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위해 영등포역에 갈 때마다 난 버스를 탄다. 늘 그랬던 건 아니다. 2년쯤 전에는 당연하게도 지하철을 탔다. 하지만 2년 전의 어느날 우연히 버스를 한번 타봤는데, 그 후부터는 지하철을 도저히 탈 수 없게 되었고, 계속 버스만 탄다. 지하철은 두가지 면에서 내게 불편했다. 우선 역이 집에서 멀다. 최소한 5분-맘먹고 달리면 3분-은 걸어야 하지만, 버스 정류장은 집 바로 앞에 있다. 더 큰 이유로 지하철은 중간에 갈아타야 한다. 신도림에서 갈아타는데, 그게 영 귀찮다. 지하철은 다섯정거를 가지만 이것저것 합쳐서 20분이 넘게 걸리는 반면 버스는 훨씬 여러번 서지만 그보다 덜 걸린다. 한가지 더 있다. 지하철에서는 여간해서 앉아 가기 힘들지만, 버스는 대개 텅텅 빈다. 나도 이제 앉는 게 좋은 나이여셔 빈 좌석의 유혹을 마냥 뿌리칠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버스가 늘 좋은 건 아니다. 버스의 결정적인 약점은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것. 운이 좋으면 바로 탈 수 있지만, 5분 정도는 기다리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십분이 넘게 기다리다가 결국 택시를 타고 간 슬픈 사연도 있다. 지하철이야 어디 그런가. 출근 시간대엔 3분마다 한 대가 오니, 지하철을 타면 늦을 염려는 없다.


출근할 때 역에 가는 것을 제외하면 난 버스를 잘 타지 않는다. 버스 노선도 잘 모르고, 약속 때문에 다른 곳에 갈 때 내가 추구하는 건 편안함보다는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일이 있어 동대문에 갈 때의 일이다. 지하철을 타고 시청에서 갈아타면 되건만, 다리도 아프고 해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전용이니 더 빨리 갈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하지만 버스는 여간해서 오지 않았다. 십분을 기다리니 이미 투자한 시간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지하철을 더더욱 탈 수가 없었다. ‘이제 곧 올거야!’라며 십분을 더 기다린 끝에 버스가 왔다. 하지만 버스 전용차선은 생각만큼 빠르지 않았고, 책을 보던 나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갑자기 불어온 시원한 바람에 난 잠을 깼다. 버스가 서있고, 앞문 뒷문이 다 열려 있다. 기사 아저씨가 안보인다. 왠일일까 싶었는데, 보니까 기사 아저씨는 다른 버스 아저씨랑 열나게 싸우고 있다. 우리 승객들은 다들 우리 기사 아저씨를 응원했고, 다른 버스 아저씨한테 “당신이 나쁘구만!” “저거저거 아주 악질이야!” “당신 때문에 못가고 있잖아!”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같은 버스에 탄 사람이 공동운명체라는 걸 난 그때 알았다. 의기 양양해진 우리 아저씨, 문가에 앉은 날 가리키며 “누가 잘못했는지 한번 물어봐요!”라고 그 사람한테 말한다. 놀란 난 손을 내저었고..


결국 우리는 그 다음에 도착한 같은 번호의 버스에 옮겨탔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버스는 콩나물 시루였다. 내가 동대문에 도착한 시간은 집에서 떠난지 55분 후, 지하철을 탄 것에 비하면 20분 가까이 늦은 시간이다. 그날 이후 난 버스전용이고 뭐고 안믿기로 했다. 시내에 갈 땐, 역시 믿을 건 지하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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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위로 2004-11-23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흠. 전 버스를 싫어해요. 지하철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요, 버스는 싫어요. 학교 다니는 동안은 하루 한번씩 버스를 타야한다는게 끔찍할 정도로 싫어요.

......멀미가 심하거든요. 약도 안들어요. 지금은 그래도 버스를 타고 집에까지 내려가는 사고(!)를 치기도 하지만, 예전엔 버스를 10분이상 타면 힘들어했더랬지요, 그래서인지 아직도 전 버스가 그닥 좋지 않아요, 아니... 싫어요.

푸훗, 버스 전용차로의 장점을 전 아직 못느꼈어요. 많이 타고 다니진 않지만요.^^

플라시보 2004-11-23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버스를 타는데요. 이게 언제 도착할지 모르고 기다리니까 너무 답답하더라구요. 더구나 제가 사는 도시는 지하철이 있되 노선이 하나고. 전 지역을 커버한다기 보다 대각선으로 가로지르기 때문에 제가 가려는 장소와 상관 없는게 99% 여서 움직이려면 버스 아니면 택시를 타야 합니다. 우리나라 버스도 전광판 같은게 달려 있어서 버스가 어느 역에서 출발했고 현재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려주면 참 좋을것 같아요. 그런다고 버스가 더 빨리 오진 않겠지만 막연히 기다리는것 보다 알고 기다리는게 덜 답답할것 같아요^^

미완성 2004-11-23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얼마 전까지 버스를 너무너무나 사랑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는데요,

이런 말은 너무 못됐지만 좌석에 앉아있을 때 하필이면 꼭 제 앞에만 서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요즘은 버스가 좀 싫어요. 아프신 분이라던가 할머님 할아버님의 연세가 많으시면 또 모르겠는데 정말 어중간한 연세의 건강도 좋아보이는 분들이 괜히 약한 척하며 제 앞에 서계실 땐 마음이 괴로워요 ㅜ_ㅜ

더군다나 버스를 타면서 항상 책을 읽는데 거기에도 많이 방해가 되구요..

지하철은 다 좋은데 좌석이 하나로 길게 붙어있어서 앉으면 다른 사람과 접촉하게 되니까 그게 불편하구요..

그나저나 부러 기다리기까지 하시고 버스전용을 믿으셨다가 고생만 하신 마태님, 애쓰셨습니다..ㅜ_ㅜ

하얀마녀 2004-11-23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사는 곳에선 출퇴근할 때는 버스가 편하고 영등포 역에 갈 때는 지하철이 편하더군요. 지금 천안까지 전철 뚫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비로그인 2004-11-24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하철이를 만나려면 지하로 들어가야잖아요. 토요일 오후의 햇살에서 지하로 내려갈때의 그 처참함이란... 요즘엔 버스 반 지하철 반입니다.

비로그인 2004-11-25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무조건 지하철인데... 버스에선 책을 못 읽어요. 핸드폰 문자 하나 보내려고 해도 바로 멀미 시작해서;;;

마태우스 2004-11-25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대생님/전 다행히 버스에서도 책을 잘 읽습니다. 신체적 조건이 중요하군요^^

벨님/그죠 지하로 들어가는 게 싫긴 합니다. 햇볕을 사랑하시는 벨님^^

마녀님/전철 그거, 너무 오래 걸리지 않을까요?? 하여간 저랑 반대군요. 영등포 갈 때 지하철을 타신다니..

사과님/님의 따뜻한 댓글 잘 읽었습니다. 사과님의 애틋함이 느껴지는 멋진 댓글입니다. ^^

플라시보님/그런 시스템이 정착되면 정말 좋을 것 같네요. 언제쯤 되려나...

