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전화기가 두 대다. 한 대는 발신용, 또 한 대는 수신용이지만, 수신번호 확인 서비스 탓인지 발신용 전화기로도 심심치 않게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기가 왜 두 대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그럴 때면 난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요”라고 대답하는데, 내 말에 다들 웃고 만다. 하지만 그건 진짜다. 전화비가 너무 많이 나와서 고민하던 차에 획기적인 서비스를 발견한 것. KTF에서 SK 고객을 끌어들일 목적으로 내놓은 ‘정액제 무제한 통화’. 두달간만 한시적으로 신청자를 받은 그 서비스는 내가 고대해 마지않던 것이었다. 그 전화기를 사용하고 나서 내 전화요금이 상당히 줄어들었고, 내가 한달에 거는 통화량이 본전의 몇배를 뽑고도 남았으니, 새 전화를 산 건 잘한 일이었다. 전화기가 두 대니까 좋은 점이 몇 있다.
첫째, 잘 터진다.
요즘 전화는 대체로 잘 터지지만, 어디서나 그런 건 아니다. 특히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SK 전화가 너무 안터져, 전화를 한번 걸려면 안테나 방향을 이리저리 돌려야 했다. 뻑하면 통화권 이탈이고, 하다가 끊어진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중요한 전화 같으면 복도로 뛰어나와 창문 옆에서 전화를 받곤 했는데, 새로 산 KTF는 너무나 전화가 잘 터졌다. 심지어 엘리베이터를 타도 끊기지 않을 정도. 내가 어찌 그 전화기를 사랑하지 않겠는가?
둘째, 마음이 편하다
전화를 오래하면, 특히 내가 건 전화인 경우에 그러면 마음이 불편하다. 생각을 안하려 해도 요금이 얼마일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나처럼 장시간 전화를 많이 하는 경우엔 특히 그렇다. 그런데 정액제 무제한이 되니 세상이 편하다. 상대가 걸면 “내가 할께”라고 해놓고 다시 거는 봉사정신을 발휘할 수 있고, 두시간, 세시간을 해도 걱정이 안된다. 여럿이 모여 있을 때 누가 전화를 할라치면 내 걸 쓰라고 전화기를 내밀곤 한다. 전화기 덕분에 난 졸지에 ‘멋진 사람’이 되어 버렸다.
셋째, 안심심하다.
예전에 집에 혼자 있을 때면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바라보며 울적해하곤 했다. 지금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새 전화기로 옛날 전화기에 전화를 걸면서 놀면, 십분은 재밌다. 게다가 그전 휴대폰에는 머리가 아픈 벽돌깨기 게임이 있었는데, 새 전화기의 게임은 내가 좋아하는 블록맞추기-같은 동물이 세 개 되면 없어지는...-라, 정 심심할 때면 그 게임을 하면서 논다.
넷째, 운전할 때
운전 중 휴대폰은 과태료가 부과되는 사안이다. 3만원인가 한다는데, 그 돈을 내면 정말 아깝고 속상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걸리고 나면 전화를 안한 척 밑으로 떨어뜨리는데, 그래도 경찰이 전화기를 살펴보면 최근 통화기록이 나오니 속일 수가 없다. 나? 열나게 전화기를 하다가 걸리면, 그 전화기를 밑에다 떨어뜨린 뒤 옛 전화기를 내민다.
“보세요! 통화를 했으면 기록이 남아있을 게 아닙니까? 난 그저 전화기를 들고 있었을 뿐이라구요!”
진짜로 해본 적은 없지만, 이렇게 우기면 그럴듯하지 않겠는가?
다섯째, 이렇게 할 수도...
야구를 보다가 약속 때문에 나와야 할 때가 있다. 예전에는 포기했지만,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된다. 새 전화기로 옛 전화기에 전화를 건 뒤 새 전화기를 TV 앞에 놔두고, 볼륨을 높인다. 그리고 난 그전 전화기를 귀에 대고 밖으로 나온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내 전화기에 고스란히 들린다. 정말 멋지지 않는가? 해본 적도 한번 있는데, 지하로 내려가다 전화가 끊어지는 바람에 삼십분인가밖에 혜택을 못봤지만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해낸 내가 기특했다.
향후 전망.
이 서비스에 가입한 사람들은 대개가 나처럼 전화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고, 굳은 마음을 먹고 신청을 했을게다. 내가 그렇듯이 그들도 지금 본전을 빼야 한다면서 열심히 전화질을 하고 있겠지.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암담한 소식은 그 서비스가 올해 말, 아니면 내년 5월까지밖에 안된다는 거다. 18개월간 이 전화기를 사용하기로 약정을 하고 서비스를 신청한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일이다. 계약 당시에는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고, 계약서 어디에도 그런 조약은 없다. 본사에서는 “대리점에서 말을 안해줬을 뿐”이라며 말도 안되는 오리발을 내민다. “우리가 횡포를 부려도 니네들이 어쩌겠냐”는 배짱이겠지. 그 숫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몰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KTF 사이트를 도배하면서 비난을 하는 것, 그게 아니면 대리점에 가서 18개월이고 뭐고 당장 해지하겠다고 우기는 게 고작일 것이다.
하지만 난 항의할 수단이 있다. 올해 말까지만 이 서비스가 된다면 난 오늘부터 당장 ‘밤샘통화’에 들어갈 거다. 전화기 두 대를 모두 충전기에 끼운 뒤 새 전화로 옛 전화에 전화를 거는 것. 한쪽이 끊지 않으면 끊어질 리도 없고, 통화를 해도 충전은 되니 배터리 걱정도 없다. 밤 열한시부터 여섯시까지, 하루 일곱시간씩 한다면 한달에 210시간, 시간당 5천원씩 잡아도 100만원의 손해를 끼치게 된다. 전화기가 두 대가 아닌 사람이라면 가족 혹은 친구의 전화기에 그런 짓을 하면 될거다. 우리 모두 이렇게 한다해도 힘있는 KTF는 자기 갈길을 가겠지만, 그냥 보내는 것보다 약간의 손해나마 입히는 게 우리 속이 덜 쓰리지 않겠는가.
*지금부터 쭉, 글만 쓰려고 했는데, 술마시러 나가야 한다...세상은 날 가만두지 않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