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도서실 앞에는 두툼한 명단이 붙어있다. 책을 대출한 뒤 제때 책을 반납하지 않은, 유식한 말로 미납자들이다. ‘꼭 돌려주라’는 절박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명단이 공개된 뒤 추가로 돌아온 책은 별로 없어 보인다.




명단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면면은 그야말로 화려하다. 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전 학장님을 비롯, 고매하신 교수님들의 이름이 곳곳에서 보인다. 연체기간은 더더욱 눈이 부신데, 석달 정도는 부지기수고 어떤 분은 500일을 가뿐히 넘기고 1천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왜 책을 반납하지 않는 걸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로, 쭉 곁에 두고 책을 보는 경우다. 하지만 그렇게 꼭 필요한 책이라면 사는 게 학자의 기본이 아닐까. 두 번째 이유, 책을 분실해서. 이게 좀더 그럴 듯한데, 방안 어디에 있긴 할텐데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면 반납할 방법이 없는 거다. 세 번째 이유, 관심이 없어서. 1년 이상 책을 품고 있었다면 대출을 했다는 사실을 아예 까먹었을테고, 필경 자신의 책으로 간주를 하고 있을게다. 하지만 그다지 정확하지 않은 통계에 의하면, 책을 돌려달라는 전화를 했을 때 화를 내는 사람들은 대개 세 번째 부류란다. 까먹은 사실을 환기시켜주는 게 왜 화가 나는 걸까. 혹시 그들은 책을 돌려줄 생각이 아예 없는 게 아닐까. 남에게 빌린 뭔가가 내게 있으면 마음이 편치 않는 나로서는 그들의 심리를 이해할 길이 없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와 비슷한 잘못을 했다. 내 남동생이 동네 만화방에서 <비련의 화인>인가 하는 책을 빌린 후 반납을 안한 채 군대에 가버렸는데, 그집 주인이 정말 신경질나게 우리집에 전화를 걸었다. 내가라도 갖다줬으면 좋으련만,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못된 아이였기에 “왜 나한테 그러냐. 난 모른다”고 같이 화를 냈었다. 왜 그랬을까. 나도 이해할 수 없다. 동생과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터라, 동생이 남긴 설거지를 내가 하는 게 싫었던 것일 수도 있다. 결국 그 책은 지금도 내 책꽂이에 꽂혀 있다.




몇 년이 지난 후, 난 그 만화방의 단골이 되었다. 95년은 만화라고는 눈도 안돌리던 내가 일생에서 가장 만화를 많이 보던 시절이었는데, 점심 때 쯤 만화방에 가서 맘먹고 만화를 보고나면 어느새 밤 열시가 지나있곤 했다. 그 동안 근처 사람들은 몇 번을 바뀌고 그랬는데, 그리도 열심히 만화를 보는 내가 이뻐 보였는지 아주머니는 내가 갈 때마다 쥐포와 음료수를 무료로 제공하곤 했다. 내가 <비련의 화인>을 갖고 있는 그놈이란 걸 알았다면 그렇게 잘해주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오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일주일만 보고 잽싸게 갖다줘야지. 난 착한 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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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1-30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련의 화인>이라니요..갑자기 그 분이 생각납니다. 바쁘지만 잘 계신다죠^^

하이드 2004-11-30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끔. 저도 얼마전에 책정리하다가 대학때 교수님한테 논문 쓰니라 빌린, 절판되서 구하기도 힘든 '언어학 어쩌구' 하는 책을 찾았답니다. 천일은 가뿐히 넘겼네요;; 아, 예전에 이사가기 전에 빌린 비디오 테이프 ' 정전자' 도 아직 어느 구석에서 잠자고 있어요.

호랑녀 2004-11-30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이 그렇게 공개되어 있으면 창피해서라도 갖다줄 법도 하구만...ㅉㅉ

혹시 연체요금이 두려워서 아니겠습니까? 책을 분실했다 하더라도 방법은 있지요. 똑같은 책을 사서 반납하거나 변상하면 되니까...

연체자는 정말... 미워...

sooninara 2004-11-30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파트 문고도 연체가 장난이 아닙니다. 분실률이 어마어마 할겁니다..^^

2004-11-30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marine 2004-11-30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체되면 그 다음에 책을 못 빌리기 때문에 저는 칼같이 꼭 반납합니다 아마 연체하신 분들은 그 뒤로 도서관 이용할 일이 없었나 봐요

sweetmagic 2004-11-30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방금 연체요금내고 왔는데....제가 아니라 친구 빌려준 책이요 ~ 친구가 늦게 줬데요 ~~~! ( 아 그리고 도서반납 안하면 졸업도 안‰쨈瑁熾?~)

sweetmagic 2004-11-30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글 `` 내가 본 영화들에 있어요 ~ !!

