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의 특징 중 하나는 어머니와 아들간에 갈등이 있으면 무조건 어머니 편을 든다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내가 제3자 해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내가 당사자일 때, 그래서 나의 억울함을 하소연하고자 했을 때 다들 어머님 편만 들면 좀 서운하다. 어머니가 삐지셨다. 이번만큼은 내 편을 들어줄 것으로 믿고, 전말을 써본다.

1) 어머니의 특징
전에도 여러번 말했지만 어머니는 바쁘다. 아침 8시 전에 어디론가 나가셔서 밤 7시쯤 돌아오신다. 밖에 계실 때는 친구분과 얘기를 하시느라, 집에 계실 때는 친구분과 전화를 하시느라 내가 엄마와 대화할 틈이 없을 정도다. 어머님이 휴대폰을 받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그래서 엄마 친구들은 늘 "전화가 안된다"며 불만을 표출하고, 그걸 잘 아는 엄마는 중요한 전화 같은 건 내 번호를 가르쳐줘 버린다. 예컨대 경품 같은 걸 응모했을 때라든지, 바지 수선을 맡겼을 때도 내게로 전화가 온다. 내가 전화를 받으면 그들은 흠짓 놀란다.
"김선자 씨 휴대폰 아니어요?"
나도 엄마한테 꼭 전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전화를 받는 비율이 10%도 안되니 당연한 일이다. 꼭 전해야 할 말이 있어 두시간쯤 전화를 건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2) 냉장고
우리집 냉장고가 고장이 났다. 문짝에 달린 선반이 떨어져 버렸다. 거기다 뭘 잔뜩 넣어두신 것도 이유가 되지만, 더 결정적인 것은 내가 냉장고 문을 워낙 과격하게 열었던 것. 문을 열자마자 굉음을 내면서 선반의 물건들이 쏟아졌으니 사실상 내 책임이다. 하지만 비겁한 나는 그게 저절로 떨어진 것처럼 엄마에게 보고했고, 엄마는 새 선반을 AS 센터에다 의뢰했다 (이 대목은 내가 나빴다).

엊그제, AS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부품이 나왔으니 찾아가라고. 이 더운 날 엄마가 선반을 들고 버스를 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던 나는 내가 일찍 퇴근해 그걸 찾아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엄마가 거길 가면 어쩌지? AS 센터에서 "다른 전화가 안되서 이 전화로 했다"고 한 걸 보아 엄마한테도 연락이 갔을지 모르고, "언제쯤 찾으러 오라"고 했으니 전화가 안왔더라도 엄마가 거기까지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엄마의 짐을 덜어드리기 위해 난 세시부터 전화를 걸었다. 안받는다. 또 했다. 안받는다. 정말이지 날씨도 더운데 화가 안날 수가 없었다.

일이분 간격으로 두시간 동안 그랬으니 백통은 더 했나보다. 다섯시를 넘긴 시점에서 엄마가 갑자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 소리에 놀라 나도 모르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다시 했다. 갑자기 화가 난 나는 "왜 이렇게 전화를 안받냐"고 언성을 높였고, 할말도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나중에 집에 오신 엄마는 "친구들이 아드님이 화나셨나봐요라고 해서 창피했다"고 하시면서 "친구들과 얘기하느라 못들었는데, 내가 아들 무서워서 친구도 못만나냐?"고 하신다. 난 친구랑 계신줄 몰랐다고, 그 대목은 죄송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앞으로는 전화 절대로 안할 테니 편하게 노세요"

그래서 엄마는 삐졌다. 눈치를 보니 다음날 아침에도 화가 안풀리셨다. 그래서 해명을 했다.
"내가 전화를 할까봐 엄마가 놀 걸 제대로 못노실까봐 전화 안한다는 거예요. 엄마가 전화 오나 안오나 신경쓰고 있으면 안되잖아요. 그리고 엄마한테 전화를 할 때마다 엄마가 미워지니, 전화를 안드리는 게 더 좋지 않아요?"
1%의 비아냥도 없는 진심이었지만, 엄마는 더더욱 삐지셨다. "니가 그럴 수가 있냐???" 어제 아침에는 심지어 이런 말씀도 하신다.
"우리 아들이 전화를 안하니까 내가 재미가 없다"
내가 편을 들어달라는 건 바로 이대목이다. 전화를 죽어도 안받으시면서, 내가 전화하는 게 재미있다고? 그렇게 믿는 건 아니지만, 엄마는 혹시 내 전화를 일부러 안받는 재미로 인생을 사신단 말인가.

난 앞으로도 엄마에게 휴대폰을 걸지 않을 거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전화를 걸려고 마음을 먹는 순간부터 내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전화를 안받는 엄마를 미워하게 되니까. 이런 마음을 먹는 게 과연 나쁜 걸까? 엄마가 내 고운 마음을 이해하시고 삐진 걸 푸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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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마녀 2004-07-28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어머님도 이해하실거에요 ^^

sweetmagic 2004-07-28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때문에 못살아 증말~~
저도 전화받는 비율이 낮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라 무지하게 찔리면서 이 글을
읽었는데요. 일부러가 아니라 정말로 몰라서 못 받는 경우도 있다는 것도 이해해 주세요.
예전에 남친들과 전화하고 안하고 또, 받고 안 받고 하는 갈등이 꼭 생겼었는데...
그때 생각나네요.
아침,,,님 ...... 절대로 라는 지키기 힘든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닐 것 같아요.
나중엔 정말 전화통화하고 싶어도 못할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잖아요.
그리구요...
님과의 통화는 늘 즐겁고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자주자주 통화하세요.
당연히 받는 사람도 기쁠테구요. 고운 마음으로 기쁘게 통화하세요.
의외로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네요~~ ^^

oldhand 2004-07-28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 존함이 저희 어머니랑 같으십니다. 아.. 그리고 저희 어머니도 전화 잘 안받으세요. 보통 꺼져있습니다. 가끔 아버지 핸드폰으로 전화하면 어머니가 받습니다. -_-;

플라시보 2004-07-28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편 들어드리면 뭐 해줄래요? (워낙 댓가를 바라는 타입의 인간인지라 하핫)

플라시보 2004-07-28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oldgand님이랑 마태우스님이랑 형제세요?^^ (존함도 같고. 전화도 안받고...흠 남은건 전화번호만 같으면 되겠군요. 쩝)

sweetmagic 2004-07-28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쥴님 저두요~~~ ^^
근데 어머님도 조금은 아들 생각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사랑하는 내 전화를 꼭 받아줘~ 네 목소리 하루라도 안 들으면 못살거 같아
가 나중에는
난 너랑 통화한것 보다 서비스 안내하는 아가씨 목소리를 더 많이 들어서 그 니 목소리를 들으면 깜짝 놀랜다.. 어쩔 땐 당황스럽기까지 하다구...
가 되어버리거든요 ^^

마태우스 2004-07-28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쥴님/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런데..."마태우스님은 징징거리시는 것도 예쁘네요" <--안됩니다. 님마저 이러시면....
플라시보님/편들어주시면 편육이라도 몇점....<--썰렁하죠?
oldhand님/형!!!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왜 이제 왔어!!!! 엉엉
스윗매직님/'절대로'라는 표현은 조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수다 하는 게 엄마 닮아서인가봐요.
하얀마녀님/저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가을산 2004-07-28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어머님 귀여우시네요.
"우리 아들이 전화를 안하니까 내가 재미가 없다" 라니! ^^

물만두 2004-07-28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님은 맞지는 않잖아요. 전 맞는데요. 글쎄요. 맞는게 삐지는 것보다는 낫나??? 울 오마니는 삐지시지는 않습니다. 모든 걸 주먹으로 해결하시기 때문에... 아, 자해공갈단으로 드러누우시기는 합니다... 그래도 전화 자주 하세요. 아들이 어머님께 그것도 못합니까? 울 만돌이는 전화 자주 하는 편인데 좋더라구요. 별 얘기 아니더라도 밥 먹고 들어간다느니, 지금 들어간다느니 하면서요. 1분의 통화라도 자주 하시지요...

