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올림픽과 나
내가 고3 때인 1984년, LA에서는 올림픽이 한창이었다. 수업을 하는데 옆반에서 함성 소리가 난다. 유도에서 한국의 하형주가 금메달을 땄나보다. 우리반 역시 와, 하는 함성으로 그에 화답했다. 그때 우리를 가르치던 분은 교생 선생님이셨는데, 그분은 우리에게 마구 화를 내셨다. 떠든 것 때문에 그런 건 결코 아니었다. 뭐라고 하셨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당시 정권의 스포츠 우민화도 그중 하나였던 것 같다. 스포츠에 목을 맸던 난 금메달을 땄는데 좋아하기는커녕 화를 내는 그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게 아닌가, 그래 맞다 필리핀 계처럼 보이잖냐, 하는 생각을 했다. 대학에 간 뒤 그가 하려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대충 알게 되었지만 스포츠에 대한 내 열정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86, 88,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난 거의 TV 앞에서 기도를 하면서 보냈다. 92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달라진 건 96년부터였다. 그때부터 난 우리나라의 금메달이 예전처럼 기쁘지 않았다. 국가의 영광이 나의 기쁨이 되지 않는다는 것, 나로서는 매우 놀랄만한 일이었다. 4년이 더 지난 시드니 올림픽은 더더욱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전엔 우리 선수가 결승서 지면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었는데, 그땐 남의 일마냥 무덤덤했다. 그 증상은 지금 더 심해졌다. 유도에서 금메달이 하나 나온 걸 말고는 전반적으로 한국 팀의 메달 사냥이 부진하건만, 난 아무런 느낌이 없다.
내가 변한 이유가 뭔지 난 모른다. 국가주의를 탈피해 개인주의로 가는 과도기일 수도 있고, 그전에 너무 열을 내서 더 이상의 열정이 내 몸에 남아있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니 좋은 건, 기대를 안하니 실망도 안하게 된다는 것. 고3 때 교생 선생님이 다시금 생각나는 밤이다.
2. 축구
배구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거다. 육상은 물론이고 농구, 하키, 핸드볼 등 구기종목도 마찬가지다. 야구? 세계선수권 대회가 있긴 하지만 올림픽만 하려구?
잠시 후 2시부터 멕시코와 한국의 경기가 있다.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지만, 월드컵은 본다. 하지만 올림픽 축구는 절대로 안본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별 의문을 품지 않지만, 나로서는 최고의 선수들이 겨루는 경연장이 되어야 할 올림픽이 23세 이하의 선수만이 참가하는 ‘청소년대회’로 변질되어 버린 게 불만스럽다. 성인 선수 세명을 와일드카드라는 명목하에 보강하긴 하지만, 그래봤자 크게 달라질 건 없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바로 축구협회(FIFA)의 이기주의 때문이다. FIFA로서는 올림픽이 인기 면에서 월드컵을 능가하는 대회로 커가는 걸 눈뜨고 볼 수 없었기에, 말도 안되는 나이 제한을 부여했다. 그 결과 월드컵의 권위는 날로 높아만 가지만, 올림픽 축구에서 누가 우승했는지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앨런 아이버슨 같은 미국 프로농구의 스타들이 총 출동하는 올림픽에서, 인종, 성별, 종교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 올림픽에서 나이 제한이 있는 유일한 종목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나라에 의해 행해지는 축구라는 게 좀 우습지 않는가? 뒤탈을 우려해 와일드카드라는 편법을 동원하긴 했지만, 난 올림픽위원회에서 왜 그런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하긴, 세상이란 건 언제나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굴러가지 않는 법이니까.
3. 양궁
글을 쓰다말고 양궁 경기를 보았다. 우리나라 윤미진과 일본의 미녀가 대결하는데, 큰 점수차로 우리나라 선수가 이겨 버렸다. 예선전에서도 우리나라 여자 선수들은 1, 2, 3위를 차지, 큰 이변이 없는 한 금은동을 독식할 전망이다.
우리나라 양궁은, 특히 여자양궁은 국가대표 선발전이 세계대회 우승보다 더 치열하다. 누가 나가도 우승을 할 수 있을만큼 선수층이 두터우니 그건 당연한 일이다. 한 국가가 특정 종목을 계속 제패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나라 여자양궁은 84년 이후 다섯 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했다.
양궁의 경기 방식은 그간 계속 바뀌었다. 양궁과 비슷한 공기소총이 열명 정도가 모여 총을 쏜 기록을 따져 우승자를 가리는 데 반해, 양궁은 처음에는 그렇게 하다가 그다음엔 그랜드피타라고, 8명씩 계속 탈락시키는 피말리는 경기로 바꾸었다가 결국에는 일대 일로 맞붙어 우승자를 가리는 현재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하면 우리나라 선수끼리 맞붙어 탈락하는 일도 생기지 않는가. 물론 그 방식이 훨씬 재미가 있긴 하지만, 사격 같은 경기가 그딴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 걸로 보아 이건 세계양궁협회가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세간의 속설이 맞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승을 독점하고, 이번 대회에서도 우승이 유력하니 우리 양궁의 실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4년 전, 양궁 팀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위해 잠실 야구장에서 활쏘기 시합을 한 적이 있었다. 장내에 모인 3만명에게 활을 쏠 때 함성을 질러 달라고 하면서. 우리 양궁 대표팀은 그런 과정을 거쳐서 뽑힌 선수들, 제아무리 다른 나라 선수가 잘해봤자 별 도리가 없을게다. 늘 눌려왔던 남자도 이번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기를.
4. 수영
난 수영 경기를 좋아한다. 호주의 이안 소프와 미국의 펠프스가 대결하는 게 흥미롭긴 하지만, 수영 자체가 특별히 재미있거나 그런 건 아니다. 내가 수영을 보는 건 선수들 몸매를 보기 위함이다. 여자 수영선수의 몸매는 그다지 볼 게 없다. 반면 남자 수영선수의 몸매는 그야말로 예술이다. 팔에는 알통이 돋아있고, 가슴 근육이 발달했으며, 배에는 어렵지 않게 ‘왕’이 새겨진다. 늘씬한 다리 하며, 몸에는 군살이 하나도 없다. 그 몸매, 누구나 한번쯤 꿈꿔 보지 않겠는가?
우리나라 탤런트 중 소지섭이 수영선수 출신인데, 외국 애들만은 못하지만 몸매가 죽인다. 아무튼 수영 선수들을 보며 생각한다. 내가 다시 태어나면 수영만 죽어라고 할 거라고. 이상 내가 느낀 올림픽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