작은위로님/이 글 올리고 한참 동안 댓글이 하나도 없었는데, 님의 댓글이 제게 많은 위로가 되어 주는군요. 늘 감사합니다
 

    

1. 서론

얼마 전 알라딘에 대박 이벤트가 있었다. 총 18명에게 책을 보내주는, 그러니까 대략 20만원 가까운 돈이 지출된 대형 이벤트, 댓글마다 번호를 붙여 추첨으로 당첨이 결정되는 방식도 상상을 뛰어넘는 거지만, 20만원이란 규모 또한 생각하기 어려운 규모였다. 그 이벤트의 주인공은 알라딘의 별 플라시보님. 나 역시 이벤트로 책을 받은 사람이지만, 그녀의 이벤트를 보면서 맘 한구석이 아팠다. 그녀에게 20만원이 주는 의미는, 그 돈이 내게 차지하는 비중과는 또 다를 것이기에.


2. 그녀의 삶

새로운 사랑을 찾아간 어머님 때문에 계모 밑에서 자라야 했던 그녀에게 세상은 갑자기 차가운 것이 되어 버렸다. 신데렐라에 나오는 계모처럼 그녀의 새엄마는 그녀를 탄압했다. 그녀의 증언이다. “학교에 돈 낼 일이 있으면 아빠가 출장을 가면 어쩌나 걱정하곤 했다” 대학에 가고 난 이후부터 그녀는 한번도 집에다 손을 벌려본 적이 없다는데, 자기 몸 하나를 건사하기가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닌 이 삭막한 정글에서, 여자의 몸으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사자가 되는 것밖엔 달리 선택할 길이 없었을게다.(얼마 전 ‘누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땡기나’라는 제목의 글을 쓴 걸로 보아, 그녀도 자신이 사자인 걸 아는 것 같다). 어떤 분의 말마따나 그녀의 글은 늘 치열하고, 그 치열함은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녀 자신의 거울일 것이다.


“나는 애원했다. 인문계를 가게 해 달라고. 대학을 가지 못하는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하지만 모두들 모른척 했고. 마지막으로 아빠가 모른척 했다(1984년 겨울. 수능)”

결국 그녀는 여상에 진학했고, 책만 읽어오던 그녀에게 주산과 부기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그녀의 내신이 15등급인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런저런 생활을 하던 고3 10월, 그녀는 갑자기 수능을 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이 그녀에게 찾아온 ‘기회’였을테고, 그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때부터 거짓말 하나도 안보태서 수능치는 그날까지 하루 3시간 이상은 침대에 누워서 자 본적이 없었다...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를 악 물었다. 그리고 정말 죽도록 공부를 했다”

그리고 수능날. 새엄마는 알람시계와 전화기를 모두 감추고 여행을 떠나버렸다. 많은 사람을 울린, 추천 20회에 빛나는 ‘1984년 겨울.수능’에서 내가 가장 감동적으로 읽은 대목이다.

“그 작은 손목시계 알람을 듣고 나는 기적적으로 새벽 6시에 일어났다...샌드위치와 우유 한병을 사고 따뜻한 캔 커피를 그 자리에서 마셨다. 어금니를 너무 꽉 물어서 이빨이 빠질것 같았다. 주먹쥐고 씩씩하게 택시를 탔다. 그리고 수능을 쳤다. 다른 애들은 집에서 싸온 보온 도시락을 먹을때 나는 울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뜨면서 차가운 샌드위치와 우유를 마셨다. 그렇게 시험을 치고 나는 비록 여상이지만 우리 학교에서 최고의 수능 점수를 받았고 내가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에 합격을 했다....수능을 치던날 얼마나 춥던지. 교실에서 씹던 샌드위치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다. 옆에서 밥을 먹는 애들이 너무 부러웠다. 하얀 김이 올라오는. 국까지 있는 따뜻한 밥. 저걸 먹으면 모르던 문제도 살살 떠 오르겠다 싶을 정도로 부러웠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어엿한 직장인이다. 내가 그녀였다면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자신 없다. 아마도 난 깊은 좌절감에 빠져 타락했을테고, 남은 인생을 도망간 어머님을 원망하면서 살아갔을 거다. 어느 정도 성공을 한 사람에게 과거의 고생은 그리 큰 상처가 아니다. “나는 매해 수능날 마다 새벽에 혼자 일어나서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사고 커피를 마시며 울지 않으려고 애쓰던 내가 자꾸 보인다(같은 글)”라고 하는 걸 봐서 그 상처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어찌보면 그런 상처들은 현재의 플라시보를 훨씬 돋보이게 만드는 건 아닐까. 그녀가 여상 시절을 얘기하고, 내신 15등급을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그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 힘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에게 못사는 사람은 ‘게을러서’ 혹은 ‘노력이 부족해서’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 혹은 그녀만큼 노력할 수 있는 건 아니며, 어떤 이에게는 노력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 플라시보님의 글을 읽고 어떤 분이 내게 보내온 메일이다.

[삶을 치열하게 산다는 거, 결과적으론 전체 인생에선 도움이 될 수 도 있지만, 이걸 모든 사람에게 요구할 수도, 해서도 안됩니다. 삶을 치열하게 살 능력이 안되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까지 아둥거리면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 모두도 보호받아 마땅합니다..... 세상이 험해서 어린시절 그런 고생이 훗날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세상이 험하지 않도록 해야 할 몫이 남아있는데 사람들은 그저 지난날의 고생만 자랑스레 생각합니다. 저 역시 나이를 많이 먹지 않았지만 참 굴곡깊게 살았습니다. 우리시절에는 그랬죠. 아니 어렵고 고생하며 사시는 분들은 오늘날 더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 숫자라도 좀 줄일 때도 되지 않았는지요. 모두가 자기자신을 시험해 볼 기회라도 넉넉히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어린친구들이 공부하고 학교가는 데에 돈 걱정, 학군걱정없이 공부했으면 합니다.... 윗분의 따뜻한 글을 읽고, 시험날에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보다 그런 기억조차 찾아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는 세상이 되길 바래봅니다]


나는 플라시보님을 존경한다. 그 위치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존경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해서도 따뜻한 시각을 보여줬으면 더 좋겠다. 지금 그녀가 그렇지 않다는 건 물론 아니지만.


3. 서재인 플라시보

알라딘 서재질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그녀는 내가 넘어야 할 벽이었다. 그것도 너무 높은 벽. 그리고 난 지금도 그 벽을 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명예의 전당 회원이고, 글도 나보다 훨씬 잘쓰고, 게다가 미녀니까 (알라딘의 구성원이 여자가 많으니 이건 유리한 게 아닐 수도 있는데, 그땐 몰랐다).