털짱 2004-07-28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가 다정다감한 분이시네요. 마태님 인기의 비결이 유전이었군요....
그럼 저도 어머니께 물려받은 털일까요???
새삼스레 맨델의 유전법칙이 생각날라 그래요.

oldhand 2004-07-28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형" 이라니요... 저 그렇게 나이 먹지 않았습니다. 형! 대체 어디있다가 이제 온거야? -_-;

진/우맘 2004-07-28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방법이 있습니다. 핸드폰을 안 받으시면, 음성을 남기세요.
"사랑하는 엄마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 했는데 왜 안 받아잉~~~"
음성 확인 못하셔도 상관 없습니다. 나중에 두 분 같이 계실 때 마태님이 음성 확인 시켜드리면, 전화 안 했다는 누명도 벗을 수 있고, 사랑도 돈독히 하고~일석이조지요, 뭘.

ceylontea 2004-07-28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뿐 아니라 마태우스님도 삐지신 것 같아요... 히히...
저희 시어머니께서도 엄청 전화 안받으셔서... 전 그냥 그려려니 합니다..
마태우스님 2시간 내내 100통쯤 전화 굉장하십니다...
그냥... 나중에 또 전화 하실텐데.. 안하신다 하십니까..
그리고... 어머니를 생각하시는 마음을 읽을 수 있어서 기분 좋은 페이퍼였습니다.

starrysky 2004-07-28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엄마는 제가 진짜로 너무 전화를 안 해서 맨날 삐지시는데..
전 전화를 하는 것도 받는 것도 너무너무 싫거든요. 특히 뜨끈뜨끈한 핸드폰은 더더욱. 일 관계의 전화 아니면 가급적 메신저로 해결하고자 하는 저의 작은 소망을 여전히 친구들은 이해해주지 않고, 왕따 내지는 사회부적응자로서의 길만 열어주고.. ㅠㅠ
저도 진/우맘님 의견에 동의해요. 2시간 내내 전화하시느라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음성을 주로 남기시면서, 어머님께 생각 나실 때마다 음성 확인해 보시도록 말씀드리면 어떨까 싶네요.

tarsta 2004-07-28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께, 급하니까 연락을 달라는 신호..는 뭐 없을라나요.
문자확인은 안된다 하셨던가요.? ..아님 삐삐라도... .
연락 안되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지요.. 좋은 해결책을 찾으실길 바랍니다.

2004-07-28 1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7-28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yo12 2004-07-28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어머니랑 비슷한 성향이 조금 있으신가봐요.
저희 엄니는 노는데 방해될까봐 저에게 전화를 돌려 놓으시지요.
제 전화에 오는 통화의 90%는 엄마에게 오는 통화라,
그런데 삐지시는 거 정말 힘들어요.
그거 풀어드리려면 또 얼마가 들어가야하는 지. ^.~

비로그인 2004-07-28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까지 '엄마' 이셨음 좋겠어요.
어머니와 엄마는 왠지 느낌이 달라서요.

남동생은 군에 다녀오고서는 어머니 라고 호칭을 바꾸더군요;;;

superfrog 2004-07-29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선을 한 번 봐드리는 조건으로 어머니와 hot line을 개설하는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받아야 하는 핫라인!
님만 번호를 아시고 발신은 안되게 막아두고..^^;;;

마태우스 2004-07-29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붕어님/어떤 핫라인도 어머니를 방해할 수 없는 것 같은데요....
On your mark님/엄마가 더 친근하죠. 근데 나이들어서 엄마라고 하면 사람들이 놀리더군요.
soyo12님/으음, 님의 어머님은 더 대단하신 듯... 엄마 전화를 님에게 돌려놓는다니...
따우님/음성메시지 사용법 알려드렸는데요, 사용 안하니까 까먹고 또 가르쳐드리고, 또 까먹고...그런 상태입다.
tarsta님/아이, 부끄러워요!! 그리고... 좋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 전 도무지 생각이..
스타리님/역시 님은 쿨한 분이십니다. 존경합니다.
실론티님/제가 말만 그렇지 엄마한테 잘 못해요. 부끄러워요.
진우맘님/님의 방법이 좋은 것 같군요^^
털짱님/어머님의 자애로움은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뻑하면 고릴라처럼 제 가슴을 치는데, 그게 안타까워요
물만두님/아, 물만두님은 제 맘을 모르시는군요. 전 전화 자주 하고 싶어 죽겠는데 엄마가 안받는다구 말씀드렸는데..
가을산님/오늘 아침에도 엄마랑 안좋았어요. 제가 안한 말을 중매장이한테 전했다고 하더니, 제가 추궁하니까 나중에는 그런 적 없다고 발뺌을 하시고...아, 엄마란 참 어려운 분입니다.
 

 

 

 

 

 

일시: 7월 27일(화)
누구랑: 모교 사람들과
마신 양: 소주1병-->양주-->소주1병, 12시 귀가
좋았던 점: 지도교수가 나 왔다고 흐뭇해했다
나빴던 점: 파산함

1. 계산
모교에서 연락이 왔다. 스페인 학회를 다녀 왔는데, 오랜만에 술이나 같이 하자고. 난 원래 다른 약속이 있었지만 잔인하게 그 약속을 취소하고 모교로 갔다. 다른 학교에 가있는 내 친구 P와 또다른 학교에 있는 H가 와서, 교실 졸업생이 세명이나 온 거라, 선생님은 무지하게 좋아하셨다.

1차로 삼겹살을 먹었다. P가 잽싸게 계산을 했다. 왜? 1차가 제일 쌀 것 같으니까. 이번달엔 하두 카드로 긁어댄 터라 어떻게 돈을 안써볼까 했지만 그게 잘 안됐다. 믿었던 H가 "친구랑 약속이 있다"며 도망쳐 버린 것. 낼까말까를 열댓번쯤 망설이다 눈 딱 감고 긋기로 했다. 2차는 우리 단골인 양주를 파는 노래방에 갔는데, 양주 1병 값만도 7만원인데 맥주 몇병에 안주까지 세 개를 시켰다. 먼저 계산을 해 부담이 없어서 그런지 P는 계속 양주를 따르면서 "오늘 한번 마셔 봅시다!"를 외쳤다. 얄미운 놈... 결국 우리는 양주 한병을 더 시켜야 했고, 하두 긁어서 마그네틱이 닳은 내 카드는 힘겹게 전표를 뽑아냈다. 갑자기 다음 달이 무섭다. 내 결제액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2. 일본 알레르기
난 이상한 습성이 있다. 일본노래나 일본말을 들으면 밥을 못먹는 것. 일본 것을 먹는 건 더더욱 못한다. 생각 자체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릴 정도. 어릴 적부터 그랬다. 그러니 일본에서 학회가 있으면 절대 안갈 수밖에. 우리 누나도 그런 걸로 보아, 독립운동을 하던 조상의 넋이 유전된 것 같기도 하다.

