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론자와 개발론자 중 어느 쪽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난 별로 고민하지 않고 환경론자라고 스스로를 자리매김할 것이다. 새만금에 반대하고, 우리동네의 휴식처인 성미산의 개발에 반대할 뿐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자연을 뜯어고칠 게 아니라 자연에 맞춰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까. 그런데 그간 받아온 개발 우위의 교육이 너무 투철해서 그런지, 문득문득 개발론자로 회귀하려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우리 학교 앞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다. 커다랗다고 해봐야 둘레가 3킬로 남짓한, 그러니까 우리 마당 정도의 크기밖에 안되지만, 출근길에 버스 안에서 그 호수를 바라보다 보니 저렇게 좋은 곳을 왜 그대로 방치해 두는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물이란 사람을 평화롭게 만들어주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렇다고 호수만 덩그라니 놔두면 사람이 오지 않는다. 지금은 낚시꾼들만 진을 치고 앉아 있지만, 사람들이 좀더 많이 와서 유명해지고, 관광수입도 올리고 그러면 좋지 않겠는가. 대체 사람을 오게 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 요 며칠간 내가 고민한 게 바로 그거다.
첫째, 배를 띄운다.
원래 사랑의 시작은 배를 저을 때 이루어진다. 애인이라고 하기엔 좀 서먹한 남녀가 배에 올라 힘차게 노를 저으면서, 혹은 물살에 배를 맡기면서 속삭이는 밀어, 캬, 생각만으로도 아름답지 않겠는가.
남자: 물이 좋네요
여자: 호수니까요...
남자: 저기 저 새들을 보세요. 암수 서로 정답잖아요.
여자: 새니까요...
물이 주는 분위기에 휘말려 둘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고, 틈이 날 때마다 자신들의 사랑을 실현해 준 그 호수를 찾는다. “그때 내가 노를 젓다가 손바닥이 까졌지. 당신 솔직히 말해봐, 50킬로 넘지?” “아이, 몰라!”
혹은 사랑이 깨어지고 난 뒤, 그때의 추억을 떠올린 남자는 다시 그 호수를 찾는다.
“호수는 그 호수로되, 그때 그 호수가 아니구나.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꼬”
그때 남자는 자기 눈을 의심한다. 호수의 반대편에 헤어진 여자가 우뚝 서 있는 것.
남자: 미자자자자자----
여자: 수혁씨씨씨---
남자는 여자 쪽으로 달리고, 여자도 그에 호응한다. 둘은 힘차게 껴안는다.
“우리 이제 헤어지지 말아야 해!!”
이런 아름다운 시나리오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배를 띄우자. 너무 많은 배가 있으면 낭만이 깨지니까 한 다섯 대 정도만 하고, 예약도 받는다. 원래 그런 건 고가전략으로 해야 인기가 높아지는 법. 그리고는 소문을 퍼뜨린다.
“천안호에서 배를 같이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
경품도 내건다. “천안호에서 사랑을 이룬 뒤 결혼까지 하면 물고기 50마리를 드립니다”
둘째, 괴물을 만든다
영국에 있는 네스호는 있지도 않은 괴물을 우려먹어 엄청난 관광객을 모았다. 우리라고 못할 게 없다. 개구리와 물개, 바다사자의 정자를 기린의 난자와 인공수정한 뒤 열심히 키운다. 뭐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희한한 동물이 나올 것이다. 그 녀석을 물 속에서 살게 하는 거다. 그리고는 언론플레이를 전개한다.
“천안호서 괴물 출현! 목이 겁나게 긴데 혀가 둘로 갈라짐!”
너무 자주 나타나면 안되니 열흘에 한번 정도만 그 괴물을 풀어놓는다. 소문나면 외국에서도 온다. 관광객이 몰리면 테두리를 친 뒤 입장료를 받고, 근처에 괴물의 캐릭터 가게가 들어선다. 솜사탕, 아이스크림도 날개돋힌 듯이 팔리고, 인근에 있는 우리 병원의 수입도 올라간다. 음하하.
그런데... 괴물이 태어나지 않거나, 물에서 못살면 어쩌냐고? 할수없이 사람이 괴물 가죽을 뒤집어쓰고 연기를 해야 한다. 어쩌면 그게 더 나을 수가 있다. 더 리얼하게, 사람들 겁도 줄 수 있지 않는가. 물론 걸리면 끝이지만, 호수의 밑을 파서 비상구를 만들어 놓으면 잡힐 염려가 없다. 괴물, 이거 좋은 아이디어 같다.
그밖에 수상호텔을 짓는 안, 분수를 만드는 안, 호수 안에 디딤돌을 박아서 물위를 걷는 느낌을 주게 하는 안 등을 생각했는데, 하나같이 호수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들 뿐이다. 호수를 그 자체로서 보지 않고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나, 전형적인 개발론자의 모습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