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 만난 친구 중 의령이 고향인 애가 있었다. ‘의령’이란 말을 듣자마자 난 “아, 그 우순경!”이란 말을 했는데, 그 친구는 그런 말을 하도 들어서 지겹다면서, 의령이 우순경 사건으로만 기억되는 게 속이 상한단다. 우순경 사건은 1982년, 술을 먹고 뭔가에 불만을 품은 우순경이 총을 들고 나와 보이는 족족 총으로 쏴죽인, 그래서 56명의 사망자를 낸 보기드문 사건이다. 당시 모든 일간지는 그 사건을 1면 톱으로 게재했고 뉴스에서도 오래도록 보도를 했었으니, 그때의 기억을 간직한 사람이라면 의령이란 지명에 반사적으로 우순경을 떠올릴거다.




그보다 훨씬 전에 일어난 여수.순천 반란사건, 일명 여순반란사건도 여수와 순천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우리 교실 조교 선생 하나가 고향이 여수여서, 그녀를 보자마자 내가 한 말이 “그럼 여순 반란사건이 일어났던 그곳이네요”였다. 움베르토 에꼬에 의하면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들으면 백이면 백 모두 “그럼 메아리세요?”라고 농담을 하고, 자신의 재치에 스스로 감탄하지만, 에꼬 자신은 그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워 죽겠단다. 우순경이 대표상품인 의령 사람들이나 여순사건으로 상징되는 여수.순천 사람들 모두 그런 지겨운 질문에 부닥쳤으리라.




최근 밀양에서 사건이 터졌다. 믿어지지 않는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남자가 친구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화가 잘못 걸려 여중생이 받았다.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한번 만나볼까”에 합의를 했는데, 여중생은 거기서 성폭행을 당한다. 소문을 내겠다는 남자의 말에 여중생은 할수없이 자기 언니를 데리고 나가고, 언니와 같이 성폭행을 당한다. 거기서 그친 게 아니라 자기 친구들까지 데리고 나가 단체로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는데, 그런 상습적인 성폭행에 밀양의 3개 고등학교 41명이 연루되었다고 하니 규모가 크기도 하다. 더 웃기는 건 밀양의 고등학교가 그 3개 뿐이라니, ‘밀양 애들이 원래 그래’라고 말한 어느 밀양 사람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생xx 실험실에 근무하는 조교 선생의 고향이 마침 밀양이라, 그녀는 이 사건이 앞으로 밀양을 대표할 상징물이 될까봐 걱정을 한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순경 사건은 단독범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사건이고, 여순사건은 분단의 상처를 상징하는 보기드문 사건이지만, 밀양 사건은 연루자가 많고 황당하긴 해도 그 두 사건에 필적하지 못하며, 신문 1면에 실리지도 못했으니까.




대도시에 살던 사람은 어떤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나도 그걸로 자기 고향이 상징되지 않지만, 조그만 도시의 사람은 그런 일들로 자기 고향이 상징된다. 거창 둔마리에 있는 벽화가 거창을 상징하고, 호두과자가 천안을 상징하는 것처럼, 이왕 기억되는 거니 좀 좋은 이미지로 각인되면 좋으련만, 그게 맘대로 되지 않으니 문제다. 그 조교 선생은 내년 1월 1일, 밀양에서 결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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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마녀 2004-12-08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꼬는 정말 그런 얘기 지겹겠군요. 아직도 사람들이 에꼬에게 그런 농담을 할 지 궁금해집니다. 제가 에꼬라면 한마디 해줄텐데요. 썰렁하다고...

미완성 2004-12-08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사람이라 그러면 꼭 다른 지방 사람들은 매끼마다 회를 챙겨먹는 줄 착각하기도 하더라고요;;;; 험험. 하지만 어떤 때는 그게 그래요. 처음 만난 사람과 너무너무 할 얘기가 없는데, 어디 사냐? 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그 지방, 혹은 그 '구', '동' 얘기로 시간을 때울 때가 있지요. 전 그런 시간이 너무 괴로워요. 묻는 입장에서나 답하는 입장에서나..ㅜ_ㅜ 그런 이유때문에 지역 이미지를 억지로 활용하는 경우도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로드무비 2004-12-08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 사건이 일어난 곳이 밀양인지 몰랐어요.

충격적이군요.

2004-12-08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리 2004-12-08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사건이 좀 깨죠??

사과님/저도 그런 시간이 괴롭습니다. 언제 우리 그런 얘기나 실컷 해보죠^^

마녀님/그러게요. 왜 성이 '에꼬'여서...제 이름도 좀 특이하다보니 '못사는 사람'이란 소리를 지겹게 들었답니다^^

호랑녀 2004-12-08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서슬퍼렇던 5공 시절, 서울로 대학을 왔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잘 지내던 동기가 저를 피합니다. 이유인즉슨, 광주 애들은 다 빨갱이라구... 그녀는 장군의 딸이었습니다.