일상에서 소재를 찾아내는 능력은 아주 탁월하고, 주위 사람들을 소재로 한 글도 꽤 많이 쓴다. 그래서 한때 그녀와 경쟁하려고 했던-지금은 포기했다-나는 “왜 그녀 주위에는 특이한 사람이 저리도 많은가!”라며 길게 탄식하기도 했다. 게다가 내가 좀 분발한다 싶을 때면 자기 사진을 턱하니 올려 사람들을 열광시키니, 내가 어찌 그녀의 경쟁자가 될 수 있겠는가. 더 놀라운 것은 글쓰기 능력이다. 만만치 않은 분량의 글을 그녀는 너무도 쉽게 써낸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노력이 있었겠지만, 문장 하나를 쓰는데도 이생각 저생각을 하는 나로서는 수다를 떨듯 써내려간 그녀의 글을 보면서 경외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수다를 떨듯, 그렇다.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그녀가 마치 내 앞에서 얘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어떤 분이 그녀에게 물어봤다. “이 정도의 글을 쓰려면 얼마나 걸려요?” 그녀의 답이다. “한 20분쯤” 그 댓글을 본 사람은 전부 기절했을거다. 사람을 빨아들이는 흡인력 외에, 오자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도 그녀의 글이 갖는 크나큰 장점이다. 그렇게 워드를 빨리 치는데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하루 방문객 163.7명(15일 평균), 즐겨찾기 숫자 450명(추정치), 인기의 척도인 두 항목에서 플라시보님이 모두 정상권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빅3 안에는 못든다해도, 그녀의 리뷰 역시 수준급이다. 내 생각에 그녀의 리뷰는 책이나 영화가 후질수록 빛을 발하는데, 그 표현력이 나로 하여금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필때는 화려하지만 지고나면 아무것도 아닌 장미꽃같은 소설이 아멜리 노통의 소설이 아닌가 싶다.(아나스타샤, 아멜리 노통)

-만화를 가지고 사회 밑바닥을 건드리는 것은 어느정도 경지에 이르렀을때 해야지 신인이 그냥 흉내만 낸다고 해서 다 되는건 아니라는걸 좀 깨달았으면 좋겠다. 성찰과 진지한 고민이 없는 건드림은 정육점에 널린 고기들처럼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나른한 오후).


에쿠니 가오리가 쓴 소설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고난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진짜 물고기 가오리가 환생해서 쓴 소설 아닐까?’라고 하기도 하고, 바나나의 책엔 ‘이걸 돈주고 사느니 '바나나'나 한 두어개 사먹으라고 말하고 싶다’라고 일침을 가했다(마이리스트, 읽으면서 왜샀나 겁나게 후회한 책들). 이런 표현력이 난 부럽다.  이것 또한 그녀가 매니아 군단을 이끌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녀가 서재를 평정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비결이 하나 더 있다. 하는 일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녀는 직장에서 일을 별로 안하는 듯싶다. 밤늦게까지 근무를 해서 그런지 낮 시간에는 꽤 편해 보인다. 요즘은 아니지만 전에는 낮잠잔 얘기도 심심치 않게 썼고, 글을 올리는 시각이 전부 남들이 일할 때다. “요즘 매일 11시 12시에 퇴근하는 관계로 너무나 피곤하고 정신이 없다”고 얘기를 하지만, 그 다음 대목을 보면 그게 아닌 것 같다.

“오늘 아침에는 출근하자 마자 졸리기 시작하길래 얼마전 장을 본 담요를 덮고 졸고 있었다”(누가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땡기나)

담요를 덮고 잘 수 있는 직장, 내가 알기에 별로 없다. 그녀가 글을 올리는 시각도 전무 근무시간인데, 예컨대 ‘서른이 되면’은 지난 금요일 오후 4시 40분, 리뷰는 같은날 오전 10시 56분, 사자의 콧털은 오후1시 20분이다. 하루 종일 글만 썼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널럴함도 능력일 수 있다는 걸 부인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 역시 그녀가 서재를 평정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그녀가 ‘실시간 리플의 대가’가 된 것도 다 그 덕분이다. 과거 앤티크님이 실시간 리플의 제왕이었다지만, 앤티크님이 사라진 지금은 플라시보님이 제왕이다. 오늘 올라온 ‘떡볶이’란 글에 작은미소님이 11시에 댓글을 달았는데, 플라시보님은 11시 8분에 댓글을 달았다. 그러니 그녀가 쓴 어떤 글에 댓글이 30개 달렸다면, 반은 자신이 쓴 거다. 나처럼 몇 개의 댓글에 몰아서 답을 하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더 좋은 태도라는 건 백번 인정한다. 바쁜 척하지만 사실 나도 그럴 여력은 된다. 내가 게을러서 못할 뿐.


4. 다시 문제는 따뜻함이다

<파크 라이프>에 대한 리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쿨하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게 내가 이 소설에 대해 하고싶은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아는 어떤 알라디너보다도 쿨하며, 내가 아는 모든 여자를 대상으로 한다고 해도 그건 달라지지 않는다. ‘쿨함’이란 게 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녀는 매사에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다. 자신이 남자를 덮친 것에 진배없는 첫경험 얘기, 열명이 넘는 사람이 나오는 연애담들을 담담하게 글로 쓸 수 있는 것도 그런 자신감의 징표가 아닐까.


그녀는 원리원칙주의자인 듯싶다. 다른 사람 같으면 참고 넘어갈 일도 그녀에겐 용납되지 않는다. 카드할인과 조조할인이 동시에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나선 영화를 안봐 버리고, 자기가 볼 때 수준이 안되는 경리의 얼굴에 커피를 쏟는다. 자기집 근처에서 사람들이 떠들면 창문을 열고 “다른 데 가서 떠들라”고 말할 수 있는 여자, 애인은 사귀지만 결혼은 할 뜻이 없는 여자가 바로 플라시보다. 그녀의 글에는 자신이 싸워온 숱한 경험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런 점이 그녀의 매력이겠지만, 너무 삶을 치열하게 살다보니 따뜻함을 상실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서재질을 일년쯤 하다보면 서로 농담도 주고받고 하지만, 그녀에게는 감히 농담 거는 사람이 없다. 어설픈 농담을 했다간 박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그녀가 여간해선 서재마실을 다니지 않는 것도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요인일 거다. 정말로 그녀는 마실을 잘 다니지 않는다. 그녀 정도 레벨 치고 즐겨찾기가 열 개 정도밖에 안되는 서재는 별로 없을거다. 그녀가 자기 서재에 와주지 않는다고 삐진 사람도 있지만, 그녀는 마실을 다닐 마음이 없는 듯하다. 100군데를 즐겨찾기 해놔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몇몇 서재폐인처럼, 마실을 나가다보면 자신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아예 그렇게 선을 그어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또한 그녀가 견지하는 원리원칙의 하나일테고, 그러면서도 서재를 평정하다시피 한 것도 능력이겠지만, 따뜻함, 인간미 같은 가치를 중시하는 나로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5. 결론

‘결혼할 뜻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임자를 만나지 못한 거다’

독일의 철학자 마이클 오웬이 한 말이다. 새엄마의 탄압을 이기고 알라딘의 제왕이 된 플라시보, 신데렐라의 행운은 거저 왔지만 그녀는 스스로 만들었다는 게 커다란 차이점이긴 해도, 난 그녀를 현대판 신데렐라라고 부르련다. 쿨하고, 센 척 하지만, 한달에 서너번은 집에서 소리내어 운다는 연약한 여자 플라시보, 그녀의 구두 한짝을 가지고 있는 왕자님은 도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걸까.


* 이 글은 플라시보님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쓴 글입니다. 맘에 안드는 구석이 있어도 이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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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11-23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씩 플라시보님 글 읽으면서 참 인생을 성실하게 알차게 사는 분이로구나 해요. 물론 간간이 님의 아픈 과거도 담담히 털어 놓는 걸 보면서 마음 아프기도 했지만, 그만큼 삶을 사랑하고 진지하게 사는 거 같아 도전이 되곤하죠.

플라시보님은 정말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사시는 분 같아요.

