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토이스토리2>를 비디오로 봤다. 극장에서 안본 건 같이 볼 여자가 없었던 탓이지만, 1편마저 안본 걸로 보아 그 당시엔 내가 애니메이션을 돈내고 본다는 걸 아까워했던 게 아닌가 싶다. 비디오를 보면서 <토이스토리2>에 무지무지 감탄했고, 그렇게 대단한 영화를 만든 픽사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느꼈지만, <인크레더블>을 보고픈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그런 걸 보면 애니메이션 류에 대한 나의 편견은 토이스토리로도 깨지지 않았던 것 같은데, 다행히 이 영화로 인해 그런 생각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난 그들의 무시무시한 상상력에 감동했고, 또 계속 웃었다. 앞으로 픽사가 만들면 난 모조리 볼거다.

 


1) 캐릭터: 전자오락인 <스트리트 파이터>에서 팔다리가 늘어나는 달심은 그다지 선호되지 않는 캐릭터다. 길기만 할 뿐 별 위력이 없기 때문. 그런데 여기 나오는 엘라스틴 걸은 자신의 신축성 있는 몸을 정말이지 무한대로 이용한다. 몸이 늘어나는 게 그토록 유리한지 난 이 영화를 보면서야 깨달았다. 또한 걸음이 무진장 빠른 꼬마도 이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그 녀석이 뛸 때마다 난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다...


2) 인크레더블: 영화와 관계없는 얘기지만, 영화의 제목을 들으니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내가 공보의 때, 지도교수를 비롯해 몇 대학의 선생님들과 전라북도 무안으로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출장의 목적은 무안 지방의 기생충 감염률을 파악하고, 거기서 나는 해산물이 기생충의 감염원이 되는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해산물도 사야 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대변검사가 무엇보다 필수적이었다.


우선적으로 마을의 이장에게 찾아갔다. 호걸풍의 외모답게 이장은 큰소리를 쳤다.

“내가 이 마을 사람들 거 다 걷어주겠소! 교수님들은 편히 쉬기만 하면 됩니다”

원래 대변을 걷는 건 발로 뛰어야 하는 것, 우린 내심 불안했지만 지도교수는 태평했다.

“저 사람이 다 해준다고 하니 우린 숙소에 들어가 쉽시다”

우린 여관에 들어가 늘어지게 잠을 잤다. 네시 반쯤 되었을 때 지도교수가 우릴 불렀다.

“지금 좀 이르지만...그래도 저녁은 먹어야 하니까...”

배가 안불렀어도 술과 먹어서 그런지 삼겹살은 잘 들어갔다. 거기서 1차를 하고, 노래방에 갔다가 낙지를 안주로 3차를 했다. 숙소에 들어와서 다른 선생님들이 커피를 시킬 때쯤, 난 그대로 뻗었다. 옷을 입은 채.


다음날, 이장 집에 간 우리는 모두 놀랐다. 걷은 대변이 한 개도 없었으니까. 심지어 이장 자신의 변도 없었다. 이장은 태연히 말했다. “어제 술약속이 있어서 못걷었어요....”

그때부터 우린 바빠졌다. 쓸데없이 하루를 낭비한 바람에 그날 하루동안 세 번이나 마을을 돌며 대변을 내놓으라고 했고,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양을 걷은 채 서울로 향해야 했다. 이장과 헤어지면서 우리 지도교수가 한 말이다.

“역시 저 사람은 인크레더블이야. 어쩐지 불안하더라고”

인크레더블, 인크레더블.... 영화를 보면서 그때 생각이 나는 건 좀 뜬금없는 걸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노부후사 2004-12-22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전 맨날 달심만 썼었는데... ㅜ.ㅜ;;

하얀마녀 2004-12-22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심이 얼마나 강한데요. 그거 잘하는 사람에겐 접근하기도 어려워요. ^^

BRINY 2004-12-22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픽사가 지금까지 만든 작품도 찾아 보세요. 후회 안하실걸요.