2004-12-08 1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LAYLA 2004-12-08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제가 사는 곳은 불고기 불고기 ....-0-;; 지역 이미지가 불고기 입니다..흐흐 그래서 고기집이 줄지어 있구요 남학생들 알바로 '불맨'이 가장 많구요 여학생들 알바론 '식당도우미'가 가장 많습니다 . 밀양은 왠지....불량의 이미지가..^^; 똥개도 그랬구요 ㅎ

니르바나 2004-12-08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이런 걸 다 기억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강진 갈갈이사건'이란게 있었지요.

따져보면 의령이나 밀양이나 강진이나 산자수명하여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아름다운 고장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험한 사건을 그 지명과 연관하여 기억하게 하는 것은 그만큼 사람과 땅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앞으로는 단편소설'큰바위 얼굴'처럼 그 지역의 아름다운 풍속과 자연이 인간과 연결되는 풍토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니르바나의 이야기입니다.

하이드 2004-12-09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말 대한민국에서 유명세도 탄 흔한 이름에 흔한 성이라서 다들 누구야 사랑해 광고 봤다는 얘기를 몇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해요. 그 전에는 제 주변에도 있는데, 그런 소리 맨날 들었어요. ㅎㅎ

니르바나 2004-12-09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습니다. 새벽별님

지금이야 살인사건이 비일비재하지만 그 시절만해도 보도통제의 이유에선지

살인사건 자체가 드물었지요. 그래서 더 선정적으로 보도가 되었지요.

참고로 저는 강진을 남도 문화유산답사 일번지로 알고 있습니다.

LAYLA 2004-12-09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유명한 지명이 많지만 가장 무서운건 역시 화성,,,,-┏

sweetrain 2004-12-09 0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하이드님 이름이 선영이시군요`~~!

플라시보 2004-12-09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지하철 방화사건때문에 한참 그 얘기를 들었습니다.

하이드 2004-12-10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칫. 근데, 정말 그때가 언젠데, 아직도 사람들이 그 때 얘기해서 참 깝깝하지요.
 
최후의 배심원
존 그리샴 지음, 최필원 옮김 / 북앳북스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대충 헤아려보니 이번 책이 내가 읽은 존 그리샴의 열두번째 소설이다. 이쯤되면 그리샴 전문가라고 자위해도 될 것 같은데, 그런 내가 보기에 그리샴의 소설은 계속 진화해 나가고 있는 듯하다. 내가 그리샴을 처음 만난 건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The firm>였다. 나름의 재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책은 결말이 너무 시시했고, 구성의 짜임새 같은 것도 부족했다. ‘대통령’ 어쩌고 하는 책을 쓴 내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의 소설은 점점 완성도가 높아져, <레인 메이커> 이후의 작품들은 뭐라고 흠잡을 데가 없다. 참고로 내가 그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시선이 언제나 소외된 사람들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후의 배심원> 역시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그리샴의 따뜻한 시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적어도 내게는, 그리샴의 이전 작품들보다 재미가 덜했다. 하나의 큰 사건을 그리는 게 아니라 23세의 젊은이가 지역 언론사를 인수해서 겪게 되는 일들-살인 사건이 하나 등장하긴 하지만-을 묘사한 것이라서 다소 지루한 감을 줬다. 이 책을 통해 그리샴은 미국의 잘못된 법 체계를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 증인도 있는 명백한 살인사건의 가해자가 돈이 많다는 이유로 그를 비호하고, 호텔같은 감옥에 보내주며, 보석을 시켜주려고 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가석방을 시키려 드는 그런 행태를. 살인까지는 저지르지 않았지만 힘있는 사람들이 보석이나 형집행정지, 또는 사면을 통해 세상으로 나오는 일들은 우리도 숱하게 봐오던 터인지라, 이 책을 읽으면서 깊은 공감을 느끼게 한다. 자신의 의뢰인이 살인자임을 알면서도 무죄를 주장하는 변호사를 보면서, 법이라는 게 뭔지 한번쯤 회의를 느낄 만하다. 부자들만을 위한 법이 부당하다고 말하는 그리샴은 이 책의 제목에서 보듯 언론이 ‘최후의 배심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듯한데, 언론이 정당보다 더 정치적인 우리 언론의 현실을 생각하면 갑자기 우울해진다. 우리 언론은 과연 소외된 자들에게 얼마나 눈길을 주고 있을까.