이번에 서재 이벤트 하는 거 보면서 정말 알뜰하고 생의 재미와 멋을 추구하며 사는 분 같아 보기 좋았습니다. 비록 저는 당첨 못됐지만. 추천 안 할 수 없네요. 이 글 쓰신 마태님과 플라시보님을 위해!^^

▶◀소굼 2004-11-23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추천 한 방 넣고;

도움 되는 글 정말 많죠. 플라시보님의 글은...되돌아보게 만들고 앞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건지도 알게 해주시는...

플라시보 2004-11-23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에대해 이렇게나 길게 분석을 하시다니요. 흐흐. 고맙습니다. 그리고 제가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원칙주의자라는건 저도 어느정도 인정을 합니다. 제 인생이 워낙에 굴곡이 졌던 탓인지 저는 어떤 제가 정한 원칙 만큼은 무슨수를 다 해서라도 지키는 편입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저는 여상을 다닐때 제 주변의 아이들 처럼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후배를 때리고 남자를 만났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나쁘다기 보다는 그냥 제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 정한 것이고 그 원칙을 지키려고 애를 쓴 것입니다. 물론 이게 인간미가 덜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뭐랄까요. 저 같은 경우에는 옆에서 잔소리하거나 챙겨주는 사람이 초등학교 5학년 이래로 아무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맘대로 하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겠다 싶었지요. 또 대학 1학년때 부터 독립을 했으니 그때도 역시 젊은 혈기에 제가 어떤 원리 원칙없이 마구 살고픈대로 살았다면 어찌되었을지 모르구요.

음... 그리고 그 경리 사건. 사실 커피를 부은것에 대해서는 반성합니다. 하지만 경리라서 수준이 맞지 않아 그런건 절대 아니고 그녀가 정말로 나빴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회사 직원 한분이 자살을 했는데 그분이 평상시에 가족이나 친구에게 경리에게 시달린 얘기를 많이 했답니다. 그런데도 경리는 죽은 그 앞에서 욕을 하더군요. 별게 다 죽어서 결혼을 앞둔 자기를 신경쓰이게 한다는 식으로요. 그래서 지금 회사에서 저와 또 한명의 직원은 그녀의 결혼식에 축의금을 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녀 역시 조의금을 안냈는데 그 이유가 결혼을 앞두고는 원래 내는것도 아닐 뿐더러 자긴 이번달 안으로 회사를 관 둘 사람이니 상관이 없지 않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미신을 믿는 사람에게는 결혼을 앞두고 조의금을 안내는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저 같으면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 저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말을 다른 사람에게 했다는 소릴 들으면 미안하고 찔려서라도 내는거 아닐까 싶습니다. 이건 제가 모르고 하는 소리일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따라서 저는 그녀의 수준이 아닌 그녀의 나쁨. 또 그것이 강자에게는 한없이 비굴하고 약자에게는 거의 괴롭힘의 수준이었다는 것 때문입니다. 나이든 부장님의 비호를 받을때는 너무 잘하다가 나중에 그분이 ?겨나게 생겼을때 서류를 거의 던지다시피 한것과 바락바락 대들던 모습. 그리고 새로운 여직원을 괴롭히던 모습은 절대 그녀를 용서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욱하는 마음에 커피를 부었지요.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저는 충분하게 괴로웠고 단편적으로 그 일만 두고 보자면 그녀에게 잘못했다는 생각도 드는게 사실입니다만. 그녀가 나쁜 사람이라는 마음은 변함 없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계모라고 쓰신 부분. 흐흐. 전 그냥 그여자 쯤으로 표현을 해 왔었는데 계모라고 쓰니 이미지가 그래서 그런지 정말 나쁜것 같네요. 그녀의 경우 저와 코드가 안맞아서 그렇지 여동생과는 지금도 아주 잘 지내는 분이므로 무조건 나쁜 사람만은 아닙니다. 괜히 저땜에 욕먹는것 같아 맘이 그러네요. 저에게는 분명 나쁘게 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현재 아빠의 곁에서 아빠를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그녀거든요^^

마지막으로 서재 마실에 관한 부분. 네 사실입니다. 제가 제 서재에 들어오는 분들에 비해서는 마실을 잘 못다닙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을 등록해두고 답글을 다는데 급해서 글을 대충 읽고 답변을 달고 싶지는 않았기에 한 선택이었습니다. 물론 제 서재 즐겨찾기를 해 주시는 분들은 저도 해 드리는게 예의라는건 알지만 저는 소수의 분들을 해 두고 그분들 서재 만큼은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끝까지 가 주는게 더 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서재 마실을 영 안다니는건 아닙니다.^^ 제가 다니는 서재들이 조금 비인기 서재인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그리고 즐겨 찾기도 10개는 아닙니다. 조금씩 늘었어요. 숫자를 밝히기는 부끄럽지만.^^

하여간 저에게 대해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긴 글을 써 주셔서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마태님의 말씀에 100% 동의는 아니지만 많은 부분은 저도 수긍하고 반성합니다. 좀 더 따뜻하고 인간적인 제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고마워요 마태우스님.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전 님의 상대가 아닙니다. 님이 훨씬 더 앞서 계세요. 꼭 숫자가 아닌 글의 수준이나 따뜻함 그런걸로 이미 님은 저 만치 앞에 계십니다.^^)

날개 2004-11-23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의 글도 그렇고, 플라시보님의 글도 그렇고.. 놀랍기만 합니다..^^

뭔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추천하고 갑니다..

작은위로 2004-11-23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대단하세요. ^^

이렇게 긴 글이라니!! 너무 많이 파악하고 계신거 아닌가요? ^^

흠, 그리고요, 전 작은미소가 아니에욧!! (훌쩍훌쩍...)

깍두기 2004-11-23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아요. 제가 좋아하는 두 분이 이렇게 다정하게....^^

플라시보님은 실제로 만난다면 좀 긴장되는 분일거라는 생각이 들지만(저는 원래 대충형 인간이라서요^^) 글을 읽으면 배울점도 많고 감동도 많이 하고 그럽니다. 그리고 플라시보님께 아주 조금 모자랄지도 모르는 그 따뜻함이나 관대함, 이런 거는 아직 님이 젊기 때문일 거예요. 어릴 적 말로 다 할 수 없을만큼 싸가지 없던 저도(플라시보님 보고 하는 얘기는 절대! 절대! 아니어요) 이 나이 되니 조금은 주변에 너그러워지기 시작했거든요.

