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사과
하루에 하나씩 사과를 먹으면 결장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메트로에 난 기사다.
[미국 CBS 방송 인터넷 사이트는 하루에 사과 한 개에 야채를 많이 먹는 식단이 암 예방책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국가보건의학 연구소의 프란시스 라울 박사는 사과에 들어있는 화학 성분이 실험실 연구와 동물 실험에서 결장암을 예방하는 효과를 보였다고 발표했다...사과에서 발견되는 프로시아니딘이라는 항산화제가 암세포를 죽이는 일련의 세포신호들을 촉발하는 것을 발견했다. 라울 박사는 이어 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물과 사과의 항산화제 프로시아니딘을 섞은 혼합물질을 먹은 쥐들이 보통 음식을 먹은 쥐들보다 결장에서 전암 증세(precancerous lesion)가 절반으로 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무료신문인 메트로에 났으니 망정이지, 9시 뉴스같은 데 이런 기사가 나갔다면 사과값은 지금쯤 천정부지로 치솟았을거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난 이 기사가 그다지 가치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일에는 기본적으로 항산화제가 있고, 어떤 항산화제든 암예방에 도움이 될 터이니 굳이 사과여야 할 필요는 없을 듯하고, 사과가 그렇게 몸에 좋다면 왜 두 개, 세 개가 아니라 하나씩 먹으라는 걸까. 실제로 Tamura라는 연구자는 녹차와 포도쥬스가 결장암 세포의 증식을 억제한다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고, 우르과이에서 나온 연구 결과는 바나나가 결장암을 예방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말해준다. 다른 연구자들도 암 예방에 도움을 주는 물질이 없는지 눈에 불을 켜고 연구하고 있는 중이며, 그중 일부는 그럴 듯하게 결과를 포장해 발표를 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몸에 좋다고 믿는 과일과 야채는 단독으로는 암예방에 효과가 없다는 주장이 훨씬 더 많이 나오고 있으며, 사과의 프로시아니딘 역시 그와 비슷할 것이다. 그럼에도 라울 박사가 이런 주장을 하는 건 그가 사과 농장에서 연구비를 받았거나 아내가 부업으로 과수원을 하기 때문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2. 암 예방 음식
통계청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10만여명의 암 환자가 생기고 있으며,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수는 5만명이나 된다. 5만이라면 웬만한 도시 전체의 인구, 정말 많은 숫자다. 우리나라의 연간 사망자 수가 평균 25만명이라고 하니, 그 중 4분의 1이 암으로 죽는 셈이다. 그러니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이 꽤 높아진 지금도 암이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고, 암을 예방한다는 보도만 나오면 그 음식 혹은 약제가 날개돋힌 듯이 팔려나가는 이유가 된다.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든다. 위암과 폐암, 신장암의 발생 원인이 각각 다르듯 모든 암은 고유한 근원을 갖고 있는데, 그걸 하나로 뭉뚱그려서 ‘암’이라는 하나의 질병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일까. 예컨대 유방암은 출산 경험이 없는 사람에서 흔하고, 자궁경부암은 아이를 많이 낳은 사람에서 많이 생긴다. 고기를 별로 먹지 못하던 시절에는 위암이 흔했는데, 식생활이 서구적으로 바뀌면서 대장암의 빈도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간암은 간염 바이러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폐암은 음식 때문에 걸리는 건 아니다. 그러니 모든 암을 예방하는 ‘암 예방 음식’이란 존재할 수 없고, 그렇게 선전된 음식들은 특정 암에 아주 제한적인 효과를 보일 뿐이다. 그게 어디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죽음을 겨우 피한 사람에게 다른 방식으로 죽음이 찾아든다는 내용의 영화 <데스티네이션>처럼, 특정 암의 확률을 낮추는 행위는 그와 기전이 다른 또다른 암의 발생 확률을 올린다. 그간 숱하게 많은 ‘암 예방 음식’이 발표되었음에도 암으로 죽는 사람의 숫자가 줄지 않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우리가 과연 암만 조심하면 되는가 하는 것이다. 모든 종류의 암을 합쳐도 암으로 죽는 사람은 전체의 4분의 1에 불과한데, 그렇다면 나머지 4분의 3은 다른 원인으로 죽는다는 얘기다. 암을 발생 근원에 따라 분리한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는 뇌혈관질환, 2위는 심장질환, 3위는 교통사고이며, 위암이 4위로 암 중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간질환이 5위, 폐암은 6위인데, 자살이 9위인 것이 매우 이례적이다. 암에 필적할 무서운 질환들이 이렇듯 많은데 왜 우리는 암에만 공포심을 갖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 효과가 불확실한 암예방 음식을 먹이는 것보다는 사고가 덜 일어날 수 있는 교통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 복지제도를 확충해 생활고로 인해 자살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없도록 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인 수명 증가책이 아닐까 싶다.