이 책은 또한 지역 언론사가 생존하는 법을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 포드 카운티의 유일한 주간지인 타임스 지는 그 지역 사람들의 사망기사를 비롯해 자녀 일곱명을 교수로 키운 흑인 여성을 1면에 소개하는 등 지역 사람이면 누구나 보고 싶게끔 신문을 만든다. 우리나라의 지역신문들은 남해신문과 옥천신문 등 몇 개를 제외하면 대부분 어렵다. 신문을 독자에게 읽히려고 만드는 게 아니라 그걸 이용해 자기의 정치적 발판으로 삼으려는 사람이 신문을 만들어서 그런 것도 이유가 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들의 눈이 서울로만 향해 있다는 거다. 자기 지역에서 난 교통사고보다 서울에서 벌어진 4중추돌을 더 크게 보도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지 않을까? 물론 서울로만 모든 게 집중된 기형적인 구조와, 서울서 일어난 일들을 더 알고 싶어하는 주민들도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구조 탓만 할 수는 없는 일,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정확히 짚어 냄으로써 주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신문을 만드는 것은 지역 신문사의 몫이다. “작은 언론이 희망이다” 한번쯤 새겨들어야 할 장호순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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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4-12-08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야, 니 리뷰에 댓글이 하나도 없구나. 그래서 내가 단다. 나밖에 없지?

마태우스 2004-12-08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다, 부리야. 추천도 혹시 니가 했니?

니르바나 2004-12-08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에서 말하는 것은 모두 진실이라고 생각하던 순진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신문에서 말하는 것은 모두 거짓이라고 생각하며 반면교사로 삼아 읽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구독을 끊지 못하는 것은 새벽 매서운 겨울바람도, 태풍속 빗길도 마다않고 빠짐없이 배달해주는 고마운 사람에 대한 예의 때문입니다. 가끔 잊고서 빠진 신문을 재촉하는 전화를 지국에 넣을 때마다 돈 12000원 내면서 너무 심하게 군 것은 아닌가 자문하며 반성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가지 신문을 16년 동안 보면서도 사은품의 사자도 꺼내지 않고 삽니다. 작은 언론도 사랑과 관심을 가지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겠지요. 댓글이 너무 길어졌구만요. 추천 한 방은 부리가 애처로워서요.

카산드라 2004-12-08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추천 한방 합니다. 존 그리샴의 팬이기도, 마태님의 팬이기도 하니까요 ^^


파란여우 2004-12-08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만하고 오종종 갑니다....

2004-12-08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bono 2005-01-06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제 카페에 퍼갈게요. 그래도 괜찮을지...

kcusi 2006-05-03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저도 잘 읽었어요! 저도 퍼가도 될런지 ^^;
 

   

일시: 12월 8일(화)


누구와: 옛 친구들과


마신 양: 고량주--> 양주




중2 때인 1980년 전두환 장군이 과외를 전면 금지시킬 때까지, 난 1년 반동안 한 과외팀에 몸담았었다. 과외가 없어진 후에도 우린 정기적으로 만났었는데, 대학에 간 뒤 뿔뿔이 흩어졌던 그 모임은 최근 들어 극적으로 부활했다. 어느 모임이든 한 사람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어야 유지되는 법, 옛날부터 리더 역할을 하던 친구가 총대를 맸다. 술자리를 좋아하는 편인 나지만, 난 언제나 끌려가듯 그 모임에 나가고, 가끔씩 빠진다. 내가 그 모임을 내켜하지 않는 이유는 목소리가 큰 한 친구 때문이다.




어제의 예를 들어보자. 연락 날짜는 리더가 정했지만 모임 장소를 정하는 건 언제나 그 목소리 큰 친구. 사업이 잘되는 것도 아니면서 럭서리한 곳만 좋아하는 그 친구는 강남의 모 중국집에 예약을 했다.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그 집은 가격 대비 성능이 너무 떨어졌다. 단무지를 달라고 세 번쯤 말해야 갖다주는 어리버리함이나, 내 입에 전혀 맞지 않는 음식맛은 그렇다 쳐도, 양이 너무 적었다. 새우 여섯 마리가 담긴 접시가 5만원인가 했고, 닭볶음이 조금 있는 게 4만원, 양배추 몇 개가 또 몇만원. 다른 일로 점심을 굶었던 난 결국 공기밥을 두공기 추가해 먹었는데, 중국집에서 공기밥을 추가해 먹은 건 먹다 남은 짜장에 밥을 비벼먹던 어린 시절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 짜장은 싸기라도 했지만 어젠 여섯명이 24만원이 넘는 음식값을 내고서 그랬으니 속이 상할 수밖에.




