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화요일, 학장이 날 불렀다. 학장이 부르는 건 언제나 무서운 일, 난 죄지은 사람의 표정으로 학장실에 들어갔다.
“앉지”
학장은 평소와는 달리 무서운 표정이었다. 난 소파에 앉아 긴 다리를 차곡차곡 접었다.
“자네 근무 시간에 도대체 뭐하나?”
“네?” 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학장은 수북히 쌓인 인쇄용지를 내게 던졌다.
“근무 시간에 이런 것만 하고 있나? 자네, 직업이 네티즌인가 교순가?”
난 내 앞에 던져진 종이를 바라봤다. 내가 알라딘에 썼던 페이퍼가 인쇄되어 있었다.
“저, 그, 그건 점심시간에...”
“시간들을 봐! 글이 올라간 시각이 점심시간인지 아닌지!”
결국 난 엄중 경고를 받고 학장실에서 나왔다. 눈앞이 캄캄했다.
‘이제 알라딘을 떠날 때가 된 건가...’
26세 미녀를 만나서 이 사실을 전했다. 작은 위로라도 해줄 알았던 그녀는 하지만 이렇게 날 책망했다.
“하긴, 자기가 좀 심하긴 했어. 그렇게 서재질만 하니까 논문이 없지!”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을 했다. 학장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학교는 연구하는 곳이지 글쓰는 곳은 아니었으니까.
‘그래, 알라딘을 끊자. 더 이상 안하는 거야!’
난 학교와 집 컴퓨터 메인 화면을 다른 것,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외국논문 검색 사이트,로 바꿨다. 즐겨찾기에서도 알라딘을 지운 건 물론이다. 그리고 난 며칠간 알라딘에 접속하지 않았다.
어느날, 길을 가는데 사람들이 떼로 몰려온다. 어떤 이들은 손에 몽둥이를 들고 있다. “잡아라!” 뭘 잡으라는 걸까. 난 신경을 끄고 갈길을 갔다. 모퉁이를 돌자 난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기 있는 것은 분명 여우, 그것도 털이 파란 여우였다. 여우는 쫓기는 듯했고, 애처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온몸을 떨면서. 난 여우를 등에 업고 위에 코트를 덮었다. 그때, 몽둥이를 든 사람들이 몰려왔다.
“혹시 여우 본 적 있어?”
“여우..라뇨?”
“분명 이쪽으로 왔는데...털이 파랗고...”
“파란 여우도 있나요?”
사람들이 몰려가고 나서 난 산 쪽으로 향했다. 가을산의 기슭에 여우를 내려놓고 말했다.
“여우야, 이제는 잡히지 말고 잘 살아. 알았지?”
여우는 슬픈 눈동자로 날 바라봤다. 배가 고플 것 같아 주머니에서 쵸코파이를 꺼내줬더니 냉큼 먹는다. 그러더니 내게로 와 내 손등을 핥았다. 안좋은 침냄새가 확 풍겨와 난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나 간다!”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여우는 재주를 몇바퀴 넘더니 산으로 올라간다. 근처에 있던 너구리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달아났고, 반딧불들도 일제히 날아 올랐다.
'파란 여우라니...묘한 일이야‘
쵸코파이를 먹으려고 주머니를 뒤지다가, 아까 그 여우에게 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근 중국집에 들어가 짜장면을 시켰다. 단무지와 더불어 깍두기가 나온다. ‘헉! 깍두기...’ 종업원이 짜장면 대신 물만두를 가져온다.
“전 짜장 시켰는데요?”
종업원이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써비습니다!”
짜장을 시키는데 물만두가 써비스라니,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그때 안쪽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아영아! 이리 좀 나와 봐”
그러자 뒤꼍에서 놀고 있던 여자애가 쪼르르 달려온다. 그렇다면 저 사람은 아영엄마? 순간 공포감이 엄습했다. 급히 짜장을 먹고 나가는데, 계산대에 앉아있는 남자가 책을 읽고 있다. ‘지킬 박사와 미스 하이드?’ 이, 이럴 수가. 난 밖으로 나가 중국집 이름을 봤다. 서-림-각.
‘이, 이건 우연일 거야!’ 난 머리를 쥐어뜯었다.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 몇 개가 빠졌다.
‘그래, 우연이라니까. 이제 그런 거 의식하지 말자’
“길 좀 물을께요”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전 하얀마녀라고 합니다. 갈대밭을 가려는데 어디로 가면 되지요?”
연보라빛 바지를 입은 것도 놀라웠지만, 하얀마녀의 가슴에 그려진 것은 분명 판다였다. 난 대답 대신 이렇게 말했다.
“왜, 왜 이 티셔츠를 입으셨어요?”
