거다. 그것의 문제는 한통을 다 사야 한다는 거였는데, 작년에 보니까 세 개짜리가 따로 나왔다. 그래서 몇 번 사먹은 적이 있지만, 내가 활동하는 곳에서는 구할 수가 없다. 참고로 우리 학교는 먹으면 혀가 빨갛게 되는 조스바와 맛없는 돼지바-그게 왜 아직도 나오는지 모르겠다-그리고 아이스크림의 정신을 훼손하는 붕어 사만코 등만 갖다 놓는다. 왜일까?

기차역 앞에 있는 슈퍼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서주아이스가 잔뜩 쌓여있는 걸 보았다. 그 뒤부터 사흘째 거기 들러서 서주아이스를 먹는데, 그 아이스크림의 단점은 먹고 나면 후회를 한다는 것이다. 두 개 살 걸 그랬다는 후회! 더위가 계속되는 한, 난 그 가게를 계속 들를 것이다. 다른 사람은 그 아이스크림의 존재를 모르기를, 그래서 어느날 서주아이스가 떨어져 날 슬프게 하는 일이 없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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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6-04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이스크림 좋아하는데 마태우스님은 강적이군요.
그나저나 어제 저도 아이스크림만 3개 먹었습니다...

플라시보 2004-06-04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엑설런트가 3개만 따로 포장된게 있군요.
저는 마트에서 파는 기린 옛날캔디 중에서도 딸기맛을 가장 좋아합니다. 3,180원에 10개가 들었으니 양도 괜찮고 맛도 있거든요. (빠리 바게뜨같은 곳에 가면 그 아이스크림 1개에 500원 정도에 팔더군요.)

2004-06-04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4-06-04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브라보콘과 붕어사만코와 찰떡아이스와 돼지바를 제일 좋아하는데...
역시 마태우스님과 전 음식이 잘 안 맞는군요.
김치도 잘 안 드신다고 했죠?
식성이 넘 편협하신 거 아닙니까?

sweetmagic 2004-06-04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열 개쯤 사 놓으면 형제자매들이 먹을까봐 하룻밤에 몽땅 먹어치우곤 했다. ~~> 크킄 왕따 당하진 않으셨나요 ? ㅎㅎㅎ 님 이번 여름도 아이스크림과 함께 즐겁게 신나게 즐기세요~ 이번 여름은 길기도 길고 덥기도 무지 더울꺼라네요`~ !!!

작은위로 2004-06-04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뭔가 굉장히 많이 드시는 군요! 이런 이러언..
저는 아이스크림 별로 안좋아하지만 더울땐 먹죠. 그래도 베스킨은 먹는데...^^;
겨울에 먹는 아이스크림이 더 맛있는...쿨럭..-_-
여름이죠. 여름. 여름엔 아이스크림이 먹고 있으면 녹아서 싫어요ㅜㅠ
훗, 그 가게 있는 서주 아이스크림 아무도 안먹을 거에요..정말요!

panda78 2004-06-04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이스크림은 바닐라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
그런데 서주 아이스 ㅡㅡ> 서주 아이스 주입니다. (집요한 듯 하지만, 서주 아이스 조라는 오렌지맛 하드도 있었는데... 아무도 모르시더군요.. 부산에서만 팔았나? @.@)
서주 아이스 주, 와(와 딸기맛인가? 그건 실패작...), 엑설런트, 투게더... 가 저의 베스트 아이스 리스트.. ^-^ 마태님 우리 언제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까요?

sunnyside 2004-06-04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저 서주 아이스 조 압니다. 서주 아이스 주가 100원일 때 50원 하던, 네모 반듯한 오렌지색 하드... 왜 모르겠습니까? (참고로 제가 그걸 먹던 곳은 대전. ^^)

이파리 2004-06-04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이런... 우리 옴니는 돼지바를 광~적으로 좋아하십니다. 다른 아이스크림은 잘 드시지 않죠. 먹을 때 지저분해 지는... 그걸 왜그리 좋아하시는지...(사실... 이파리도 잘 먹지만서두...)
전, 마태님과 달리 양보다 질이기 때문에, 부라보콘 좋아합니다.(여러 면에서 마태님과 전 다르군요.^^) 물론, 마태님이 좋아하시는 서주아이스도...
한때 낫뚜르의 녹차 아이스크림 맛에 반해 무진장 사 먹었는데...(지금도 반해있습니다.) 지금은 그 모다냐... 일본에서 온... 비~싼 아이스크림... (갑자기 이름이 기억 안나는 군요.) 하여튼 그걸 즐겨 먹고 있습니다.(그러나 돈이 없는 관계로... 세일 할 때, 사재기를 해 놓습니다.^^) 아 어쨌든... 저두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요.
혹시, 50원하던 [깐돌이바] 기억나십니까? 전 아직도 그 맛을 못 잊구 있습니다.

