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이병헌이 담임을 맡은 반 학생이 가게 주인에게 쫓겨들어온다. 가게 주인에 따르면 학생이 가게 물건을 훔쳤다는 것. 이병헌은 “그랬냐”고 학생에게 묻고, 학생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가게 주인은 “내가 봤는데 거짓말을 한다”고 우겼지만, 이병헌은 이렇게 그를 내쫓는다.

“안했다잖아요. 우리반 애들은 거짓말 같은 거 안해요”

자신을 믿어주는 그런 담임이라면, 존경할만하지 않는가? 그 사건 이후 같은 반 애들은 이런 말을 한다.

“난 담임을 담탱이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다”


엊그제 밤, 누나한테서 전화가 왔다. 내 단잠을 깨운 전화의 사연은 이렇다. 누나에게는 둘째 조카가 있는데, 걔와 같은 반 여자아이의 휴대폰에 사흘간에 걸쳐 욕설이 난무한 문자메시지가 전송되었다. 화가 난 여아의 어머니는 이동통신 회사에 문의했고, 문자가 전송된 휴대폰이 내 조카애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녀는 펄펄 뛰면서 우리 누나에게 전화를 했고, “당장 경찰서에 가자”고 협박했단다. 사과 정도로 끝낼 수 있는 일을 경찰서 운운하는 그 여자가 황당하게 느껴졌다. 하여간 누나가 내게 전화한 까닭은, 다른 사람이 내 조카 번호처럼 위장해서 문자를 보낼 수 있냐는 것.

“나야 모르지. 그렇지만 승호(조카이름. 가명)는 뭐래?”

“안했다고 펄쩍 뛰어. 지금도 자기 아니라고 울고 있어”

안했다는데 믿어야지 않겠냐면서, 난 조카를 바꿔달라고 했다.

“승호야, 진짜 니가 그런 거 아니지?”

“응”

“그래, 삼촌은 너 믿어. 그러니까 그 여자가 경찰서를 가든 말든 맘대로 하라고 하자”

애의 부모라면 나처럼 해야지 않겠냐면서 난 혼자 흡족해했다. 그러나.


다음날, 누나는 엘지텔레콤에 가서 그것이 조카 휴대폰에서 전송되었다는 것을 재차 확인했고, 조카의 자백도 받아냈다. 이런이런, 그렇게 귀여운 얼굴을 하고서는 거짓말을 하다니. 자신이 한 짓이 탄로나자 무서웠을테고, 그래서 일단 부인부터 하고 봤을 거다. 누나가 이통회사에 가서 알아보길 잘했지, 내가 나섰다면 x팔릴 뻔했다. 조카의 말에 의하면 그 여자애가 맨날 자기한테 “땅꼬마(키가 작다는 뜻)”라고 놀리며 괴롭혀서 약이 올랐다나?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나도 어릴 적에 내가 그런 일을 가지고 안했다고 우긴 적이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어릴 적만 그랬나. 다 커서도 그랬다. 냉동실 문을 열어놓고 가는 바람에 몇십만원 쯤 하는 콤프레서를 태운 적이 있었는데, 난 그걸 내가 한 짓이 아니라고 우겼다. 그때 난, 물어내라고 할까봐 무서웠던 거다. 어린애의 거짓말은 봐줄 수 있지만, 다 큰 사람의 거짓말은, 그것도 뻔한 거짓말은 보는 사람을 서글프게 만든다. 바르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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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5-01-13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뭡니까? 이게? 재벌께서 몇십만원에 거짓말을 하시다니..나빠요..나빠..

솔직히 말해보세요..냉동실 문열어 둔게 챙피해서 거짓말 한거지요?

진주 2005-01-13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이로군요...냉동실 문 열어놓고 다니는 사람이 하나가 아니라서.........

작은위로 2005-01-13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르게 살자.

가능하면 지키고 싶지만, 세상은 그렇게 놔두질 않아요. 흑흑흑.

하루에도 수십번씩 고객과 통화하면서 거짓말, 많이 해요. 흑흑흑흑흑....

2005-01-13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여우 2005-01-13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태님이 거짓말하셔도 좋아요. 단 진짜 초코파이좀 줘봐요...

maverick 2005-01-13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때는 거짓말 한번 하면 혼자 쫄아서 가슴이 콩닥콩닥했는데 이제는 거짓말 해놓고 내가 거짓말을 했는지도 까먹을만큼 아무렇지 않을때 더 서글프더군요 ^^

딸기 2005-01-13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거짓말을 정말 많이 하고, 정말 많이 들킵니다. 쪽팔리게스리...

BRINY 2005-01-13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 저도 왕따 당하는 학생 상담 중에 바로 그 학생 핸드폰으로 욕설을 담은 문자가 와서 직접 보게 되었어요. 기가 막히기도 하고, 화가 나서 바로 전화했는데, 그 애는 자기가 한게 아니라고, 친구한테 잠깐 핸드폰을 빌려줬는데 친구가 그랬다는 둥...차라리 당당하게 [걔가 이래저래 맘에 안들어서 그랬어요]라고 말못하나요.

니르바나 2005-01-13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짓말을 하는 순간부터 심리적으로 어른이 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빈 서판에 거짓말이 주는 이점을 그리게 되니까요.

진주 2005-01-13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냉장고의 생명이 콤프레샤라는 걸 당해 본 사람은 안답니다. 콤프레샤 나가서 우린 냉장고 새로 샀다니까요 ㅠㅠ

비로그인 2005-01-14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에게 해를 주지 않을 정도의 거짓말은, 상대방의 거짓말을 눈치챈 저도 암암리에 묵인해주는 편인데. 물론 저도 가끔은 거짓말을 하지만요.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복수란 것이 자신이 파멸될 줄 알면서도 끊임없는 욕망으로 치달아가쟎아요. 얼마나 분했으면 그랬겠어요. 조카와 친구와의 관계가 잘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마태우스 2005-01-14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오오 심오한 말씀이옵니다.... 님이 거짓말을 한다니 믿기지 않사옵니다

박찬미님/제가 박살낸 콤프레서는...학교 냉동실 거라 겁나게 비싸답니다.

새벽별님/그럼요... 온 방을 다 냉동시키려면 무리가 가니까...아무래도..

니르바나님/거짓말이 어른이 되는 순간이다...그렇군요...조카도 이제 어른이네요^^

브리니님/하하, 메시지로 욕하면서 당당해질 수는 없지 않을까 싶네요.

