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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로버트 K. 레슬러 지음, 손명희 외 옮김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범죄가 일어났다. 범인이 누군지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플 때, 누군가가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제시했다고 해보자.
[범인은 30대 후반의 남자다. 눈이 작고, 흰털을 가진 개와 살고 있다. 학력은 높으나 실제로 아는 건 없고, 재벌 2세 행세를 하며 미녀들을 후리고 다닌다. 술을 매일 마시며, 인터넷에 빠져있다]
이 정도라면 범인을 잡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그 보고서는 수사과정에서 들여야 할 불필요한 낭비를 막아줬고, 범인이 다음 범행을 저지를 여지마저 박탈한 셈이다.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를 쓴 로버트 레슬러는 FBI에서 이런 심리분석을 담당, 수많은 사건을 해결한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탐정 일에 취미를 가졌던 그는 FBI가 힘으로 범인을 잡던 시절, 수많은 살인마들을 면담하고 정신의학 및 법의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으면서 ‘범인신상분석’ 기술을 완성시킨다. "유지가 확정된 살인범들을 이런 식으로 면담하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72쪽)“
범행현장을 들여다보자마자 범인의 신상을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그의 경험담을 읽다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저건 경찰을 속이려고 증거를 위장한 거야. 범인은 곱슬머리고, 내부 사람이야!”
얼마나 멋진가! 물론 이게 틀리면 개망신을 당하겠지만, 레슬러는 너무 잘 들어맞은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단다.
책을 읽는 동안, 작년에 읽었던 <범죄신호>가 생각났다. <범죄신호>가 ‘직감을 믿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사건의 예방에 더 중점을 두는 책이라면, 이 책은 범죄, 그 중에서도 연쇄살인-이 말을 만들어낸 사람도 바로 레슬러란다-을 저지르는 사람을 검거하는 얘기다. 독자에게 도움이 되는 책은 물론 <범죄신호>겠지만, 나처럼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그걸로 장차 일가를 이루려는 사람에겐 이 책이 더 나을 듯하다. “흔히 살인범들은 모두 가난한 결손가정 출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연구를 해보니 이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저자는 겉보기에는 정상적으로 보이는 가정에서 저질러진 정서적, 육체적 학대야말로 아이를 연쇄살인범으로 만드는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 내가 벤지에게 사랑을 듬뿍 주지 않았다면 벤지가 사람을 여럿 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자친구를 택시에 태워보낼 때, 택시 번호를 적는 사람들이 있다. 택시 기사는 그걸 매우 불쾌해하겠지만, 이 구절을 보면 기사 아저씨의 반응에 무관하게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
[게이시(33명을 죽인 연쇄살인범)는 ...매력적인 여자를 태웠다. 하지만 ...여자를 배웅하던 친구 하나가 자신의 자동차 번호를 적는 것을 눈치채곤...목적지까지 데려다주고 되돌아갔다]
게이시가 재판을 받을 때, “게이시와 변호인단은 정신이상을 이유로 들어 무죄를 강변했다” 이 구절은 법이란 게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준다. 아무리 돈에 눈이 멀어도 그렇지, 한둘도 아니고 33명을 죽인 사람을 석방시키고자 주장하는 게 말이 되는가. 책에 나오는 변호사들이 다 그런 사람들이라 변호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강화하게 되고, 세상에는 변태가 정말 많다는, 그래서 길거리를 다닐 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이다.
* 이 책을 선물해주신 카이레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