진/우맘 2004-06-04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더위사냥 하나 입에 물고 읽으니 더욱 생생한 느낌.^^

starrysky 2004-06-04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글 제목을 보는 순간, 아 선수를 뺐겼구나 했습니다. 저도 오늘 '아이스크림'을 주제로 장광설을 함 늘어놔볼까 했는데.. ^^
그나저나 마태님과 제 식성은 참... 김치 싫어하는 거나 과일 별로인 거나 아이스크림 광적으로 좋아하는 거나... 저도 어렸을 때부터 '인간은 왜 아이스크림만으로 연명할 수 없나' 하고 고민했습니다. 아침은 바닐라 점심은 딸기 저녁은 초콜릿. 요새 나온 300가지가 넘는 새로운 맛의 아이스크림들은 간식으로 짬짬이 먹어주고.. 또오 나뚜르에서 파는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한 스쿱 얹어주는 빵빵한 팥빙수도 별식으로 먹어주면서.. ^ㅠ^

마태우스 2004-06-04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리님/님의 코멘트를 보는 순간 잽싸게 쓰기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뜩이나 소재도 모자라는데, 님께서 이 주제로 먼저 쓰셨다면 아마도 전 오전 내내 우울했을 겁니다^^ 님 힘내세요! 근데 전 김치 안싫어하는데...
시아일합운빈현/쌍쌍바는 기억나는데, 별로 맛은 없었어요. 연인과 그걸 먹다가 사이가 나빠졌다는 루머도...
이파리님/음...그렇군요. 저만 돼지바를 싫어하는 걸, 전 다 저같은 줄 착각을...
진우맘님/전 땀을 뻘뻘 흘리며 이 글을 썼다는....
panda78님/좋습니다! 베스킨 라빈스 가가지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보죠!!
서니사이드님/그런 아이스크림도 있나요? 하여간 서주 아이스 주가 맞단 말이죠? 판다님 감사합니다.
작은위로님/으음... 님의 성향은 참 섬세하실 것 같습니다. 맞죠???
조선인님/모함입니다. 전 김치를 아주 좋아한답니다. 과일 싫어하는 건 맞지만요. 그래도 닭돼지 소를 다 잘먹으니, 일상 생활에서 불편한 건 없답니다.
sweetmagic님/이번 여름이 덥다니 큰일이군요. 글구 저 어릴 적 왕따 당한 거 맞습니다^^
플라시보님/님의 격려는 언제나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우주님/어제 3개라구요... 음...전 오늘 지금까지 세개 먹었구요, 이따가 하나 더 먹을 겁니다. 아이스크림 숫자에서도 질 수 없다는....

로렌초의시종 2004-06-04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선풍을 일으켰던 메로나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아이스크림의 정신은 바닐라에 있다는 생각에 그리 가까이하진 않는다- 이 말씀에 절대 동감 합니다!!! 전 같이 있는 사람들의 고리타분하다는 듯한 말없는 비난에도 아랑곳않고 항상 바닐라만 먹어요, 적어도 바닐라가 포함된 걸로...... 메로나는 거의 입에 안댄다는(그냥 싫어서^^;) 그리고 엑설런트는 저도 넘 좋아해요. 너무 달지도 않고 묘하게 고상한 척 하는 맛이 꽤 괜찮아요^^
저도 이번 방학때 집에 내려가서 베스킨 아이스크림이나 벗삼아야겠다는 생각이......(그곳에 베스킨이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걸 믿고 방학 내내 그곳에 머물겠다고 하는 건지도...)

sooninara 2004-06-04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때 먹던 깐도리가 생각나네요..먹고 싶어라..

비로그인 2004-06-04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주아이스..정말 일품이죠. 약간 녹아만 있다면 세입에도 가능합니다.(먹어치우는거요)
빙그레의 신제품 '요맘때'를 추천합니다. 유지방은 줄이고 유산균은 살아있죠.
요거트아이스바 빙그레 요맘때! 강추!! (이래놨는데 맛이 별로라 하시면 어쩌나.......)

작은위로 2004-06-04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 글쎄요. 섬세할까요? 후후후훗....
그렇게 믿어주신다면야...^^*** 그렇다고 해야죠~~!!!!
 
군주론 - 개역판 까치글방 86
니콜로 마키아벨리, 강정인 외 옮김 / 까치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이 내 취미가 되기 시작하면서 내가 숱하게 접한 단어가 바로 '마키아벨리즘'이었다. 그 단어를 찾아보기가 영 귀찮았던 난 같이 근무하던-아니, 같이 놀던-친구에게 그게 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 "쉽게 말하면 사기치는 거야!"
뭔가를 배우면 금방 써먹고 싶어지는 나, 또다른 친구에게 가서 마키아벨리즘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뭔데?" 난 그에게 천원만 줘보라고 한 다음, 500원을 건네줬다. "500원 내놔!"란 그의 말에 난 이렇게 대답했다.
"이게 바로 마키아벨리즘이야!"
뭔가를 알려면 제대로 알아야 주위 사람들까지 모조리 잘못 알게되는 사태를 피할 수 있다.

<군주론>을 읽어본 바, 마키아벨리가 주장한 것은 현실 세계에서 군주가 해야 할 처신이지, 결코 사기를 쳐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플라톤을 비롯한 이전의 철학자들이 현실을 도외시한 채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만 주장한 반면, 마키아벨리-이하 마씨라고 부른다-는 악으로 가득찬 이 세상을 직시한 것이다. 남을 잘 신뢰하고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 사적인 영역에서는 유덕한 행위지만, 때로는 공동체 전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필요하다면 부도덕하게 행동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108쪽)" 하지만 그는 비록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실상은 안그런 척, 신뢰성이 있는 척 행동해야 인민의 미움을 사지 않고 권력을 보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인들은 이 점을 악용, 현실에서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면서 스스로를 변호하는 모양인데, 마씨의 주장은 이탈리아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싸움질만 하던 시절에 나온 것이며, 마씨 또한 "정부가 안정되고 확고한 상황에서 운영된다면 연민, 신뢰, 정직함 같은 덕목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니 정치인들이여, 지금이 전시라고 우기지 않을 거면, 정직하게 사시라.