플라시보 2004-12-22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보려고 무지하게 벼르고 있는데 시간이 안나서 죽겠어요. 왜 바쁘지도 않으면서 전 늘 시간이 없는걸까요?^^ (픽사 작품은 BRINY님 말씀처럼 후회 안하실테니 다 찾아서 한번 보세요.^^)

하이드 2004-12-22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의 영화/드라마 평은 마태님스러움. ( 엥? 무슨말) '미안하다 사랑한다' 가 그랬고,( 저도 그런 가식적이고 유치찬란한 설정드라마는 싫어합니다만, 원체 텔레비젼 안 보긴 하지만, 요즘 보면 '미사'는 근래 보기 드문 심리 드라마라는 기사까지 뜨던데요( 어떤 찌라시였는지는 기억안나요), 심리드라마는 ' 사랑한다고 말해줘' 가 최고였어요) ) '브리짓 존스 2'도요. 그러니깐 어디가서 '브리짓 존스 2' 디게 재미없다던데, 하면, 본 사람들이 와글와글, 어, 정말 난 디게 재밌게 봤는데? 내지는 1편보다 재밌던데? 그러던걸요?

2004-12-22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피아노도 칠 줄 아는 대통령에겐 성질이 너무 더러워 포기하다시피 한 딸이 있다. 그녀의 담임으로 부임한 최지우는 그녀를 바로잡아보려고 애쓰는데, 최지우의 성깔 또한 만만치 않아 대통령 딸의 잘못을 빌미로 대통령에게 숙제를 내주기도 한다. 둘은 사랑에 빠지고, 결국 잘된다.


이건 영화를 굳이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얘기, 그런 뻔한 영화이기에 극장에 갈 마음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엊그제 케이블 TV에서 밤늦게 하기에 조금 보고 자려다가 계속 봤다. 그렇다고 끝까지 본 건 아니고 한 3분의 2 정도는 본 것 같다. 영화는 진짜 뻔한 내용이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목하 열애중이라 그런지 이 영화도 재미있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내 나이 비슷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고, 그 중에서 연애 중인 사람도 한둘이 아님에도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이유가 뭘까?


첫 번째 이유로 영화가 너무나도 뻔하다는 거다. 스토리가 진부하면 사건이라도 참신해야 하건만, 영화에 나오는 사건이란 것도 우리가 익히 봐오던 거다. 최지우가 탄 버스에 대통령이 올라타고, 술집에서 경호원을 피해 둘이 달아나는 장면 등은 50년 전에 개봉했던 <로마의 휴일>에서도 나오는 대목이 아닌가. <슈렉2>나 <인크레더블>에 나오는 장면들만큼의 기발함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그 반의 반 정도라도 머리를 써야 하는 게 아닐까. 대안 없는 비판은 공허하니, 내가 몇가지 사건을 제시하겠다. 최지우가 밤길을 걷는데 깡패들이 나타난다. “어--- 좀 생겼는데?” 야비하게 내뱉는 깡패들 앞에서 최지우는 공포에 질린다. 이때 경호원과 함께 나타난 대통령, 어디서 났는지 피아노를 집어던진다. 피아노에 깔려 신음하는 깡패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최지우는 대통령에게 폭삭 안긴다. 이름하여 <피아노 던지는 대통령>. 이거, 진부한가? 좋다. 다른 대안을 제시한다. 대통령을 사사건건 물고늘어지던 언론과 야당은 최지우와의 스캔들을 빌미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보수 집단의 브레인으로 부상한 헌재는 “대통령으로서 지켜야 할 품위 유지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탄핵을 가결시킨다. 졸지에 할 일이 없어진 대통령은 주위의 권유로 피아노 장사가 된다. 일명 <피아노 파는 대통령>. 잠깐만 생각해도 이렇게 좋은 생각이 나는데, 한 사흘만 생각한다면 뭔가 대단한 게 나올 것 같지 않는가? 이 영화의 스탭들은 도대체 몇초나 생각을 하고 시나리오를 썼을까.


둘째. 시대가 달라졌다.