날개 2004-11-30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련의 화인.. 그 책이 궁금하군요..^^*

ceylontea 2004-11-30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는 빌리고 반납하지 않은 책이 딱 한 권이 있어요... 고등학교 다닐때 친구네 놀러갔다가 오빠 책이라는데 빌렸어요... 아직도 다 읽지 못했답니다... 그래도 그 친구랑 연락은 계속 되니 꼭 돌려줘야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 친구가 그 책을 저에게 빌려줬다는 것을 기억할까요? 혹 기억한다해도 반납해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냥 너 가져.. 그럴 것 같다라는 것이죠... 전 제 책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하거나, 책에 손상이 되어 돌아왔을 때처럼 싫은 것이 없답니다.

노부후사 2004-11-30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책 빌리셨어요? 전 그게 더 궁금 ^^

비로그인 2004-11-30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중엔 매 학기 수업 교재를 구입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서 한 학기를 버티는 녀석이 있었지요. 연체료를 내는게 구입하는 거 보다 더 싸게 먹힌다는 것이 그 녀석의 주장이었지만, 꼭 그런 녀석이 자기 책 마냥 빌린 책에 필기도 하고 줄 좍좍 긋고. 무엇보다도 그 책이 부교재인데 절판되었고, 게다가 도서관에 달랑 1권 밖에 없을 경우에는 친구들이 다들 제발 반납 좀 해주면 안 되냐며 싹싹비는;;

니르바나 2004-11-30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빌린 책 반납이 하루라도 늦으면 불안초조해지던데.

은행대출이나 도서대출이나 다 마찬가지 아닌가요.

불량거래 리스트에 오르는 일이 두려워요. 와 이 소심증

soyo12 2004-12-01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출이란 말을 듣고 바로 은행 금융 대출을 떠올렸습니다.

제가 요즘 생활에 힘들어 있나봅니다.^.~

아영엄마 2004-12-01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 페이퍼에서 님의 글을 봤는데 정말 특정 기생충(참굴큰입흡충...??)을 세계 최초로 발견하셨어요? 우와~ 학명 지을 때 혹시 님의 이름도 들어갔남요? 본인의 몸에 생체 실험까지..존경 존경!! (__)

2004-12-01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4-12-01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어, 그거 제가 발견한 건 아니어요. 그거 학명에 'Seo'가 들어가긴 하지만, 그건 제 은사님의 성이구요. 저 학문적으로는 별로인 거 아시면서...

소요님/하하, 그렇네요. 너무 뜸하신 걸 보니 괴롭히는 사람이 주위에 많나봐요?

니르바나님/님도 그러시군요. 그럼 500일을 돌파한 사람들은 다들 강심장?

여대생님/그렇게 버티는 친구분도 계시군요... 돈을 아끼려 책을 빌린다 해도 밑줄 긋는 건 정말 너무하는 것 같네요.

에피님/하하, 그걸 왜 궁금해하시옵니까. 바이러스 감염에 관한 책이어요. 글쓰는 데 참고하려구요

실론티님/여기 분들은 다들 책을 사랑하는 분들이지요. 저도 빌려준 책 못받을 때처럼 속상한 적이 없지요.

날개님/아유, 그 책 재미 하나도 없어요. 궁금해하지 마시길^^

매직님/앗 정말 카테고리가 틀렸네요. 요즘 자주 이래요...

나나님/그, 그럴까요? 그래도 교수들이라 또 빌려달라면 대출해줄 것 같은데..

수니님/왜 반납을 안할까, 심리가 궁금해요.

호랑녀님/우리 도서관은 연체료가 없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하이드님/정전자, 그거 주윤발 나온 거죠? 참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지존무상이 더 재밌긴 하지만... 어머 제가 무슨 말을 하는 거죠?

여우님/그분이라면 혹시......???제가 생각하는 그분이 맞나요??


진/우맘 2004-12-03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년 전 선배에게 빌린 '장미의 이름' 상 권.....일년동안 학년 협의실에 꽂아두었다가, 결국 잊어버렸죠. 그 책을, 며칠 전 구입해서 돌려드렸습니다. 안 잊어버리고 구입해서까지 돌려 드리는 스스로를 무진장 자랑스러워 하며...그랬더니요, 울 이쁜 선배님, 뭘 사서까지 주냐고, 독서행사하고 남은 상품권 만원권을 주시는 겁니다.

흑흑...역시나, 어른의 아량은 다르와요.

빌린 책은 돌려줍세다!
 