횡설수설 그만하고, 이 글을 쓰신 마태님이나 이 글의 주인공 플라시보님이나 제가 다 너무 좋아한다는 말로 마감을 하겠어요^^(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이 알라딘이란 공간도)

진/우맘 2004-11-23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서재에 매진할 수 있는 편안한 직장이란 부분은, 마태우스님도 만만치 않을텐데요? 그리고, 문장력에 대해 부러워하는 건 좀 자제하세요. 마태님 기발한 문장력에 기죽고 있는 수많은 알라디너는 어쩌라고...TT

저도, 두 분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추천 한 방

마태우스 2004-11-23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앗 제 약점을 찌르시다니^^ 글구 저 문장력 없는 건 다들 인정하는 분위기 아닙니까. 추천만 달게 받겠습니다

깍두기님/그래도...플라시보님보단 저를 더 좋아하시죠? 전 다 알아요.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구요^^

작은위로님/앗 제가 실수를...울지 마세요 흑흑

날개님/추천 감사합니다. 날개가 있는 걸로 보아 님은 아마 천사일 거예요^^

플라시보님/특정인에 대해 쓴다는 건 여간 두려운 일이 아니랍니다. 제가 님을 아프게 한 대목도 있는 것 같은데요, 너그러이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잘못 안 부분은 님의 글을 읽어가면서 교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소굼님/그러게요. 제가 절대 넘지 못할 벽이라니깐요

스텔라님/가장 먼저 답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스텔라님은 저를 더 좋아하시죠? ^^

sooninara 2004-11-23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의 신같은 존재들 아니십니까? 부러울 따름입니다..^^

biseol 2004-11-24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열일곱번째 추천! 마태우스님의 글은 전부터 봐오긴 했지만 즐겨찾을 수 있는 여력이 안되어 플라시보님만 편애를 했습니다...( 이 글도 플라시보님 서재에서 먼저 보고 달려왔어요. )

'당신 멋져요!'를 전부터 말하고 싶었지만, 뜬금없을 거 같아 참고 있었는데

이렇게 대신 표현해 주시니 그냥 기쁜 거 있죠..흐

maverick 2004-11-29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빈과 장동건이 서로 "너 너무 잘생긴거 아냐?" 라고 하는거 같습니다. 범인들로서는 상당히 질투가 나는 대목이 아닐수 없군요 ㅎㅎ 하지만 정말 두분의 생활속의 글쓰기 실력은 찬사를 충분히 받을만 하다고 기립박수 보내드리고 싶은 솔직한 마음입니다 ^^
 

 

난 일년에 한두번 정도는 감기를 앓는다. 알레르기성 비염 탓인지 내게 오는 감기는 언제나 코감기 형태로 나타나는데, 코를 하도 풀어서인지 감기가 나을 때쯤 되면 내 코는 대개 헐어 있다. 휴지와 더불어 내가 많이 쓰는 것은 바로 약이다. 타이레놀 ER과 알레르기성 비염 약을 말 그대로 ‘때려먹’는데, 내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내 감기는 유독 증상이 심하고, 도저히 견디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그렇게 위기를 넘겼지만, 타이레놀ER 4알을 원샷했다가 그대로 혼절한 적이 딱한번 있다.


올해는 어떻게 감기 한번으로 마감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지만, 지난 금요일 밤 추운 데서 잔 탓인지 또다시 감기가 찾아왔다. 그저께 밤을 떨면서, 혹은 코를 풀면서 꼴딱 새고 난 나는 어제 아침 기차를 타기 전에 타이레놀 ER을 두알 먹었다. 당연히 졸음이 쏟아졌다. 내가 안일어나면 5분마다 미친 듯이 울리는, 충직하기 짝이 없는 휴대폰 알람이 없었다면 천안에서 내릴 수 없었을거다.


학교 앞에 있는 약국에서 알레르기 비염 약을 샀다. “하루 한알 드시는 거 아시죠?”라는 말을 한쪽 귀로 흘리고 내 방에 가자마자 두알을 먹었다. 별로 나아지는 것도 없으면서 졸음만 잔뜩 왔다. 점심 식사 후 약 두알을 더 먹은 채로 부총장 등 높은 사람들이 잔뜩 모인 회의에 참석했다. 서류를 하나씩 나누어 주는데, 그 두꺼운 걸 설마 다 읽겠냐 했는데 진짜로 다 읽는거다. 지루해서 딴생각을 하다가, 난 그만 코를 곯고 자버렸다. 옆사람이 날 쳐서 일어나 보니 대부분의 사람이 나를 보고 있다. 이런이런, 이게 무슨 망신이야.


드디어 회의가 끝났다. 질문 있냐니까 누가 또 질문을 한다. 질문하는 사람을 잠시 째려보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서류를 챙겨 먼저 나갔다. 가면서 택시를 불러 기차역으로 갔고, 충직한 휴대폰 알람을 내리는 시각에 맞춰 놨다. 졸음이 엄청 쏟아져, 기차를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전화가 계속 오는 바람에 한번 깼고-내가 가져간 서류가 ‘대외비’라고 빨리 가져오란다-옆 사람이 내릴 때 또한번 깼다. 그리고 충직한 휴대폰 알람 때문에 5분 간격으로 깼다. 모 케이블 방송국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쓰러져 잤고, 방송이 끝나고 다시 기차역으로 갔다. 그리고 또 잤다. 휴대폰 알람 때문에 극적으로 일어났고, 기차에서 내려 약속 장소로 갔다. 택시에서 좀 잤으면 했는데, 기사 아저씨가 보증을 섰다가 상대가 도망가는 바람에 제초제를 먹고 자살한 친구 동생 얘기를 하는 바람에 전혀 못잤다.


약속장소 도착. 하지만 남은 고기가 별로 없었다. 고기 좀 더했으면 했는데 다들 밥을 먹자고 해서 소면을 먹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저녁 약속에 늦었더니 고기 딱 4점 남겨둔 거 있지. 배 무지하게 고프니까 저녁 좀 차려 주세요”

버스에서 내내 잤고, 도저히 전철은 못타겠다 싶어서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 가자마자 난 그대로 쓰러져 자버렸다. 어머님이 부르는 소리가 났다. “민아, 저녁 먹어야지!!!!!” 하지만 그놈의 약기운 때문에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어지러운 와중에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이 맛에 마약을 하나보다.


* 어제 하루동안 쓴 택시비가...무려 얼마야? 돈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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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녀 2004-11-23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좀 나으시나요? 출근 전이신가 봐요?

좋은 아침입니다.

어여 쾌차하시어요.

물만두 2004-11-23 0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님도 편찮으시군요. 어여 나으세요. 샘까지 이러심 안되지요.

알라디너들이 아플때마다 돌려 먹고 나눠 먹는 만병통치약입니다. 빨리 나으세요^^


하이드 2004-11-23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알러지 약 독하죠. 저도 알러지성 비염( 산재랍니다.) 학교다닐때는 없었는데 -_-+

제가 가끔이나마 먹는 약은 콤트렉스인가 하는건데, 아주 잘 듣지요. 가끔 근무중 수면 부작용이 있긴 합니다. 가장 강력했던 약은 우리나라에는 팔지도 않는 타이레놀 슬립. 어느날 생리통이 정말 죽기 직전으로 심해서, 나을 수 있다면 지금 쓰러져 자도 좋아~! 하고 있으니 옆의 대리님이 줬는데, 그야말로 하루 종일 붕붕 떠다니고, 내 몸을 내가 보는 유체이탈을 경험했다지요. -_-a

진/우맘 2004-11-23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사람들은 이맛에 마약을? 그 어인 황당무계한 결론이랍니까아~~

에구구..."마태우스, 너 마져!!" 로군요. 독한 감기가 어디까지 돌려는지. 그리고, 오남용은 금물이잖아욧!! 알라딘 주치의 몇 분 모아와서 막 혼내줄까보다. ㅡ.ㅡ

비연 2004-11-23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건강 조심하세요..요즘 일교차가 심해 감기가 유행이랍니다..

뜨끈한 차 마시고 푸욱 쉬시길...

sweetmagic 2004-11-23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힝 어제 머리가 너무 아파서 한알 두알 타이레놀 6알 먹고 기절하듯 자버렸다가 오늘아침에서야 일어났어요~! 오늘 레포트 내라고 하셨는데 전 오늘 죽었다구요 엉엉엉 ....................................................................