이 영화가 권위주의적 시대, 그러니까 70, 80년대에 만들어진 거라면 조금은 성공했을지 모른다. 조금만 잘못 보이면 쥐어 터지고, 심지어 죽기까지 하던 시대에 살던 우리들에게 영화 속의 안성기처럼 인자한 대통령을 갖는 건 꿈이었다. 그때라면 이 영화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이 어디 그런가. 현 대통령에게서 과거 대통령들의 서슬프름을 찾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대통령에게 “등신”이라고 하는 국회의원이 있는 판이고, 국민들의 절대 다수도 대통령을 안주삼아 열심히 씹어대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 이런 영화가 히트할 턱이 없다. 한가지 더 지적을 하자면, 인자하게 그려지긴 했어도, 대통령이 자신의 사랑을 위해 사적으로 공권력을 동원하는 대목이나 교장이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벌벌 기는 장면 등은 좀 구시대적이다. 시대는 변했지만 감독의 정서는 여전히 70, 80년대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결론: 다시 말하지만 돈이 없으면 머리라도 써야 한다. 이렇게 뻔하디 뻔한 스토리에 안주해서야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사족1: 난 최지우가 이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드라마에 나올 때마다 왜 하필 쟤일까 탄식하곤 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참 예뻤다.

사족2: 내 휴대폰 벨소리는 닭울음 소리다. “꼬끼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최지우 휴대폰의 벨소리가 바로 그거다. 영화 속의 휴대폰이 울렸을 때, 난 내 전화가 온 줄 알았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4-12-21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얀마녀 2004-12-21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 던지는 대통령이나 2004년의 굵직굵직했던 정치적 상황과 결합한 피아노 파는 대통령... 정말 재밌겠습니다. 그런 영화라면 돈과 시간을 들여서라도 볼텐데요. ^^

미완성 2004-12-21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텔레비전에서 해줄 때, 영화 초반을 좀 보았는데요. 최지우가 머리에 핀 꽂고 고등학생인 척할 때, 도저히 눈뜨고 봐줄 수가 없어서 채널을 돌리고 말았어요 ㅜ_ㅜ 임수정의 옛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지요. 저럴 때도 있었다는..뭐 요즘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저도 사적으로 공권력이 동원되는 대목, 특히나 교장선생님의 모습..너무 싫었어요. 진부해요 진부해;;

kleinsusun 2004-12-21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기억이 참 안 좋아요.

영화도 물론 꽝이었지만, 이 영화 본 날 기분 좋지 않은 일이 있었거든요.

이 영화에서 가장 진부했던 장면은 비서관이 호텔 스위트룸을 잡아둔게 아닌가....

Love Actually에서는 수상이 연애를 해도 참 자연스럽던데...쩝

비로그인 2004-12-22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때쯤 기타치는 대통령이 나왔던 것 같은데요...^^*

드라마라고 보면 볼만 합니다.

엔리꼬 2004-12-22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대통령의 변호사 시절에 '언론학교'라는 곳에서 강연을 들은 적 있었어요.. 말 잘하던데요.. 물론 말만 뻔지르르하게 잘했다는 뜻은 아니고요.. 강연장이 강당처럼 큰 곳이 아니라 세미나실처럼 작았던 곳이었죠. 아, 그때 친해둘껄...그랬으면 지금쯤 청와대 문지기쯤은 하고 있지 않았을까...

플라시보 2004-12-22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거 케이블에서 할때 안봤는데 님의 글을 보니 안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참 대통령의 말 안듣는 딸네미가 요즘 열풍을 일으키는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임수정이라죠?^^

sooninara 2004-12-22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를 써야 하겠네요.마태님을 충무로로..아니 헐리웃으로!!!!

흠..추천함다..^^
 

 

 

 

 

일시: 12월 18일(토)

누구와: 친구와

마신 양: 맥주, 기본은 했다.


토요일은 술을 안마시는 날이었다. 그런데 내 친구가 전화를 했다. 1차를 마치고 2차를 가는 중인데, 갑자기 내가 보고 싶다고. 그의 부름이라면 난 언제든지 나갈 용의가 있었다. 하지만 그와 술을 마심으로써 그날 오후에 6킬로를 뛰었던 것은 무효가 된 것 같다^^그날 친구에게 했던 말을 정리한다.


