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신부’를 봤다. 영화로 보기는 돈이 아까울 것 같아 TV에서 해주기를 기다렸는데, 벌써 해준다. 요즘 TV, 많이 좋아졌다.
1. 학벌
문근영은 어린 나이에 데뷔했다. 연극영화과를 제외한다면, 연예인의 학력은 대개 데뷔한 곳에서 정지되기 마련이다. 서울대 사회학과에 다니던 이적은 졸업하는데 무진장 오래 걸렸고, 서강대 재학 중 데뷔한 신해철도 오래 걸린 건 마찬가지였다. UN의 김정훈은 서울치대에서 아예 잘렸다. 공부를 못해도 자동으로 올라가는 고등학교야 좀 다르겠지만, 공부와 연예인 생활을 병행한다는 건 하여간 힘든 일이다. 나같이 학벌주의에 경도된 사람은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몇년만 더 참고 데뷔하면 좋을 것을. 이왕 들어간 대학, 졸업장이라도 받으면 좋잖아?”
이런 내 의문에 대해 반 연예인으로 활동 중인 표진인은 명쾌한 대답을 해준다.
“나 봐라. 늦게 데뷔해서 못뜨잖냐”
그렇다. 연예인의 수입이 일반인보다 훨씬 많고, 그리고 한번 뜨고 나면 먹고살 걱정이 없다면 대학 졸업장이 없다한들 뭐가 문제겠냐. 뜰 가능성이 있다하면 모든 걸 때려치우고 그 길에 매진하는 게 좋은 이유다.
연예인 X 파일에 의하면 문근영은 공부를 잘한다고 한다. 그러니 영연과가 아닌 일반대학 일반학과에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을텐데, 하고 아쉬워하는 걸 보면 확실히 난 학벌주의에 너무 빠졌다.
2. 눈은 뒀다 뭐하나
‘어린 신부’로 문근영이 주가를 올릴 무렵, 난 “저런 배우도 있었나” 싶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녀는 내가 극장에서 봤던 ‘장화홍련’에 나온 배우였으니, 내 눈이 문제다. 최근에 TV로 본 ‘레옹’에 나왔던 마틸다가 ‘클로져’에서 스트립 댄서로 나오는 나탈리 어쩌고라는 건 모를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영화 초반에 안경을 쓰고 나왔던 쥬 드로가 잠시 후 안경을 벗고 나오자 ‘쟤는 또 누구야?’라고 했던 사실을 상기해 보면, 사태가 좀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을거다. 다른 친구들은 배우를 보면 이름을 바로 알던데, 난 한때 톰 크루즈와 찰리 씬도 헷갈렸을 정도다. 배우만 그런 게 아니라 친구 어머니 얼굴도 무진장 혼동했는데, 심지어 이런 일도 있다. 길가에서 낯익은 얼굴을 만났는데, 도저히 생각이 안나서 인사를 하고나서 물어봤다. “그런데, 누구 어머니시죠?”
그 아주머니가 나랑 겁나게 친한 친구의 어머니이자 우리 엄마의 친구인 걸 알고나자 스스로가 한심했다. 집에 가는 길도 잘 모르는 등 길눈도 심하게 어두운 걸 보면, 내게는 공간적인 능력이 결핍되어 있는 것 같다.

3. 문근영
영화는 사실 별 내용이 없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스토리. 거기다 우연은 왜 그리 자주 나오는지. 그 넓은 제주도에서 김래원이 문근영의 친구를 두 번이나 만나는 것, 좋아하는 야구선수를 보러 야구장에 갔다가 TV를 보던 김래원에게 들키는 장면, 김래원이 교생실습을 문근영 학교로 간다는 설정, 이 모든 것들이 현실에서는 별로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우연이 없는 영화는 없겠지만, 너무 자주 나오면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바, 난 우연 많은 영화 치고 좋은 영화를 보지 못했다. ‘어린 신부’는 내 기준에 우연의 상한선을 넘었다.
시나리오가 이러니 믿을 건 문근영의 귀염성 뿐. 그녀는 기대에 걸맞게 귀여운 척을 많이 하는데, 귀여운 애가 그러니 진짜로 귀여웠다. 문근영은 사실 황신혜급의 조각같은 미녀는 아니다. 눈이 붕어처럼 위에는 평평하고 아래는 볼록한 스타일이라 어릴 때는 귀엽지만 나이가 들면 성숙한 매력을 지닌 여인으로 성장할 것 같지는 않다. 그거야 나중 문제고, 하여간 이 영화에서는 문근영 특유의 매력이 듬뿍 살아숨쉰다.
그렇다 해도 ‘어린 신부’를 너무 강조하다보니, 좀 오버한 감이 있다. 극중에서의 나이는 고1, 16세면 사실 어린 나이는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근영은 정신연령이 중학교, 심하게 말하면 초딩 수준으로 나온다. 결혼은 형식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비롯해 하는 짓들이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 과일을 던지며 노는 건 다섯 살짜리 조카가 좋아하는 놀이인데.
4. 결혼
얼마 전 ‘상상 플러스’-요즘은 별걸 다본다-에 지석진이라는 사람이 나왔다. 유부남인 그는 후배들에게 결혼에 대한 생각을 말해 달라고 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결혼은 급히 서둘 필요가 없다”
다시 태어나도 또 아내와 결혼하겠냐는 질문에 “기회는 많다고 생각해요”라고 답했다. 웃겨 죽는 줄 알았다.
5. 기타
-할아버지가 회상을 하는 장면. “사실 난 상민이 할머니한테 마음을 두고 있었어. 참 미인이었지” 이 장면에서 화면에 비춰지는 건 전원주의 사진.
-문근영은 신혼여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하고, 결국 김래원 혼자 비행기를 타고 간다. 이게 말이 되나. 화장실에 간다면 따라가서 기다리든지 해야지, 먼저 비행기를 타고 있다니.
-교생으로 온 김래원을 좋아하는 노처녀 선생, 좀 처절하게 그려졌지만 “노처녀라고 짧게 보는 거야?”를 거듭 외칠 때 웃겼다.
6. 결론
이거보다 더 못한 영화 중 극장에서 본 것도 꽤 된다. 대표적인 것이 내 평생 한이 되었던 ‘낭만자객’. 그에 비하면 이 영화는 나름의 재미는 있지만, 극장에서 볼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고마운 MBC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