뱀딸기님/많이 들킨다는 건, 그만큼 순수하다는 뜻이죠

매버릭님/어머나, 전 지금도 그런데...^^

여우님/쵸코파이는 잊어요. 전 요즘 오예스만 먹어요

작은위로님/님도 그러신다니 위안이 됩니다^^

수니님/재벌도 몇십만원 날리는 건 아깝더군요... 그게 몇십만원이 아닐지도 모르는 일이라....흐흐흑.



 

 

 

 

 

케이블 TV에는 영화 채널이 여섯 개나 있다. OCN 두 개, MBC movie, 돈도 안냈는데 나오는 캐치원이 둘, 뭔지 잘 모르겠는 거 하나. 하지만 케이블을 통해 원하는 영화를 보기는 정말이지 힘들다. 언제 무슨 프로를 하는지도 모르는데다, 보고 싶은 영화를 상영한다 해도 시작하는 시각에 딱 맞춰 TV를 트는 건 어려운 일, 그래서 난 케이블로는 한번 봤던, 그래서 앞부분을 안봐도 하등의 지장이 없는 영화들만 열심히 보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엊그제는 TV를 틀었을 때 영화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거다. <굿바이 레닌>이라는 제목만 봤다면 아마 안봤을 것이다. 레닌이 나온다면 왠지 이념적이고 딱딱한 영화일 테니까. 하지만 우연히 본 영화 설명을 보니 흥미가 당겼다. 독일이 통일된 지 모르는 사회주의자 어머니를 위해 자식들이 독일의 통일을 숨긴다나? 이거 볼만하다 싶어서 봤고, 영화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어머니가 심장 이상으로 8개월을 쓰러져 있는 동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된다. 동독에는 버거킹과 코카콜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의 물결이 상륙하는데, 아들과 딸은 ‘충격을 받으면 재발할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충고를 듣고 어머니의 눈에 그런 게 안띄도록 갖은 묘책을 강구한다. 처음에는 TV를 감추다가, 영화감독이 꿈인 친구의 도움으로 거짓 뉴스를 촬영해 TV 뉴스인 것처럼 방영하는 장면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코카콜라 제조 기술이 동독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서독에서 난민들이 동독으로 밀어닥치고 있습니다. 동독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이들을 수용하기로...”


어머니에게 진실을 감추고 거짓말만 늘어놓는 것이 효도일 수 있느냐고 하겠지만, 사회주의에 누구보다 열심히셨던 어머님을 위해 거짓도 서슴치 않는 아들의 태도는 정말이지 감동적이며, 그 효도를 위한 친구의 헌신 역시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이념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메시지도 전달하고자 하는 것 같은데, 솔직히 자신은 없다. 아버님과 어머님이 오랜만에 재회할 때, 병실에 누워있던 어머님이 계속 화장을 하면서 “나 예쁘냐”고 하는 장면도 리얼하고, 두분이 만나는 장면 대신 밖에 있는 아들의 모습을 비춰주는 것도 영화가 신파로 흐르지 않게 해줬던 것 같다. 그리 돈을 많이 들인 것 같지는 않고, 내가 아는 유명 배우가 하나도 나오지 않지만, 참으로 멋드러진 영화를 봤다. 굳이 말하자면 케이블의 승리이자 때마침 TV를 켠 내 영감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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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밋 2005-01-13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못 본 영화인데요, 영화 말미에 어머니도 아들의 거짓말을 눈치 챈다는데 맞나요? 갑자기 궁금해서요. -_-;;

줄리 2005-01-13 0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어디선가 소개를 봤는데 색다르다 생각했었는데 왜 이리 해주는데가 없는지 잊고 있었네요. 찾아서 꼭 봐야겠네요. 근데 영어제목도 같으려나?

▶◀소굼 2005-01-13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보셨군요. 영화도 좋지만 음악도 좋죠. 아멜리에때도 맡았던 분이 하셔서..

dsx님 영어제목도 같아요. : )

마냐 2005-01-13 0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영감의 승리라니...마태님 말씀이 정답임다. 전 영감이 없어서, 그토록 보고싶어했던 영화인데..아직도 못 보구 있슴다. ^^;;

반딧불,, 2005-01-13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못봤습니다.제가 좋아하는 감우성의 신작이

이 영화의 리메이크에 가깝다고 하던데요. 흠.

플라시보 2005-01-13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전 못본 영화이군요. 비디오 가게 가면 있을라나? 보고싶네요. 근데 우리나라에 비스무리한 영화를 촬영하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제목은 잘 모르겠고 부모님을 위해 자식들이 통일이 된것처럼 연기를 한다는... 어제 무슨 TV연예정보 프로에서 본것 같아요. 아...쓰다가 반딧불님 글을 읽으니 같은 소리를 했군요. 히히

딸기 2005-01-13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영화 꼭 보고싶었는데!

숨은아이 2005-01-13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캐치온에서 하는데... 몇 달째 탁상달력에다 그거 하는 시간을 메모해놓고도 아직 못 봤다는.. ㅠ.ㅠ 그런데 돈도 안 내는데 나온다구요? 캐치온, 내 7800원 돌려줘~

비로그인 2005-02-12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며칠 전에 굿바이 레닌 텔레비전으로 봤네요. 엄마는 나중에 사회주의 정권이 몰락한 걸 알면서도 아들을 위해 즐겁게 속아줬쟎아요. 두 번째 본 건데두 참, 감동이었네요. 전 자막처리 해 주는 게 더 좋아요. 스피드 하고. 우리나라 성우가 더빙하면 왠지 갑갑하게 느껴지고..리얼하지 않아요.
 
별들의 들판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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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공지영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공지영의 소설 중 특별히 재미있었던 게 없다는 점으로 보아, 내 호감에는 그녀가 미인이라는 것도 작용할 것이다. 공지영의 소설들은 ‘후일담 소설’이라고 일컬어진다. 80년대의 경험들을 우려먹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있는 것 같지만, 그때의 경험이란 게 어느 특정인의 것만은 아니고, 벌써 그 당시를 까먹은 독자들에게 그 시절을 환기시켜 주는 것도 나름의 의미는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베를린을 주제로 한 연작 소설이다. 각 소설간에 연관이 거의 없는 듯하지만, 첫 번째 소설에 나오는, 아이를 빼앗긴 엄마는 네 번째 소설인 <열쇠>의 여주인공에게 낙태수술을 해주는 의사, 이런 식으로 조금씩의 연결점은 있다. 개인적으로는 신부와 민간인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열쇠>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고, 마지막 작품인 <별들의 들판>도 잊혀져가는 이념 문제를 되새김질하는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각 소설마다 쉽게 읽혔고, 밑줄을 긋고픈, 마음에 와닿는 구절도 꽤 여러 군데 나왔던 것 같다. 리뷰를 잘 못쓰니 퀴즈로 이 책을 정리해 본다. 참고로 아주 쉽다.