1차로 간 삼겹살집에는 젊은 애들이 40명쯤 앉아서 고기를 먹고 있었다. 젊은이들답게 무지하게 떠들어댔다. 그거야 그럴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들이 일본 사람이라는 것. 괴성을 지르고 웃고 소리를 질러대는데, 그 좋아하는 삼겹살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귀를 막고 먹어보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다행히 온지 40분쯤 지나서 걔네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난 그다음부터 삼겹살을 씹지도 않고 입에다 넣었다. 열명이서 18인분을 먹었는데 4인분 정도는 내가 먹지 않았을까 싶다. 그들이 안갔다면 아마 한점도 못먹고 허기진 채 노래방을 가야 했을 터, 일본 알레르기는 영영 고칠 수 없는 것일까?

3. 노래방에서
옛날엔 최신곡을 부르곤 했지만, 어제 분위기는 완전 복고풍이었다. 90년대는 고사하고 80년대 노래가 주를 이뤘다. 젊은 여자애들은 '뮤지컬'이나 제목을 모르겠는 자우림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지만. 내가 처음 고른 노래는 소방차의 <하얀바람>이었다. 다들 놀랐다 (왜 놀랐을까?)
"또분다 분다 하얀바람이/난몰라 참 정신없이 말을했지만/그대 코끝으로 웃는 것같아..."
중간 간주 중에 팬 서비스 차원에서 덤블링을 했다. 그런데 하다가 그만 자빠져 버렸다. 예전에는 한손으로도 멋드러지게 덤블링을 했었는데, 산처럼 나온 배가 덤블링을 감당하지 못하게 하나보다. 젠장!

지도교수를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P와 나는 색다른 이벤트를 준비했다. P랑 내가 무대에 오른다. P가 내 어깨에 손을 짚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거치른 벌판으로..."를 하는 거다. 듣기엔 그럴 듯 했지만, 노래방에선 <젊은 그대>의 전주가 나와버려 김이 샜다. 두 번째 이벤트. 간주 중에 내가 빈 양주병을 손에 든다. 그리고는 귀에 대고 말한다.
"친구, 내가 좀 그랬지? 양주 어때? 지금" 그러면서 양주병을 내미는 것. 생각할 때는 웃겼는데 막상 하니까 남들이 잘 못알아듣는다. 으음, 역시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니까.

사실 난 노래방이 싫다. 나뿐 아니라 어제 참석한 사람들 모두 싫어한다. 그럼에도 줄기차게 거길 가는 이유는 지도교수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른 팀들은 정말 즐겁게 노래를 하지만, 우린 조용히 앉아서 탬버린과 손뼉을 칠 뿐, 분위기가 죽어 있다. 좋아서 하는 게 아니니까. 잘 노는 애도 없지만, 있어도 그런 분위기에서는 쑥스러워서 잘 놀지 못한다. 그래서 전혀 놀 줄 모르는 나와 P가 재롱을 피워야 하는 처지. 이 나이에 그러긴 정말 싫지만, 어쩌겠는가. 되지도 않는 춤을 추고, 부르지도 못하는 노래를 부르느라 소리만 질러댄 저녁, 그래도 선생님이 즐거우셨다니 다행이다. 선생님을 보낸 뒤 P와 둘이서 신촌 순대집에 앉아 소주 한병씩을 먹고 들어갔다. 피곤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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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7-28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주 어때? 지금? 그거 조인성이 캔커피 광고하는거 패러디 하신거죠?^^

하얀마녀 2004-07-28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노래방에서 노래 불러본 지가 2년이 넘었네요. 이러다 노래 어떻게 하는지 잊는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

진/우맘 2004-07-28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마나, 오마나, 그럼 옛날 첫 오프모임 때 보여주신 그 춤사위는....우리가 아주 대단한 것을 본 것이로군요!!!

sooninara 2004-07-28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리플쓴 내글이 날라갔어요...알라딘 미오...
다시 생각해보자...(마친구님...혹시 저를 미워하시나요..흑흑)
춤사위라...마친구님 소방차 저리가라던데요..흠흠..다시 한번 그날을 기억하며..
저도 노래방을 싫어하지만..다른사람들이 원한다면..노래방 가서 탬버린도 흔들고..분위기 업시킨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막춤도 추고...-.-::
노래방을 안가야혀...^^

메시지 2004-07-28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커피광고보고 언제 한 번 해봐야겠다 싶었는데 실전에서는 약하군요. 하지말아야지.

마태우스 2004-07-28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시지님/분위기가 시끄러워서 그런 거구요, 조용한 곳에서 하면 분위기 업 시키는데 최고일 듯... 참, 조인성을 닮아야 한다는 것도 조건 중 하난데, 님은 어떠신지요^^
수니나라님/님하고 가면 재미있지요. 우리 교실에서 가는 게 재미없단 얘기...
진우맘님/부끄럽소, 낭자.
하얀마녀님/앗 그러고보니 제가 하얀바람을 부른 건 운명인가봐요
플라시보님/앗 님은 오랫만에 제 서재에.... 감사합니다. 넙죽.

미완성 2004-07-28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우, 다행입니다. 덤블링하다 연약한 손목이라도 다치신 게 아닐까 싶었는 데...그럼 님의 즐겁고 유쾌한 글을 볼 수 없잖아요. 오프모임 사진을 봤는 데, 마태님 너무 귀여우셨어요 *.*
고생하셨습니다..(__)

** 결국, 오늘 2개나 쓰셨군요...아침에 페이퍼 2개를 바람처럼 날리고, '음하하하! 마태님을 이겼다!!'라며 혼자 좋아했는데.....휴우. 하여튼 '다산' 마선생님은 이길 수 없다니까 ㅠㅠ

stella.K 2004-07-28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알레르기 저도 있어요. 마태님 덤블링하는 거 보고 싶은데...말만 귀엽게 하시는 줄 알았더니 노시는 것도 귀엽게 노시나 봐요. 덤블링 실수하셨어도 귀여우셨을텐데...첫 오프모임 때 그러셨단 말이죠. 후후후~

털짱 2004-07-28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음주에 가무까지 능하단 말씀입니까?!
왜 하늘은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것을 몰아주었을까요? 올인전략인가요?
아마도 마태님은 하늘이 주신 그 재능을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나눠줘야할 역사적 숙명때문에 결혼은 힘드시겠어요...(저런저런..)
저기... 어머님한테 선자리 다 취소하시라고 제가 대신 연락드릴까요? 0_0??