"운명이란 우리 활동의 반만 주재할 뿐이며, 대락 나머지 반은 우리의 통제에 맡겨져 있다"는 저자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를 표하지만, 신중함과 과감함 중에 후자가 더 낫다고 하는 마씨의 다음 주장은 좀 어이가 없다. 마씨의 말이다. "왜냐하면 운명의 신은 여신이고 만약 당신이 그 여자를 손아귀에 넣고자 한다면 그녀를 거칠게 다루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유명세로 보아, 여자는 거칠게 다루어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이 여기서 나온 건 아닐까 의심이 간다.

"일개 평민에서 다만 운이 좋아서 군주가 된 자는..그 지위를 유지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45쪽)"는 대목과, 막시미누스가 "미천한 신분 출신으로...원래 목동이었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경멸받았다는 구절(141쪽)은 고졸에 말투가 상스럽다는 이유로 박해받는 노무현을 연상케 한다. 기득권 세력의 공격을 막느라 집권 1년은 아무것도 안했다지만, 이제 집권 여당이 과반수를 확보한 마당이니 그가 어떤 군주로 기억되느냐는 순전히 자신에게 달렸다.   참고로 4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막상 사는 데는 주저하던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어느 분이 이 책을 선물했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책마다 "이런 책 읽지말고 <대통령과...> 같은 책 읽으란 말야"라고 딴지를 걸어 날 짜증나게 했던 그 사람이 어느날 이 책을 선물한 것. 하지만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근 일년 이상을 책장에 놓아 두었는데, 결론만 얘기하면 하나도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힌다. 유명한 책이라고 너무 두려워 말자. 그들도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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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6-03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나라 국회의원들에게 한 권씩 선물해야 할 책같군요. 만약, 그 분들이 이 책을 이해할만한 지적인 소양이 있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빈 말이 아니라, 마태님 리뷰가 갈수록 근사해 지는데요. 어렵고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를 포인트만 잡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것이....알라딘에서 숙식하신 보람이 있군요.^^

로렌초의시종 2004-06-03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리뷰의 대가가 되실 날이 머지 않으신듯! 책도 매끄럽게 분석하시고 개인적 의견도 적절히 자리잡으신 글이 읽기도 편하고 이해도 어렵지 않은걸요? 저도 추천할께요!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이미 다 대충은 알고 있을거에요. 혓바닥이 알지만 두뇌가 거부하는 것이겠죠......

갈대 2004-06-03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하나는 접니다^^

panda78 2004-06-03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 책 생각과는 달리 엄청 쉽게 읽히고 재미도 있더라구요. 마태님 리뷰도 참 좋습니다!
그런데 마씨라고 하니까 마태님과 헷갈리잖아요. ^^;; 저도 추천!

플라시보 2004-06-03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그저 교과서에만 실려있는 책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만 님의 리뷰를 읽고 나니 한번쯤 읽어 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쎈연필 2004-06-03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잼나게 잘 읽었습니다@@~

sweetmagic 2004-06-03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꺼 저번꺼 모두모두 추천~!!

마냐 2004-06-04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명한 책 무서워말자, 그들도 인간이다...캬하.....이건 님만이 토해놓을 수 있는 사자후. 정말 좋습니다. 좋아요.

마태우스 2004-06-05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쥴님/어머나, 제게 늘 바른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시는 쥴님이다!! 사실 제가 이주의 마이리뷰에 집착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답니다. 전 리뷰를 당선되게 쓰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쓰는가만 집착을 하지요. 그래서 전 님의 말씀-자체가 독립적인 텍스트로 인식-에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니까 제 리뷰는 책을 빙자한 마이페이퍼였던 거죠. 키키.

노바리 2004-06-07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말이죠. 아무리 마씨가 '나라가 안정되면 신뢰와 뭐와 뭐와 하여간 좋은 덕목 따라 살아야 한다'라고도 말했다 한들, 그 위에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이래야 한다'의 논리에 따르면 '계속해서 불안을 조장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와요. 즉, 마씨의 군주론은 악용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국 세련된 언어로 사기치는 기술인 셈이죠. '나라가 안정되면 하여간 좋은 덕목 따라야 한다'는 립서비스라구요. 호호

마태우스 2004-06-07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정말 그렇군요. 역시 위대한 노바리님!!
 