기억이란 영원한 게 아니라, 사람의 머리 속에서 가공되기 마련이다. 더없이 고통스러웠던 기억도 낭만적인 추억으로 승화될 수 있으며, 살아가면서 수많은 고통을 겪음에도 인간이 별탈없이 세상을 사는 것도 다 그 덕분이다.


올 여름이 시작하기 전, 언론에서는 10년만의 무더위가 닥친다고 했다. 실제로 올 여름은 더웠지만,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94년보다 더 더웠다” 정도는 아니었다. 통계상으로 볼 때 94년에는 7월의 31일 중 23일에서 밤에 30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열대야가 기록되었는데, 올 7월에는 불과 사흘만 열대야가 있었다. 평균온도 같은 걸 따져봤을 때도 올 여름은 예년과 비슷하거나 약간 더운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94년보다 올해가 더 더웠다고 생각한다. 왜? 94년의 더위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이미 잊혀졌으니까. 아주 먼 과거에 있었던 10만큼의 고통은 눈앞에 닥친 3 정도의 고통을 이길 수 없으니까.


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의 기준은 “IMF 때”가 되어 버렸다. 경제가 조금만 어려우면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말을 한다. 언론도 그렇게 보도를 하고,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말한다. 과연 그럴까. 6.25 이후의 최대 국난이라던, 그렇게 우리 국민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IMF의 충격은 벌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걸까. 어느 택시기사는 말한다.

“그때는 봄날이었지요”

외환위기 직후에 대학로에 길게 늘어선 빈택시의 행렬을 난 똑똑히 기억한다. 밤 11시 반을 넘으면 택시에 합승이라도 하기가 어려웠던 대학로에서, 밤 12시건 1시건 아무 때나 택시가 잡히는 건 신기한 경험이었다. IMF, 미셀 캉드쉬, 우리에게 생소한 그 단어들과 더불어 찾아온 외환위기가 우리 사회에 미친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 사태로 인해 내수는 얼어붙었고, 고금리와 긴축이라는 IMF의 잘못된 처방은 수많은 기업을 도산시켰다. 실업률은 10%로 치달았고, 길거리는 노숙자의 행렬로 가득찼다. 우리 경제는 유사 이래 처음으로 -8%의 후퇴를 경험한다. 2-3% 선이긴 해도 플러스 성장을 하고, 무역수지 흑자가 연 200억불에 달하는 현 상황을 외환위기 때와 비교하는 건 넌센스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경제지표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외환위기 때보다 지금이 더 어렵다고 믿는다. 외환위기의 기억은 이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낭만화되었으니까. 그것만이 이유의 전부일까. 아니다. 우리 언론들이 그런 상황을 부추기는 것도 지금이 더 어렵다고 믿는 한가지 요인이다. 외환위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처음 나온 게 2001년부터고, 그 전에도 “외환위기보다 더한 사태가 온다”고 언론들이 공공연한 협박을 했던 걸 보면 “IMF보다 더 어렵다”는 말은 상황을 과장한 정치적 수사라는 생각이 든다. “경제가 나빠야 한나라당에 좋다”고 말했던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의 발언을 상기한다면, 경제 상황을 부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득을 보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을거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많은 수요창출을 해낼, 다시 말해 뉴딜 정책에 해당하는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한 걸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외환위기보다 안좋다는 게 과장이라 해도, 지금 경제가 위기라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지표상으로는 좋다해도 사람들이 체감하는 경기가 그보다 훨씬 나쁘다는 점에도 공감한다. 이렇게 된 이유가 뭘까. 최근 읽은 책에 의하면 우리 언론들이 신봉해 마지않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문제란다. 우리나라처럼 성장이 더 필요한 나라에서 기업들에게 200%의 부채비율을 요구하고, 은행들에게도 BIS 기준-8%인가?-의 준수를 따르라고 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그러니 기업은 현금을 쌓아놓을 생각만 하고, 은행들 역시 기업대출보다 가계대출을 더 선호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외환위기 이전보다 투자가 30% 이상 줄어들어 버렸다. 평생고용이 무너지고 비정규직이 전체의 절반가량 되는 상황에서 내수 활성화를 기대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떤 의도를 가진 언론들을 쫓아 “경제가 어렵다 어렵다”를 앵무새처럼 외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을지 지혜를 모으는 것이 아닐런지? 외환위기보다 더 어렵다는 걸 밤낮 떠든다고 경제는 나아지지 않는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여우 2004-12-20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행 수수료율은 사상최고치인 7조원의 순이익을 냈다고 하더군요. 국민들의 저축율은 물론, 사상최저치이지요...그 차액이 몽땅 외국인들의 주머니로 넘어가는 이 현실이 무지하게 갑갑합니다.