클리오 2004-07-28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역시, 지도교수께는 그렇게 늘 재롱을 떨어야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암울한... ^^

ceylontea 2004-07-28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노래방은... 진우맘, 수니나라 듀엣을 볼 수 있어야 맛이 나죠...

starrysky 2004-07-28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도교수님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온몸 바쳐 노력하신 제자 두 분이, 마지막으로 조용히 소주잔을 기울이셨을 모습이 왠지 쓸쓸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져요.
저도 노래방은 정말 싫으니까 담에 닭 뜯으러 만나서도 우리 노래방은 가지 말아요~ ^-^

soyo12 2004-07-28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에 노래방을 정말 오랜만에 갔다가
열심히 제목들만 읽다 왔습니다.
정말 노래방은 무섭습니다. ^.~

메시지 2004-07-28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인성이라~~~ 넘어야할 벽이 만만치 않네요.

sweetrain 2004-07-28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저도 닭 뜯을 수 있어요...머리만 길면...저는 혼자 앉은자리에서 피자 한판을 클리어하고 돌아왔습니다. 앉아서 먹어야 30% 할인이라길래...전 위대합니다. 아아...노래방, 저도 늘 어르신들 모시고 자주 갔었지요...가서 기쁨조 한 3년간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마태우스 2004-07-29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비님/피자 한판이라면 정말 대단한데요. 기쁨조 생활은 님에게도 그리 아름다운 추억이 아닌 듯 싶네요
메시지님/으음, 그렇군요. 그래도 저만큼 안생기신 건 아니죠?^^
soyo님/노래방의 무서움을 아는 당신, 대단하십니다.
스타리님/다행이군요. 둘다 노래방을 싫어한다니!! 이런 걸 보고 운명이라 합디다.
실론티님/그 두분이 풍류를 아는 분인 것 같더군요.
클리오님/암울하죠... 이 나이에 재롱이라니...
털짱님/어머나 좋아라!!!
멍든사과님/저의 영원한 경쟁자이자 동반자이신 사과님, 님의 코멘트는 늘 저를 감동시킵니다.
 

 

 

 

 

 

러일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가족들이 사령관이었던 도조 헤이하치로가 배에서 내리는 걸 보고 항의차 달려갔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가 자신의 세 아들의 주검을 수습하고 있었기 때문. 이런 얘기는 일본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모택동의 아들인 모안영...한국전 참전 당시 신혼이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말렸지만, 모택동은 "그가 안가는데 누가 간단 말인가"라는 말로 반대를 일축하고 아들을 전쟁터에 내보냈다. 모안영은 11월 25일 공습으로 사망했는데, 모택동은 그 사실을 3개월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1권 158-159)]

강준만의 역작인 <한국현대사 산책>을 읽다보면 분노, 슬픔, 허탈 등의 감정이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걸 느낀다. 우리 현대사는 왜 이리 지지리 못났는지에 대해 분노하게 되고, 분노가 고조되다 보면 허탈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50년대를 읽으면서 느끼는 분노의 크기는 70, 80년대와 비할 바가 아니다. 6.25와 함께 시작된 50년대 내내 우리나라는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었다. 전쟁 때문이 아니다. 이 나라 지배층들의 한심한 작태 때문이다. 전쟁이 일어나자 한강다리를 끊고 도망간 이승만도 그렇지만, 나머지라고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위의 책에서 인용한다.
[부산에 결집한 상당수 고위층과 부유층 인사들은 배를 부산항에 대놓고...일본으로 탈출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이미 일부는 제주도로 피난간 상태였다 (105쪽)]

김두한은 결국 이 배들을 수색하는데, 그때의 놀라움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들의 선실을 뒤졌을 때 그들의 화려함에 놀란 정도가 아니라 기절할 뻔했다. 군대에 가야 할 적령기에 있는 젊은이가 여인들가 춤을 추고 있었고, 외래품으로 몸을 감은 그들은 양주병을 앞에 놓고 엔조이에 한창들이었다 (106쪽)"

[임시수도 대전에 머물렀던 각료들은 인민군이 평택까지 쳐들어 왔다는 소문을 믿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전주로 도망을 갔다가 그게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지자 다시 대전으로 돌아왔다. 그 한심한 작태에 분노한 여관집 주인이 그들의 투숙을 거부했으니,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대전 성남장 사건이다(65쪽)]

강준만은 이렇게 말한다. "이는 해방정국에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데 친일파를 위주로 기능적 효율성만을 따져 기용해선 안될 이유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배집단은 일제시기에 그랬던 것처럼...자신과 자기 가족 챙기기에만 바쁜 모습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전쟁 중인 와중에 각 도에서 국립대학 설립이 추진되는 희한한 일까지 있었다. 왜 그랬을까? 대학생들에 대한 징집 연기조치가 취해졌기 때문에.
[당시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과연 어떠한 계층의 사람들이 대학을 다닐 수 있었겠는가...기득권 계층이 그들의 자제에게 병역기피의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은 아닐까. 교사와 고등학교 재학생마저도 전쟁에 지원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과연 전시에 대학생이 증가한 것은 바람직한 일일까? (267쪽)]
사정이 이러니 한국군은 전장에서 죽을 때 "빽!" 하면서 죽었다는 얘기가 나돌았을 것이다. 
이 현상에 대한 내 친구의 설명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안되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에는 서양과 같은 귀족계급이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공작, 백작 등의 타이틀만 붙지 않았을 뿐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기득권 세력은 대대로 권력을 세습해 왔고, 나라가 망한 와중에도 친일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유지했다. 해방 이후에도 살아남은 그들은 정권이 바뀌는 와중에도 굳건히 버티며 사회의 주류로 행세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귀족이 없어서라는 친구의 말은 틀렸다. 그렇다면 왜? 아마도 민중의 감시가 소홀한 결과일 것이다. 서양 귀족들이 우리 지배층처럼 행동했다면, 귀족 신분을 유지하지 못했을 거다. 그럼 이제부터라도 감시를 잘 한다면 나아질까? 물론이다. 하지만 그 감시의 선봉에 서야 할 언론들도 그리 건강하지 못하다. 우리나라 안보를 책임지는 조선일보사 사장을 필두로 언론사주 자제의 많은 수가 병역 미필자라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그리고 지난 세무조사 때 밝혀진 엄청난 탈세규모로 볼 때, 그들이 과연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말뜻이나 아는지 궁금하다. 이런 생각을 하니 우울해진다. 우리에게 과연 희망은 있는가?

*제가 원래 언론개혁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라, 결론이 황당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 그리고...전 재벌2세 중 유일하게 군대를 다녀왔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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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4-07-27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기득권층만 그런 건가요... 나만 잘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의식구조... 이러니 어렵게 살아가는 국민들이 살 맛이 나겠냐구요... 파리의 연인의 어느 한 장면.. 재벌집 자녀들의 모임 장소.. 그들은 그렇게 젊은 시절을 호사하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어요..
아, 물론 마태우스님은 그들과 차별화된 재벌 2세입니다! 책 선물 해주시잖아요~

하얀마녀 2004-07-27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황당하지 않은 결론입니다. 저도 언론을 가장한 이익집단이 현재와 같은 영향력을 갖고 있는 한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언론개혁이야말로 대한민국의 환부를 도려내는 사회개혁의 시작이 될거라 믿습니다.