니르바나 2004-11-23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홀몸도 아니신데...

가을산 2004-11-23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근데 타이레놀이나 그 하루에 한번 먹는 알러지 약은 전혀 졸음을 유발하지 않는 약인뎁쇼! ^^ 정말이요!

플라시보 2004-11-23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통제 한꺼번에 너무 많이 복용하면 쇼크 비슷한게 일어나던데... (예전에 진통제를 좀 많이 먹었다가 응급실 간적이 있어요) 많이 먹지 마세요. 님. 약은 처방받은 만큼만 드시길^^

비로그인 2004-11-23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녀님께 감기 옮기면 안되잖아요^.^

빨리 쾌차하세요 ^^

가을산 2004-11-23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그러고 보니 '과량' 복용이 문제군요.

2004-11-23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oldhand 2004-11-23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사이 날씨 탓인지 아프신 분들이 많군요... 감기, 참 한 번 걸리면 괴로운것이 감기 같아요. 특효약이 있는것도 아니고. 저는 막자라서(-_-) 감기 잘 안걸린답니다. 감기 걸려본지 10년은 된것 같아요. ^0^

작은위로 2004-11-23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깜짝 놀라 들어와봤더니, 감기에 걸리셨군요.

제가 감기에 걸렸을때, 님이 위로도 해주셨는데, 어서어서 빨리 나으시길 바랄게요.

그리고 약은요, 많이 드시면 안좋은 거에요. 의사.약사가 시키신 데로 드셔야지요.(네네, 잔소리에요.ㅋㅋ)

빨리 털러 일어나시기 바라요~ 택시비 걱정까지 하시는거 보면, 몸 아주 많이 나쁘시진 않으신 거죠? 흐흐, 그렇게 믿을게요.

빨리 빨리 나으셔요~ 다신 아프지 마시구요, 그러셔야죠. 안그래요? 후훗.

마태우스 2004-11-23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위로님/어제 약을 때려먹은 결과 다 나은 것으로 사료됩니다. 아침만 해도 어지러웠는데, 지금은 멀쩡합니다. 얼마나 멀쩡하면 점심도 거르고 알라딘에서 글쓰겠습니까. 큰 위로 감사합니다.

올드핸드님/일년에 두번 걸리는 대신, 전 기간이 짧답니다. 보세요, 벌써 다 나았어요! 짜잔....이박3일만에...

속삭이신 에피메테우스님/감사합니다. 빨리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가을산님/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약의 부작용 때문에 졸음이 온 게 아니라, 혼수상태가 된 거군요^^

고양이님/다 낫습니다. 고양이님도 쭈욱 건강하세요

플라시보님/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그래도 님에 대해 글쓰고 있었는데...

니르바나님/맞아요, 저 홀몸이 아니죠. 하하.

매직님/아앗 님은 여서알이나... 대, 대단하십니다. 앞으론 몇알 더먹어야겠다..

비연님/네 감사합니다. 따뜻한 햇살을 쬐면서 점심 굶으려고 합니다. 제가 오늘 다 나았다면 그건 다 비연님 덕분입니다.

진우맘님/오옷 저를 걱정해 주시는 진우맘님의 안타까움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꼭 나을께요, 언제 술로 한판 붙어요. ^^

미스하이드님/유체이탈이라...전 아주 졸릴 때 그런 적이 있었는데... 어째 님은 유체이탈 하실 때 기분이 좋았던 것 같네요??

속삭이신 파란여우님/소금물이 이론적으로는 효과가 있겠지요. 저도 들어봤는데요, 그걸 어떻게 코로 넣을까요?? 전 도저히 못하겠던데...

물만두님/아이고 감사합니다. 전 만순이 아플 때 도와드린 것도 없는데 이렇게 비싼 보약을...

호랑녀님/일등으로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님 댓글을 보고 출근했는데요, 그 덕분인지 많이 좋아졌어요.



 

 

90년대 초반, 난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오락에 심취해 있었다. 무기가 각각 다른 전사 하나를 선택해서 싸움을 벌이는 거였는데, 나의 내면에 잠재된 폭력성 때문인지 나는 그 오락에 순식간에 빠져들어 버렸다. 컴퓨터랑 싸울 수도 있고, 2인용을 선택해 다른 사람이랑도 싸울 수가 있었는데, 난 주로 컴퓨터와 싸우는 걸 즐겼다.


거기 나오는 전사들을 몇 명만 소개한다(참고로 이 전사들은 모두 자신의 스토리가 있는데, 영어로 쓰여 있어서 나는 모른다).

-달심: 인도의 중으로 팔다리가 늘어난다. 멀리서 칠 수 있다는 것 말고는 장점이 없어 별로 선택을 받지 못하는 존재.

-켄과 류: 가라데 선수로 도복을 입고 경기를 한다. 일본에서 만들 땐 가장 강하게 프로그래밍되었을텐데, 장풍을 쓰고 “오--류켄!”을 외치면서 뻗는 주먹이 위력적이긴 하지만 1탄에서는 그다지 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천리: 속사포처럼 내뻗는 발차기가 특기인 여자로, 별 위력은 없다.

-가일: 반달킥이 위력적인 선수다.

-혼다: 스모 선수로 손을 무지하게 빨리 내뻗는다. 단지 그뿐이다.


그럼 내가 주로 선택했던 건 뭘까. 바로 블랑카다. 블랑카는 약간 진화가 덜된 종족의 전사인 듯 싶은데, 전기를 내서 상대를 감전시키고, 커다란 앞발로 상대를 공격하는 게 위력적이다. 가끔씩 상대에게 매달려 피를 빨기도 하는 잔인한 녀석. 난 이 녀석과 더불어 수많은 전투를 치뤘다. 1단계 전사들을 다 물리치면 2단계 전사가 나오는데, 권투선수, 펜싱선수 등이 나오고 맨 마지막에는 제왕인 바이슨과 대결을 한다.


내가 최초로 바이슨을 물리친 건 의사고시가 끝난 날이었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난 잽싸게 성대앞 오락실로 달려가 전자오락을 했고, 블랑카와 더불어 바이슨을 KO시킨다. 그 후 스트리트 파이터 2탄이 나왔는데, 모든 등장인물을 선택할 수 있는 것까진 좋았지만 상대 전사의 수준이 크게 향상되는 바람에 한번 이기는 것도 너무 어려웠고, 결국 난 스트리트 파이터에서 은퇴를 하고 만다.


