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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역류
김정란 지음 / 아웃사이더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내 정신적 스승 김정란은 사회적인 발언도 많이 하는 분이지만, 훌륭한 시인이자 평론가,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녀는 문학에 어떤 아우라가 있어야 한다고 믿으며, 그래서 그녀의 문학적인 글들은 대개가 어렵다. 김정란의 책 중 내가 읽은 것이라곤 ‘사회문화평론집’으로 분류된 두권이 전부며, 이번이 세 번째다. 딱 한번 그녀의 문학평론집 <연두색 글쓰기>를 산 적이 있는데, 머리가 어지러워 조금 읽다가 말았는데, 다시 펴기가 겁난다. 정치평론과 에세이, 문학평론이 같이 있는 이번 책은 중간부분까지는 잘 읽혔지만 역시 문학평론 쪽이 어려워, 겨우, 아주 힘들게 읽어낼 수 있었다.
1) 당황: 그녀의 글들은 문장 하나하나가 다 치열하다. 작은 몸으로 부조리한 이 세상과 싸우다보니 그리 되는 건 당연해 보이는데, 갑자기 그녀가 유머를 구사한다.
“민주당 조순형 대표는...사과해도 소용없다고 미리 못박지 않았던가. 사과 아니라 딸기를 했어도...”
문학적 수준은 높지만 유머는 아직 부족한 듯. 나라면 이렇게 안쓴다. ‘사과 아니라 키위를 했어도...’ 이게 훨씬 더 웃기지 않는가.
2) 쉼표의 사용이 그녀 글의 특징이긴 하지만, 이번 책에는 그게 좀 심했다. 예컨대.
-아주 잘 덮어두어서, 온갖 특혜를 누리고 살았던 사람일수록, 그것을 들여다보는 일은...(55쪽)
-...자유롭지 못하므로, 한나라당의 무지막지한 액수와는 비교되지 않을지라도, 어느 정도 불법적인 자금을 사용했을 터이고, 그렇다면, 그 역시 책임을...(90쪽)
-그녀가 대통령이 되어, 여성들의 상황이 좋아진다면, 지금까지도 박정희의 독재를 신화로 포장하기 바쁜, 우리 사회를 괴롭히고 있는....(113쪽)
여기 쓰인 쉼표들이 모두 다 필요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몇 개는 없어도 별 상관이 없지 않을까. 쉼표가 없으면 읽는데 숨이 가쁘지만, 너무 많으면 정신이 산만해진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녀가 이연주 시인의 쉼표사용을 비판한 다음 대목이다.
“그 쉼표는 적절한 맥락을 찾지 못하고, 맥락을 끊어먹거나, 맥락들 위에 위태하게 걸터앉아서, 마치 호흡곤란을 호소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었다”(158쪽)
맥락을 끊어먹는 쉼표를 총동원한 문장으로 다른 사람의 쉼표가 적절치 않다고 비판하는 모습이란!
3) 김정란은 ‘더이상 외롭지도 무섭지도 않은 외출’이란 글에서 여성시, 즉 페미니즘을 표현한 시의 진화를 얘기한다. 시를 언급하고 그것의 의미를 설명하는 식이었는데, 맨 마지막 피날레를 자신의 시로 장식한 건 좀 생경하다. 물론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자기를 내세우는 게 별반 미덕이 아닌 동양적인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비판을 약간 하긴 했어도 난 김정란의 치열한 글들을 여전히 좋아하고, 사회에 대한 그녀의 발언에도 동의해 마지않는다. 문학판에서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수구기득권 세력과의 싸움을 멈추지 않는 김정란을 보면서 난 참다운 지식인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그녀의 말이다.
“불온하지 않은 신화는 지배자의 이데올로기를 장식하는 데 동원될 뿐”(210쪽)
새해에도 그녀의 불온한 글들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