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얼마 전 알라딘에 대박 이벤트가 있었다. 총 18명에게 책을 보내주는, 그러니까 대략 20만원 가까운 돈이 지출된 대형 이벤트, 댓글마다 번호를 붙여 추첨으로 당첨이 결정되는 방식도 상상을 뛰어넘는 거지만, 20만원이란 규모 또한 생각하기 어려운 규모였다. 그 이벤트의 주인공은 알라딘의 별 플라시보님. 나 역시 이벤트로 책을 받은 사람이지만, 그녀의 이벤트를 보면서 맘 한구석이 아팠다. 그녀에게 20만원이 주는 의미는, 그 돈이 내게 차지하는 비중과는 또 다를 것이기에.
2. 그녀의 삶
새로운 사랑을 찾아간 어머님 때문에 계모 밑에서 자라야 했던 그녀에게 세상은 갑자기 차가운 것이 되어 버렸다. 신데렐라에 나오는 계모처럼 그녀의 새엄마는 그녀를 탄압했다. 그녀의 증언이다. “학교에 돈 낼 일이 있으면 아빠가 출장을 가면 어쩌나 걱정하곤 했다” 대학에 가고 난 이후부터 그녀는 한번도 집에다 손을 벌려본 적이 없다는데, 자기 몸 하나를 건사하기가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닌 이 삭막한 정글에서, 여자의 몸으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사자가 되는 것밖엔 달리 선택할 길이 없었을게다.(얼마 전 ‘누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땡기나’라는 제목의 글을 쓴 걸로 보아, 그녀도 자신이 사자인 걸 아는 것 같다). 어떤 분의 말마따나 그녀의 글은 늘 치열하고, 그 치열함은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녀 자신의 거울일 것이다.
“나는 애원했다. 인문계를 가게 해 달라고. 대학을 가지 못하는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하지만 모두들 모른척 했고. 마지막으로 아빠가 모른척 했다(1984년 겨울. 수능)”
결국 그녀는 여상에 진학했고, 책만 읽어오던 그녀에게 주산과 부기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그녀의 내신이 15등급인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런저런 생활을 하던 고3 10월, 그녀는 갑자기 수능을 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이 그녀에게 찾아온 ‘기회’였을테고, 그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때부터 거짓말 하나도 안보태서 수능치는 그날까지 하루 3시간 이상은 침대에 누워서 자 본적이 없었다...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를 악 물었다. 그리고 정말 죽도록 공부를 했다”
그리고 수능날. 새엄마는 알람시계와 전화기를 모두 감추고 여행을 떠나버렸다. 많은 사람을 울린, 추천 20회에 빛나는 ‘1984년 겨울.수능’에서 내가 가장 감동적으로 읽은 대목이다.
“그 작은 손목시계 알람을 듣고 나는 기적적으로 새벽 6시에 일어났다...샌드위치와 우유 한병을 사고 따뜻한 캔 커피를 그 자리에서 마셨다. 어금니를 너무 꽉 물어서 이빨이 빠질것 같았다. 주먹쥐고 씩씩하게 택시를 탔다. 그리고 수능을 쳤다. 다른 애들은 집에서 싸온 보온 도시락을 먹을때 나는 울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뜨면서 차가운 샌드위치와 우유를 마셨다. 그렇게 시험을 치고 나는 비록 여상이지만 우리 학교에서 최고의 수능 점수를 받았고 내가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에 합격을 했다....수능을 치던날 얼마나 춥던지. 교실에서 씹던 샌드위치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다. 옆에서 밥을 먹는 애들이 너무 부러웠다. 하얀 김이 올라오는. 국까지 있는 따뜻한 밥. 저걸 먹으면 모르던 문제도 살살 떠 오르겠다 싶을 정도로 부러웠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어엿한 직장인이다. 내가 그녀였다면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자신 없다. 아마도 난 깊은 좌절감에 빠져 타락했을테고, 남은 인생을 도망간 어머님을 원망하면서 살아갔을 거다. 어느 정도 성공을 한 사람에게 과거의 고생은 그리 큰 상처가 아니다. “나는 매해 수능날 마다 새벽에 혼자 일어나서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사고 커피를 마시며 울지 않으려고 애쓰던 내가 자꾸 보인다(같은 글)”라고 하는 걸 봐서 그 상처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어찌보면 그런 상처들은 현재의 플라시보를 훨씬 돋보이게 만드는 건 아닐까. 그녀가 여상 시절을 얘기하고, 내신 15등급을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그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 힘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에게 못사는 사람은 ‘게을러서’ 혹은 ‘노력이 부족해서’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 혹은 그녀만큼 노력할 수 있는 건 아니며, 어떤 이에게는 노력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 플라시보님의 글을 읽고 어떤 분이 내게 보내온 메일이다.
