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지정당이 없다. 성향은 열린우리당에 가깝지만, 그들의 하는 짓거리가 나로 하여금 그 정당을 지지한다는 걸 부끄럽게 만든다. 그렇다고 민노당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가는 길이 옳다고 믿지만, 그간 받아온 세뇌교육 탓인지, 아니면 민노당을 지지하기에는 내가 너무 돈이 많은지 선뜻 ‘민노당을 지지한다’고 말하지 못한다.
P는 민노당원이다. 민노당은커녕 열린우리당 지지자도 극히 드문 내 주변 환경에서, P는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내 좋은 스승이다. 알라딘에 오기 전에도 난 그와 알고 지냈고, 지금도 전화 통화를 가끔 하면서 특정 이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곤 한다.
어제 P가 글을 하나 썼다. 공무원들의 노동 3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글을. 하지만 난 그 밑에 이렇게 답글을 달았다.
[개인적으로 삼권 대신 2권만 확보했으면 합니다. 열린우리당은 보수세력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는 한계가 있고, 대중들이 공무원의 단체행동권에 대해 갖는 감정은 불안감일 것입니다...(원문을 못구해 대충 적었어요)]
그러고 나서 난 은평구에 있는 낙지집에 가서 코가 비뚤어지게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는 와중에 P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마태우스님, 댓글이 좀 신경질적이었죠? 죄송하네요. ...좀 예민했어요...]
그러니까 P가 내 댓글에 대해 답을 했는데, 그게 좀 감정적인 글이었다는 거다. 오늘 아침, 알라딘에 접속을 해보니 그 글이 없다. 그 밑에 달린 댓글까지 통째로 없어져 버린 거다. P에게 전화를 했다. 도대체 뭐라고 썼었냐고. P가 말해준 댓글의 내용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까요. 수십년 전부터 요구해온 것들인데, 그들이 정년퇴직한 후에야 노동 3권을 보장받아야 할까요. 노무현도 대통령이 되기 전에 약속했던 사항입니다. 무엇이 진리이고 정의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데 다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했던 말에 대한 답변으로는 미흡하지만, 별로 문제가 될만한 댓글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심하기 짝이 없는 P로서는 이런 글을 쓰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했을 거다. P가 자신의 글을 숨긴 것은 그런 이유리라.
P는, 자신의 표현대로 한다면, 왜 내게 그렇게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댓글을 달았을까. P나 나나 공무원 노조의 노동 3권 요구가 지극히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이르는 방법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P와의 통화 도중에 난 그 정답을 알았다.
“마태우스님 노빠잖아. 마태우스님이랑 말할 때마다 노무현을 옹호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여서 반감이 들어요. 난 마태우스님이 노무현을 비판하는 걸 한번도 본 적이 없어”
틀렸다. 난 자신을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람으로 포장하기 위해, 노무현 욕을 바가지로 많이 했다. 그것보다 더 문제되는 건, 나를 노빠로 분류하고 내가 하는 말은 무조건 노무현을 편드는 것처럼 생각하는 P의 태도였다. 그러니까 내가 ‘현실’ 운운하면서 공무원의 2권만 보장하자고 말한 것도 P에게는 내가 노빠라서 노무현을 열렬히 옹호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나보다. 그러니 P로서는 그렇게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댓글을 달았던 거다.
난 노빠일까? 그렇다고 할 수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대선 때 노사모였고, 지금도 노무현이 잘되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노빠일 수 있지만, 노무현이 내딛는 모든 행보를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노빠라고 분류되는 것에 억울함이 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남들에게 난 노빠다. 대개가 극우인 내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가 “쟤 노무현 찍었대!”라고 ‘고자질’을 하는 걸 보면, 그리고 진보진영 사람들이 노무현을 욕할 때면, 노빠라는 게 크게 잘못된 선택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 해도 대선 때 노무현을 찍은 게 사실인만큼, 그가 집권한 5년 동안에는 비판도 하고 격려도 하면서 그를 올바른 방향으로 견인하는 것이 지지자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차이가 없다고 생각되는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이 우리에겐 커다란 차이로 다가오듯, 똑같은 보수라고 생각되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차이도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전교조가 합법화된 것이 97년의 정권교체가 아니었다면 가능했을까. 미적거리고 있긴 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가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도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차지한 지난 총선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거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개혁과 진보에 대한 열망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난 정치라는 건 우리편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민주노동당이 집권을 꿈꾸는 정당이라면, 극우적 사고에 물들어 있는 한나라당 지지자보다 열린우리당 지지자를 설득하는 게 훨씬 쉽고 빠를 것이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게 여간해서 변하지 않는다 해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인 설득작업과 인내가 필요한 게 아닐까. 민주노동당이 가는 길이 아무리 옳다해도 지금처럼 10석의 의석과 13%에 불과한 지지만으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으니까 말이다.
생색을 내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난 지난 총선에서 정당지지로 민노당을 찍었다. 민노당이 옳다는 걸 알고 있는 나마저 ‘노빠’로 분류하고 내가 하는 모든 말을 ‘노무현 옹호’ 쯤으로 생각한다면, 민노당이 꿈꾸는 2012년 집권의 꿈은 이루어지기 힘들지 않을까. 민주노동당 당원은 많이 잡아야 4만명, 전국민의 0.1%도 못된다. 그러니 몇 안되는 민노당원의 말과 행동은 민노당원을 접하기 힘든 어떤 사람에게는 민노당 전체의 말과 행동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어쩌란 거냐고 물을거다. 난 민노당원 하나하나가 대표선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하루 한명 이상씩 민노당을 지지하게 만들겠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진보의 가치를 역설하는 것, 이게 집권을 꿈꾸는 정당의 당원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하지만 나에게 ‘노빠’의 딱지를 붙인 P처럼, 민노당의 현재 모습에서 난 그 어떤 편협함의 이미지를 읽는다. NL과 PD간에 매일같이 논리 싸움이 벌어지고, 심지어 당이 쪼개질 위기라는 말도 들린다. 좌파에게 척박한 이 땅에서 그나마 비슷한 길을 걷던 사회당과도 통합하지 못했다. 진중권은 노무현에게 감동하는 노사모에게서 파시즘의 징후를 읽는다지만, 대중들에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치밀한 논리보단 감동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DJ가 ‘뉴 DJ 플랜’을 내세워 정권교체에 성공한 것처럼, 집권을 바라는 민노당에게 내가 바라는 것은 바로 ‘부드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