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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1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ㅣ 한국 현대사 산책 6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성실하기로 이름난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냐만은, 내가 알기에 강준만만큼 성실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혹자는 이곳저곳에서 글을 인용해 짜깁기를 하는 그의 글쓰기 방식을 가리켜 “그렇게 쓰라면 나도 쓴다!”고 하는 모양인데, 방대하기 짝이 없는 참고문헌을 모조리 읽고 그걸 하나로 꿰는 건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다. 아무튼 60년대편을 읽음으로써 현대사산책 열다섯권을 모두 읽었다. 국사 시간에 우리 현대사라고는 전혀 배우지 않았었는데, 강준만의 책들이 내게는 현대사의 좋은 교과서가 된 셈이다. 다 읽고나니 학생 때 왜 우리 현대사를 가르치지 않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말이 안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던 우리 현대사를 가르치는 그 자체만으로도 반체제 인사들을 수없이 양산하는 길이 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아픈 역사라 하더라도 숨기고 안가르치는 것보다는, 그래도 우리 역사니 보듬고 가도록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대학에 가서야 광주학살의 진상을 알게 된 뒤 고교 때까지의 교육에 환멸을 느껴버렸던 내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더더욱 그렇다. 60년대 편에서 느꼈던 것들을 몇가지만 써본다.
-진보정당: 4.19 직후의 총선에서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던 혁신계는 “참담한 패배”를 기록하고 만다. 과연 몇석을 얻었기에? 놀라지 마시라. 민의원 다섯, 참의원 둘, 도합 일곱명이다. 지승호가 쓴 <마주치다 눈뜨다>에도 나오는 말이지만, 그 정도가 참패였다니 당시 혁신계의 역량은 상당한 수준이었나보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진보를 표방하는 민주노동당이 얻은 의석은 겨우 열석, 하지만 그 정도에도 민주노동당은 환호해 마지않았다. 이 사실은 지난 43년간 진보진영이 얼마나 몰락했는지, 바꿔 말해서 박정희 정권의 진보 죽이기가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의 진보는 아직 원점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셈이다.
-조선일보: 전 회장 방일영은 박정희와 같이 기생파티를 많이 열었다고 한다. 카지노 황제 전낙원이 방일영을 가리키며 한 말이다. “권번출신 기생들의 머리를 제일 많이 얹어준 분” 조선일보가 성매매특별법에 반대하는 속내를 짐작할 만하지 않는가? 63년 대선 기간 중에도 박정희는 방일영의 흑석동 자택에서 ‘색씨를 불러 파티를 했’다는데, 그래가지고 어떻게 공정한 기사를 쓸 수 있겠는가. 전두환 때는 말할 것도 없고, 92년 대선이 끝난 직후에도 김영삼 당선자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흑석동이었다고 한다. 그랬던 조선일보가 지금 한겨레를 친여지라 부르며 스스로를 ‘비판언론’으로 자리매김하는 건 정말이지 우습다.
-귀여운 시장: 서울시장이었던 윤치영은 “명랑한 서울...”을 구호로 내걸었지만 “사실상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왜? 국감 때 국회의원이 일을 열심히 안한다고 하자 윤치영은 이렇게 답했다. “나도 좋은 도시를 만들 줄은 안다. 그런데 아무런 사업도 하지 않고 있는데도 이렇게 많은 인구가 전국에서 모여들고 있다. 만약 내가 멋진 도시계획을 해서 서울시가 정말 좋은 도시가 되면 더더욱 많은 인구가 서울에 집중될 것이다. 농촌 인구가 서울에 모여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서울을 좋은 도시로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서울을 방치해 두는 것은 바로 서울 인구집중을 방지하는 한 방안입니다” 정말 귀엽지 않은가?
-피카소가 욕본다; “서울지검은 당시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피카소 크레파스를 생산하던 삼중화학공업 대표 박xx을 반공법 위반혐의로 입건하고 그 제품의 판매를 금지키켰다. 피카소 크레파스는 피닉스 파스라는 이상한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 이유는 단 하나, 피카소가 공산당원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같은 윤치영일까?: 김대중이 3선개헌 반대 때 한 말이다.
[공화당에 윤치영이란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 “박정희 대통령은 단군 이래의 위인이다”...그런데 이 사람 대통령 갈릴 때마다 똑같은 소리를 한다 말이여. 과거 이 박사가 사사오입 개헌 때도 “이 박사는 개국 이래의 위인이다” 이랬어. 우리가 결혼식에 가면 축사를 많이 하는데 축사를 하는 사람마다 똑같은 소리를 해...이 양반, 대통령에 대한 아첨을 결혼식 축사로 착각한 모양이여]
-이런 일도; 당시에는 TV가 별로 없어서 만화방에 모여서 TV를 봤단다. 그래서...
[이때 수상기를 더 잘 보려고 고개를 번쩍 치켜드는 사람이 많아,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길다란 막대기로 휘휘 허공을 내질렀다]
결론: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시리즈는 70년대다. 재미있는 순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70년대>50년대>80년대>60년대>40년대
70, 80년대가 재미있던 것은 내가 그 시대를 살았으니까, 그래서 등장인물들을 대충 다 아니까 그런 것이고, 50년대가 재밌는 것은 전쟁을 비롯해서 기구한 일들이 워낙 많아서다. 그러니 지금 젊은이들이 읽는다면 내가 느꼈던 것만큼 재미를 얻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하더라도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공부를 재미로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