영화 <스트리트 파이터>가 나온 것은 내가 은퇴를 하고도 몇 년이 더 지난 시점이었을게다. 내가 선호하던 오락이 영화화되었다고 하니 보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다. 유치하다고 안보려는 친구를 꼬드겨 극장으로 달려갔는데, 다 보고 나니까 친구에게 미안했다. 오락광인 나는 상상이 현실화되었다는 사실에 좋아라 했지만, 오락과 담을 쌓고 지낸 그 친구야 재미있을 턱이 있나. 그 뒤 난 그 영화를 케이블 TV로 한번 더 보았는데, 오늘 또 그 영화를 하기에 넋을 놓고 봐버렸다. 장 클로드 반담이 맡은 가일 대령은 역시나 잘 어울렸고, 류와 켄, 다른 조연들도 ‘어쩜 저렇게 비슷한 애들을 뽑아놨냐’는 감탄이 나오게 만든다. 벌써 세 번째, 내용도 뻔한 영화를 여러번 보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아마도 난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영화를 보면서 오락에 빠져있던 그때를 상기하고 있나보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보다는 훨씬 못살았던, 하지만 꿈과 낭만은 잃지 않고 있었던 그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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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1-21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0년대 초반이라면 제가 한창 야망에 눈이 어두워 세상을 긁고 다니던 시절이군요. 그때 님은 전사로 활약을 하셨다니 역시 님은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블랑카는요 개그맨이 흉내내는 '사장님! 너무해요. 이게 뭡니까'하는 블랑카 밖에는 몰라요..>.<

하얀마녀 2004-11-22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나게 했던 게임이군요. 지금도 가끔 에뮬레이터로 돌려봅니다. 전 그때 고등학생이었는데 8개의 모든 캐릭터로 마지막까지 클리어가 가능했었습니다. 대신 영화는 환상이 깨지는 것이 싫어서 안 봤죠. ^^

마태우스 2004-11-22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님/8개의 모든 캐릭터로 클리어가 가능하다면 저보다 더 잘하셨다는 얘기군요. 하지만 오랫동안 블랑카만 해온 제가 전문성이 더 뛰어나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언제 한판 붙어봐야겠네요^^

여우님/앗 전 개그맨 블랑카는 모르는데... 그리고 오락에 빠져있던 저를 대단하다고 해주시다니, 님이 더 대단하세요. ^^

노부후사 2004-11-22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격투기 겜은 전혀 못해서 <스트리트 파이터>같은 경우, 달심만 선택하였지요. 팔이랑 발이 길게 뻗으니까 그거 가지고 공격하고 뒤로 빼고... ㅡㅡ;;

oldhand 2004-11-22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투기 게임에 약한 저는 남들 스트리트 파이터 할적에 죽어라고 라이덴만 했었지요.

비로그인 2004-11-22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1942 인가.. 비행기게임 아시는 분 제목도 가물거리네요;;

瑚璉 2004-11-22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룡권이 안되어서 좌절한 적이 얼마이던가 (-.-;).

그리고 Epimetheus 님, 달심은 장풍에 약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류나 켄, 그리고 가일에게는 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 왜 신문을 안만드냐는 항의가 빗발칩니다. 시간도 없고해서 간단하게 만들어 봤어요.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1. 아름다운 부정(父情)

11월 21일 일요일 오전 7시부터 9시 반까지 테니스를 친 마모씨는 집에 가서 자신이 샤워를 하는 대신 아들 벤지만 목욕을 시켰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를 물어보겠습니다.

-원래 운동할 때 땀을 안흘리나?

=웬걸. 무지하게 흘린다. 난 테니스를 칠 때 남보다 더 많이 뛰기 때문에 운동량도 많다.

-그런데도 샤워를 안하다니 놀랍다.

=나보다 벤지가 더 중요해서다.

-이해가 잘 안간다. 자신이 샤워를 안하는 게 벤지를 아끼는 길인가?

=그렇다. 벤지를 목욕시키고 나면 털을 말려야 한다. 그래서 지체없이 벤지를 데리고 내방에 가서 낮잠을 잔거다.

-듣고보니 이해가 간다. 하지만 개털이 다 마르고 난 뒤에도 샤워를 안한 이유는?

=맨날 술만 먹고 늦게 들어가는데, 약속이 없는 오늘이라도 벤지와 함께 있어주려는 게 나쁜가.

-아니 그게 아니라... 평소에 샤워시간이 5분밖에 안걸린다는데 그 시간도 내지 못하는가.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건가?


한편 마모씨는 오후 9시 33분 현재에도 샤워를 하지 않은 채 버티고 있으며, 더 놀라운 것은 테니스를 칠 때 입었던 반팔 티를 여전히 입고 있다고 합니다.

* 사진설명: 판다님이 열흘간 고향집에 다녀와서 서재를 비우신답니다. 아쉬워하는 분들에게 "내 마음을 드린다"며 하마 그림을 올려놓으셨군요. 판다님 배와 하마가 닮았다네요^^

 

2. 추천과 댓글

바람구두, 마냐와 더불어 ‘리뷰 3인방’에 속하는 파란여우의 기세가 무섭습니다. 쓰는 리뷰마다 많은 추천수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그 현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11/21 9시 50분 현재).

쇼쇼쇼; 댓글 1, 추천 6

록펠러; 댓글 5 추천 3

여행의 기술: 댓글 4, 추천 7

그래 나 싱글이다; 댓글 5 추천 3

경성 트로이카: 댓글 4 추천 7

나의 문화유산3; 댓글 3 추천 5

나의 문화유산 2: 댓글 2 추천 7


그러니까 여우님은 최근 7편의 리뷰에서 38개의 추천을 받아 평균 5.4개의 추천을 받았는데요, 문제는 댓글입니다. 7편을 합친 댓글 숫자가 24편, 평균 3.4로 추천 개수보다 적습니다. “평균 6.58개의 리뷰당 하나꼴로 추천수 10개 이상을 얻”으시는 바람구두님의 경우를 봐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막스와 모리츠: 댓글 1 추천 5

사형; 댓글 1 추천 7

격동의 서양 20세기사: 댓글 2 추천 5

사이버공간에...: 댓글 4 추천 7

역시 댓글에 비해 추천이 많지요? 왜 이분들 서재에는 추천만 남기고 사라지는 분들이 많은 걸까요? 파란여우의 서재에 3주째 추천만 하고 도망가던 호랑녀님을 붙잡아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그게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무서워요...”

그녀의 표정을 본 저는 더 이상 심문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단서는 포착했습니다. ‘무서워요’라는 말, 거기에 정답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커다란 건물을 보면 ‘크다’라고 하지만, 엄청나게 웅장한 건물을 보면 그저 입만 딱 벌리고 아무런 말을 못하지요. 일종의 경외감이라고 할까요. 두분의 리뷰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울림을 전달하며,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추천 버튼을 누르게 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 3인방 중 한분인 마냐님은 댓글이 더 많습니다.

당신의 주말은..; 댓글 8 추천 5

어두울 때는...; 댓글 22, 추천 1

전선기자 정문태...; 댓글 10, 추천 9

신의 네여자: 댓글 18, 추천 10


물론 마냐님 리뷰 중에도 추천이 댓글보다 많은 경우가 있습니다. <군림천하>의 리뷰는 댓글없이 추천만 10개죠. 하지만 일반적으로 마냐님의 리뷰는 댓글이 더 많이 달립니다. 마냐님의 서재에서 댓글을 달다 덜미를 잡힌 스윗매직님을 붙잡아 물어봤습니다.

“댓글을 왜 다냐니, 그런 희한한 질문은 처음 받아본다. 댓글은 상호간의 소통이 아닌가”

별 도움이 안되서 그냥 제 의견을 말씀드립니다. 마냐님의 리뷰는 아주 쉽게 읽힙니다. 그리고 책을 사보고 싶게 리뷰를 쓰십니다. 실제로 리뷰가 책의 판매에 미치는 효과를 나타내는 ‘RBI 지수’(리뷰가 올라간 이후 일주일간 책이 팔린 평균값)를 비교해 보면, 마냐님이 22.4로 빅 3 중 가장 높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람구두 15.5, 파란여우 13.8) 게다가 마냐님은 <그놈은 멋있었다>같은 고교생 소설이나 한물 갔다는 소문이 나도는 시드니 셀던의 소설, 그리고 무협지마저 리뷰의 소재로 삼습니다. 마냐님의 말입니다.