 

 

 

 

 

벤지가 처음 왔을 때, 우리집은 작지만 마당이 있었고, 벤지는 그곳을 자신의 화장실로 사용했다. 벤지를 위해 겨울에도 문을 열어 두었기에, 대소변을 볼 때 남의 눈치를 볼 까닭이 없었던 거다. 하지만 5년이 지난 후, 우리집의 마당이 없어졌다. 다섯 살로 중년이 된 벤지에게 그런 경험은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것이었으리라. 난 화장실에다 싸도록 교육을 시켰지만, 녀석은 웬만하면 내가 밖에 데리고 나갈 때까지 참으려 했고, 소변은 화장실에 싼다해도 대변만은 집 안에 싸지 않았다. 그래서 난 아침 저녁으로, 그리고 내가 집에 오는 순간마다 벤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 결과 벤지에게는 많은 위험이 닥쳤지만, 그 위험들을 슬기롭게 극복함으로써 이제 17세의 노년 개로서, 인생을 관조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위험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1. 차
오늘 아침, 벤지가 웅크린 자세로 대변을 보고 있을 때, 봉고 한 대가 미친 듯이 커브를 돌아 질주했다. 놀란 나는 잽싸게 달려나가 봉고를 세웠고, 벤지를 안아올렸다. 행태로 보아 그가 벤지를 발견하기 힘들었을 것 같고, 발견했다고 해서 차를 멈추었을까 하는 데 난 회의적이다. 그 차 말고도  골목길을 미친 듯이 질주하는 차들은 무지하게 많다. 벤지는 개지만, 그 자리에 얘가 있었을 수도 있는데, 그리고 얘들은 돌발적인 행동을 잘 하는데, 왜 그렇게 빨리 달리는 것일까? 난 아무리 급해도 골목길은 거의 기어가는데 말이다. 그런 차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나라의 골목길 교통사고가 굉장히 많다는 게 이해가 된다.

한번은 이런 적도 있다. 벤지가 대변을 보는 동안 신문을 보는데, 차 한 대가 벤지 쪽으로 달려간다. 그래서 난 신고있던 슬리퍼를 그 차에 던졌다. 그 차가 섰고, 난 운전자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안그랬으면 어찌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벤지가 정말 위험하면 내가 차를 향해 뛰어들 수도 있을까 하는 생각. 대부분의 부모가 자식을 향해 무엇이든지 하듯, 벤지를 자식처럼 키워온 나도 차 앞에 뛰어들지 않을까? 한해에 교통사고로 1만명이 죽어나가는 판에, 벤지가 그동안 무사히 살 수 있었다는 건 어찌되었건 감사할 일이다.

2. 개
벤지가 일을 보는 와중에, 집채만한 진돗개가 벤지에게 달려들었다. 몸을 날린 난 겨우 벤지를 구해냈지만, 그 개는 내게도 적의를 보였다. 원래 큰 개들은 작은 개를 공격하지 않는데, 그 개는 참으로 인간성이 더러운 개였다. 잠시 후 나타난 개 주인과 난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저렇게 큰 개를 풀어놓으면 어떻게 하냐"는 내 말에 "너도 지금 개를 풀어놨지 않느냐"고 맞선다. 그 개에 그 주인, 내가 슬리퍼만 안신었다면 대번에 이단옆차기가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런 식이라면 내가 도사견을 풀어놔 그 개를 물게 해도 그놈은 할말이 없겠네?

그로부터 며칠 뒤, 또 그 개를 봤다. 벤지를 향해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는 그 개. 난 다시금 몸을 날려 벤지를 안아올렸고, 진돗개는 빈곳을 덮쳐야 했다. 이번엔 참을 수가 없었다. 난 신고있던 슬리퍼를 개한테 던져 옆구리를 맞췄으며, 개주인 앞에 달려가 핏대를 올렸다. 처음과는 달리-내가 세게 나가서일까?-주인은 미안하다고 했다. 그 이후 난 벤지가 일을 볼 때마다 주위를 경계했지만, 별일은 없었다.

3. 사람
벤지가 대변을 누는데 어떤 사람이 수박을 들고 지나가다 때리는 시늉을 한다. 벤지는 워낙 민감한 녀석이라 일보는데 방해하면 참지를 못하는지라, 그 사람에게 마구 짖어댔다. 그 사람은 더더욱 흥분했고, 벤지는 더 크게 짖었다. 내가 벤지를 안자 그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수박으로 확 머리통 깨버려!"
세상에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벤지가 짖는 걸 보고 "어머나 이뻐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벤지 자체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벤지가 조그만 개인데, 어찌 싫어할 수 있냐고 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 그런 걸 이해해도, 난 벤지가 부당하게 공격을 받으면 화가 난다. 사람과는 웬만하면 싸움 같은 건 안하려고 하는 나지만, 벤지 때문에 싸울 뻔한 적은 몇번 있다. 한번은 어떤 놈이 술에 취해 지나가다 벤지를 발로 차는 시늉을 했다. 득달같이 달려간 난 그에게 협박성 발언을 했었는데, 그가 그대로 물러나 싸우진 않았다. 산에서 어떤 아저씨와 싸울 뻔한 적도 있으니, 개를 잘 기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무예도 갖춰야 할 성싶다.

이런 고난을 이기고 벤지는 17세가 되었다. 88년생이니 올해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만으로도 16세다. 더위를 무척이나 타는 벤지가 올 여름을 무사히 넘기고, 나와 함께 16세 생일을 맞을 수 있기를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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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6-03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지의 장수 만세!!!
흐흐... 제가 지난 1월 인도에서 본 풍경인데요, 차도 한가운데서 강아지가 응아를 보기 시작했는데, 뒤에 차들이 늘어서서 빵빵거리고 해도 그 개는 끝까지 볼일 다보더라구요! ^^

*^^*에너 2004-06-03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응아 보는데 신경 건드리고 한다는 소리가 "수박으로 확 머리통 깨버려!" 으미~ > <
벤지야!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라. ^^

nugool 2004-06-03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지 나이가 그렇게나 많았습니까? 사람나이로 치면.. 100세가 넘은 거네요.. 개 한살이 사람7살이란 얘길 들었는데...^^

호랑녀 2004-06-03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고등학교 2학년짜리 조카랑 동갑이군요. 88 꿈나무!
우리 애는 개를 무서워합니다. 아무리 작은 개라도, 일단 묶여 있지 않으면 공포감!을 느끼지요. 특히 개가 우리 애에게 (물론 꼬리를 치면서) 달려오기라도 하면, 마태님이 벤지를 구하는 심정으로, 저는 제 아이를 안아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개 주인들은 늘 그러지요. 괜찮아, 안 물어.
가끔은 화가 납니다.