엔리꼬 2004-12-20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제가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정확히 제대로 써주셨군요. (물론 부채비율이니 뭐니 그런건 모르지만..) 저도 이러한 '단군이래 최대불황' 운운에는 뭔가 숨은 의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기억력 망각도 한 몫을 한다고 보고요... 자알 읽었습니다.

2004-12-20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12-20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12-21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4-12-21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림님/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거 사실 반론이 많을 걸 각오하고 쓴 글이거든요...

여우님/우리 것들을 너무 외국에 많이 판 결과겠지요... 시대상황이 어려웠을지라도 좀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니르바나 2004-12-23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이 아름답기는 해도 부정확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초등학교 교정에 가 보세요. 한 명도 예외없이 좁아터진 운동장과 주변의 적당한 크기로 서있는 나무들에서 자신의 기억이 터무니없이 과장되고 있음을 깨달을 겁니다. 우리의 몸만큼 기억의 총량도 자라나고 있지요. 범부들은 이것을 잊고, 똑똑하신 분들은 이것을 이용하는 차이가 존재할 뿐이지요. 경제전문가 마태우스님의 고견에 동의합니다.
 

 

 

 

 

일시: 12월 18일(금)

장소: 천안의 모 음식점

마신 양: 소주--> 맥주, 은근히 취했다


학교에 발령을 받고나서 몇 달이 지난 뒤, 입시관리과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날더러 한성고 출신이 아니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는 나보다 십년 전에 한성고를 졸업했으며, 한성고 출신으로 천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으니 나오라고 했다. 그게 벌써 5년 전이다.


대학에 있는 사람들을 비롯해 자동차 영업을 하는 사람, 호텔 지배인 등 다양한 직종에 있는 사람들이 같은 고교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모일 수 있다는 건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난 그 모임에 두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남자고등학교다 보니 나오는 사람이 죄다 남자라는 것도 안좋은 점이고, 두 번째로 아쉬운 건 내가 가장 막내라는 점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보다 12년 선배고 그로부터 각 기별로 두세명씩은 있는데, 나보다 3년 선배가 있고 그 다음이 나다. 그러니 나는 막내 중에서도 한참 막내인 셈. 그래도 애들 앞에서는 교수라고 폼을 잡고, 우리 써클에서는 내가 한번 나타나면 다들 기립할 정도로 나이가 많은데, 그 모임에 가면 내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40을 바라보는 내 나이에 막내로 활약하는 기분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회비도 안깎아주면서 주문을 비롯해서 온갖 허드렛일을 다 해야 하니 아쉽다는 게 아닌가.


그날 들은 충격적인 얘기. 2차로 노래방을 갔는데, 한 선배가 조용히 내 곁에 앉는다. 그리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야, 너 살 좀 빼야겠다. 니 나이에 너 정도 몸매면 심각한 거 아니냐?”

난 나한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평소에 내가 워낙 몸을 숨겨서 남들은 나의 비만을 눈치채지 못하며, 기껏해야 배를 만져보고 나서 “아니 이게 뭐야?” 하고 놀라는 게 고작이다. 그런데 “니 몸매면 심각한 거 아니냐”니. 그에게 수줍게 말했다.