“사실 한때는 어깨를 으쓱하면서도 셀던 책(을) 줄줄 읽던 시절도 있는 것을. 잘난척 그의 책을 무시하는 것두 우습다”

사람들로 하여금 마냐님의 리뷰에 그렇게 많은 댓글을 달게 만드는 이유가 거기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저는 이 세분의 리뷰를 다 좋아하고, 리뷰를 씀에 있어서 특정 스타일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이분들이 거액을 받고 교봉으로 스카우트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세분께 감히 묻습니다. “그런 일은 없는 거죠? 세분 다 계속 알라딘을 지켜 주시는 거죠?”

* 사진설명: 로드무비님의 따님입니다. 실내화를 빨고 있는데요, 결코 연출된 사진이 아니랍니다.


 

3. 첫키스 했다? 안했다?

요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미녀와 열애중인 주둥이(가명)가 자기 서재에 남긴 글입니다.

[.... <트로이>도, 첫키스도 다 놓쳤다. 그렇다면 내가 그녀의 눈에서 읽었다는 욕망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젠 그녀와 내가 만난지 한달째였는데, 2달째가 되기 전에는 첫키스를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많은 알라디너 분들이 이번 일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는데요, 명탐정을 자처하는 올드핸드님은 다른 의견을 냈습니다.

“혹시 키스를 못 했다는 부분이 픽션 아닌가요?”

조선인님도 여기에 동의를 표했습니다. “ ㅎㅎㅎ 올드핸드님께 1표!!!”

본지는 주둥이와의 인터뷰를 여러차례 시도했지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그래서 할수없이 주둥이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봤는데요, 거기에는 이런 말이 씌여 있었습니다.

[..키스를 했느냐 안했느냐는 부차적이고 지엽적일뿐더러 나이브하기까지 한 문제에 불과하다. 따라서 키스 여부에 집착하는 것은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과 동일하다....중략...내 순수성이 의심받는다는 것은 분명 슬픈 일이지만, 올드핸드님을 예리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건 더 슬픈 일이다]

마지막 문장이 묘한 여운을 주는데요, 과연 첫키스를 한 걸까요, 안한 걸까요? 참고로 새로 신설된 투표기능을 이용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했다’는 의견이 51.6%로 안했다(48.3%)보다 더 많았습니다. 이상으로, 약식 뉴스레터를 마칩니다. 순전히 미녀 자랑만 했다는 비난이 들려오는 듯하네요.


* 참, 조선인님, 마로는 좀 괜찮아졌나요?

 

알라딘의 정신적 지주 비발샘님의 서재 이미지입니다. 누군지 몰랐는데 가수 비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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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4-11-21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짝짝!!! 굉장하네요 ^^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천재성(?)이 조금 엿보이시네요. *^^*

로드무비 2004-11-21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우리 주하 사진을......

추천하고 갑니다.

(날림 아니네요, 뭐)

파란여우 2004-11-21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정요망 발견:"역시 추천에 비해 댓글이 많지요?"->역시 댓글에 비해 추천이 많지요?로. 그리고요, 이제사 고백하지만 사실 교봉이나 그래 스물넷에서 연락이 오긴 왔지요. 그러나, 제가 누굽니까. 의리하면 저 아니겠어요.그래서 알라딘에 죽으나 사나 일부종사하기로 했다는거 아닙니까.마태님이 계신(이렇게 극찬을 해주시는데..^^)알라딘을 떠날 수는 없지요...안그래요?험험..^^

마냐 2004-11-22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위기감을 느낍니다. 뭐라뭐라 3인방 했으나...여우언니에게만 스카웃 제의가 갔단 말이군요. 제 에이전트에 문제가 있는 거 같습니다. 케켁...

혹은 추천수에서 밀리는 건, 내공이 떨어진다는 거라구 교봉쪽에서 이미 간파를? 아니, 그쪽에 그렇게 잔머리 굴리는 인간이 많단 말입니까....이럴수가.....으으, 알라딘에 제 실체가 소문나기 전에, 빨리 몸값 받구 튀어야 하는데...마태님, 새 에이전트가 되어주심 안되나요? 엉엉...

미완성 2004-11-22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밥을 꾸역꾸역 먹어도 허전한 것이..그동안 뉴스레터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어요..!

전 샤워를 하지 않으신 이유보다 격렬한 운동을 하고도 샤워를 하지 않을 수 있는 님의 꿋꿋함에 박수를 보낼랍니다. 우어어~~ 리뷰 3인방께는..험험. 저 역시도 추천만 하고 도망갈 때가 많아서..*.*

그, 그리고 마태님 연세에 '키스'얘기로 흥분하신다면..험험 이거야 원 너무 심심한 거 아닙니까?! =3=3=3

마태우스 2004-11-22 0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역시 그랬군요. 혹시 액수가 적어서 남으신 것은...아, 아닙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가요? 그리고 그 오자 말이어요 고치려는데 안되요. 흑흑.

로드무비님/호호, 따님 사진에 추천을 .... 이것도 좋은 작전이란 말야 흐흐...

쥴님/하마터면 큰일날 뻔 했네요^^ 글구 강아지와 샤워를 같이 하는 건 좀...제가 신체상의 비밀이 있어서 말이죠^^ 추신: 이걸 빌미로 님과 사귀자고 하셨는데요, 이미 늦었습니다. 진작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야클님/아이 천재성이라뇨.............. 제가 무슨................................

호랑녀 2004-11-22 0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샤워하지 않아도 상관 없습니다요.

그런데 제가 댓글은 달지 않고 추천만 날리는 줄은 또 어떻게 아셨남...

마태우스 2004-11-22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드디어 오자 고쳤습니다^^

호랑녀님/척 보면 알지요^^ 글구 저 오늘 아침엔 묵은 샤워를 했습니다. 깨끗한 몸, 아름다운 인생!

사과님/제가 너무 오래 여자없이 지내서 말이죠....제 꿋꿋함까지 좋아해 주시는 사과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옵니다. 우리가 십년만 먼저 만났다면...^^

마냐님/제가 에이전트 할께요! 5: 5로 나누어요 우리!

노부후사 2004-11-22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정말 바쁘신가 보내요. 뉴스레터가 거의 한 달 만에 발행되고 있어서요. ^^

sweetmagic 2004-11-22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언니 ~!! 5:5는 안돼요 !! 안돼 !!

진/우맘 2004-11-22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아니, 이런! 웃다가 정신 차려 보니, 드물게도 진/우맘 소식이 빠졌습니다. 빨리 뭔가 사고를 쳐야겠네요. ㅡ.ㅡ;;

oldhand 2004-11-22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햐햐.. 마태님 오랜만의 뉴스레터, 너무 재밌구만요. 더구나, 첫출연이라니. 으흑흑. (감격의 눈물)

조선인 2004-11-22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이젠 뉴스레터에서도 저보다 마로가 화제군요.

이걸 기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여간 여러 차례 공지한 바 있으나 ㅋㅋㅋ

마로는 지난주 토요일에 깨끗이 열이 떨어졌고,

다만 발진이 안 없어져 걱정했는데, 이 역시 이젠 거의 다 사라졌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