1. 다음은 어느 신문사인가?

[그는 젊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C일보에 입사했다....“우리 신문 친일했잖아요. 사주들 다 친일파였고...]

가. 중앙일보        나. 충청일보

다. 전남일보        라. 조선일보


2. 어느 시인에 관한 설명인가?

[그는 노시인에게 가서 원고를 받아왔다. 한복차림의 노시인은 안성에 거처하고 있었는데...그 글은 신문에 게재되었고, 시인의 글대로 ‘분신의 잔치’는 갑자기 우스꽝스러워져버렸다...]

가. 정현종     나. 황동우

다. 김지하     라. 도종환


3. 소설에는 “나는 누구 말대로 B급 좌파”라는 대목이 나온다. ‘누구’의 이름은?


가. 진중권      나. 김규항    다. 강준만      라. 조갑제


4.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90쪽)] 이 노래의 제목은?

가. 아침이슬       나. 늙은 병사의 노래   다. 하여가   라. 님을 위한 행진곡


5. [육십년대 박정희가 쿠테타를 일으키고 경제개발을 하려고 케네디한테 구걸을 했나봐요. 그리고 거절당했죠. 케네디에게...박정희는 민주주의의 싹을 총칼로 짓밟은 사람이니까요. 그때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 원조를 해주겠다고 나선 나라가 (  )이었어요....간호사들과 광부들의 삼년치 월급으로...(212-213쪽)]

이 나라는 어디인가?


가. 이라크  나. 영국    다. 스웨덴   라. 독일


6. 다음에 들어갈 구절은?

[문득 깨어나 보니 창가에 여명이 푸르렀고 ------------(245쪽)]

가. 입가에 고인 침이 턱으로 흘러내려와 있었다.

나. 종류를 알 수 없는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다. 구름들 사이로 멀리 코메르츠 산이 보였다.

라. 회색빛 집의 몸체들이 수채화처럼 잔잔하게 보였다.


* 수고하셨습니다. 정답은 댓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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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1-13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답: 1번. 라 이 책이 메이져언론사들에게 철저히 외면받은 까닭은 아마도 그래서가 아닐까. 반면에 한겨레는 2004년 최고의 책이라고 했다.

2번. 다 조선일보에 실린 김지하의 글 제목은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였다. 명지대 강경대의 죽음 이후 분신정국이 계속될 때였는데, 나중에 김지하는 이 글에 대해 사과했다.

3. 나 그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4번. 라

5번. 라 이 책의 주 무대가 베를린이니까..

6번. 의외로 (가) 자다 일어나서 침닦는 건 내가 잘 써먹는 컨셉인데...

로드무비 2005-01-13 0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안 읽었지만 6번 문제 맞췄네요.ㅎㅎ

나름대로 사실적인 표현이라 저도 애용하는 편이에요.^^

줄리 2005-01-13 0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내가 이렇게 똑똑할수가.. 6번만 빼고 다 맞췄네요. 저두 공지영 좋아해요. 그녀 소설속의 몇 사람은 제 주위의 사람 몇과 너무 닮아 있고 그걸 너무나 잘 표현해줘서 고마왔어요.

깍두기 2005-01-13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번. 마태님이라면 (가)겠지만 공지영이니까 (라)일거라고 생각한 나를 배신한 공지영....

paviana 2005-01-13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6번 답이 1번이에요? ㅋㅋㅋㅋ 그것만 빼면 다 맞았는데...공지영의 글을 딱히 좋아하는건 아니지만, 가끔씩 공지영책을 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그녀의 주장과 내생각이 비슷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연대한다는 의미로.....

엔리꼬 2005-01-13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앙일보는 자칭 J 일보입니다. JoongAng 고로 1번, 6번 빼고 다 맞혔음...

hkim 2005-01-13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번, 4번, 5번 맞췄다... 근데 5번에서요, 저는 이 소설을 읽지 않아 배경을 모르지만 '간호사'와 '광부'라는 단어에서 '독일'이라는 것을 맞췄습니다. 냉전 당시 서독에 우리나라에서도 '간호사'와 '광부'를 보냈다고 알고 있거든요.(먼 나라 이웃 나라 만쉐이~!)

마태우스 2005-01-14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그럼요, 저도 읽다가 놀랐다니깐요.

서림님/6번이 역시 가장 어려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동녘담님/저는 <한강> 읽으면서 간호사와 광부 보낸 거 알았어요. 2, 3번은 80년대의 기억을 공유한 사람에게만 쉬운 것 같습니다^^

파비아나님/연대...오오, 좋은 말입니다. 그리고 6번 답 , 1이 맞다니깐요. 제가 구라에 일가견이 있긴 하지만 여기서는 진실만 말한답니다

깍두기님/하핫, 함정에 제대로 걸리셨군요^^

쥴님/상품 대신 제 마음을 드리지요. 하핫.

dsx님/그렇군요. 저는 개인주의에 침잠하는 90년대 이후 소설보다, 공지영의 소설이 더 공감이 갑니다. 60년대생이라 그런가봐요.

로드무비님/으음, 님도 저처럼 침이나 방귀를 좋아하시나봐요^^
 

  미스하이드

“또야?”

미스 하이드는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첫키스에 관한 장문의 글을 올리려는데, 등록이 안되는 거다.

‘글이 날라가면 안되니까...’

미스하이드는 ‘뒤로가기’를 클릭했다. 하지만 너무 흥분한 탓에 그만 두 번을 눌러버린 것. 황급히 ‘앞으로’를 눌렀지만 글은 이미 지워진 상태였다.

“으아아!” 미스 하이드는 분노에 몸을 떨면서 모니터를 향해 손에 쥔 마우스를 던졌다.

“퍽!” 소리와 함께 마우스가 산산조각났다. 순간, 미스 하이드는 화면에서 판다 한 마리가 웃고 있는 것을 봤다.