 

요즘 영화는 1-2주만에 간판을 내리는지라 숨이 가쁘다. 봐야지, 라고 생각하며 날짜를 잡고 있으면 영화가 종영되곤 한다. <팜므 파탈>이 그 대표적인 예. 지난 토요일, 여친과 영화를 한편 보기로 했다. 여친은 <브리짓 존스2>, 나는 <까불지마>를 봤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막상 본 건 <나비효과>. 재미없을까봐 불안했지만, 이게 웬걸. 제법 재미있다. 미녀와 같이봐도 재미있다면, 상당히 재미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라이프니쯔라는 사람은 선택의 귀로에 선 우리가 가지 않았던 그 길에 대한 세계가 무한히 많이 존재한다고 했다. 나는 오늘 아침 기차를 타고 온 세계에 살고 있지만, 내가 버스를 타고 온 세계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거다. 물론 그 세계는 소통 불가능해, 그런 게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나비효과>과는 그 세계들의 왕래가 가능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하지만 어떤 길로 가든지 주인공은 불행하기만 한데, 다행히도 마지막에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것도 해피엔딩에 속하는지 모르겠지만, 장애인이 되거나, 감옥에 갇혀 다른 죄수의 그것을 빠는 것보다야 백번 나을거다. 나름대로 만족하여 극장을 나서는데, 뒤에 오던 여자가 남자에게 뭔가를 설명한다.


“감독이 원한 결말은 이게 아니었어. 아이가 나오자마자 스스로 목을 졸라 죽는다는 게 감독의 결론이었는데, 그게 너무 찝찝하니까 영화사 측에서 바꾸라고 했데”


그 말을 듣고보니 그 결말이 더 타당성이 있는 것 같다. 그것 말고도 그녀는 또다른 말을 했고, 나와 미녀는 그녀에게 귀를 기울였지만, 사람들의 소음 때문에 듣지 못했다. 중요한 말 같았는데.




과거가 바뀌면 미래가 바뀐다, 이건 당연한 명제 같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었다. 기존의 타임머신 영화들은 과거에서 신나게 놀다가 현재로 복귀해선 그간 지속되었던 삶을 그대로 살아가곤 했다. 그 판에 박은 공식을 바꾼 건, 적어도 내가 알기에는, 스티븐 스필버그다. 희대의 역작인 <백 투더 퓨쳐>에서 스필버그는 과거가 바뀌면 미래가 바뀐다는 평범한 진리를 웅장하게 재현했고, 그 이후에 나온 영화들은 그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타임머신>이란 영화에서 주인공은 강도에게 살해당하는 여자를 구하러 과거에 간다. 하지만 가까스로 구한 그녀가 마차에 치여 죽자 인간이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엄청난 미래로 가버린다. 그가 보여주는 미래 역시 음울하기 짝이 없는데, 나야 뭐 그때까지 살 게 아니니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2편까지 나온 <데스티네이션> 역시 정해진 죽음을 피한다 해도 죽음은 다른 방법으로 그에게 찾아간다고 역설한다. 반면 <삼국지>의 관노는 내일 모래 죽을 사람의 운명을 신통한 기지로 바꿔 백년을 더 살게 만드는데, 운명에 대해 이런저런 설들이 나도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아닐런지. 지금도 아르헨티나 어딘가에는 나비가 날고 있을거다. 내 운명을 결정지을 나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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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4-11-30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효과 곳곳에서 좋은 평들이 들리네요. 저도 꼭 봐야겠습니다..!!

마태님, 요즘 너무 행복해 보여요..!!^^

노부후사 2004-11-30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섹스토이 군 연기가 상당히 나아졌다고 하던데, 저도 안 볼려다가 귀가 설어지네요.

진/우맘 2004-11-30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마지막 문장 멋지네요.

지금도 아르헨티나 어딘가에는 나비가 날고 있을거다. 내 운명을 결정지을 나비가.

!

날개 2004-11-30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밌게 본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 해피엔딩은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갑자기 모든 사람이 다 잘되는 걸로 끝나니 웬지 허탈하더군요..ㅡ.ㅜ

sweetmagic 2004-11-30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싶어요 !!

비연 2004-11-30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봐야겠군요..진/우맘님도 추천하고 마태님도 추천하니...

sooninara 2004-11-30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줄거리를 너무 많이 알려준거 아닙니까? 전 일부러 허벅지 찔러가며 참았는데..^^

2004-11-30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4-12-01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이 영화 다들 재밌게 봤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오늘 볼까 말까 망설이고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망설임보다는 어제도 회사서 일하다 빠져나가 영화를 봤는데 이틀 연짱으로 그짓을 해도 되는건지에 관한 망설임입니다.^^)
 

  

어제 올시즌 159번째 술을 마셨다. 오늘 저녁에 또 커다란 술자리가 있으니, 11월까지 마신 횟수는 160번이 될 전망이다. 술일기를 쓴 이유는 올해 술을 180번 이하로 마시는 거였지만, 술자리가 많은 망년회 특수를 감안한다면 목표 달성이 빠듯할 것 같다. 내 휴대폰의 12월 스케줄을 보니 조금은 어지럽다. 이번주는 1일 하루만 술을 마시지만, 다음주에는 6, 7, 8, 9일 4연전이 있고, 10일을 건너뛴 뒤 11일에 마셔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31일 중 20일을 마실 것 같지는 않으니, 목표를 달성할 확률이 더 많기는 하다. 그렇다 해도, 목표를 달성했다고 환호하고 싶지는 않다. 목표가 너무 널럴했으니까. 세상에, 이틀에 한번씩 술을 마시는 게 목표가 될 수 있을까?