내 질문이 뜬금없었는지 하얀마녀는 다른 쪽으로 가버린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가 신고 있던 것은 요즘 유행하는 바람구두였다. 역시 우연이라고 치부하면서 난 갈길을 갔다.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뛰어야 했다. 하지만 그 뜀박질은 오래 가지 못했다. 한 여인이 개를 끌고 걷고 있었는데, 그 개는 사진에서 봐오던 모모였다. 그렇다면 저 여인은 금붕어? 난 그 여인에게 다가갔는데, 그걸 눈치챈 여인은 부리나케 달아났다.
“금붕어님, 가지 마세요! 저 마태라구요!”
하지만 여인은 주차해둔 스텔라 승용차에 올라탔고, 내가 부르는 걸 외면한 채 차를 출발시켰다. ‘왜 가는 걸까. 무정한 사람...’ 그러는 사이 내가 예약해둔 기차는 이미 떠나버렸고, 망연자실해진 난 다방에 앉아 커피를 시켰다. 순간 예감이 이상해 밖에 나가 다방 간판을 봤다. ‘스타리의 별다방’
난 종업원을 불렀다.
“여기 사장님이 스타리님인가요?”
종업원은 고개를 저었다. “원래 사장은 스타리였는데요, 책사느라 빚을 많이 져서 다방을 팔았어요. 지금 주인은 호랑녀님이죠. 저기, 카운터에 앉아 계신 분이요”
그렇구나! 난 호랑녀를 바라봤다. 아닌게아니라 호랑이처럼 얼굴에 쥴이 가 있고, 입 모양을 보니 금방이라도 “어흥!” 하고 울부짖을 것 같았다. 난 그 다방의 명품이라는 카이레를 시켰고, 약간 싱겁다는 생각이 들어 소굼을 쳐 먹었다. 그리고 나서는 다방에서 키우는 개를 쓰다듬으며 시간을 보냈다.
“넌 이름이 뭐니?”
종업원이 대신 대답했다. “복돌이래요. 잘 어울리죠? 저희 고양이도 키워요. 체셔고양이 종인데, 한번 보실래요?”
다음 기차 시간이 되어 난 밖으로 나왔다. 휴대폰에 메시지가 한통 와있다. “1월 8일날 신촌에서 번개 있음. 참석 요망. 진우맘도 옴” 수니나라가 보낸 메시지였다. 알라딘을 끊었는데 오프모임에 가야 하는가 고민을 한 끝에, 생각해 보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기차를 탔다. 창 밖으로 호밀밭이 보인다. 꽃 중의 꽃이라는 라일라가 잔뜩 심어져 있다. ‘그렇게 많이 다녔으면서 왜 저기 호밀밭이 있다는 걸 몰랐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매점 아저씨가 지나갔다. 실론티 하나를 사서 한모금 마시는데, 옆에 앉은 할머니가 늙은 손으로 내게 사과를 건내줬다. ‘이럴 수가!’
사과 한쪽에 멍이 들어있다.
“한번 떨어뜨리셨나봐요?”
“먹기 싫음 먹지 마요!”
내 말에 할머니는 기분이 상했는지 사과를 빼앗아 갔다. 냉냉한 분위기를 극복하려 책을 폈더니 할머니도 책을 편다. 불경 같았다. 할머니는 그걸 큰소리로 읽는다.
“시아일합운빈현, 프라시보 몽상자, 따우찌리릿 서니사이드...”
참다못한 나는 할머니를 불렀다.
“저, 책 읽는데 방해되니 속으로 읽으시면 안되요?”
“이따우 인간이 있나! 자네가 나랑 무슨 clio가 있다고 불경도 못읽게 하는 건가?”
난 클리오가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그냥 넘어갔다.
“여기는 공공장소잖아요!”
“모과 문제야 도대체! 너는 매너리스트도 모르냐?”
분명 할머니가 나쁘건만, 주위에서는 우리를 싸잡아 욕했다.
“둘다 조용히 좀 하세요! 새벽별 뜬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그래요?”
사람들의 언어 중 맥락에 어긋나는 말이 지나치게 많은 느낌,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난 책을 덮고 새마을호 기차에서 틀어주는 로드무비를 봤다. 기차에서 내리니 단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이상한 일들만 일어나는 하루, 그제서야 깨달았다. 난 알라딘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세계적 석학 에피메테우스가 말했던가. 마음과 반대로 가려는 사람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온다고. 내게는 알라딘이 그런 존재가 아닐까. 그래, 떠나지 않으리라. 눈치 보면서 열심히 서재질을 하자. 근무 시간에만 글을 안쓰면 될 게 아니겠는가? 난 영원한 알라디너로 남을 것이다. 마냐님과 책나무님, 스윗매직님이 있는 알라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