“저 안그래도 살 빼려고 운동 열심히 하고 있어요. 테니스도 치구요, 러닝머신도 해요”

선배는 고개를 저었다. “그거 가지고 안돼!! 살 빼려면 더 해야 돼!”

으, 날더러 어떡하라는 걸까. 안그래도 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건 너무하지 않는가.


내가 노래부를 차례가 되어 오랜만에 <하얀바람>을 불렀다. 1절이 끝난 후 간주가 나가는 동안, 난 소방차처럼 덤블링을 시도했다. 그리고는 바닥에 뻗었다. 히프가 쑤셨다. 옛날에는 한손으로도 쉽게 덤블링을 했는데, 살이 찐 이후에는 번번히 덤블링에 실패한다. 역시 살을 빼긴 빼야 할 모양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일년반 동안 내가 운동을 게을리 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체중은 점점 늘어나기만 할 뿐이다. 미녀를 만났을 때도 “두달만 기다려줘. 내가 너를 위해서 몸을 만들께!”라고 했었지만, 두달이 지난 지금 내 몸은 변함이 없다. 나름대로 운동을 하니 먹는 것만 줄이면 살은 금방 빠질 텐데, 맛있는 음식의 유혹을 뿌리치기란 너무도 어렵다. 오늘도 물론 술자리가 있다. 과연 나는 얼마나 자제할 수 있을까.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우주 2004-12-20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저도 살 많이 쪘어요. 다들 저보고 살 빼래요. ㅠ.ㅠ 흑흑흑흑.

하얀마녀 2004-12-20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다시 술이군요. ㅜㅜ

stella.K 2004-12-20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 자체는 열량이 그리 많지는 않은데 안주하고 같이 마시면 많아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결국 문제는 술을 줄이던가, 안 마시는 게 좋다는...근데 마태님께는 이 말이 너무 가혹하게 들릴지도 모른다는...전 마태님이 그다지 살이 많이 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데...뼈대가 있으셔서 그렇게 보이는 거 아닌가요? 덜블링에 성공 못한 건 살이 쪄서라기 보단 나이 탓 아닌가요? 팔 조심하셔요. 이 말도 가혹한가요? 으~ 오늘은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마태님께 미움만 사겠군요. 후딱 물러갑니다. 3=3=3

마태우스 2004-12-20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그게 다 위장이어요. 저 살 많습니다. 흑흑... 몸 만들어서 다시 한손으로 덤블링 할 거예요!! 흑흑

마녀님/그렇죠 문제는 다시 술이죠. 살, 술. 발음도 비슷하군요

우주님/그래도 우주님은 미모가 되시잖아요 흑흑

마냐 2004-12-20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좀 민망합니다만.....울 옆지기가 저랑 본격 데이트를 시작한지 딱 2달만에 10kg를 뺐었죠. 운동과 다이어트가 통하긴 통하더라구요. ^^;;; 마태님 홧팅~ (아차차....울 옆지기가 데이트 시절 뺀 살이 다시 찌는데는 별로 오래걸리지 않았다는 후문이...)

nugool 2004-12-20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마태님 날씬한데.. 그 선배님 이상해요..--;;;

비로그인 2004-12-20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녀님이 상관없으시다면 뭐 굳이 빼실 필요있을까요? ^^

sweetrain 2004-12-21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마태님 심각한 지경은 아니시던데요?

nugool 2004-12-21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마태님.. 아직 거래완료가 안되어 있는 것 같아요. 번거로우시겠지만 다시 한번 부탁드려요...^^;;;;

플라시보 2004-12-21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는거 자제하는것 만큼 힘든게 있을까요? 그냥 적당히 운동하시고 먹는건 줄이지 마세요. (너굴님이 날씬하다잖아요^^) 먹는 재미가 얼마나 큰데요. 흐...

마태우스 2004-12-21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운동량을 더 늘이면 된다고 믿을래요. 식도락의 재미, 저도 공감해요

너굴님/지금사 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글구 그 선배님, 정말 날씬해요.