2004-06-03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nda78 2004-06-03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무서워하는 사람도 다 있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개를 학대하거나 하찮게 여기는 사람은 없어졌으면...
벤지야-- 오래오래 살아라.. (음.. 그런데 벤지 할아버지, 오래오래 사세요.. 그래야 되는 건 아닌지.. ^_^;;;; )

플라시보 2004-06-03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지에 대한 님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개를 자식처럼 기르는 사람들을 돈 많아 그저 돈지랄 하는 것으로만 보는데 님의 글을 보면 그런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 편협했음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올 여름 벤지가 더위를 무사히 넘겨서 님과 함께 오래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랍니다.

아영엄마 2004-06-03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묶지 않고 키우자니 차가 무섭고, 묶어서 키우자니 묶여서 생활해야 하는 녀석이 불쌍하고.. 개를 정말 좋아하지만 키우지 못하는 제 마음이 그렇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쩝~ 초등학교 때이던가... 정말 귀여워했는데 차에 치여 죽은 우리 강아지.. 그리고 친정에서 키우던 녀석중에 하나도 그렇게 갔거든요.. 너무 살벌한 세상이야..

진/우맘 2004-06-03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걱정이 가득한 글인데, 왜 저는 끌끌대고 웃었을까요...^^
마태님의 주무기는 슬리퍼?!

starrysky 2004-06-03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굉장히 엄숙하게 읽고 있었는데 진/우맘님 코멘트 땜에 푸핫 웃어버렸어요. 죄송..
근데 저는 지금까지 벤지가 굉장히 큰 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닌가 봐요. 제가 왜 그런 착각을.. 이름 때문인가? 사진이 그렇게 찍혀서? 실제 크기가 얼마만한가요?
벤지의 마태우스님과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빕니다.

진/우맘 2004-06-03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지는 마르티스 입니다. 알라딘에 <벤지는 사실 북극곰이다>라는 루머가 돌고 있는데요, 사실이 아닙니다!
------------마태우스 공식 대변인 진/우맘.^^;

panda78 2004-06-03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지가 말티스였어요?! 북극곰인 줄 알았는데! ^^;;

호랑녀 2004-06-03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려두신 사진이 북극곰과에 가까워서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은 이 글을 읽기 전에는, 저도 북극곰과일 줄 알았습니다.

ceylontea 2004-06-03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지야.. 16세 생일 파티 하자..

sweetmagic 2004-06-03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지 크리스마스 이브가 생일 인가요 ? ㅎㅎㅎ
그렇단 옛날 남친 생일이랑 똑같네~ 에잇~ 기념이다~~ 벤지~!!
건강소재로 만든 예쁜 강아지 옷 선물해 줄께.. 그때까지 건강해라~~
압..근데....높임말을 써야하나 ^.^;

LAYLA 2004-06-04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지랑 나랑 몇살차이 안나는 구나 ㅎㅎ 근데 벤지가 작은개 였군요. 서재 그림보구서 엄청 큰 개인줄 알았는데...;;;;;;;

마태우스 2004-06-04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YLA,님/북극곰이라는 루머까지 있었다니깐요! 그 작고 귀여운 녀석이 곰이라니 흑흑
sweetmagic님/참고로 벤지는 엑스라지 입습니다. 그리고 높임말 안써도 됩니다. 님보다 열살이나 어린걸요^^
실론티님/그땐 이브날이라 다들 바쁘시지 않을까요? 뭐 님이 참석하시겠다면 한번 성대하게 파티를 열어보죠^^
곰도리님/그쵸. 견성이라고 하면 좀 이상해요. 생소한 말이라서...
진우맘님/언제 슬리퍼 신고 만나도록 해요!!! 아, 이건 협박 아닙니다.
아영엄마님/그래요, 너무 살벌한 세상이구, 차도 너무 많아요.
호랑녀님/이 글을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벤지에 대한 모든 오해가 불식되었군요. 벤지도 틀림없이 기뻐할 듯... 그리고 개 싫어하는 사람들도 존재하는만큼, 개 주인들이 처신을 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panda78님/아무래도 님이 판다시니,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starry님/님 말씀대로 행복하게 오래 살도록 하겠습니다.
플라시보님/님의 격려는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벤지에게도요.
가을산님/벤지의 건강을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아프면 님께 데려가도 되는지요?? 벤지는 지가 사람인 줄 알거든요^^
*^^*에너님/그러게 말입니다. 어떻게 그런 난폭한 말을... 슬리퍼만 안신었다면...
너굴님/그런 말은 저도 들었는데요, 어케 키우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벤지는 제가 보기에 한 60여살 된 것 같아요.