[삶을 치열하게 산다는 거, 결과적으론 전체 인생에선 도움이 될 수 도 있지만, 이걸 모든 사람에게 요구할 수도, 해서도 안됩니다. 삶을 치열하게 살 능력이 안되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까지 아둥거리면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 모두도 보호받아 마땅합니다..... 세상이 험해서 어린시절 그런 고생이 훗날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세상이 험하지 않도록 해야 할 몫이 남아있는데 사람들은 그저 지난날의 고생만 자랑스레 생각합니다. 저 역시 나이를 많이 먹지 않았지만 참 굴곡깊게 살았습니다. 우리시절에는 그랬죠. 아니 어렵고 고생하며 사시는 분들은 오늘날 더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 숫자라도 좀 줄일 때도 되지 않았는지요. 모두가 자기자신을 시험해 볼 기회라도 넉넉히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어린친구들이 공부하고 학교가는 데에 돈 걱정, 학군걱정없이 공부했으면 합니다.... 윗분의 따뜻한 글을 읽고, 시험날에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보다 그런 기억조차 찾아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는 세상이 되길 바래봅니다]
나는 플라시보님을 존경한다. 그 위치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존경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도 따뜻한 시각을 보여줬으면 더 좋겠다. 지금 그녀가 그렇지 않다는 건 물론 아니지만.
3. 서재인 플라시보
알라딘 서재질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그녀는 내가 넘어야 할 벽이었다. 그것도 너무 높은 벽. 그리고 난 지금도 그 벽을 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명예의 전당 회원이고, 글도 나보다 훨씬 잘쓰고, 게다가 미녀니까 (알라딘의 구성원이 여자가 많으니 이건 유리한 게 아닐 수도 있는데, 그땐 몰랐다).
일상에서 소재를 찾아내는 능력은 아주 탁월하고, 주위 사람들을 소재로 한 글도 꽤 많이 쓴다. 그래서 한때 그녀와 경쟁하려고 했던-지금은 포기했다-나는 “왜 그녀 주위에는 특이한 사람이 저리도 많은가!”라며 길게 탄식하기도 했다. 게다가 내가 좀 분발한다 싶을 때면 자기 사진을 턱하니 올려 사람들을 열광시키니, 내가 어찌 그녀의 경쟁자가 될 수 있겠는가. 더 놀라운 것은 글쓰기 능력이다. 만만치 않은 분량의 글을 그녀는 너무도 쉽게 써낸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노력이 있었겠지만, 문장 하나를 쓰는데도 이생각 저생각을 하는 나로서는 수다를 떨듯 써내려간 그녀의 글을 보면서 경외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수다를 떨듯, 그렇다.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그녀가 마치 내 앞에서 얘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어떤 분이 그녀에게 물어봤다. “이 정도의 글을 쓰려면 얼마나 걸려요?” 그녀의 답이다. “한 20분쯤” 그 댓글을 본 사람은 전부 기절했을거다. 사람을 빨아들이는 흡인력 외에, 오자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도 그녀의 글이 갖는 크나큰 장점이다. 그렇게 워드를 빨리 치는데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하루 방문객 163.7명(15일 평균), 즐겨찾기 숫자 450명(추정치), 인기의 척도인 두 항목에서 플라시보님이 모두 정상권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빅3 안에는 못든다해도, 그녀의 리뷰 역시 수준급이다. 내 생각에 그녀의 리뷰는 책이나 영화가 후질수록 빛을 발하는데, 그 표현력이 나로 하여금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필때는 화려하지만 지고나면 아무것도 아닌 장미꽃같은 소설이 아멜리 노통의 소설이 아닌가 싶다.(아나스타샤, 아멜리 노통)
-만화를 가지고 사회 밑바닥을 건드리는 것은 어느정도 경지에 이르렀을때 해야지 신인이 그냥 흉내만 낸다고 해서 다 되는건 아니라는걸 좀 깨달았으면 좋겠다. 성찰과 진지한 고민이 없는 건드림은 정육점에 널린 고기들처럼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나른한 오후).
에쿠니 가오리가 쓴 소설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고난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진짜 물고기 가오리가 환생해서 쓴 소설 아닐까?’라고 하기도 하고, 바나나의 책엔 ‘이걸 돈주고 사느니 '바나나'나 한 두어개 사먹으라고 말하고 싶다’라고 일침을 가했다(마이리스트, 읽으면서 왜샀나 겁나게 후회한 책들). 이런 표현력이 난 부럽다. 이것 또한 그녀가 매니아 군단을 이끌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녀가 서재를 평정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비결이 하나 더 있다. 하는 일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녀는 직장에서 일을 별로 안하는 듯싶다. 밤늦게까지 근무를 해서 그런지 낮 시간에는 꽤 편해 보인다. 요즘은 아니지만 전에는 낮잠잔 얘기도 심심치 않게 썼고, 글을 올리는 시각이 전부 남들이 일할 때다. “요즘 매일 11시 12시에 퇴근하는 관계로 너무나 피곤하고 정신이 없다”고 얘기를 하지만, 그 다음 대목을 보면 그게 아닌 것 같다.