오즈마

밤 12시, 오즈마는 딸기와 깍두기를 집어 먹으며 리뷰를 쓰고 있었다.
‘이 리뷰만 올리면 주간 서재의 달인 30위는 안정권에 든다. 음하하하’
하지만 순간 화면이 바뀌면서 이런 메시지가 떴다.
“정기점검 시간입니다. 매일 오전 5;00 - 6:00”
오즈마는 황망했다. “아니 지금 12시밖에 안됐는데 무슨 정기점검이냐고!”
오즈마는 먹으려던 깍두기를 모니터에 던졌다. 흘러내리는 깍두기 국물 사이로 판다 한 마리가 웃고 있었다.


알라딘 폐인 진우맘은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달리고 있었다.

“잡아라!” 

물만두와 토깽이탐정이 뒤에서 쫓아오고 있다. 진우맘은 젖먹던 힘을 냈다. 격차가 벌어지는 순간, 물만두가 뭔가를 손에 쥐었다.

“슉!”

구두가 바람을 가르며 날라갔다.

“윽!” 구두는 진우맘의 목에 정통으로 맞았다.

“안돼!”

진우맘은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컴퓨터를 하다가 그대로 잠이 든 거였다.

‘꿈이었구나’

하지만 목은 아직도 얼얼했고, 발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진우맘은 입가의 침을 닦았다. 모니터를 바라보니 이런 문구가 떠 있다.

‘죄송합니다. 시스템 과부하로 사용이 중단되고 있습니다’

“이런, 아직도 에러야? 요즘 왜 자꾸 이러지?”

진우맘은 기지개를 켜고 창가로 갔다. 순간 진우맘은 멈칫했다. 물만두와 토깽이탐정이 자기 집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위기감을 느낀 진우맘이 뒷문으로 나가는 순간, 물만두는 문을 박차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엥? 어디 갔지?”

“눈치채고 튄 거 아닙니까?”

토깽이 탐정의 말에 물만두는 움푹 들어간 방석을 가리켰다.

“아냐, 멀리 못갔을 거야. 이 근처를 찾아봐!”

진우맘의 가슴이 방망이질했다.

“이쪽으로 나간 것 같은데요?”

그들이 뒷문으로 나오는 순간, 헛간 옆에 숨어있던 진우맘은 바람을 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저기 있다!”

물만두와 토깽이탐정이 그들을 쫓았다. 진우맘이 골목길에 접어든 순간, 물만두가 뭔가를 집어들었다.

“슉!”

진우맘은 순간 지하로 통하는 배수구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몸을 날렸다. 구두는 겨우 피했다. 그러나... 배수구는 생각보다 좁았고, 머리는 겨우 넣었지만 hip이 배수관 입구에 걸리고 말았다.


“여기가 어디지?”

눈가리개가 풀리자 몇몇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 수니나라! 여기 웬일이야? 스텔라도 있구나! 어머나 실론티!”

실론티가 진우맘의 손을 잡았다.

“진우맘, 너도 잡혔구나”

진우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희들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알라딘 서재 폐인들을 잡아들이고 있어”

진우맘은 찬찬히 고개를 돌렸다. Kel, 보슬비, 나나, chika, 한다하는 서재폐인들이 다 모여 있었다.

“왜, 왜 그러는 거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Kel이 입을 열었다.

“그건 우리도 몰라. 분명한 것은 우리가 모두 하루 열시간 이상씩 알라딘에 접속하는 서재 폐인들이라는 거야”

진우맘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럼 교봉이나 그래스물넷의 짓이 아닐까?”

chika가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순간, 벽 한쪽이 무너지면서 스포츠카 한 대가 나타났다. 모두 어리벙벙하고 있는데, 거기서 남자와 여자가 한명씩 내렸다.

“진우맘! 어서 타시오!”

여기 있는 것보다는 나가는 게 낫겠다 싶어, 진우맘은 무작정 차에 올라탔다.

“다른 사람들은요?”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다 구하기엔 우리가 힘이 너무 딸려요”

순간, 아영엄마가 차에 올라탔다. “나도 데려가 줘요!”

수니나라도 차 트렁크를 붙잡았다. “저두요!”

순간, 저쪽에서 물만두를 비롯한 한떼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잡아라!” 물만두가 소프라노 톤으로 소리를 치자, 사람들은 우르르 달려들었다.

“안되겠어요! 출발!”

스포츠카는 굉음을 내며 출발했고, 그 바람에 차 위에 올라와있던 아영엄마와 수니나라는 거꾸로 쳐박히고 말았다. “으, 허리야...” 아영엄마가 구슬픈 비명 소리를 질렀다.


“당신들은 누구죠?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건가요?”

진우맘이 재차 묻자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나는 하얀마녀라고 해요. 운전을 하는 분은 로드무비. 궁금한 게 많겠지만 자세한 것은 본부에 가서 듣도록 해요”

스포츠카 뒤로 차 몇 대가 따라붙었다.

“탕탕!” 총소리가 나자 진우맘은 간이 콩알만해졌다. 하지만 로드무비는 능숙하게 운전을 하면서 그들을 따돌렸다.

“윽!”

진우맘이 비명을 지르자 하얀마녀가 놀란 표정으로 돌아봤다.

“맞았소?”

“그, 그게 아니라...너무 놀라서 그만 소, 소변을....”

하얀마녀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 시트 간 지 얼마 안됐는데....”

차들은 계속 쫓아왔다.

“자, 꼭 잡아요!”

하얀마녀가 소리치자 진우맘은 앞좌석 등받이를 꽉 껴안았다. ‘펑’ 소리와 함께 차가 지하로 들어가고 있었다. 진우맘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찌리릿

“이제 좀 정신이 드나요?”
눈을 떴다.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다, 당신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뵙는군요. 전 찌리릿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씩 인사를 했다.

“전 평범한여대생이구, 이쪽은 스윗매직, 그 옆에는 멍든사과”

또다른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저는 마립간입니다”

“당신들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죠?”

마립간과 평범한여대생은 서로를 쳐다봤다. 평범한 여대생이 입을 열었다.

“요즘 알라딘에 부쩍 에러가 많이 뜨지요?”

진우맘은 그렇다고 했다.