거기까지도 넘어갈 수 있다. 두명이 일이 있어 자리에서 일어나자 목소리가 큰 친구는 자기 단골로 2차를 가자고 했다. 술값이 더럽게 비싼 그 집으로. 난 반대했지만, 다른 친구들은 그냥 거기 가자고 했다. 그중 하나의 말이다. “너만 빼고 다 찬성하면 니가 희생해야지 않겠니?”


문제는 그게 매번 일어나는 일이란 거지만, 할수없이 난 그 bar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거기 술값은 얼마일까? 12년은 아예 없고 17년밖에 없다는 임페리얼 한병값은 놀랍게도 30만원. 김과 과일 몇쪽을 무료로 제공한다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값이다. 언젠가 목소리 큰 친구의 닦달에 내가 계산을 했다가 놀라 자빠질 뻔했던 그런 가격. 그럼에도 목소리 큰 친구가 그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그곳은 아가씨가 서빙을 하는 곳이고, 자기가 가면 단골 대접을 해주니까. 어제 역시 결코 이쁘지 않은 아가씨 두명이 테이블에 앉아 술을 따라줬다. 술을 따르고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는 것만으로 우리가 계산해야 할 술값은 10만원이 더 늘어나니, 참 돈벌기 쉽다. 한병에 만원씩 하는 맥주에 폭탄주를 만들어서 먹으면서, 우린 시덥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목소리 큰 친구는 레이싱 걸들이 서빙을 하는 다른 카페를 안다면서, 비싸긴 하지만 애들이 이쁘다고, 다음번엔 거기 가자고 안그래도 큰 목소리를 높였다.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다. 일인분에 몇천원짜리 삼겹살을 너무도 맛있게 먹었고, 한잔에 천원짜리 생맥주로 2차를 하면서도 충분히 즐거웠다. 그랬던 우리가 언제부터 여자가 없으면 술도 마시지 못하게 되었을까. 아무리 내가 반대를 하고, 빠에 와서는 말없이 술잔만 들이켰어도, 친구로부터 메일이 날라올 것이다.


[지난번 모임 때 얼마를 카드로 그었는데, 그걸 4로 나누면 얼마니까....내 계좌로 보내라]


내가 아무리 재벌 2세라 해도, 이런 돈은 정말이지 아까워 죽겠다. 오늘은 또 다른 모임에서 송년회가 있는데, 불행하게도 목소리 큰 친구는 그 모임의 멤버이며, 거기서도 가장 목소리가 크다. 보나마나 단란주점에 가자고 할 게 뻔해서 어제보다 더 나가기가 싫어지는데, 어떻게 그 모임에 안가는 방법은 없는 걸까. 도대체 난 그와 언제까지 친구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걸까.




* 그 카페는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12년은 없고 17년만 있다고 잘난체하더니, 지난번에 12년산을 17년으로 속여 팔다가 우리에게 걸렸다. 한 친구가 병 뚜껑에 써있는 ‘12’라는 숫자를 보고 이의를 제기한 것. 재고 한병이 딱 있었는데 내놨다고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한병을 자기들끼리 열나게 먹고 냉큼 치워버린 걸 보면 아무래도 속이려고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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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2-08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목소리 큰 그 친구 안 만났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님이 목소리를 더 키우시든지......^^

하이드 2004-12-08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남자들 술집가서 그러고 돈 쓰는거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기분 나빠요. 저도 회사에서 억대연봉자로 불리지만( 별명입니다!) 두명 넘어가면 술 안사고 ( 생색 안나잖아요 ) 비싼 곳은 절대 안 가요. 뻔히 얼마인지 아는데, 왜? 왜? 그 가격을 주고 술을 마셔야 한다는겁니까? 게다가 난 오빠들 나와도 돈 받는 오빠들 나오는데는 안 갈꺼에요. ( 적어도 내 돈 주고는-_-a)

깍두기 2004-12-08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리하시지요. 우리의 마태우스님을 그런 타락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친구들을.....

80년대 전두환 장군의 과외금지....덕분에 딱 한달 과외받고 그만둔 추억이 생각나네요^^

하얀마녀 2004-12-08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나가는 돈 너무 아깝죠. 내가 원해서 간 것도 아닌데. 정말 모임 나가기 싫겠어요.

marine 2004-12-08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골 대우 받기 때문에 간다는 말에 동의!! 저도 모임 나가면 꼭 그런 사람 있어요 공돈이라고 생각하는지 무지하게 비싼 술집 가서 술에 떡이 되는 사람

부리 2004-12-08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 좀 작작 마셔라. 너도 이제 낼모레 마흔이다, 마흔! 공자가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그 마흔!