나에게는 두가지 모습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근무를 마칠 때까지의 나와 그 이후의 나. 전자의 나는 대충대충 사는 사람이다. 십중팔구 지각을 하고-물론 이건 머나먼 출근길 탓도 있다-근무 시간에는 딴짓을 더 많이 하며, 출근은 남보다 늦게 하지만 퇴근은 훨씬 빨리 한다. 내가 스스로 말하는 장점 중에는 “직장이 먼데도 남보다 더 빨리 집에 와있다”는 것도 있을 정도. 하지만 저녁 타임이 되면 난 180도 다른 모습이 된다. 술자리 약속에는 거의 늦지 않으며, 매우 진지한 자세로 술을 들이킨다. 술자리 분위기를 ‘업’시켜가면서. 근무를 이렇게 열심히 했다면 하는 생각이 안들 수가 없고, 뭐가 본업인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내가 술을 자주 마시는 건 순전히 방대한 조직 탓이다. 점조직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조직들을 관리하려면 이틀에 한번 정도는 술을 마셔야 하는 게 당연하다. 선을 볼 때마다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조직 관리를 하는 게 있거든요. 그래서 술을 좀 자주 마시는 편이어요”


난 매일같이 술을 마실테니 각오하라는 소리일 터, 그러니 여자들이 날 좋아할 리가 있겠는가. 난 왜 이렇게 방대한 조직을 만들었을까. 아마도 그건 어린 시절의 반작용 때문일 것이다. 친구도 없이 혼자 지내고, 학교에서 하루종일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내가 동경한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내가 10세 이전의 삶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다고 회상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다. 대부분의 의대생들이 본과에 올라온 이후 친구들을 정리했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시간과 돈을 대부분 조직을 관리하는 데 썼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외로움을 인정한다 해도, 난 너무 많이 온 것 같다. 어느 책에 의하면 독신의 조건 중 하나는 함께 있어줄 친구가 다섯명 이상이어야 한다는 거다. 바꾸어 말하면 술을 마셔줄 친구가 다섯명 이상 있다면 가정 생활을 할 수가 없다는 얘기, 내가 다른 누군가의 남자가 되려면 이 방대한 조직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난 26세 미녀에게 “조직을 정리하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건 쉽지 않다. 조직은 끊임없이 자기 증식을 해나간다는 파킨슨의 원칙은 내게도 적용되어, 어찌된 게 갈수록 조직이 커져만 간다. 규모 면으로 비교하자면 96년께 내가 관리하던 조직보다 지금의 그것이 족히 세배는 클 정도. 어떻게 해야 할까. 막상 정리를 하자니 슬픈 표정을 지으며 “우리 이제 못만나는 거야?”라고 내게 말을 할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싫은 소리를 못하고, 남과 대면하면 내가 미안해해 버리는 소심한 성격으로 어떻게 정리를 할까. 그래도 해야 한다. 26세 미녀를 얻기 위해 그정도도 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그래서 오늘 아침 기차에서 내 조직의 현황을 그려보다가, 엄청난 규모에 놀라 잠이 들고 말았다. 그래, 줄이자. 비단 26세 미녀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내 연구인생을 위해서도, 내 건강과 돈을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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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gool 2004-11-30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정리되는 거 아니죠? ^^;;;;

stella.K 2004-11-30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마 마태님을 사랑하는 우리 알라디너들을 조직정리하신다는 건 아니겠죠? 근데 그 조직 정리 잘 되시겠습니까?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사람은 정도 많아 그러기 쉽지 않다고 하던데요...흠.

작은위로 2004-11-30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라서 잠이 들었다는 말에, 한번 더 놀란...^^

정리하시는 건 좋지만요, 저흰 안하실거죠?

oldhand 2004-11-30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를 오래 하시다 보면 조직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지 않을까요?

파란여우 2004-11-30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직정리...잘 되실까요....^^

진/우맘 2004-11-30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그 조직현황도, 스캔 떠서 좀 뵈 주심 안 돼요? ^^;;

하이드 2004-11-30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다음 번개때는 꼭 나가야 한단 말이예요오오오~

sweetmagic 2004-11-30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조직 제 한테 헐 값에 인수하심이...어떠시온지...ㅎㅎ

니나 2004-11-30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조직에 들 수 있을까요 ? ^^;

비연 2004-11-30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직...정리...쉽지 않으실텐데...건투를..^^

니르바나 2004-11-30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방공간에 태어나지 않길 정말 잘 하셨어요.