“오늘 아침에는 출근하자 마자 졸리기 시작하길래 얼마전 장을 본 담요를 덮고 졸고 있었다”(누가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땡기나)
담요를 덮고 잘 수 있는 직장, 내가 알기에 별로 없다. 그녀가 글을 올리는 시각도 전무 근무시간인데, 예컨대 ‘서른이 되면’은 지난 금요일 오후 4시 40분, 리뷰는 같은날 오전 10시 56분, 사자의 콧털은 오후1시 20분이다. 하루 종일 글만 썼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널럴함도 능력일 수 있다는 걸 부인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 역시 그녀가 서재를 평정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그녀가 ‘실시간 리플의 대가’가 된 것도 다 그 덕분이다. 과거 앤티크님이 실시간 리플의 제왕이었다지만, 앤티크님이 사라진 지금은 플라시보님이 제왕이다. 오늘 올라온 ‘떡볶이’란 글에 작은미소님이 11시에 댓글을 달았는데, 플라시보님은 11시 8분에 댓글을 달았다. 그러니 그녀가 쓴 어떤 글에 댓글이 30개 달렸다면, 반은 자신이 쓴 거다. 나처럼 몇 개의 댓글에 몰아서 답을 하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더 좋은 태도라는 건 백번 인정한다. 바쁜 척하지만 사실 나도 그럴 여력은 된다. 내가 게을러서 못할 뿐.
4. 다시 문제는 따뜻함이다
<파크 라이프>에 대한 리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쿨하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게 내가 이 소설에 대해 하고싶은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아는 어떤 알라디너보다도 쿨하며, 내가 아는 모든 여자를 대상으로 한다고 해도 그건 달라지지 않는다. ‘쿨함’이란 게 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녀는 매사에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다. 자신이 남자를 덮친 것에 진배없는 첫경험 얘기, 열명이 넘는 사람이 나오는 연애담들을 담담하게 글로 쓸 수 있는 것도 그런 자신감의 징표가 아닐까.
그녀는 원리원칙주의자인 듯싶다. 다른 사람 같으면 참고 넘어갈 일도 그녀에겐 용납되지 않는다. 카드할인과 조조할인이 동시에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나선 영화를 안봐 버리고, 자기가 볼 때 수준이 안되는 경리의 얼굴에 커피를 쏟는다. 자기집 근처에서 사람들이 떠들면 창문을 열고 “다른 데 가서 떠들라”고 말할 수 있는 여자, 애인은 사귀지만 결혼은 할 뜻이 없는 여자가 바로 플라시보다. 그녀의 글에는 자신이 싸워온 숱한 경험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런 점이 그녀의 매력이겠지만, 너무 삶을 치열하게 살다보니 따뜻함을 상실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서재질을 일년쯤 하다보면 서로 농담도 주고받고 하지만, 그녀에게는 감히 농담 거는 사람이 없다. 어설픈 농담을 했다간 박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그녀가 여간해선 서재마실을 다니지 않는 것도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요인일 거다. 정말로 그녀는 마실을 잘 다니지 않는다. 그녀 정도 레벨 치고 즐겨찾기가 열 개 정도밖에 안되는 서재는 별로 없을거다. 그녀가 자기 서재에 와주지 않는다고 삐진 사람도 있지만, 그녀는 마실을 다닐 마음이 없는 듯하다. 100군데를 즐겨찾기 해놔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몇몇 서재폐인처럼, 마실을 나가다보면 자신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아예 그렇게 선을 그어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또한 그녀가 견지하는 원리원칙의 하나일테고, 그러면서도 서재를 평정하다시피 한 것도 능력이겠지만, 따뜻함, 인간미 같은 가치를 중시하는 나로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5. 결론
‘결혼할 뜻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임자를 만나지 못한 거다’
독일의 철학자 마이클 오웬이 한 말이다. 새엄마의 탄압을 이기고 알라딘의 제왕이 된 플라시보, 신데렐라의 행운은 거저 왔지만 그녀는 스스로 만들었다는 게 커다란 차이점이긴 해도, 난 그녀를 현대판 신데렐라라고 부르련다. 쿨하고, 센 척 하지만, 한달에 서너번은 집에서 소리내어 운다는 연약한 여자 플라시보, 그녀의 구두 한짝을 가지고 있는 왕자님은 도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걸까.
* 이 글은 플라시보님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쓴 글입니다. 맘에 안드는 구석이 있어도 이해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