플라시보 2004-12-08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돈 아까운 모임이었겠네요. 맛난걸 실컷 먹은것도 아니고 즐거운것도 아닌데 돈만 왕창 깨지다니. 심심한 위로의 뜻을 표합니다.

카산드라 2004-12-08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자, 너무 좋아하시는거 아녜요? ^^

그리고 마흔이라는 말에는 제가 좀 흔들리네요 ^^;

니르바나 2004-12-08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누군가 마태우스님의 페이퍼를 보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sweetrain 2004-12-09 0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그녀들이 돈 벌기 쉬울까요...정말 쉬울까요. 정말 쉬울까요..아마 그녀들에게도 남자에게 술을 따르고 이야기 상대가 되는 게 아닌 다른 삶과 다른 꿈이 있을 것이고 어떤 아버지의 고운 딸이고 어떤 오라버니의 고운 누이일 겁니다. ..어쩌면 그녀들도 남자가 따라주는 술을 마시고 싶을지도 모르겠네요.^^

조선인 2004-12-09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마태님이 그런 술집에 간 걸 26살 초절정미녀가 알까요? 그녀 때문에 얼굴에 오선지가 그어졌다면, 오늘 모임 안 가도 될 듯 ㅎㅎㅎ
 

     

일시: 12월 6일(월)



마신 양: 소주 한병에 조금 못미치고, 맥주는 세잔쯤? 기본은 했다.



안주: 매우 훌륭한 감자탕.






애 엄마인 여인들 3명과 자리를 함께 했다. 애엄마라고 하지만 다들 나보다 젊고, 심지어 20대도 있었지만, 애 엄마라는 이유 때문에 이상하게도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것처럼 여겨지곤 했다. 그날 난 요즘 내가 사귀는 26세 미녀와 함께 갔는데, 그네들은 시종일관 26세 미녀의 미모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모임이 끝나고 난 뒤 어떤 분은 내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 주셨다.



“그 미녀분, 꼭 잡으세요!”






그로부터 십여일이 흐른 어제, 다시금 그 여인들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26세 미녀가 사정이 생겨 나 혼자 갔는데, 여인들은 내 여친이 오지 않은 걸 아쉬워했다. 술이 좀 들어가서 그랬는지 난 좀 거만해져 버렸고, 이렇게 떠벌였다.



“사실 제가 여친을 왜 못오게 했냐면요, 여러분들이 미모 때문에 기죽을까봐 그랬어요. 지난번에도 그럴까봐 이쁘게 하고 오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도 안되겠더라구요”



말을 해놓고 난 내 잘못을 깨달았다. 사람들의 눈빛이 험악해져 있었던 것. 반격은 이내 시작되었다.



여인 1: 아니 26세에 그정도 안이쁜 사람이 어딨어? 나도 그 나이땐 대단했어!



여인 2: 정말이야. 난 20대 때 날라다녔다고!



여인 3: 20대는 어떻게 해도 다 이쁜 나이 아니야?






사람의 심리란 이런 것이다. 겸손한 사람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지만, 건방을 떨면 가차없이 응징을 한다. 옛날에 난 겸손한 아이였다. 밥을 세그릇 먹고도 두그릇을 먹었다고 하고, 술이 취하고도 안취했다고 우겼다. 미모의 여자친구를 사귀던 시절, 남들의 칭찬이 쏟아질 때면 난 수줍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다 화장빨이어요”



내가 그러니까 남들은 더더욱 감탄을 했고, 내 여친의 미모를 칭송했다. 그러던 내가 절세의 미녀를 만나면서 맛이 좀 갔나보다. 미모로 위화감을 조성한 점에 대해 늦게나마 사과드린다.






억지로 변명을 해보자. 아니, 그 정도 미녀를 사귀는데 거만해지지 않을 사람이 도대체 누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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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4-12-07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숨은 단수다' 라고 일찍이 저의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우스님

마태우스 2004-12-07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헉!! 제 글이 맞아죽을 정도의 글이었네요.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stella.K 2004-12-07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는데, 사람들 앞에서 내 사람을 어떻게 말하느냐는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근데 마태님, 그 26세의 미모의 여인은 우리 알라디너에게 언제 소개시켜 주실 건가요?^^

마태우스 2004-12-07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음...좀 생각해 볼께요. 미녀를 숨겨두고 저만 본다면 제가 나쁜 거겠지요??

로드무비 2004-12-07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연남동 기사골목 송가네 감자탕 무지 맛있어요.