로렌초의시종 2004-07-27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준 낮은 효율성을 추구하다가 수준 높은 효율성을 잃어버린 결과가 된 셈이죠. 우리의 근대사는, 그런데 왜 아직도 우리는 당장 눈에 보이는 돈 몇푼으로만 효율성의 척도를 재는 걸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요인들도 장기적으로는 얼마든지 효율성의 원천이 될 수 있는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무형의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한 명분의 정립이라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친일파 기용,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유신헌법, 우리는 정말 그동안 끈질기게 눈앞의 효율성만을 맹신하고 살았으니까요.

머털이 2004-07-27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공보의 하셨죠? 4주 훈련 받으셨죠? ㅎㅎ

마태우스 2004-07-27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털이님/아닙니다!!! 13주 훈련 받고, 3년을 더 근무했습니다!!! 13주 훈련이 어찌나 고되었는지 6킬로가 빠졌었지요!
로렌초의시종님/오오, 코멘트로 남기엔 아까운 좋은 글입니다.
쥴님/어머나 쥴님. 제 글의 요지는 그당시 다른 처세를 했다고 더 나아졌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지도층의 봉사와 희생이 전통으로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토로한 것이지요. 예컨대 고종 황제가 그런 비굴한 처신을 안했다면 역사는 그대로일지라도 지금처럼 가진 자에 대한 불신이 만연하지는 않았겠지요.
하얀마녀님/동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녀님은 마음도 하얗습니다
아영엄마님/님 코멘트를 듣고 잽싸게 제 군대 경력을 글에 집어넣었습니다. 절 이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꼬마요정 2004-07-27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세습은 눈에 보이는걸요...언론사와 정계,재계의 혼인으로 엮어지는 관계는 이제 비밀이 아니잖아요? 그렇게 자기들끼리 똘똘 뭉쳤다가 나라가 위험하다 싶으면 모두들 가지고 있던 미국 국적 혹은 일본 국적을 가지고 각기 안전한 나라로 가서 에헴..하며 살겠죠... 비겁한 인간들... 신념도, 정의도 모르는 그들은 권력과 돈의 노예들이고... 아마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일 겁니다. 자신들의 생명만 소중한 줄 아는..ㅡㅡv

soyo12 2004-07-27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의 연인에 그런 대사 있더군요.
우리 나라의 상위 3%는 나라가 망해도 계속 잘먹고 잘살꺼다.
딱 들으면서 부정안되고 맞아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

털짱 2004-07-27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은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기층민과 마찬가지로 기득권에게도 중요한 것은 생존이겠죠.
기층민의 생존은 국가라는 틀 안에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고
기득권은 굳이 국가라는 틀에 구애받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망치한이라고, 기층민 없이 기득권만 존재할 순 없다는 걸 알아야겠죠.

2004-07-27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냐 2004-07-27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결론 절대 황당않습니다. 박수칩니다. 저도 100% 동감합니다. 죄송합니다.(엥? 뭐가 죄송? 몸담고 있는 죄? 그러구도 개혁 덜 노력하는 죄? 아아...정말 어렵슴다)

2004-07-27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7-28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리오 2004-07-29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제목으로 정진영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얼마전에 했었죠. 거기서 유한양행의 유일한 사장이 얼마나 멋지고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던지.. 앞으로 화장지 등등은 유한킴벌리 거만 써야겠다고 작정했습니다. 좋은 기업문화로도 유명하잖아요..
 

 

 

 

 

 

세월이 흘러도 못잊을 은사, 하면 대개는 깊은 감명을 줘서 자신의 삶을 바꿔준 사람을 말할 거다. 하지만 그 반대도 있다. 동창들끼리 만나서 '그런 사람이 있었지' 하면서 웃고 마는. 선생님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게 너무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글을 다 읽고 나면 내 심정을 이해할 거다.

내가 고1 때, 그는 우리학교에 처음 부임했다. 정치경제라는 과목을 가르쳤던 그는 첫시간에 우리반에 들어와 이렇게 수업을 시작했다.
"여러분들은 정말 행운아들입니다. 내가 1학년 열다섯반 중에서 유일하게 여러분 반을 가르치게 되었으니까요"
난 그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대개 믿는 게 있을 테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열다섯 반 모두를 혼자 가르쳤다. 그의 정체는 오래지 않아 드러났다. 교과서에 나오는 사진-남녀가 결혼하는 사진을 비롯해서-들을 그려오라는 숙제를 내고, 교통안전에 대한 포스터를 만들어 오라고 했다. 오죽하면 쉬는 시간에 숙제를 하는 우리를 본  담임이 "이게 공부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항의하는 일까지 있었을까.

비가 오는 어느날, 그는 우산을 가지고 온 사람에게 손을 들어 보라고 했다. 많은 수가 들었다. 그 중에서 혼자 쓰고 온 사람만 일어나라고 했다. 많이 일어났다. 그는 우산을 왜 같이 안썼냐고 일장 연설을 한 뒤, 반성문을 원고지 50장에 쓰라고 했다. 수업 시간에 뭔가를 질문해서 대답을 못하는 경우도 무조건 반성문 50장이었다. 한번은 수업에 들어오더니 정신수련을 한다면서 한시간 동안 눈을 감고 있도록 했다. 그리고 혹시 졸린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라고 했다. 한사람이 손을 들었나보다. "짝!" 따귀를 갈기는 소리가 났다. 그쯤 했으면 알아들어야 할텐데, 두명 정도가 더 손을 들었는지 따귀 소리는 두 번 더 났다.

그가 낸 시험문제는 형이상학 그 자체였다. 전교에서 수를 받은 사람이 딱 하나일 정도로. 특히 1학기 기말고사는 책에 전혀 안나오는 법률 문제가 망라되어 사법고시를 방불케 했는데, 그 시절에 그래도 공부를 잘했던 내가 64점을 맞을 정도였다. 2학기 중간고사에서는 답이 이랬다. 1번부터 5번은 1), 6-10번은 2), 11-15번은 3), 16-20번은 4), 21-25번은 1). 답을 칠하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몇 개를 고쳤는데, 그의 특성을 파악해 과감한 베팅을 했던 내 친구는 유일하게 100점을 맞았다.

다른 반 반장이던 친구가 그의 수업방식에 항의를 했다. 그의 보복이 시작되었다. 그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그 반에 들어가 '보강'이란 명목으로 점심시간을 빼앗었다. 그건 결국 그반 담임과 그와의 싸움으로 비화되었는데, 하여간 반장은 그의 수업 시간엔 아예 들어오지 않았을 정도로 그를 싫어했다. 그렇게 한달 뒤, 그 반장은 미국으로 건너갔다. 몇 년 후 잠깐 한국에 들른 그에게 유학을 간 이유를 물었다. 야당 의원이었던 아버지가 정치적 탄압을 받아서이기도 했지만, 주 이유는 역시 정치경제 선생의 폭거였단다. 참고로 반장의 형이 <사다리 걷어차기>를 쓴 장하준 씨다.

