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은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를 많이 본 해였다.
그전까지 잘해야 한 편 볼까 말까 했는데
올해는 미생, 청담동스캔들, 모두다 김치, 소원을 말해봐, 왔다 장보리 등등 수를 세려면 두 손을 써야 한다.
처음부터 봤다기보단 중간 이후부터 본 게 많긴 하지만,
아무튼 다 보고나니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미생과 왔다 장보리를 제외하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라,
드라마 종영 후 정신적 외상을 크게 입었다.

소원을 말해봐
첫째, 드라마들의 내용이 비슷하다보니 이게 저거같고 저게 이거같았다.
<나만의 당신>의 이휘향은 결혼 전에 애를 낳았는데 버리고 부잣집 남자와 결혼한다.
그 애 때문에 나중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모두 다 김치>의 이보희도 결혼 전에 애를 낳았는데 버리고 부잣집 남자와 결혼한다.
이보희가 결혼 후 낳은 악녀는 그 사실을 위기 때 터뜨리고,
그 때문에 회장으로 나오는 노주현은 심장발작을 일으켜 쓰러진다.
<소원을 말해봐>의 차화연은 결혼 전에 남매를 낳았는데 버리고 부잣집 남자와 결혼한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남매는 차화연에게 복수를 계획한다.
좀 보다 때려치운 <압구정 백야>에선 이보희가 결혼 전에 애를 낳았는데 버리고 부잣집 남자와 결혼한다.
버림을 받은 야야라는 여자가 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야야는 복수를 위해 이보희의 의붓아들에게 접근, 현재 완전히 마음을 사로잡은 상태다.

모두다 김치의 악녀 박현지
둘째, 겹치기 출연도 문제다.
엄연히 같은 사람이 하나 이상의 드라마에 나오다보니 드라마 여러개를 보면 헷갈릴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모두 다 김치>를 보고 난 뒤 <압구정 백야>를 보면 “이보희는 상습적으로 애를 버리는군!”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김영옥은 <소원을 말해봐>에서 회장으로, <장밋빛 연인들>에서는 그냥 할머니로 나온다.
그런데 <소원>에서 악녀 차화연 때문에 뇌졸중으로 쓰러지는데,
그걸 보고 나서 <장밋빛 연인들>을 보면 “어? 언제 회복됐지?”라고 놀라게 된다.
셋째, 드라마 주인공들이 상식적인 판단이 없다.
착한 이들은 자신이 한 소박한 복수계획을 악인에게 알려줌으로써 악인으로 하여금 대비하게 해준다.
“지금 당장 너희 장모님한테 가보는 게 좋을 걸? 내가 방금 너희 장모한테 너한테 써 준 각서 (둘의 혼인 사실이 담겨있다)를 퀵으로 보냈거든.”-<나만의 당신>, 결국 송재희의 어머니가 장모님한테 달려가 그 각서를 가로챈다.
“너 하는 게 마음에 안들어서 내가 그 여자한테 usb를 보냈어.”-<폭풍의 여자>, 요양원에 있던 아이를 빼돌리는 데 협조한 간호사는 외국으로 출국 전 아이 어머니에게 usb를 보내는데, 자신을 사주한 도혜빈에게 그 사실을 알려준다. 물론 도혜빈은 사람을 시켜 그 usb를 빼낸다.
이것 말고도 몇 가지가 있지만, 이거 하나만 더.
<소원을 말해봐>에서는 차화연이 살인을 교사한 증거가 usb에 들어 있는데,
마침 착한 편에서 그 usb를 얻는다.
그런 중요한 자료는 몇 개 정도는 복사를 떠놔야 하건만,
그들은 달랑 하나만 복사했다가 나중에 필사적으로 그 usb를 찾는 신세가 된다.
넷째, 건강상의 문제.
드라마 주요인물들이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많아도 너무 많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교통사고가 나거나, 아니면 뇌졸중.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버린다.
<나만의 당신>에서는 송재희가 이민정의 전 남편이란 걸 알게 된 장인 (이자 회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이휘향의 숨겨진 친딸 오초희도 교통사고로 병원에 오래 입원한다.
<소원을 말해봐>에선 회장 김영옥이 usb를 내놓으라는 며느리 차화연의 공세에 충격을 받고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상태로 보아 마땅히 중환자실에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선 이들에게 일반병실을 제공하며,
간호사나 의사가 거의 들락거리지 않아 악녀. 악남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며 다음과 같은 저주를 일삼는다.
“아빠, 이대로 영원히 깨어나지 마세요.”-<모두 다 김치>
“어머니, 이대로 계속 누워 계세요.”-<소원을 말해봐>
더 웃긴 건 악녀. 악남으로 활동하던 이들이 막판이 되면 아팠다는 것.
<모두 다 김치>의 원기준 (극중 임동준으로, 박현지의 남편이다)은 막판에 암에 걸리며,
<나만의 당신>의 송재희는 시력을 상실한다.
<소원을 말해봐>의 악녀 차화연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데, 이로 인해 복수를 계획하던 한소원과 강진희는 그녀를 용서한다.
내 2014년은 이딴 드라마를 보면서 욕하는 데 시간을 많이 썼다.
만날 바쁘다고 하면서 이게 뭔가 싶지만,
굳이 원인을 따져보면 이렇다.
아내가 드라마를 좀 많이 보다보니 그 옆에 누워 쉬다가 한편두편 빠져들었던 것도 있고,
주로 아침에 설거지를 하는데 그냥 하면 심심해서 아침드라마를 켜놓았던 것도 원인이 됐다.
앞으로는 화제가 될만한 주말드라마를 제외하곤 보지 말자.
아무리 욕하면서 보는 거라 해도, 일일드라마는 좀 너무 나가는 느낌이고,
정신적으로 해로우니 말이다.
* 갑자기 생각나서: 요즘 드라마의 추세는 한번 결혼을 했던, 그리고 애까지 낳았던 여자주인공이 총각들과 잘 되는 것 같다.
<폭풍의 여자>의 한정임(박선영)이 그렇고,
<소원을 말해봐>의 한소원, <청담동 스캔들>의 은현수,
<모두다 김치>의 (김지영)도 여기 해당된다.
** 이건 변명인데, <청담동 스캔들>을 본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사는 곳이 천안 청당동이라서, 이건 봐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 탓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