미녀 애인이랑 꼭 가서 드세요.^^

하얀마녀 2004-12-07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식으로 또 자랑하시다니. ^^

날개 2004-12-07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속 말만 들어왔더니.. 어떤 분일지 궁금해 죽겠습니다..^^*

마태우스 2004-12-07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이럴수가. 어제 먹은 감자탕집도 송가네였는데!!!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녀님/앗 들켰다. 심리를 빙자한 자랑이었는데...^^

니르바나 2004-12-07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 한명이 한을 품어도 천기를 움직인다는데, 세 분의 여인들 노기를 어쩌자고 그러셨나요. 옛말에 귀한 자식을 얻으면 아명으로 개똥이, 돌쇠 같은 천한 이름을 지은 이유를 아시나요? 마태우스님

마태우스 2004-12-07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그러게요. 제가 술이 과했었나봐요. 흑흑. 이젠 어떡하죠??

조선인 2004-12-07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웅... 어제의 회동이 심지어 2번째라는 거죠? 너무해 ㅠ.ㅠ

책읽는나무 2004-12-07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26세 미모의 여인은 누구시옵니까?

그러니까 마태님은 이제 슬슬 결혼하실 준비를 하시는것이옵니까?

그런것이었습니까?..

축하드리옵니다..^^



하지만...아줌마들을 잘못건드리신것 같사옵니다..ㅡ.ㅡ;;

안그래도 집에서 애보면서 자신이 늙어가는것같아 심기가 불편했을터인데..그런 위험한 발언을...ㅋㅋㅋ

하지만...정말 무지 보고싶어요...얼마나 이쁜지!...^^

보여주세요~~~ 보여주세요~~~ 보여주세요~~~

깍두기 2004-12-07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이 3명의 아줌마를 건드린 그 발언은 평소의 마태님 답지 않군요.(26세 미녀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듯 보이니 용서해 드릴까?^^)

저는 그보다도 네분이 다른 알라디너 모르게 두번씩이나 모임을 가졌다는 것이.....조선인님과 같은 심정이어요, 흑.

연우주 2004-12-07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마태우스님. 너무 자랑하시는 거 아니예요? ^^; 나이 생각도 하셔야죠. ^^ -> 저는 질투중.^^

미완성 2004-12-07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해요. 흥흥

두 번씩이나 모임을 가지신 게 질투나구, 26세 미녀의 미모도 질투나구~~~

비연 2004-12-07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싶슴다..마태우스님의 그녀...

sweetmagic 2004-12-07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이런식으로 들이대시면 기대빈도를 화악 ~~하늘 높이 끌어 올려서는 그 미녀 생각보다 별로네 ~~로 갚아 드리겠습니다. !! 콩깍지 안경 쓴 마태님 !! 으루요 흐흐흐 !! 자자 알라디너님들 !! 이 글에 26세 미녀에 대한 기대치를 드 높혀 보자구요 ~!

瑚璉 2004-12-07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없으니 무효! (사진을 첨부하시면 용서해 드리겠습니다)

파란여우 2004-12-07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다보면 별일도 다 있지요. 그렇다고 마태님이 뭐 팔불출이라는 얘기는 아니고요. 그렇게 미녀라면 나와 견줄만한 정도인지 위의 호련님 말씀마따나 얼굴을 공개해 보세요. 알라디너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진짜 미녀입니다. 왜? 마태님은 알라디너이니까요^^이 기회에 그녀를 완전한 미녀로 등극시키심이 어떠신지요?어때요? 좋은 생각 아닌가요? 얼굴 공개를 하지 않으면서 미녀라고 우기는 일은 마태님답지 않은 행동이십니다. 안그래요? 알라디너 여러분들~~~(음, 아마 마태님과 그녀는 날 미워하게 될까?)

마냐 2004-12-08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제목에 힌트가 있는걸 모르구...쬐금 흥분할뻔 했군요. 암튼...쩝. 이래저래 쩝...^^

sweetrain 2004-12-08 0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목숨은 하나뿐입니다--+

마태우스 2004-12-08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비님/그, 그럼요. 앞으로 조심할께요^^

마냐님/아이 아무리 그래도 마냐님보단 안이뻐요^^

새벽별님/점점 왕따 당하는 분위기....

여우님/얼굴 공개에 대한 압력이 점점 심해지는 느낌... 사실 여우님보다 안이뻐서 이러고 있는 거랍니다. 널리 양해를...

호련님/아니 그러는 호련님은 왜 이미지가 없으십니까? 호련님 무효!

매직님/ 매직님보다 이쁘기야 하겠습니까. 제가 너무 기대치를 높였군요. 이런이런. 점점 사진 공개가 어려워지는걸요?

비연님/저두요! 벌써 못본지 사흘째랍니다.

사과님/왜이러세요. 님은 아무도 못따를 미모와 유머가 있잖아요^^

우주님/어머 질투를 그리 티나게 하심 안되죠^^ 글구 우주님보다 못하니 맘 놓으세요

깍두기님/그러게요. 그건 제 말투가 아닌데, 그땐 왜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글구...용서해 주세요. 흑.