그는 수업 중 외모상으로 맘에 안드는-노는 애들은 딱 보면 알지 않는가?-애를 보면 불러내어 시비를 걸었다. 잘못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니가 그렇게 주먹이 세? 나랑 한판 붙어?"라며 혼자 흥분했다. 다리를 올려 턱을 걷어차는데 예전에 싸움 한번 해본 솜씨인 듯 싶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얼굴에 상처가 나서 수업에 들어왔다. 안대까지 한 그의 모습에 우리가 궁금해하자, 깡패를 만났다고 했다.
"여러명이 덤비기에 오른쪽으로 몸을 날리면서 왼쪽으로 주먹을 뻗었는데..."
순진하게도 그 말을 믿었건만, 진상은 우리학교 야간에 다니던 학생들이 작정을 하고 그를 폭행한 거였다. 워낙 이상한 사람이라 "어떻게 선생님을 때려?"라는 생각은 안들었던 것 같다. 그는 결국 그해가 가기 전에 학교에서 해임되었고, 2학년 때는 새로운 정치경제 선생님 밑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정치경제라는 과목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2학년 때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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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마녀 2004-07-26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다 읽고 나니 전 참 복 받았단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인간 이하인 선생님은 만나본 적이 없거든요. 정말 마태우스님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쉼표 2004-07-26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엔 참 이상한 사람들 많아요..그쵸??
저도 중학교때 가사선생님이 그런 분류여셨거든요..
지휘봉으로 머리를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뜯기도 하고 후라이팬이나 냄비뚜껑으로 머리를 치고..그당시 옆반학생은 머리맞을때 잘못 맞아서인지..입이 돌아가기도하고..오른쪽이 마비된학생도 있었지만..선생님들은 그냥 학생을 너무 사랑하나 그방법이 과격할뿐이라고 옹호하더라구요..

superfrog 2004-07-26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배 아빠가 음악선생이었는데 답이 1 2 3 4 3 2 1 2 3 4 3 2 1.. 또는 1111222233334444 이랬다던데 다행히 과목이 다르군요.. ;;;

starrysky 2004-07-26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사 뽑을 때 인성 검사를 철저히, 아주아주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는 글입니다. 정말 1년 동안 고생 많으셨겠어요. 부르르~ -_-++++

아영엄마 2004-07-26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나는 선생님과 기억하기 싫은 선생님... 기억나는 선생님도 별로 없지만 그래도 후자쪽이 거의 없는 걸 보면 다행인듯... 내가 너무 착한 학생이었나? ㅋㅋㅋ
담임 선생님들께 머리가 좋으니(근거:IQ 검사결과) 공부 열심히 하면 되겠네~ 라는 소리만 들었던 아픈 기억만 난다..크흑.. 난 왜 어렸을 적부터 이리도 수학에 약한걸까...

꼬마요정 2004-07-26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릴 적부터.. 소위 선생복이 많았어요~ 모든 선생님들-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빼고-이 다 좋은 분이셨거든요... 3학년 때 선생님은 엄마가 돈 안드렸다고 제가 젤 잘 하던 산수를 우를 줬더랬죠...거의 모든 시험이 100점이었는데..항의도 못했어요...ㅜ.ㅜ
그 선생님 빼고는 다 좋은 분들이셨는데...^^

panda78 2004-07-26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무섭다.. ㅡ..ㅡ;; 남자 고등학교는 너무 무서워요...
저희 고등학교 교장샘은 이사장 사위라서 교장이 되었는데, 무슨 꼬투리만 잡았다 하면 "너네 아버지 뭐하셔? 장사? 그러니까 니가 그 모양이냐?" 이런 식이었죠.
저는 명찰이 없거나 지각하겠다 싶으면 학교 안갔습니다. ^^;;;

tarsta 2004-07-26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는 후배 한 명은 똑똑하고 바른 아이인데요. 중고등 시절 중에 1년을. 매일같이 앞에 불려나가서 따귀를 맞았답니다. 자기 이름이 불리면 교단으로 나가서. 따귀를 맞고. 그리고 들어오는 일을 1년. 다른 친구가 같이 맞을 때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 자기 혼자 맞았대요. S대 공대 갈 만큼 공부도 잘 했던 학생인데 말입니다. 본인도 아직까지 이유를 모른답니다. 부모님에게 말씀 안드렸냐?? 하고 물었더니 걱정하실까봐, 그리고 자기도 이유를 모르겠어서, 지금까지도 입을 꾹 다물고 있다고 하더군요. 나원 참 기가막혀서... 내동생도 아닌데 정말 화나더군요. 퍽.

아영엄마 2004-07-27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제 서재에 오서셔 솔로의 유형 살펴보셔요~ 님은 어떤 어떤 유형을 합쳐놓은 솔로일까요?ㅋㅋ

LAYLA 2004-07-27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경할선생님도 있고 ~ 저런 상상하기 싫은 선생님도 있죠. 제가 여중 다닐땐 여학생 엉덩이 만지는 남자샘도 있었는걸요. 나이도 지긋해서 교감연수다니고 하다 보니 일반선생님들도 어떻게 할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ㅠ_ㅠ 마태우스님 선생님은 아예 사이코(이건 심했나..;;)같은데요. 일반인처럼 보이지 않아요..=ㅁ=;;

sweetrain 2004-07-27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고3담임이 제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날, 저한테 날린 명대사가 있습니다..그날은 현충일 전날이었고요, 어머니가 위독하시니 집에 보내달라던 제게, "..비겁하게 그러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자습 다 하고 가라, 그리고 니네 어머니 너무 오래 사네, 내 생각엔 벌써 오래전에 돌아가실줄 알았는데.." 그 말을, 의자에 건방진 자세로 앉아 팔짱을 끼고는 절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하더군요. 뭐 전 그다음날 어머니 장례식때문에 학교에 갈 필요가 없었고, 담임은 장례식땐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장지에 와서 매장 끝나자 마자 절 소복입은채로 학교로 끌고가 야자를 시켰습니다...미안하단 말도 없이요...그 인간한테 일반사회와 정치와 윤리를 배웠습니다. 아아.

호랑녀 2004-07-27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온갖 유형의 사이코 교사들이 다 출동하는군요.
저도 풀어볼까요?
고등학교 때 윤리선생은, 명찰을 달지 않았다고 명찰 달 자리를 꼬집었죠. 그 윤리선생은 남자였고, 우리학교는 여학교였죠.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은 아침자습시간에 심부름시키고 자습 안했다고 손이 퉁퉁 붓도록 때렸죠. 숟가락을 들지 못할 정도로... 1등을 했는데 돈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답니다. 그 여자 남편은 약사였는데, 살 만큼 살던 사람인데 말이죠.
중1때 담임은 책을 잘 읽지 못했어요. 수업시간에 교과서를 한 페이지를 읽기가 힘들었죠. 국어선생이었는데.
훗, 그뿐인가요? 중1때 미술선생은 점수 발표 후에 실기점수를 깎아서 전교1등짜리를 바꿔버렸죠.

더 놀라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학교를 졸업했고, 내 아이들을 또 학교에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죠.