“알라딘 서버는 사실 2천세실이란 거대한 용량을 가지고 있죠. 세실은 당신도 아시겠지만 기가의 천만배를 일컫는 단위입니다. 회원수가 천만이라는 싸이월드의 서버가 100세실도 안된다는 걸 감안하면, 회원수 500만에 불과한 알라딘 서버는 큰 편입니다”

“그, 그런데 왜 그렇게 에러가 많이 나는 거죠?”

평범한여대생이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그걸 설명하려는 거요. 혹시 에러가 날 때 판다를 본 적 있소?”

진우맘은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그러고보니 몇 번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한번인가는 판다의 웃음소리도 들은 것 같다.

“그게 바로 판다바이러스요”

“판다바이러스?”

평범한여대생은 모니터 화면을 켰다.

  

“보세요. 여기 판다가 보이죠?”

화면에는 판다 한 마리가 화면 구석에서 웃고 있었다.

“놈들의 힘이 더 강해졌소. 이젠 화면에 상주를 하는 걸 보니”

“놈들이라뇨?”

평범한여대생이 말을 하려는데 스윗매직이 앞으로 나섰다.

“나도 말 좀 하자, 응? 그러니까 그 놈들이란...”

진우맘이 끼어들었다. “교봉인가요?”

스윗매직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소. 하지만 지금 교봉에도 비슷한 오류가 나타나고 있어요. 그래스물넷도 물론이고”

“그, 그렇다면...”

“혹시 마냐라고 들어봤소?”

“마냐라면...알라딘을 털다가 붙잡혔던 그 협객?”

마냐

스윗매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그 마냐가 지금 판다바이러스를 이용해 인터넷서점을 정복하려는 거요. 다른 서점이 바이러스에 걸려 있는 사이 그들은 판다 디스커버리 총서를 내고, 책을 반값에 파는 등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소”

진우맘이 물었다. “그럼..우리를 잡아들이는 이유는...?”

“서점 정복에 서재폐인들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실제로 하루 열시간 이상씩 알라딘 서재질을 하는 폐인들의 존재는 그들에게 적지않은 위협이 되지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야클을 없애야 하오”

“야클?”

“야클이란.... 바로 판다 바이러스를 만들어내는 곳이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사이버상에 있지요. 그게 어디 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만, <슈렉2>에 나왔던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고 하오”

 

“그럼 야클을 잡기 위해서는....”

스윗매직이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때, 마립간이 사탕 두 개를 가져왔다.

“이게 뭔가요?”

“보면 모르오? 사탕이오. 하나는 빨강, 하나는 연보라. 둘 중 하나를 고르시오”

진우맘은 잠시 궁리하다 연보라빛 사탕을 집어 입에 넣었다.

“어떤 차이가 있는 거요?”

마립간이 대답했다. “빨강 사탕은 색소가 더 많이 들었소. 그만큼 해롭죠. 당신은 선택을 잘 한 거요”

 

 

 멍든사과

잠시 뒤. 진우맘은 몸에 마우스를 칭칭 감은 채 멍든사과와 함께 서 있었다.

“이, 이런 무식한 방법으로 사이버 세계에 접속한다니....”

멍든사과가 핀잔을 주었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게 아니오? 현실이란 영화 속과 달리 비루하기 짝이 없는 곳이오. 갈 시간이오”

진우맘은 멍든사과와 함께 모니터로 달려들었다. 또 hip이 끼는 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얼마 후 둘은 낯선 곳에 서 있었다.

“우리가 잘 들어온 건가요?”

멍든사과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한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그 많은 서재폐인 중 왜 하필 나지요?”

“물어볼 줄 알았소. 가을산이라는 분이 있소. 사이버세계에만 존재하는 예언자지요. 그가 말하기를, 2005년 알라딘에 큰 혼란이 있을 것이며, 그걸 막을 자는 ‘마민주’ 뿐이라고 했소”

“마민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인데?”

“우리도 필사적으로 찾았지만, 그 비슷한 이름도 없더이다. 술 잘먹고 무술이 뛰어난 찬타, 아름드리 나무를 뿌리째 뽑는다는 책나무, 내공이 뛰어난 에피메테우스, 물속에서 5분간 잠수해 있을 수 있다는 금붕어, 앉은 자리에서 소 한 마리를 능히 먹는 라일라.... 이들 모두가 야클을 찾으러 갔다가 판다를 만나 희생되고 말았소”

“희생? 저...온라인에서 죽으면 오프라인에서도 죽는 건가요?”

“그렇진 않소. 다만 자기 서재를 잃는 것일 뿐. 한번 서재를 잃으면 두달간 서재 없이 지내야 하오”

서재 없이 두달이나? 진우맘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다 당신을 발견했소. 당신의 이름은 진우맘, 영어로는 jinwoomam이지요. ‘마민주’는 maminjwoo, 당신과 스펠링이 놀랍게도 일치하오. 그래서 우리는 당신이야말로 가을산이 말하는 ‘마민주’라 생각하고 위협을 무릅쓰고 구한 것이오”

진우맘은 갑자기 부담이 되었다.

“나, 난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데... 간단한 심리검사 정도밖에는....”

“우리도 구해놓고 긴가민가 하는 중이오. 일단 갑시다”

“어디로요?”

“따라오면 알지!”

 

가을산님의 로미

 

 

 

 

 

 

 

 

 

 

 

 

 

 

 

 

 

 


 

“글세, 잘 모르겠는데...”

진우맘의 손을 살피던 가을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켜보던 멍든사과가 화를 냈다.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맞으면 맞다, 아니면 아니다, 라고 해야 할 게 아닙니까!”

가을산은 바싹 탄 쿠키를 입에 넣었다.

“내 말은, 자신이 ‘그’라고 믿으면 그렇게 된다는 뜻이야. 진우맘이 마민주일 수 있어. 자기 하기에 따라서”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고 해줘야지 예언이란 게 그렇게 아리송해가지고!”

멍든사과가 계속 화를 내자 가을산이 웃었다.

“이봐, 자넨 이 세계를 몰라. 예언이란 말야, 최대한 아리송하게 해야지 틀려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거야”

그때, 문이 열리며 판다 몇 마리가 들어왔다. 멍든사과는 공포에 질렸지만, 가을산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가을산님, 하나만 물어 볼께요. 판다가 올 걸 알고 있었습니까?”

“그럼. 난 기다리고 있었어”

“아니 그럼 나한테 미리 말을 해주던가!” 하지만 멍든사과는 그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으악--------!” 멍든사과의 비명 소리가 멀리 메아리쳤다.