만약 그랬다면 남로당에서 스카우트하러 당장 달려오지 않았을까요.


비로그인 2004-11-30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요! 조직을 정리하지 마시구 미녀님을 그 조직에

합류시키세요! ^0^ 넘 좋은 아이디어 아닌가요? 님도보고 뽕도따고~ 지화자~

마태우스 2004-12-01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고양이님/고양이님, 우리 조직 하나 만들어요^^ 님을 주축으로 해서^^

니르바나님/그러게요 킥킥

비연님/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불가능은 없다! 아자?

맥베스님/그, 그럼요!!

매직님/헐값이라...그간 투자한 게 얼만데요!!!

하이드님/그러게 저번에 오시지 그랬어요!!!!!!!!

진우맘님/제가 스캐너가 없구요, 있어도 스캔할 능력이 떨어져요....흑

여우님/하여간 전 여우님이 좋아요

올드핸드님/그, 그렇죠. 연애를 오래 하는 게 숙제죠^^

작은위로님/그럼요. 제가 어찌 알라딘을 정리하겠습니까.

스텔라님/제 말이 그말입니다. 알라딘은 제 영혼의 안식처지요

너굴님/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2004-12-01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 전에도 한번 쓴 적이 있는 소재예요. 맨날 재탕해서 죄송.




머리를 자르러 학생회관에 갔다가, 그안에 있는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2천원짜리 닭볶음밥인데, 매우 맛있게 먹었고, 본의 아니게 과식했다. 그걸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주로 이용하는 병원식당 생각을 했다.




병원식당은 의대 학생들과 직원들이 주로 이용한다. 값은 2천5백원으로 학생식당보다 더 비싸지만, 맛은 한참 떨어진다. 한식이 주를 이루는 A 코스와 양식이 주인 B 코스가 있지만, 어느 걸 선택해도 맛은 별로인지라 사람들은 그중 덜 나쁜 음식을 골라 줄을 서야한다. 지난주에 만둣국을 하기에 먹어봤더니 만두는 딱 한 개 떠있고, 당근만 잔뜩 들어있는 국물은 아무리 간장을 쳐도 싱겁다. 한번은 돈까스 코너에 줄을 섰더니 바짝 말라비틀어진, 휴대폰 배터리보다 크기가 작은 돈까스가 두 개 나온다. 다른 메뉴도 대충 이런 수준이라, 사람들은 그냥 한끼를 ‘떼우러’ 식당에 갈 뿐이다.




병원식당의 가격이 오른 것은 지난 10월부터다. 기존의 2천원으로는 도저히 수익을 낼 수 없다는 게 이유란다. “밖에 나가봐. 라면 하나를 먹어도 그보다 비싸”라는 논리에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밖과 비교한다면 솔직히 말해서 2천5백원도 싸디싸다. 게다가 간장 종지와 콩 서너개를 밥에다 쳐박아 놓고 ‘비빔밥’이라고 우겼던 기존 업체에 비하면, 지금 우리가 먹는 밥은 거의 진수성찬 수준이다. 업체가 바뀌기 직전, 남은 재고를 총동원하는 듯 기상천외한 음식들만 나왔던 그 악몽의 일주일을 견뎌낸 사람이라면 지금 밥도 감지덕지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60년대와 2004년을 비교하면서 지금 사람들이 편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그 무시무시한 밥이 지금 나오는 밥의 정당성을 담보해주지는 못한다. 점심을 부실하게 먹은 나머지 오후 다섯시만 되면 식당 앞을 기웃거리는-저녁식사 시작은 다섯시 반부터다-학생들을 생각한다면, 병원식당이 좀 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학생회관 식당의 돈까스 가격은 2천3백원, 하지만 거기서는 말라비틀어진 돈까스 대신 맛도 제법 있고 크기는 강호동 얼굴만한 돈까스가 제공된다. 우리보다 훨씬 실속있는 부대찌개는 단돈 1700원,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걸까. 답은 규모의 경제다. 최소한 5천명 이상이 이용하는 학생회관 식당과, 학생 160, 교수 100, 인턴.레지던트. 간호사를 다 합쳐봤자 200명이 채 안되는 규모로는 그 가격에 수지를 맞출 수가 없는거다. 대책은 없을까? 전혀 없진 않다. 한가지 방안으로, 외부 사람을 받으면 된다. 환자 보호자, 외래방문자, 문병객 등 외부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그들을 위한 식당은 ‘보호자 식당’이 있지만, 그 보호자식당이 정말이지 죽여준다. 거기서 먹은 설렁탕은 4천원이라는 멀쩡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맛없는 음식 베스트 3에 포함될 정도며, 2천원짜리 라면마저 맛없게 끓이는 걸 보면 이 식당이 왜 존재하는지 의문을 가질 만하다. 그러니 보호자 식당에 입주한 업체를 쫓아내고, 병원식당 업체가 두곳을 다 운영하면 규모의 경제가 조금이나마 실현되지 않을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직원식당은 수익을 내서는 안된다는 믿음일 것이다. 직원들이 밥을 잘먹어야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면, 직원들의 식사에 좀 더 신경을 써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반찬을 너무 잘해줘서 적자가 나고, 그걸 병원 수익으로 메꿔주는 시스템이 되면 어떨까. 그런다고 우리 병원이 타격을 입을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야 오늘 맛있는 점심을 먹었지만, 아무런 희망도 없이 병원식당에 갔을 학생들과 직원들이 참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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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1-29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랑은 아니지만 저희회사 구내식당은 얼마나 맛있는지