로렌초의시종 2004-07-27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업 시간에 담배를 폈죠, 갑자기 수업하다말고 아이들에게 커피를 뽑아오라고 시켰죠, 말안듣는다고 애들입에 제 입술을 부볐죠, 저보고는 대놓고 동생보다 멍청하다고 했었죠, 중학교 3학년 1년동안이 지옥같았습니다. 날마다 아빠에게 그 인간 얘기를 하면서 난리를치고 밤마다 그 인간이 사라지기를 기도했죠. 그리고 1년 후에 차마 말할 수 없는 사건으로 그 인간은 학교에서 중인환시리에 뺨을 맞고 학교는 파면 당했지요......

mannerist 2004-07-27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식어를 잘못 쓰신듯. 그런 '걸' 셀 때는 '마리'로 세야죠. ㅎㅎㅎ

ceylontea 2004-07-27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이라고 하기에 자질이 부족한 사람도 있죠..
그렇지 않은 좋은 선생님도 많으신데..
문제는 그 말도 안되는 선생님이 아이들 마음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나기는지...

marine 2004-07-27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 정도로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었지만, 교사들의 폭력을 오히려 학생들이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할 때 아주 짜증이 났어요
이를테면 적당히 때리면 반항하니까, 아예 끽 소리도 못하게 확실하게 때려야 한다는 일부 교사의 주장을 학생들이 맞아, 맞아 하면서 동의하는 식이죠
특히 무식하게 때리는 교사의 수업 시간에는 말을 잘 듣다가, 민주적으로 대하는 선생님 시간에는 교사를 무시하는 행동을 하는 학생들의 이중적인 태도가 정말 싫었어요

sweetmagic 2004-07-27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학교에는 더 심한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이런 건 교육부장관있는 청와대로 바로 찔러야 한다는 저의 얼토당토 않은 주장에 동화된 한 친구가 진짜로 청와대로 편지 썼다가 퇴학당할 뻔도 했었지요... 여튼 전 별의 별 선생님은 다 만나 본것 같습니다. 다음에 인물별로 페이퍼 한번 써야겠군요... (일주일 내내 써도 모자라겠네~)

바람꽃 2004-07-27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인성교육은 중요합니다.
딴소리; 전 장하준을 장준하로 읽어놓고는 고개를 몇번 꺄우뚱하다가 확인했답니다.
암만 생각해도 장하준은 첨 듣는 이름인 것 같아요.

털짱 2004-07-27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까지 이렇게 총천연색인 페이퍼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과연 한국교육은 사람에게 여러가지 다채로운 삶을 경험하게 하는 것 같군요. 다들 모여서 술이나 한잔 하면서 경험담을 들어보고 싶어지네요... 제 이야기도 양념으로 섞어가며..^^
 

 

 

 

 

 

예전의 나는 참으로 평화로웠다. 학교에 가서 알라딘의 글을 읽고나서 코멘트를 쭈우욱 단다. 새 글을 한두편 쓰고 난 다음 논문을 쓰려고 하면 벌써 식사시간. 밥을 먹고나서 다시 그간 올라온 글에 코멘트를 달고, 남는 시간에 일을 하다 퇴근을 했다. 하지만 요즘은 괴롭히는 사람이 너무 많다보니 알라딘에 예전만큼 집중하지 못한다. 마음이 초조하니 무리한 글을 쓰게 되고, 그러다보니 인기면에서 멍든사과님, 스타리님 등 신흥세력에게 마구잡이로 밀리고 있다.

요즘 날 괴롭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모교 기생충학교실 40주년 행사다. 당일날 몸만 가면 되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돈도 약간-사실은 많이-내야 하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게 40주년 기념 책자를 만드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 당일날만 읽히고 마는 책인지라 돈이 아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학교 사람들은 그래도 행사에 오면 책자라도 하나 받아야 보람을 느낀다. 그런데... 책을 만드는 사람이 내게 무시무시한 제안을 했다. "서선생이 글을 잘 쓰니까 우리 교실 출신 선생님들을 일일이 방문해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서 좀 써봐"

그게 지난 3월초의 일이다. 5월까지 시간을 줬으니 넉넉하다고 할지 몰라도, 우리 교실 출신 선생님의 숫자가 열여섯-더 되던가?-이나 되고, 또 전국에 흩어져 있는지라 일이 많았다. 결정적으로 내가 그 일을 하기 싫었던 이유는 내가 냈던 책을 드릴 때 그 선생이 했던 말이었다.
"지금 니가 이런 거 쓸 때냐? 쓰라는 논문은 안쓰고..."
그랬던 사람이 며칠만에 똑같은 입으로 "서선생이 글을 잘쓰니까"라면서 학문과는 전혀 무관한 글을 쓰라는 걸 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같으면 죽어도 그렇게는 못할텐데, 모교에 남는 분들은 확실히 뭐가 달라도 다른 것 같았다. 아무튼 난 개기기로 했고, 5월 31일까지 단 한줄도 쓰지 않음으로써 나름의 복수를 했다. 그쪽에서도 아무 연락이 없었고.

그런데...지난 7월 초, 인정평가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사실대로 말했다. 한줄도 안썼다고, 미안하다고. 그의 말이다.
"7월 31일까지 시간을 다시 줄테니 써봐라"
난 바빠서 도저히 못쓰겠다고 했다. 알라딘도 평정해야 하고, 또 학과장이 되어 일이 많다고. 그랬더니 그가 화를 낸다. 우쒸, 부탁하는 처지에 화를 내다니. 내 개김성은 딱 거기까지였고, 난 "그, 그러죠"라고 대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 뒤 난 가끔씩 날을 잡아 그들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찾아갈 시간도 없거니와 그런다고 글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그냥 내가 알아서 쓰기로 했고, 업적이나 근황은 재미가 없으니 평소 남들이,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그 사람에 대해 쓰자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여섯명을 썼으니 열명쯤 남은 셈이다.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너무너무 잘썼다. '캬!'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내 글이 다른 범상한 글들과 한 책에 묶이는 게 안타깝다는 생각도 든다.
"보고싶은 마음을 이기며 선생님은 오늘도 실험실의 불을 밝힌다"
"우리 후학들이 감자를 먹지 않게 하는 건 순전히 우리의 몫이다. 우린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으음, 써놓고 보니까 별로 잘쓴 것 같지 않은 듯 싶지만, 그래도 믿어야 한다. 정말 명문들이다.

여섯명까지는 잘 썼지만, 문제는 나머지다. 연구업적이 많은 경우엔 글을 쓰기가 참 쉽다. "Excellent님을 떠올릴 때면 난 이 단어가 생각난다"
"우리 학회에서 SCI 등재 논문이 가장 많은 분이다"
"그 유명한 MBP(잡지 이름)에 매년 한편 이상의 논문을 싣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도대체 뭘 써야 할까? 같이 술을 마신 기억이랄지, 인간성이 좋다는 등의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걱정이 된다. 10년 후 닥칠 50주년, 그리고 60주년 때 내 후배가 나에 대해 글을 쓴다면 어떤 글이 나올까?
[알라딘 사이트를 평정하기도 한 서민 선생님은 주량은 약하나 술을 가장 꾸준하게, 최선을 다해서 마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책을 여러 권 냈지만 팔린 책은 하나도 없다]
십중팔구 이런 사태가 날 것에 대비해, 그때도 내가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쓴다는 것은 내겐 겁나는 일이다.