마태우스 2004-06-04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쥴님/늘 저를 바르게 인도해주시는 쥴님, 제가 벤지 닮았다고 하면 저야 좋지만...과연 벤지도 좋아할까요?
 

 

 

 

 

 

학교에서 우리 과의 발전계획을 내라고 한다. 내가 있는 곳이 타대학 같은 전공에 비해 어떤 점이 우월한지를 말하고, 향후 십년간의 발전 계획을 쓰란다. 우월한 점이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해봤더니 별로 떠오르는 게 없다. 연구실을 PC방으로 쓸 수 있다는 것? 더구나 내년에 잘릴까봐 마음을 졸이는 처지에, 향후 십년간 계획은 사치스러워 보인다.

5월 31일까지가 마감이었다. 그때까지 난 딱 열줄을 썼을 뿐이다. "A4로 열장 내외로 제출하시오"라고 되어 있으니 못해도 여덟장은 써야 하건만... 계획서를 잘내면 뭔가 혜택이 있느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행정 업무에 정통하신 모 선생님에 따르면 이번 계획서는 그저 대학평가에서 점수를 잘받아 보려는 것일 뿐, 실제로 돈과 인력을 지원할 생각은 전혀 없단다. 그러니까 더더욱 내기가 싫어지는걸?

오늘 메일이 왔다. 금요일까지 다시 기회를 줄테니 잘 써보란다. 메일 수신자 명단을 보니 나 말고도 안낸 사람이 많은가보다. 생화학교실 걸 베껴야겠다는 생각에 내려가보니, 그 사람도 땀을 뻘뻘 흘리며 발전계획을 쓰고 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발전계획 같은 거 내지 말라고 하면 그만큼 더 발전할 수 있을텐데"

아무튼 난 온갖 거짓말, 소설적 상상력, 특유의 구라,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계획을 쓰고 있는 중이다. 4장쯤 썼는데, 지금까지 쓴 것만 해도 십년 후 우리 과는 중부 지역의 중심으로 우뚝 솟을 전망이다. 모 교수는 "세계의 중심"이라는 단어를 써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단다. 후훗. 뭔가 말이 안되는 걸 써내는 게 내 특기긴 해도, 영 머리가 아프다. 날씨는 또 왜이렇게 더운지.

오늘 아침, 뉴스레터를 작성하고 있는데 학장님이 직접 전화를 했다.
"서선생, 나 학장인데, 지금 내려올 수 있어요?"
학장의 호출은 늘 내게 가슴졸임을 선사한다. 오늘 역시 '드디어...잘리나'라는 마음으로 학장실에 들어갔다. 학장이 좀 앉아 보란다. 앉았다. 가까이 앉으란다. 그렇게 했다. 도대체 뭐가 걸렸을까? 인터넷만 하는 거? 아니면 실험실을 깨끗이 유지한 죄? 둘다 아니었다.
"서선생이 의예과장을 좀 맡아줬으면 하는데..."
세상에, 날더러 그만두라는 게 아니라 보직까지? 다들 맡기 싫어하는 보직이고, 실제로 하는 일도 많건만, 난 냉큼 하겠다고 했다. 보직이 좋아서가 아니라, 안잘린 것에 감사해서. 그리고 내게 너무 잘해주는 학교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생각에. 임기를 물어봤더니 2년이란다. 그렇다면.... 이걸 빌미로 내년에 안잘릴 수도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슬그머니 해본다.

전임 예과과장을 만나 뭘 해야 되냐고 물었다. 들어갈 때와 달리 난 심란해진 맘으로 그 방을 나왔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생각보다 너무 많았으니까. 처음에는 안잘린다는 것에만 기뻐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일이 많다고 불평하는 것, 인간이란 원래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의 마음이 다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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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6-02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님이야 짤려도 마테우스호프 하시면 되잖아요. ^^

sunnyside 2004-06-02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짝짝짝~

젤 비싼 걸루 했어요. 제 맘 아시죠? ^^

자, 이제 남은 것은... 함 쏘세요~~


panda78 2004-06-02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기가 2년이라니, 내년까지는 철밥통이시네요! *^0^* 축하 축하!

水巖 2004-06-02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예과장님 ! 축하드립니다. 보직이 바쁘시더라도 알라딘 뉴스와 3류 소설? 빼면 안됩니다.

플라시보 2004-06-02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감축드리옵니다. 그나마 잘릴 위기에서 2년 동안은 느긋하실 수 있겠네요. 일이 좀 많아도 잘리지 않는다는건 요즘 시대에 복입니다. 그저 일복이려니 하시고 열씨미 하세요. 님 홧팅!

진/우맘 2004-06-02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예과장!! 아주 근사하게 들리는데요!! 2년 간 알라딘의 발전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세요!!!!

starrysky 2004-06-02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 이제 그럼 마과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마과장님~ ^^ (병원이 회사냐? 글구 마태우스님 본명은 어따 팔아먹구? <- 스스로 혼나는 중이예요)
정말 축하드리고요. 이제 서재폐인은 그만~ D의대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하.세.욧! >_<

로렌초의시종 2004-06-02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마태우스님의 학교와 알라딘간의 자매결연을 강력히 추진해야한다는 생각이...... 앞으로도 알라딘과 학교의 동시적인 무궁한 발전을 위해서 말이죠. 과장님 힘내세요!!!^^ 거듭 하례드리옵니다~

갈대 2004-06-02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제 서재에서 마태우스님의 글이 뜸하게 올라올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의예과장이라니!!! 감축드리옵나이다!!!

