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친구 얘기는 전에도 몇번 우려먹은 적이 있지만,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어 다시 씁니다. 이전 일들을 정리하는 의미로 간단히 썼습니다.
일시: 9월 24일(금)
마신 양: 소주 두병 반+알파
쫀쫀하기로 이름난 내 친구 R, 그는 내가 아는 최고의 짠돌이다. 그는 늘 말한다. “나 돈 없잖아. 니가 좀 사!”
명색이 교수고 부인도 의사인데 왜 그렇게 돈이 없는걸까. 그의 말이다.
“집 사느라 그래. 그러니 그때까지만 니가 사”
96년, 드디어 그가 집을 샀다. 이제부터 그가 사겠지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내가 얼마 전에 차를 샀거든. 할부금이 한달에 얼마 들어가는지 알아?”
정말 그는 돈이 없었다. 언젠가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찾는 걸 봤는데, 3만원을 찾았더니 잔액이 2만 얼마밖에 없는거다. “이걸로 다음주 월요일까지 살아야 돼”
그걸 보고 마음이 아팠던 난 그날 술을 샀다.
차 할부금이 몇 번은 끝났을 무렵, 그에게 물었다.
“왜 넌 술을 사지 않지?”
그의 대답, “사실은 내가 집을 넓혔거든. 할부금 내느라 힘들어 죽겠다”
강북이긴 하지만 육십몇평으로 이사 갔단다. 그의 말이 일리가 있어 그날 난 또 술을 샀다.
그다음에 만났을 때는 그가 선수를 친다. “집사람이 개업하기로 했거든. 개업에 돈이 진짜 많이 들어가더라!”
나: 개업 하고 나서는 니가 술을 사는 거야?
R: 그럼! 나만 믿어!
난 다시 술을 샀다.
개업식이 끝난지 몇 달이 지났지만, 그는 늘 돈이 없다고 울상이었다.
“병원이 잘 안돼서, 내 월급 꼬라박고 있다!”
설마, 아무리 안돼도 적자를 볼까? 미심쩍긴 했지만 난 그날도 술을 샀다.
어제 또 R과 술을 마셨다. 그는 호기롭게 1차를 쐈고, 난 드디어 그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생각했다. 2차로 간 감자탕을 내가 사기로 하고, 그에게 물어봤다.
나; 너 요즘엔 돈 좀 있냐?
R: 없지.
나: 야, 넌 왜 맨날 돈이 없냐? 너 교수지, 부인 개업했지, 애도 하나지. 도대체 돈이 없는 이유가 뭐야?
R의 대답을 듣고 난 기절할 뻔했다.
“사실은.... 내가 그동안 집사는 데 투자를 했거든. 지금 세채 있는데, 네채째를 사서 할부금 넣고 있어”
나; 세, 세채? 너 부동산 투기하니?
R; 투기가 아니라 투자라니까
그랬다. 기름값을 빼곤 한달에 쓰는 돈이 20만원이 안된다는 R, 그는 쫀쫀한 생활 십년만에 집 네채를 거느린 준재벌이 되어 있었다. 남자들이 쓰는 돈이란 게 술값이 대부분이니, R에게는 변변히 남아있는 술친구가 없는 듯했다. 그전에 난 “육십몇평 아파트에 살지 못하더라도 나처럼 친구가 많으면 그게 재산인 거야”라고 주장을 했었지만, 집이 네채라면 얘기가 좀 다르지 않을까? 2만1천원밖에 안됐지만, 아파트 4채를 가진 친구에게 감자탕을 사는 기분은 씁쓸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