모니터를 바라보던 하얀마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멍든사과가 당했군. 이제는 진우맘이 어떻게 해주느냐에 달렸어”

마립간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이것 봐. 판다가 점점 커지고 있어!”

아닌게 아니라 화면 구석에 있던 판다는 점점 커져, 모니터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화면 전체가 판다로 채워진다면...그땐 모든 게 끝이야” 로드무비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진우맘 자신이 지금 살아 있다는 거다. 달리는 도중 판다 몇 마리를 만났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은 자신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어머나!”

거울 앞에 선 뒤에야 진우맘은 그 이유를 깨달았다. 자신이 판다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었던 것. 멍든사과가 판다 한 마리를 해치우고 그 가죽을 자신에게 줬던 것 같다.

‘사과....흑흑’

아무도 없는 곳에 이르자 진우맘은 문득 자신이 가을산이 말한 ‘그’인지 궁금했다. 그녀는 2층짜리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내가 바로 마민주라면, 여기서 뛰어내려도 괜찮을 거야”

진우맘은 뒤로 물러났다가 힘차게 도약했다.

“윽! 아이고 히프야!!”

진우맘은 그대로 삼십분을 뻗은 채로 있었다.


“도대체 뭐하는 거야?”

모니터를 보던 마립간이 짜증섞인 목소리를 냈다.

“지금 저럴 때가 아닌데...” 점점 커지는 판다를 바라보던 평범한 여대생이 조용히 말했다.

“진우맘이 마민주가 아니면 어떡하죠?” 로드무비의 말에 하얀마녀가 손을 내저었다.

“지금은 그녀가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야. 그녀가 마민주라는 걸 믿어 볼 수밖에”


진우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히프의 통증은 말끔히 가신 상태였다.

‘이제 뭘 해야 하지?’

주머니에 먹다 만 사탕이 있다는 게 생각났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사탕이 여전히 만져졌다.

‘이럴 수가. 여기는 사이버세계인데...’

진우맘은 사탕을 한입 물었다. 단맛이 느껴졌다.

‘이건 사탕이 단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느끼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이랬지’

순간, 진우맘은 사탕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사탕을 주우려고 허리를 굽히는데, 총알 하나가 진우맘의 머리 위로 지나갔다. 위기일발이었다. 뒤를 보니 판다 세 마리가 팔짱을 끼고 서있다. 도망가려고 했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피융!” 

총알이 다시 발사되었다. 진우맘은 비스듬히 누운 채 총알을 피했다. 다시 일어서면서 진우맘은 높이 뛰어올랐다가 판다 한 마리를 향해 발차기를 했다.

“깩!”

판다가 비명을 질렀다. 진우맘은 옆에 서있던 판다의 머리를 붙잡아 벽 쪽으로 던져 버렸다. “켁!” 판다는 그대로 뻗었다. 남아있는 판다 한 마리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진우맘은 손가락 하나를 펴 이리로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판다가 등을 보이고 도망쳤다. 진우맘은 옆에 있던 아구찜 조각을 주워 힘차게 던졌다. 아구찜은 판다의 머리에 정확히 명중했다. 진우맘은 쓰러진 판다 세 마리를 갈대로 묶었다.

‘고양이를 찾으랬지...슈렉2에 나오는 고양이..’


“지금 봤어?”

하얀마녀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평범한 여대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봤어. 정말 대단했어”

“저런 동작은 어떤 누구도 하지 못했던 거야”

로드무비가 말했다. “정말...진우맘이 마민주가 아닐까?”

오랜 기간 침묵하고 있던 찌리릿이 입을 열었다. “아마 그럴 거야. 가을산이 그랬는데 마민주는 이주의 화장품 리스트에 뽑힐 거래...” 찌리릿은 진우맘의 당첨 소식이 담긴 페이퍼를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모두의 얼굴에 희색이 감돌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걸까?”

진우맘은 자신이 한 일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높이 뛰어오르고, 아구찜을 던져 판다를 기절시키고...’

순간, 진우맘의 눈에 판다 한 마리가 들어왔다. 진우맘은 그대로 달려가 판다를 팔꿈치로 가격했다. 비명을 지르면서도 판다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했다.

“으....그만하세요! 전 그런 판다가 아니어요”

판다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전 판다가 아니라 에슐리(eslie)예요. 판다를 이미지로 쓰고 있을 뿐이어요”

 eslie

자세히 보니 그 판다는 전에 만난 판다와 달랐다. 울컥 미안한 맘이 들었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뭐, 그럴 수도 있죠” 에슐리는 흙을 탈탈 털고 일어났다. “판다들이 하도 극성을 부려서 판다 이미지를 쓰고 있었어요”

좋은 길동무가 생겼다고 생각했을 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진우맘, 배터리가 다 됐어! 어서 돌아와!”

하얀마녀의 목소리였다.

“배터리라니?”

“서재 안에 들어가면 세시간 이상 있을 수가 없다고! 일단 밖으로 나와!”

“나가는 방법은?”

“아까 들어왔던 그곳에 배수구가 있을 거야. 그리로 들어가”

“알았어. 근데...너 왜 반말해?”

진우맘은 에슐리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이런!”

눈앞에 판다 네 마리가 나타났다. 진우맘은 이단옆차기로 한 마리를 쓰러뜨린 후, 팔꿈치와 무릎으로 또다른 두 마리를 가격했다. 그리고는 공중으로 뛰어올라 나머지 판다에게 박치기를 했다. “으으으윽!” 가냘픈 비명소리가 나면서 판다 네 마리는 땅바닥에 누웠다.

“대단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에슐리가 옆에서 손뼉을 쳤다.

“시간이 없어. 어서 가자!”

그때였다. 우당당탕 소리가 나더니 한떼의 판다가 나타났다. 족히 백마리는 넘을 것 같았다.

“빨리!”

진우맘은 에슐리의 손을 붙잡고 달렸다. 조금 달리다 보니 배수구가 보였다.

“먼저 들어가!”

진우맘은 에슐리의 등을 밀어 배수구에 넣었다. 이제는 자신이 들어갈 차례였다.

‘오프라인에서 배수구에 들어가다 hip이 끼었는데... ’

뒤를 보니 판다들이 거리를 바싹 좁히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그렇게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했지...’