책나무님/아이 책나무님은 한창 때 더 이쁘셨을텐데 뭘 긴장하고 그러십니까.^^

조선인님/어머..그, 그게요, 그런 게 아니라... 사, 사실은.... 제가 조선인님 좋아하는 거 아시죠????

2004-12-10 0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 여자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몸에서 구더기가 나오는데, 아무리 목욕을 자주 하고 약을 써도 구더기가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구더기는 피부 깊숙이 박혀 있는데, 몇 번이나 그놈들을 붙잡아 병원 피부과에 보내 봤지만, 잘 모르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국립보건원 곤충과에 보내시지 그랬어요?”라는 내 말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보내 봤는데요, 구더기가 아니라고 하네요. 하지만 이건 틀림없이 구더기예요”






사람에게 병을 일으키는 곤충들, 예컨대 모기나 벼룩, 빈대, 바퀴 등을 기생충학에서 다루는 건 맞다. 하지만 곤충을 다루는 일이라는 게 워낙 발품을 많이 파는 일이고, 요즘 추세가 실험실에 우아하게 앉아 기계를 돌리는 걸 선호하는 추세인지라 전공자가 그다지 많지 않다. 난 곤충에 대해 별반 아는 게 없으며, 더구나 보건원 곤충과에서 구더기가 아니라고 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여자에게 샘플을 가지고 오라고 한 뒤, 보건원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그 여인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 그 사람. 기억 나. 그 여자가 가져온 거 현미경으로 보니까 별다른 형체가 없더라고.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구더기는 절대 아니야”






구더기가 아니면 도대체 뭘까. 난 최후의 수단으로 연세대에 계시는 이한일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분이 모른다면 우리나라에 더 이상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평생 곤충을 연구하는 데 인생을 바치신 분이다. 대략적인 설명을 드리자 선생님께서 이러셨다.



“혹시, 그사람 젊고 전문직에 종사하지 않아?”



난 매우 놀라면서, 어떻게 알았냐고 했다. 그 여자는 가정의학과 개업의였고, 현재는 구더기 때문에 몇 달째 병원을 쉬고 있는 상태였다.



“그게 말야, 고치기가 어려워. 그게 구더기가 아니라 구더기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건데, 일종의 건강염려증이지”






건강염려증은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자신이 중병을 가지고 있다는 비현실적인 공포나 믿음에 사로잡혀 있고, 비정상적인 신체증상을 호소하는 게 주증상이다. 20-30대에 흔하며, 당연한 일이지만 정신과에 가자고 해도 거부하는 일이 많다. 이 환자의 경우에도 내가 진단 결과를 알려주자 그럴 리가 없다면서 전화를 끊었었다. 교과서에 의하면 “환자는 여러 의사를 찾아다니지만, 의사-환자 관계는 좋지 못한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자신이 제대로 된 진단을 받지 못했고, 합당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믿으니, 의사와의 관계가 안좋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늘 질병에 사로잡혀 있으니 사회생활이나 직업기능에도 지장이 있을 수 있다. 결국 병원 문을 닫아버린 이 환자처럼.






그렇다면 이 환자가 구더기라고 우긴 하얀 물체는 무엇일까? 보지 않았으니 모르겠지만, 대충 생각해 보면 피부 조직을 떼어낸 게 아닌가 싶다. 피부를 자세히 보다보면 왠지 이질적으로 보이는 조직이 있을 수 있으며, 그녀가 구더기라고 생각한 것도 바로 그런 것이리라. 건강염려증이 꼭 전문직에서만 있는 건 아니다. 또다른 사례를 소개해 본다.






한 남자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내가 쓴 책을 보고 전화할 생각을 했단다. 자신은 지금 몇 년째 기침을 할 때마다 하얀 기생충이 나와 고통을 받고 있는데, 다른 병원에 가도 별 소용이 없어서 날 찾게 되었단다. 환자는 자신의 목에서 나온 흰 물체를 보관 중이라며, 그걸 내게 전해 주겠다고 했다. 그와 신도림역에서 만나 샘플을 받았는데, 그는 30대 중반으로 보였고, 부평에 있는 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난 받은 샘플을 뚫어지게 봤지만, 아무리 봐도 뭔지 모르겠다. 색깔이나 크기를 봐서는 유구낭미충이라는, 유구조충의 유충이 의심되었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너무 모양이 무질서했다. 도무지 생명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대개는 기생충이 아니다. 혹시 내가 모르는 기생충일 수도 있으니 환자의 피를 뽑아 서울대병원에 맡기고 혈청 검사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혈청검사 결과는 물론 별다른 게 나온 게 없었고, 난 그에게 기생충이 아닌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는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리입니까. 이건 기생충이 확실합니다”