3. 스트레스
암의 원인 중 담배와 폐암처럼 그 인과성이 잘 증명된 건 없다. 하루 한갑씩 20년간 담배를 피우면 폐암이 발생한다는 게 의대에서 가르치는 내용이다. 술도 마찬가지다. 동아일보 (2000년 11월 28일자) 보도에 의하면 “심한 음주는 인후암과 구강암을 일으킬 수 있”으며, “위스키나 진처럼 알콜성분의 농도가 짙을수록 암발생과 관계가 깊”다고 한다.
술. 담배의 위험성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일하는 짬짬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피곤을 풀고, 퇴근 후 소주를 마시면서 하루의 고단함을 잊으려는 사람에게 ‘암 발생’ 운운하며 술.담배를 하지 못하게 하는 건 아무래도 잔인해 보인다. 술.담배로 인해 높아진 암 발생 확률과, 술.담배를 못함으로써 쌓인 스트레스 중 어느 것이 몸에 더 해로울지는 차분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음식 역시 마찬가지다. 식도락이라는 말처럼 먹는 시간은 즐거운 시간이어야 함에도, 이것도, 저것도 발암제라는 걸 생각하면서 식사를 한다면 결코 즐거울 수 없을 거다. 달리 먹을 게 없어서 콩이나 먹자는 사람에게 “글세 콩이 발암제래!”라고 말하는 건 얼마나 폭력적인가. 대표적인 암 전문가 김진복 박사에 따르면 소와 돼지의 붉은 살코기는 암 발생 확률을 높이고, 절인 생선. 뜨거운 음식은 위암을 유발한다. 자극성 있는 음식은 간암, 소금에 절인 음식은 식도암의 원인이 된다. 어디 발암제 뿐인가. 암 발생을 막아준다는 생선과 야채에는 그 무서운 다이옥신이 듬뿍 들어있다. 소고기는 광우병, 닭에는 조류독감, 인류의 지식이 많아짐에 따라 점점 먹을 게 없어지는 이 아이러니, 먹을 게 엄청나게 늘어난 시대임에도 현대인은 도대체 뭘 먹어야 할지 우왕좌왕하고 있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대신 발암제를 먹고 있다는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게 더 해로운 게 아닐까.
4. 연구의 실체
늘 하는 소리지만 연구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 그 결과는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은지 차분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과가 결장암을 예방한다는 연구에서 라울 박사가 실험의 근거로 사용한 동물은 쥐, 하지만 쥐와 사람은 면역체계가 완전히 틀린지라 쥐에서 얻은 결과를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게다가 쥐에게 투여하는 발암제의 양은 사람으로 환산하면 평생 노출될 수 있는 양의 수백, 수천배에 달하는지라, 그 발암제가 아무리 유해하다 한들 사람에서도 비슷한 효과를 낸다는 보장은 없다.
결과의 해석도 자의적일 수 있다. 위의 연구에서 사과를 같이 먹인 쥐는 발암제만 준 쥐의 절반 가량만 결장암이 생겼다고 한다. 실험에 쓰인 쥐의 마리수를 몰라 속단할 수 없지만, 이 정도면 유의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게다. 하지만 모든 연구가 이처럼 명확하게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다. 사과를 먹인 건 열 마리중 세 마리, 발암제만 먹인 건 네 마리에서 암이 생겼다면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경우라도 “암 발생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는 발표 대신 “사과가 암 발생을 10% 감소시키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된다면 우리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런지? 포도주가 심장병을 예방한다는 연구가 주로 프랑스에서 나오고, 영국에서는 이를 반박하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비타민 C가 암 발생을 억제한다는 연구 논문이 비타민 C 제조업체의 후원을 받는 연구소에서 주로 나온다는 사실을 상기해 본다면, 우리가 연구 결과 하나하나에 지나치게 민감해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5. 결론
현대 사회는 암에 대한 공포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킴으로써 그들을 착취하는 사회다. 건강에 대한 정보가 홍수를 이루는 시대에서 필요한 것은 각자가 중심을 잡는 것, 뭐가 좋다더라는 기사에 우르르 몰려다니다보면 남는 것은 공허요, 잃는 것은 건강이다. 모든 암을 예방하는 음식은 존재하지 않는 법, 마음을 편안히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즐기는 게 건강의 지름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