쓴 걸 모교 선생님한테 미리 메일로 보냈다. 그 선생님 왈, "사진도 있으면 좋겠다!" 아니 사진 정도는 자신이 달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내가 사진을 달라면 그중 몇 명이라도 자신에 대한 글을 미리 보겠다고 할지 모를 일이고, 더 큰 이유로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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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짱 2004-07-26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인박명이라더니... 재능이 많아도 꼭 좋은 건 아니군요. 오호호홋!

비로그인 2004-07-26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민 선생님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가 너무 혹독하십니다.^^;;
<평소 미인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했던 서민 선생님께서는 미인과 술자리를 함께 하는 것을 즐기셨다. 여러 권의 책을 내고 알라딘의 등불같은 존재로서 수많은 알라디너들에게 삶의 즐거움을 제공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아직까지 선생님의 영광스런 발자취를 기리려는 수많은 알라디너들이 기생충을 매만지고 있다고 한다.>
ㅋㅋ 화이팅!

sweetmagic 2004-07-26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스스로 허락 하신 일 가지고 뭘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세요...

진/우맘 2004-07-26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요즘 뜸한 이유가 이런 것이었군요. 어쩌리까, 미녀 군단 파견해서 그 분을 조용히 보내오리까??

털짱 2004-07-26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안...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그 사이 이 많은 댓글은 뭐냐고요~~(ㅜ_ㅜ)
도대체 마태우스님땜에 가정을 등진 부녀자들이 한둘이 아니라는데...
이렇게 남의 가정을 위태롭게할 만큼 인기가 많아도 되는 겁니까!
-알라딘의 소외계층, 털짱-

panda78 2004-07-26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 우리 마태님을 귀찮게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왜 이리 많은 것이야요?
진/우맘님, 우리 알라딘 미녀 군단 특공대 대원들에게 볼링공, 각목, 짱돌 등을 쥐어서 내보내지요?

starrysky 2004-07-26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를 멍든사과님과 같은 반열에 올려주신 데 대해 우선 심심한 감사의 말씀 드리며.. (사실 발끝에도 못 미치는 미천한 저입니다)
자그마치 40년씩이나 되는 영광된 역사를 지닌 기생충학 교실에서 배출한 인재가 오로지 마태우스님 한 분뿐이라니 이걸 안타깝다 해야 할까요, 슬프다 해야 할까요.. 님의 사랑스런 후배님들은 몰 하시길래 학과장 일과, 알라딘 제패와, 술일기에 전념하셔야 할 남께서 그런 재미없고 가혹한 일까지 맡아야만 하신답니까.. 뭐, 다 님이 걸출한 인재이시기 때문이겠지요.. (한마디로 팔자려니)
이렇게 님도 바쁘시고 판다님도 놀러가는 이때에 서재의 달인 한번 노려봐야 하는데.. 크흑. (100위에도 못 드는 주제에;;)

진/우맘 2004-07-26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호호~~~ 판다님, 미녀에겐 얼굴이 무기랍니다. .......웩!!
참, 마태님, 따지러 왔어요. 아니, 아무리 바쁘셔도 그렇죠!!! 제 서재 첫 페이지에 마태님 발자국이 하나도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시간 없음을 핑계로 애정이 식으신 거죠!!! 흥흥흥!!!!

미완성 2004-07-26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 허걱..!
저야말로....!!
40권을 한꺼번에 주문한 재력에다 냉장고박스에 깔려죽을 뻔한 소재만점의 스똬리님과 같은 반열에 올려주신 것만으로도..!!!!!
스똬아리님, 지금..우리...견제당하고 있는 거 맞죠? *.*
아이 좋아라~

미완성 2004-07-26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선생님. 하루에 페이퍼는 2편씩. 우리 합의를 Boa요 으흑.
덩말..제가 마선생님이 리뷰올릴까봐 잠도 못자고 얼마나 책만 읽고 있는 지 아세욧욧욧..!
ㅠ.ㅠ

sweetrain 2004-07-26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선생님. 그러니까 사람이 너무 능력이 있어도 앞일이 괴롭다니까요...

하얀마녀 2004-07-26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라면 이렇게 쓰겠습니다.
<딴지일보 기자 직함도 갖고 계신 서선생님은 알라딘에서 가장 꾸준히, 양질의 글을 생산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도 미녀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면서 말이다>

로렌초의시종 2004-07-26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히도 마태우스님 덕분에 본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문체로 가득차게 마련인 그런 책자에서 진실하고 재미있는 글을 볼 수 있겠군요. 그런데 역시 모교의 분들은 대단하신 것 같아요. 며칠 만에 본인이 한 말씀을 그렇게 새까맣게 잊어버리시다니 말예요. 저는 그런 상황이 ㅔ일 창피하고 짜증스럽던데......

마태우스 2004-07-26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렌초의시종님/어머나, 그게 아니고 사실 저도 덕담이 주인데... 다만 저는 진실에 입각해서 썼다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라는...
하얀마녀님/님이 써주신 저에 대한 코멘트가 너무너무 멋지십니다. 그런데 그 소문은 정말이 아니지요?(님의 성 정체성에 대한 소문 말입니다^^)
단비님/어머나 미녀이신 단비님! CF는 잘 되시는지요?? 너무 이뻐도 피곤하죠.
멍든사과님/안됩니다. 저는 오늘 이미 4편을 썼고, 한편 더 쓰고 잘 겁니다!! 음하하하. 그리고 님은 지금 견제하지 않으면 공룡으로 자랄 것 같아요.
진우맘님/아이, 아시면서... 남들 눈도 있고 해서 앞으로는 표현을 덜하려고 한건데...
스타리님/순위가 중요한 게 아니죠. 코멘트 숫자가 인기의 척도 아닙니까. 60개를 뻑하면 넘기시는 님이야말로 신흥 인기인이죠.
털짱님/털이 많다고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건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판다님/호호, 님은 언제나 제 편이신 듯.... 감사감사.
스윗매직님/그나저나 님과 제가 예전같지 않은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아시죠? 제가 님만 좋아하는 거!

하얀마녀 2004-07-26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 소문에 대해선 비싼 출연료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superfrog 2004-07-26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바빠서 도저히 못쓰겠다고 했다. 알라딘도 평정해야 하고... ㅋㅋㅋ

tarsta 2004-07-26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아--꺄아--- 마선생님, 저도 그 책 읽고 싶어욧---- (물결 꼬랑지와 느낌표를 그리고 싶었으나 더위먹은 키보드가 찍어주지 아니함.)

마냐 2004-07-26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댓글을 보니, '마태우스의 미녀수난사',...내지는 '꽃보다 마태우스' 분위기임다그려...ㅋㅋ
하지만, 저는 과감히 주제로 돌아가서...심지어 기생충학교실 40주년 책자도 여기다 공개하라고 촉구합니다..ㅋㅋ
스똬리님 말씀마따나, 40년에 한명 배출할까 말까한 인물이신 마태우스님...화이또~

sweetrain 2004-07-27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선생님...머리가 날아가는 순간 제 씨에프 인생은 막이 내렸습니다...그래도 머리카락 빌려주고 70만원씩, 100만원씩 받던 때가 좋았지요...

marine 2004-07-27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생충학 교실이라면 의과대학 소속인데, 혹시 MD 출신이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