진우맘은 배수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펑” 소리와 함께 진우맘은 회색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있었다. 찌리릿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진우맘은 그를 향해 브이 자를 그려보였다. 사람들의 박수 갈채가 터져나왔다.

“화면을 보세요!”

판다의 크기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은 채, 화면의 절반 정도에서 멈춰 있었다.

“당신의 힘이 판다를 제압한 거예요!” 로드무비가 신나서 펄쩍펄쩍 뛰었다. 순간, 진우맘의 휴대폰이 울렸다.

“진우맘, 아니 마민주라고 불러야겠지. 나 마냐야”

“마냐?”

“제법이더군.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우리는 판다가 수없이 많다고. 니가 해치운 건 겨우 일곱 마리 뿐이야”

진우맘은 호흡을 가다듬고 전화기에 입을 갖다댔다.

“니가 내게 전화한 이유는 두렵기 때문이야. 아닌가? 우리 서재인들은 강해. 니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우리는 다시 알라딘을 재건할 거야. 두고 봐. 난 다시 들어가 야클을 없앨 거야. 니 서재도 물론”

“이, 이런 발칙한...” 마냐는 뜻밖의 기습에 당황했다.

“두고봐. 마냐. 알라딘의 평화를 위협하는 어떤 것도 용서치 않겠어! 우리 서재폐인들이 있는 한, 알라딘은 영원하다고!”

전화는 그대로 끊어졌다. 스윗매직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따라서 박수를 쳤다. 그 박수는 두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이번엔 되야 할텐데...’

멍든사과는 어머님 주민등록번호로 서재를 만들려고 하는 중이었다.

“야! 됐다! 드디어 서재 복구 성공!”

그간 썼던 글을 몽땅 잃은 것은 아깝지만, 새 서재에서 새 출발을 하는 것도 괜찮았다.

“서재이름을 뭐라고 하지? kimji? 매너리스트?”

잠시 고민하던 멍든사과는 서재 닉네임을 쓰는 칸에다 자신의 본명을 적어넣었다. 박-찬-미.


* 마지막 결말이 왠지 ‘배달의 기수’처럼 되어 버렸군요. 어제 술먹다 생각나서 종이에 끄적거린 걸 오늘 한시간 반이 걸려서 완성했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구요, 등장하지 못하신 분께 심심한 사과를, 그리고 고생해주신 진우맘님과 마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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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1-11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 역시 책을 내셔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입니다^^ 진/우맘님과 마냐님 출연료 협상하세요^^

하이드 2005-01-11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상적인 첫문단입니다. 제 마우스가 로지텍 최신형 럭셔리 마우스만 아니였다면, 몇번 던지고도 남았을텐데 말이지요. 음. 판다는 지름신의 다른 모습인줄만 알았더니, 에러도 내는군요. 근데, 저 2000세실 얘기 사실입니까? 싸이월드는 100세실이구요? 그리고 요즘 정말 부쩍 에러가 많습니다. 배송도 늦어지구요. 수행하는 기분으로, '인'자를 그리고 있..는건 당연히 아니고, 고객센터와 알라딘 마을에 뻔질나게 드나들며 불뿜고 있습니다.

▶◀소굼 2005-01-11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멍든 사과님을 주시는 겁니까?;

로드무비 2005-01-11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는 능숙하게 운전하여 그들을 따돌렸다.(맞나? 아무튼)

황홀합니다.

저 운전면허증 없거들랑요.^^ㅎㅎ

야클 2005-01-11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출연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록 악역이긴해도... *^^*
제 Debut작이니 퍼갈게요.

날개 2005-01-11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넘 재밌군요..^^

이제 알라트릭스-리로디드 와 레볼루션을 기다려야 하나요? ^^

호랑녀 2005-01-11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우와... 감동적인 소설입니다.

클리오 2005-01-11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은 아마도 진/우맘 님의 화장품 리스트 당첨에 부러움을 품어서 구상하신 소설인게지요? ^^ 진짜 사이버 세계의 메트릭스군요.. ^^

플라시보 2005-01-11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님의 삼류소설을 보면 진/우맘님과 마냐님이 역대 주인공을 가장 많이 하신것 같아요. 그리고 늘 그렇게나 많은 서재 주인장을 일일이 등장시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을듯^^ 박수 짝!짝!짝!

sooninara 2005-01-11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 아니 마민주님이 많이 망가지는군요..

에고 마태우스님..이번엔 조연으로 출연시켜주셔서 감사하옵니다^^

하얀마녀 2005-01-11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류 소설은 언제 읽어도 재미있습니다. 이번엔 매우 멋진 배역을 주셨군요. ^^

panda78 2005-01-11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마태님, 우리 말로 해요, 말로...

마냐 2005-01-11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화화핫...늘 악역 1위를 노렸는데, 이번엔 천하무적 판다님이 버티고 계셔서 무척 마음에 듭니다...마태님은 천재예용...

하루(春) 2005-01-12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고 역시나 기발한데 너무 길어서 일단 보류합니다. 6손가락으로 치려니 시간이 5배는 더 걸리는 것 같네요. 오늘은 혈액형에 관한 거 봐야 하는데... 내일이나 모레쯤 다시 읽을래요. 아~ 궁금해라. 님의 소설을 읽으면 알라디너들의 이름을 알 수 있어서 더할나위없이 좋아요.

코코죠 2005-01-12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얼마전에 알라딘 측근으로부터 심하게 고문을 당했더요. 왜 마태님과의 스캔들을 조장하다가 스스로 자멸했느냐...그 사건 이후로 당신이 알라딘에서 잠적했다던데 사실이냐 등등등...그러나 마태님이 이렇듯 멋지시니 제가 어찌 그런 망발을 서슴치 않을 수 있겠더요. 마태님, 마태님은 만인의 연인, 마냐님 말씀에 올인, 마태님은 천재가 분명해욧욧욧!!! 꺄아아악

노부후사 2005-01-12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대작이군요. 진우맘님 정말 고생 많이 하셨겠어요. ^^

마태우스 2005-01-13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피님/이게 대작인 이유는 다른 3류소설보다 1.7배 가량 길다는 거죠. 에이포로 여덟장 가량 썼으니...

오즈마님/천재는 무슨...오즈마님과 저는 마 패밀리잖습니까.