다이어트에 적이랍니다.

오늘도 반찬으로 연어무침이 나왔어요 >.<

sweetrain 2004-11-29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학년때..는 양식당이 좋았는데, 2학년때 식당이 개편되면서 그 양식당에서 한식만 하게 돼서...ㅠ.ㅠ 잘 안가게 됩니다만, 그래도 우리 학교는 아직 2200원이면 밥...아주 맛있지는 않아도 먹을만 하게는 나오더라구요..^^



남자밥과 여자밥이 따로 있습니다. 물론 관습적인 거구요...양의 차입니다.

저는 학교 다니는 내내...남자밥 먹었습니다. 맨날 밥 많이 달라고 하니까

나중에는 저만 가면 아주머니가 남자들만큼 밥 주시더군요...^^

깍두기 2004-11-29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호동 얼굴만한 돈까스 한번 보고 싶군요^^

작은위로 2004-11-29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학교 구내 식당도 맛 정말~ 없어요.

딱 한번 먹은 뒤론 절.대 안가죠. 차라리 몇천원 더내고 밖에서 분식 먹는게 훨 나아요.

더 심각한 건요. 저희학교는 학생식당과 교수 식당이 따로인데요, 물론 가격차이가 나긴 하지만, 예전에 들어가본 학생들의 증언으로 보면, 맛도, 질도 훨씬 낫다고 합니다.(지금은 학생들은 못들어 간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나이많은 학생들은 어떻게 구분하는건지... 궁금하답니다.^^)

왜, 차별하는지 궁금해 죽겠답니다.

kleinsusun 2004-11-29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원 식당....정말 맛없죠.

저희 회사 buyer 중 한국에 출장 오다가, 비행기에서 뇌졸증으로 쓰러진 분이 계셨어요. 인하대 부속병원에 입원을 했죠. 말도 안 통하고 얼마나 답답...힘들었을까....

병문안을 갔었는데 가족들이 음식 때문에 너무 고생을 하더라구요,

식당은 정말 제가 먹어도 최악이었고, 병원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는 아무것도 없더군요.

의사, 간호사, 직원들도 잘 먹어야 환자들에게 웃으면서 서비스를 할 수 있을텐데 병원 식당은 왜 그럴까....쩝

sooninara 2004-11-29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강호동 돈까스가 땡기네요^^

하이드 2004-11-29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즘 상주하는 곳은 대학로에 있는 병원입니다. 얼마전에 시간 맞춰서 가 본 구내식당의 밥은 세제냄새 나는 국, 짜서 뱉어버린 시금치무침, 곤약이랑 우엉 조림( 엄청 짬)

가자미찜 이었습니다.( 역시 짬.) 혹시 제가 거의 마지막에 아슬아슬하게 가서, 양념이 지대로 밴 액기스 반찬을 먹었는지. 참. 일주일쯤 굶어야 한다면 모를까 다시는 안 가야지 다짐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3층의 병원내 레스토랑이란 곳을 가 봤더니, 그나마 싼 비빔밥이 막 9,000원 이러는지라, 다시 지하의 구내 식당으로 갔지요. 첫번에 비해서 낫다고 위안했지만, 참, 어디 멀리 갈 수도 없는 환자 가족들에게 어찌나 위안이 되는지요. 가격은 3,500원 이더군요.

marine 2004-11-29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병원도 병원 나름인가 봐요 전 학생 때 독서실에서 공부하는데 밥값이 하도 많이 드니까 (제일 싼 게 5천원) 옆에 있던 산부인과 병원에서 밥을 사 먹었어요 좌석이 20여 석도 안 되는 작은 병원 식당이라 좀 창피하긴 했지만 3천원 치고는 진수성찬이더라구요 개인 병원과 대학 병원의 차이일까요?

oldhand 2004-11-29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원 식당도 병원 식당이지만 병원에서 입원 환자에게 주는 밥도 맛 없죠. 환자들이라 식욕도 별로 없을 텐데 밥도 맛이 없으니... 밥이 맛없어서 일찍 퇴원하는 환자들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러고 보니 닥터 스쿠르라는 만화에서 그런 대사가 나오기도 합니다.)