다연엉가 2004-06-02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과장님=시마과장이 생각나네... 축하합니다... 정말로 정말로....이벤트 안 합니까^^^^^

가을산 2004-06-02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의예과장이면 그래도 학생들과는 가장 친근한 보직 아닌가요?
마태님 학교에서 인기짱인가봐요.

마태우스 2004-06-02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그게요, 인기로 되는 게 아니라 학장이 시키면 하는 겁니다. 뭐, 제가 인기가 좀 있긴 하죠. 하핫.
책울타리님/그 유명한 시마과장 말입니까? 감사합다. 근데 축하할 일 아니거든요. 전임 과장이 절더러 미안하다고 하던데...
갈대님/글이 뜸하게 올라올 리야 있겠습니까? 알라딘이 무조건 우선이죠^^
로렌초의 시종님/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습니다. 학교와 알라딘의 자매결연...그럼 알라딘을 위해서 일하면서 학교 눈치 안봐도 될 듯...
starry sky님/사실 님에게만 말씀드리자면 제가 아직 서재 평정을 완전히 못했거든요. 그래서... 서재 평정을 하고 나서 학교 일에 충실하려구요.
진우맘님/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라딘을 위해서!
플라시보님/감사합니다. 님의 격려는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수암님/3류 소설은 사실 아이디어가 고갈되어 못쓰고 있거든요... 뉴스레터만이라도 일단 열심히....
서니사이드님/그렇게나 큰 트리를... 감사합니다. 너무 제게 잘해주시는 것 같아요^^
panda78님/그, 그렇겠죠? 의예과장을 자르는 일은 없겠지요??? 그동안 로또가 되어야 할텐데...
조선인님/아, 그 마태우스 호프.... 제가 술을 다 먹어버려서 잘할 수 있을지... 하여간 감사합니다.


sooninara 2004-06-02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과장님...친구가 승진하니 기분이 좋군요..
의예과장된 턱은 언제 내실겁니까?ㅋㅋ 이런 거지 근성은 없어 지지도 않아..

마태우스 2004-06-02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그건 거지근성이 아니라, 미녀 근성입니다^^ 턱이야 뭐 님께서 원하신다면...
그러고보니 님은 '터'가 들어가는 말을 좋아하시는 것 같네요.
턱, 털...또 뭐가 있을까?

비로그인 2004-06-02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라~~ 잘 되었습니다. 너무너무 님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으쓱합니다.(오늘 쫌 덥네~)

마냐 2004-06-02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화장실 나올 때 다르다는 말씀이 압권입니다...일이 늘면 곤란하죠. 여러모로..ㅋㅋㅋ 암튼, 알라딘에 경사났네요. ^^

쎈연필 2004-06-03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역시 마태우스님의 글은 압권 유머!!!!!!!
연구실을 PC방으로 쓴다는 것에서 뒤집어졌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으하하하하하하

kimji 2004-06-03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명 축하할 일인데요^>^ 일이 늘어나는 것은 늘어나는 거고, 2년간은 조금 덜 불안한 하루하루가 되지 않을까, 좋은 일이네요.^>^
축하드려요, 마태우스님-

nugool 2004-06-03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코멘트들이 너무 길어서 여기 꺼정 내려왔어요~ 맨날 짤린다 짤린다 걱정이신 거 그거 엄살아니십니까? 제가 보긴 총애를 한몸에 받고 계신듯한데... ^^ 축하드리구요. (이건 축하드려야 할 일이 분명합니다. )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그럴싸하고 빽있어보이는 감투를 쓰신 분인 것 같습니다. (우리 아는 사이 맞죠? 음... 어설프게 아는 사이구나..)^^

▶◀소굼 2004-06-03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메시지 2004-06-03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려요. 2년 동안, 맡으신 자리를 편하고 일없는 자리로 체질을 개선시키고 잘 활용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보겠습니다.

stella.K 2004-06-03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전계획 같은 거 내지말라고 하면 발전할거 같다는 마태님 말씀,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과장님 되셨으니 학교의 발전을 위해 더욱 힘 쓰셔야겠군요. 축하드립니다!! 그 학장님 사람 볼 줄 아시는가 봐요. ㅎㅎ.
저도 바라기는, 아무리 바쁘셔도 알라딘 뉴스레터만큼은 꼭 잘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저하고 안지도 얼마 안되셨는데 바쁘다고 멀어질까 저어사옵니다. 그래도 마태님은 잘하실 거라고 믿어요. 홧팅!

sweetmagic 2004-06-03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전화 한통 드렸다고 의예과 과장을 시키시나 ??
어떻게, 전화 한 통 더 드릴까요 ? 더 필요한 거 있으세요 ?