하루님/흠, 마지막 말씀에 약간의 이의. 알라디너들의 이름을 알아야 제 소설이 의미가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예컨대 제가 "뭐 이따우가 있어"라고 하면 아는 사람은 따우님을 언급한 거라는 걸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그냥 하는 말인지 알잖습니까. 하핫.

마냐님/마냐님, 늘 출연해 주셔서 악역 맡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님의 인기는 제 3류소설을 빛내줍니다

판다님/우리말로 하자는 건 이 소설이 영어로 되어있다는 말?

하얀마녀님/며칠 안보이시기에 제가 좀 신경을 썼습니다. 하하핫.

수니친구님/아이, 우리 친분을 생각하면 좀더 비중있는 역을 드려야 하는데...

플라시보님/그러고보니 님을 빼먹었군요. 으음...

클리오님/아, 아닙니다. 제가 마음이 좁아서 그렇지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닙니다...

켈님/그게요, 다 쓰고 보니까 좀더 잘해드렸어야 하는데, 하고 후회가 되더군요. 다음번엔 꼭...

따우님/술 한번 같이 먹고 풉시다 몸 만들고 있음.

호랑녀님/아이 죄송합니다. 또 님을 빼먹었네요. 감동적, 이란 말 너무 좋아요

날개님/쿨하게 끝났죠? 야클을 파괴하고 끝나면 너무 신파라서...하핫.

야클님/퍼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로드무비님/으음, 그럼 무면허운전을 하셨단 말이죠.....

소굼님/사, 사과님을 누구한테 드리는 거죠??? 전 잘 이해가...

하이드님/세실 얘기는 당근 구라입니다. 설마, 저희 것이 싸이월드보다 크겠습니까...글구, 좋은 마우스 쓰시는군요.

물만두님/가장 먼저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은 무슨...내봤자 저희만 살 거예요...^^


진/우맘 2005-01-13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마나....저, 몸에 비해 그리 큰 엉덩이가 아니랍니다! 아마도 배가 끼었을 것 같은데....ㅠㅠ

오랜만의 대작이구만요. 리스트 당첨보다 3류소설 주역을 맡은 것이 더욱 기쁩니다. 음하하하ㅏㅅ

조선인 2005-01-13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저도 이름을 바꿔야 출연횟수가 늘지 않을까 싶네요. -.-;;

클리오 2005-01-13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마태님을 나쁜 놈이라고 말한거 아니예요.. 믿어주세요!! ^^;

비로그인 2006-12-31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kimyh9671pp@naver.com으로 삼류소설을 보내주시면 안되겠나이까?그것도 글만-_-;;왜냐면 글이랑 사진이랑 합체를 해버려서;;;
 
우리 몸 기생생물에 대한 관찰노트
로버트 버크만 지음, 이은주 옮김 / 휘슬러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선물을 받는 건 언제나 좋은 것이지만, 전혀 생각지 않았는데 받는 선물은 한층 더 기쁘다. 작년 연말, 크리스마스 카드 한 장과 더불어 <우리 몸 기생생물에 대한 관찰노트>라는 책이 배달되었다. 내 글 언제나 즐겁게 읽고 있다면서. 그러고보면 열심히 인터넷에 글만 쓰는 게 전혀 무익한 일만은 아니다.


요즘 기생충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예전에는 ‘기생충’을 검색하면 학생들이 쓰는 교재만 잔뜩 나왔는데, 지금은 <기생충제국>을 비롯해서 대중들을 상대로 기생충을 설명하는 책들이 몇권 눈에 띈다(김미영님이 쓴 <기생충>이란 책은 술따르는 기생인 ‘충’의 이야기이지, 기생충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대통령...>같이 수준이 처지는 책들도 있지만, 이유야 어찌되었건 기생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나쁜 일만은 아니다. 비공개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기생충감염률이 3.7%로 다소 높아졌다고 하니, “21세기는 기생충의 시대다”라고 말하면서 날 꼬셨던 모교 교수님의 말씀이 드디어 실현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우리 몸에 기생하는 여러 생물들을 다루며, 당연하게도 기생충이 많이 나온다. 저자는 회충을 가장 성공한 기생충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으로 치자면 회충은 빌 게이츠급이다” 왜? 65억의 인구 중 12억명이 이 기생충에 걸려 있으니까. 그리고 또? “교활한 기생충은 숙주를 지나치게 괴롭히지 않는다” 숙주를 죽이면 다음 세대에 전파가 안될 것이고, 증상이 심하면 숙주가 이 기생충을 멸종시키기 위해 노력할 거니까. 하지만 저자의 주장과는 달리 난 회충을 실패한 기생충으로 규정한다. 모양이 징그럽게 생긴데다 증상도 꽤 잘 일으켜 기생충 박멸의 타겟이 된데다, 오직 사람에서만 성충이 되는 까다로운 특성으로 인해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는 멸종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니까. 그것보다는 간디스토마가 좀더 뛰어난 기생충이 아닐까 싶다. 백마리가 넘지 않으면 증상이 없고, 1센티 정도로 크기가 작아 잘 보이지도 않는다. 모양도 귀여워 혐오감도 일으키지 않으며, 결정적으로 고양이나 개 등 다른 동물에도 잘 감염되어 종족보존을 할 수 있다. 지난 30년 동안 간디스토마의 감염률이 꾸준히 2-3% 선에서 유지되었다는 것은 이 기생충의 훌륭함을 잘 입증해 준다.


누가 더 훌륭한 기생충이건간에 기생충학자의 목적은 기생충을 이용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것, 이 책에서도 기생생물을 이용해 인류에게 공헌하는 방법이 몇가지 소개되어 있다. 당뇨병 환자들에게서 잘 오는 발 궤양을 구더기를 넣음으로써 낫게 한다든지, 자가면역 질환으로 알려진 염증성 장질환을 편충을 감염시켜 치료하고, 천식과 같은 알레르기 환자에 기생충을 감염시킴으로써 증상을 완화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백해무익처럼 보이는 것들도 잘만 이용하면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는 것, 외모가 좀 징그럽게 생겼다고 너무 탄압만 할 건 아니다. 가격이 15000원으로 비싼 것이 흠이지만 독자를 위해 최대한 쉽게 쓰여진데다 저자의 유머가 곳곳에서 빛나며, 기생충과 세균, 그리고 곤충들의 컬러사진이 아름답게 수놓아진 멋진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선물해주신 파비아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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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0 16: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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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0 17: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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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1 09: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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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1 1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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