진/우맘 2004-11-29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 저희 학교 급식에서도 경미한 집단 식중독 사고가 있어....좀 뒤숭숭 합니다. 힝....

노부후사 2004-11-29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밥은 이상하게도 먹은지 1시간 후면 배가 고파와요. 힝...

2004-11-29 1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영엄마 2004-11-29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맛있는 돈까스가 먹고 싶어지는군요..^^;;(제가 만들면 툭하면 탄답니다..ㅜㅜ) 병원식당, 특히 보호자용 식당은 별로 인기가 없는 것 같아요. 차라리 집에서 밥을 사와서 먹기도 하는걸 보면...

하얀마녀 2004-11-29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대하기 전엔 학교 식당 밥이 너무 맛대가리 없어 점심은 거의 안 먹고 다녔었죠. 제대하고 다시 가봤는데 '짬밥도 이것보단 낫겠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군요. 학생식당 음식이 맛있다는 학교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마냐 2004-11-30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와....다들 '구내식당'에 대해 이렇게 할 말이 많은 걸 보면...우리나라 케이터링 사업에 심각한 문제가 있긴 합니다. 왜 이런건 감시도 않고, 감사도 않고, 그냥 먹는 사람만 참으라 하는거죠?

마태우스 2004-11-30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저도 댓글의 규모에 놀랐습니다. 그 사연에두요...근데 케이터링 사업이라는 게 구내식당 얘긴가봐요??

새벽별님/어떤 재료료 끓여도 모두 쇠고기 국을 낸다...이야, 대단한 기술입니다^^

마녀님/제대 후에도 맛이 없을 정도면 정말 심각하네요.

아영엄마님/글쎄 말이어요. 왜 보호자 식당은 다 맛이 없을까요. 언제 돈가스 번개나 할까요?^^

쥴님/대학가 앞은 다 싸고 맛있죠. 아, 돈가스 먹고시퍼요......이거 댓글만 달고 식당 갈건데요, 갑자기 돈까스 생각이 간절...

에피님/그러게 말이어요. 님은 한창 때니 더더욱 그럴 겁니다

진우맘님/저런...님이 잘되어야 할텐데요...

올드핸드님/맞습니다. 아버님이 병원서 드시던 밥이 한끼에 7천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기절할 뻔했습니다. 그 돈으로 어떻게 저런 밥을 만들까 혀를 찼지요.

나나님/그 병원, 경영마인드가 있네요. 밥은 싸고 맛있게 공급해야 한다구요.. 우리 병원도 배워야 할텐데...

미스 하이드님/하하, 저도 많이 가본 그곳이군요... 13층이 신라호텔서 하는 거라지요 아마. 맛은 있는데 겁나게 비싸지요...아무튼 고생 많으십니다...

수니나라님/학생들이 좋아할 스타일이지요. 일단 크기로 기를 죽이는... 전에 님과 둘이서 먹던 돈까스가 전 더 맛있었어요^^(마지막 말은 조크입니다. 님들, 오해 마세요^^)

클라인님/앗 반갑습니다. 누추한 곳을 찾아 주시고... 병원식당은 다 맛이 없는 이유는,경쟁이 없어서, 독점이라서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작은위로님/저희도 교직원 식당이 따로 있는데요, 학생이 더 맛있어요. 차별은 나쁘죠...하여간 학생회관이 너무 멀어서 의대 사람들은 아무도 안간다는...

깍두기님/하하, 저도 그거 보고 돈가스 먹을걸 하고 후회했어요. 맛은 없겠지, 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답니다.

단비님/단비님은 뭐든지 잘 드셔서 좋아요^^

고양이님/그러고보니까 우리 식당이 절더러 다이어트를 하라고 배려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

2000년의 어느 날, 내가 두꺼운 코트를 입고 있었으니 11월이나 12월이었을거다. 그래, 눈도 한차례 온 직후니 12월이 맞을거다. 그 당시 내 상황은 매우 절망적이었다. 2년째 병원에 입원 중인 아버님, 간병에 지쳐 허리가 아프시다는 어머님, 그리고 바닥을 향해 치달아가는 돈.






아버님은 당시 월, 수, 토마다 혈액투석을 받으셨다. 난 토요일마다 병원에 가서 어머님의 간병을 돕곤 했는데, 하는 일은 별로 없지만 토요일이 오는 게 참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12월의 그날도 난 투석을 하는 아버님을 간병하러 병원에 왔다. 하두 많이 찔러대 잘 나오지도 않는 혈관에 주사바늘이 들어가고, 기계의 모니터가 투석이 시작됨을 알리자마자 난 병원 2층으로 내려와 제과점에 들어갔다. 거기서 내가 좋아하던 삼각샌드위치를 사서 우유랑 먹었다. 거기서 우두커니 창밖을 내려다봤다. 끝을 모르는 고통은 견디기 어려운 법, 기나긴 투병에 우리는 모두 지쳐 있었다.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너무도 아름다운 선율이 들려왔다.