마태우스 2004-06-04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weetmagic님/역시 님의 공로가 컸군요! 음..더 필요한 건...아직은 없는 듯... 있으면 님께 연락 드릴께요.
쥴님/언제나 저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는 쥴님,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월급이 오르거나 그런 일은 아마도 없을 것 같습니다
stella09님/알라딘에서 일하고 남는 시간에 학교일을 하면 되겠지요? 술을 조금만 줄이구요. 근데 가능할지...
메시지님/하하, 님의 유머감각도 대단하시네요.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소굼님/감사합니다. 사실은 축하받을 일이 아닌데..
너굴님/사랑받는 건 아닌 것 같구요, 보기에 일이 없어 보여서 시킨 게 아닌가 싶습니다. 글구 아는 사이인지 물어보셨는데요, 어디 가셔서 제 친구라고 하셔도 됩니다^^
kimji님/정말 덜 불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격려 감사합니다.
폭스바겐님/저도 님을 아는 게 기뻐요! 제가 과장된 게 별거 아닌줄 알았는데, 님들의 축하를 받으니 대단한 일을 했다는 생각이...
마냐님/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자몽상자님/그거 비밀이니깐 다른 사람에게 저얼대 말하지 말아 주시길... 학장님 아심 저 바로 잘립니다.
 

 

 

 

 

 

일시: 6월 1일(화)
누구랑: 모교 사람들과
마신 양: 1차에서 소주 한병 반, 그리고...

제목은 '화해'라고 썼지만, 사실은 '투항'이 더 어울린다. 모교 선생님들한테 삐진지 거의 석달이 다되어 가는 어제, 난 그분들과 술을 마시면서 모든 감정을 풀었다. 화해라는 것은 쌍방이 아쉬웠던 마음을 푸는 것일진대, 내가 알기에 모교 측에서는 내가 삐진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나 혼자 "나 삐졌어!"라고 씩씩거리고 있었을 뿐. 물론 그동안 내가 보고 싶다고, 술이나 같이 하자고 하는 제의가 몇차례 있었지만, 안간다고 했을 때 내 기대와는 달리 별로 붙잡지도 않았다. 그런 판국이니, '화해'는 결코 아니다.

그 술자리에 가게 된 계기는 참으로 황당했다. 그저께 오후, 매우 중요한 전화를 하고 있었는데 심복한테서 전화가 여러번 걸려온다. 할수없이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술마시러 오라는 거다. 빨리 전화를 끊을 생각에 "알았어요!"라고 대답한 것. 그렇게 했으니 술자리에 가야지 별 수 있겠는가.

아무리 박대해도 친정은 친정, 오랜만에 갔지만 마음은 편했고, 내 지도교수는 날 아주 반갑게 맞아 주셨다.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드는데, 더 좋은 것은 집에도 아주 빨리 갔다는 거다. 이유는 선생님께서 <불새>를 봐야 한다는 것. 그래서 우린 9시 10분에 노래방에서 나왔는데, 전철을 타고 집에 가니 열시도 안됐다. 내가 좋아하는 이은주가 주연한 그 드라마가 고맙게 느껴졌다.

애매하게 취하면 잠을 제대로 못자는 나,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맥주 세캔을 사왔고, 그걸 마시면서 인터넷으로 일요일날 아침에 했던 '이슈& 이슈'를 봤다. 전여옥이 나온다는 걸 원래 알고 있었고, 그녀가 어떤 인간형인지도 잘 알았지만, 역시나 짜증이 났다. 걸핏하면 끼어들고, "외국 같으면 국회가 의결하면 대통령은 물러납니다!"라는 말을 당당히 하는 전여옥, 그녀와 토론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전 대변인은 “(그동안) 나만 나온다면 여당에서 불참하겠다고 해 토론을 할 기회가 없었다”며 “계속 이러면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말했다. 그는 “(여당 단골 TV토론 출연자인) 유시민 의원과도 꼭 한번 토론하고 싶은데, 기회가 없었다”고 밝히고 “박영선 대변인에게도 수차 토론을 제의했으나, 서면 인터뷰 등 15번이나 ‘바람’ 맞았다”고 구체적인 케이스들을 거론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 당사자들은 어떤 입장일까. 전 대변인과 토론을 거부한 김현미 대변인은 “전 대변인은 억지가 심하고 도발적인데다, 남이 말할 때 끼어드는 등 토론 질서를 안 지키는 편이라 같이 토론하기 싫다”고 말했고, 유시민 의원은 “대답할만한 가치가 없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최재천 의원은 “전 대변인과 토론하다보면 감정적인 말싸움을 하는 일이 잦은 편이라 다들 토론하기 불편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ㅈ 일보 김민철 기자]

이에 대해 전여옥이 한 말은 그녀가 개그에도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준다.
"궁색한 변명이다. 내입으로 말하고 싶지 않지만, 토론에서 밀릴 것 같아 그런 것이라고 하는 것이 솔직할 것...참고로, 일선 PD들은 토론 프로그램에 가장 나왔으면 하는 토론자로 나를 꼽고 있다"
그 프로를 봐서인지 난 악몽을 꿨으며, 아침에 일어나니 무지하게 피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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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6-02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제목만 보고... 저와 화해하신 것을 자축하는 글인 줄 알았습니다.^^;;;

로렌초의시종 2004-06-02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여옥...... 과연 그녀는 누구인가...... 심리학 부전공을 하게 싶게끔 만드는 강한 원인이죠......(제 친구는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고 말렸습니다만......)

책읽는나무 2004-06-02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누맘...동감이오!!..ㅎㅎ

starrysky 2004-06-02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하셨어요 마태우스님. 혼자서만 꽁~하고 씩씩거리고 있는다고 누가 알아주나요. 그저 자기 마음만 불편하고 찜찜하고 그렇죠. ^^ (혼자 꽁해서 씩씩거린 경험 1000번. 히히)

다연엉가 2004-06-02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전씨가 맨날 난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