단비님/그게 위장이라니깐요^^

고양이님/무슨 말씀이세요. 미녀님이 늘 하는 말이 그건데...

마냐님/흠, 저는 꼭 살 뺄 거예요. 원래 전 날씬한 얘였으니까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구요!!
 

 

 

 

 

일시: 12월 16일(수)

누구와: 테니스 치는 친구들과

마신 양: 소주를 꽤 많이. 1차서 소주 한병, 2차는 포장마차서...


나에게는 건축사무소를 하는 친구가 있다. 요즘 어렵지 않은 친구가 어디 있겠냐만, 그 친구는 굉장히 힘든 것 같다. 독립해서 사무소를 차린 이후 “문닫을 위기다”라는 말을 안한 적이 없는데, 그래도 2년간 직원을 여덟이나 데리고 회사를 이끌어 온 걸 보면서 ‘엄살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이 일을 해본 내 친구 A에 의하면, 그 친구의 사업은 구조적으로 수익이 날 수 없는 것이며, 일을 하면 할수록 빚이 늘어나는 시스템이란다. 모르긴 해도 빚이 2-3억은 될 거라는 게 A의 설명이다.


그가 여기저기 빚을 지고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은행빚이 있는 건 당연하고, 사채로 빌린 돈만 해도 5천에 가까우니 그 이자부담만 해도 만만치 않을 거다. 일을 할수록 빚만 늘어남에도 회사를 계속 살리겠다는 그 심정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상황을 좀 냉정하게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달 전에 입주한 좋은 아파트를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할 정도니, 상황이 심각하지 않겠는가.


그는 여기저기 도움의 손길을 뻗친다. 주위 친구들은 대개 그에게 돈을 빌려준 경험이 있고, 내게도 돈을 빌려달라고 여러번 전화를 한다. 예전에 빌려준 돈도 갚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에게는 갚을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고, 다른 친구들 역시 그에게 빌려준 돈은 포기한 상태란다. 그와 친한 친구 중에는 심지어 4천만원을 빌려준 친구(B라고 하자)도 있다. 돈을 많이 빌려주니 상황이 역전되어, B는 그에게 이런 말을 가끔 한단다.

“올 연말까지는 일부라도 갚아주지 않겠니”

물론 그는 아직까지 그 일부도 갚지 못했다.


그가 빌려달라는 액수는 대개 100만원 수준이다. 2-3억으로 추정되는 빚 앞에서 100만원이라는 액수가 얼마나 유용한지 나는 모른다. 겨우 이자를 갚는 수준도 안되지 않을까? 내가 로또라도 된다면 빚을 갚아 주련만, 요즘은 어떻게 된 것이 숫자 세 개도 맞지 않는다. 돈을 빌려달라는 그의 절박한 요구를 거절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그와 나는 몇 년간 하루 세번씩 통화를 하기도 했다. 먼저 전화건 사람이 “너 왜 전화도 안하고 그러지?”라며 호통을 치곤했던 그 시절이 그에게는 아마도 봄날이었을 것이다. 그가 독립한 뒤 일이 바빠지면서 전화는 뜸해졌고, 어쩌다 하는 전화 통화의 취지가 “돈을 빌려달라”로 바뀌면서 그와는 더더욱 전화를 안하게 된다. 적어도 석달에 한번은 보곤 했던 우리들이지만, 올해는 그와 송년회를 할지 생각 중이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돈이란 건 사람을 멀어지게 만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얀마녀 2004-12-20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에서 마음이 짠하군요.

sooninara 2004-12-20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돈도 없지만..돈문제가 없으려면 안빌려주어야 할듯...이것도 너무 하죠?

에고 사는게 뭔지...

마태우스 2004-12-20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님/그러게요. 사는 게 뭔지..

마녀님/님이 짠하시다니 저도 짠합니다...

아영엄마 2004-12-20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까운 사이일수록 돈 거래(?)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딱 맞습니다.. 님의 글을 읽자니 문득 남편이 우리 친정에 돈 빌려준거 받으려 했으면 아마 우리 부부는 지금처럼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