[이 세상 아니라도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텐데



눈물 한 방울도 보여선 안되겠죠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던



미소로 날 떠나요



그 미소 하나로 언제라도 그대를 찾아낼 수 있게]






제과점 안에 있는 씨디 플레이어에서 나오는 노래, 난 넋을 잃고 그 노래를 들었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노래가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다 듣고 난 뒤 종업원에게 물어 그게 포지션이 부른 라는 걸 알았는데, 종업원은 친절하게도 그 노래를 한번 더 들려 주었다. 절망에 빠져 있던 내 마음을 위로해준 그 노래, 난 그날 저녁 집 근처에서 포지션의 불법복제 테이프를 샀고, 틈이 날 때마다 열심히 들었다. 그 후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난 2000년 그 겨울날을 떠올리곤 한다. 지금의 하늘은 그때처럼 잿빛이 아니고, 내 마음도 그때처럼 절망적이지 않지만, 처음 들을 때의 느낌이 그래서 그런지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애잔하다.






내 은사님께서 의대 졸업생과 음대 졸업생간의 결혼식 주례사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의학과 음악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하나는 인간의 몸을, 하나는 정신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포지션의 는 후자의 좋은 예였다.







I love you



사랑한다는 이 말 밖에는



해줄 말이 없네요



I love you



의미없는 말이 되었지만 사랑해요



이제와서 무슨 소용 있겠어요



다신 볼 수 없는 이별인데..



돌이킬 수 없는걸 잘 알고 있지만



어떻게든 그댈 잡아 두고 싶은걸..



ho~ho~ho~






이 세상 아니라도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텐데



눈물 한 방울도 보여선 안되겠죠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던



미소로 날 떠나요



그 미소 하나로 언제라도 그대를 찾아낼 수 있게



love you 기억하나요



처음 그대에게 느낀 그 떨림



I love you 오랜 후에서야



내게 해준 그대 그 한마디



우리 사랑 안 될 거라 생각했죠



너무나도 아름다웠기에



돌아서려 했었던 내 앞에 그대는



꿈만 같은 사랑으로 다가왔었죠..



ho~ ho~ ho~



이 세상 아니라도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텐데



눈물 한 방울도 보여선 안되겠죠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던



미소로 날 떠나요



그 미소



하나로 언제라도 그대를 찾아낼 수 있게..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면



약속 하나만 해요



이렇게 아프게



너무 쉽게 헤어질 사랑하진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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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1-28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노래 참 좋아했었어요.



오늘따라 글이 울적해보이시네요... 괜시리 눈물날라 그러넹...

2004-11-28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4-11-28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평소 맨날 웃기시기만 하는 분인줄 알았는데 이런 감상적인 면면도 있으셨군요. 하긴. 웃는 사람이라고 해서 울쩍한 기억 한번 없겠어요. 어머님이 고생 많으셨겠어요. 당사자인 아버님은 말 할것도 없지만...어머님한테 잘 하세요^^

니나 2004-11-28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감각이란게 참 신기한 기능이 있지요. 어떤 냄새를 맡으면 그 때의 감정으로 돌아간다든지, 음악도 마찬가지죠. 전 강산에의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래를 노래방에서 멋들어지게 부르던 어떤 남자가 떠오른답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연어들 처럼인가?...뭐 그런 노래...

하이드 2004-11-28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노래에는 사연이. 뜨끔했습니다.

하이드 2004-11-28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2층의 그 제과점에서, 조각 케이크 사먹곤 한답니다. 맛 없어요.

부리 2004-11-29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울지 마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흑흑

플라시보님/네 잘하려고 합니다... 흑흑

레이디 멕베스님/앗 처음 뵙겠습니다. 냄새도 그렇구, 특정한 사물도 그렇구, 사람을 그걸 처음 겪었을 때로 돌아가게 만들지요.

하이드님/앗 님도 저와 비슷한 사연이... 2층을 가신다면 가족 중 병원에 계신 분이 있으신가요??

노부후사 2004-11-29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프네요. 그래도 "불법복제테이프" 부분에선 웃음이 피식. ;; 죄송...

니르바나 2004-11-30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제션의 노래좀 붙여주시면 좋을텐데.

듣고 싶어요.

마태우스 2004-12-01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저 컴맹이라 그런 거 못해요 흑흑

새벽별님/전혀 아니어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에피님/아네요 제가 부끄럽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