기생충학자가 아니라는데 기생충이 맞다고 우길 수 있는 비결이란!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전에 다리까지 몇 개 붙어있던 것도 있었는데, 버렸어요”



난 그런 게 나오면 그때 연락하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물론 그 뒤에도 그는 여러 차례 연락을 해왔지만, 다리가 달린 샘플은 아직까지 구하지 못한 것 같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는 서울의대 기생충학교실에도 여러번 충체란 걸 들고갔었고, 나중에 거기 분들과 싸우기도 했단다. 자신의 의견을 묵살하는 선생님들한테 화가 나서 그런 것이리라. 앞의 사례가 그런 것처럼, 이 분 역시 그다지 고치기가 쉽지 않았다. 앞 환자에서처럼 그는 이따금씩 기생충과 비슷한 무언가를 내뱉는데, 현미경으로 보았을 때 별다른 구조물이 없으니 기생충은 아니다. 그럼 뭘까. 그걸 알기 위해 호흡기학 선생님께 물어 봤지만, 자신도 뭔지 모르겠단다. 알레르기 환자에서 많은 ‘챠콧-레이든 크리스탈’이 아니냐고 했더니 그건 아니란다. 그럼 도대체 뭘까? 스님이 죽을 때 나온다는 사리? 그게 무엇이든간에 그 물체는 부단히도 그를 괴롭힐 것같다.






이 두 환자 말고도 건강염려증의 유형은 한둘이 아니다. 유병률이 전체의 4-6%라고 하니 대단히 많은 숫자다. 심장이 약간 빨리 뛴다거나 땀이 많이 난다고 자신을 큰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걱정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건강에 신경을 쓰는 건 좋은 일이지만, 뭐든지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 쓸데없는 걱정은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 될 수 있다. 인터넷과 잡지를 통해 잘못된 건강지식이 무수히 퍼져나가는 요즘 시대에는 건강염려증을 염려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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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2-06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염려증을 염려해야한다는 말씀에 동감입니다. :)

marine 2004-12-06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병원에서 별 거 아니라고 진단이 되면 그 다음 코스는 한의원이나 대체 의학 하는데로 빠지더라구요 이쪽 분야의 특징은 환자가 일단 증상을 호소하면 뭐가 됐든 병명을 붙여 치료를 한다는 거지요 심리 치료 수준만 되도 좋으련만, 꼭 비싼 약을 한 보따리 안기는 부작용이 따르기 쉽상입니다

2004-12-06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4-12-06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구XX . 소름이 돋아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구더기 공포증인것 같아요. 처방해주세요. -_-;;;;;;;;

파란여우 2004-12-06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가 더 글을 잘 쓰면 어떡하나 하는 염려를 하고 산답니다...크하하~~^^

하얀마녀 2004-12-06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너무 무신경해서 탈인데... 어쩌면 너무 무신경하다고 염려를 하고 있는 걸지도...

아영엄마 2004-12-06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상의 산물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자기 몸에서 구더기가 나온다는 생각을 안고 산다니.. 윽! 너무 끔찍해요! 부르르~

드팀전 2004-12-07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영화에선간 몸에서 구더기가 마구 마구...쏟아져 나오는 씬이 있었는데..아주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그 영화가 제목이 뭐더라...아...머리 속 벌레가 기억을 잡아먹어서 기억이 안납니다.아..미치겠네.그 영화뭐더라...
에잇...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그랴.... (이건 또 뭔 말이람?)

마태우스 2004-12-07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그런 영화가 있었나요? 제가 알아보고 가르쳐 드릴께요.

아영엄마님/그죠 너무 인생이 피곤할 거 같아요...

마녀님/마녀님도 그러세요? 저같은 사람은 좀 건강염려증에 걸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새벽별님/무서워하지 마세요. 제가 그런 게 아니라니깐요...

여우님/캬! 이주의 댓글에 선정될만한 멋진 댓글입니다. 여우님을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거 아닙니까.

미스 하이드님/너무 깨끗하게 사시는 게 문제인 듯 싶습니다. 사흘 정도 샤워를 안해 보시고, 그 기간을 점차 늘려 나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속삭이신 분/감사합니다. 읽어 볼께요

나나님/우와, 아주 잘 알고 계시네요?? 주위에서 보신 적이 있거나 아니면 그쪽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

고양이님/음, 늘 느끼는 건데요, 고양이님의 이미지는 왠지 원숭이 같아요. 님의 미모에 걸맞는 이쁜 고양이로 바꾸시면 안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