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 앞 카페에 앉아있는데, 껌파는 할머니가 들어왔다. 200원이란다. 샀다. 다른 애들은 안산다. 속으로 욕했다. “800원짜리 음료수를 마시면서 할머니 돕는 건 외면해?”
껌파는 할머니가 점점 많아졌다. 사놓은 껌을 보이며 거절했다. 처음에는 미안했는데, 시간이 감에 따라 덜 미안해졌다. 1985년의 일이었다.
십년이 지난 어느날, 길거리에서 노점상을 단속한다. 두 다리가 없어 바구니를 몸으로 밀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번쩍이는 구두를 신은 단속반이 막는다. 그는 바구니에 지그시 발을 올려놓고 있고, 그 사람은 음악이 나오는 바구니를 밀려고 발버둥을 친다. 바구니는 한발짝도 전진하지 못한다. 그 모습에 단속반은 웃음까지 띠고 있다. 그 자식을 죽이고 싶었다.
지금의 나는 누구에게 돈을 줘본 적이 없다. 지하철이나 지하도에서 돈을 달라는 사람을 숱하게 만나지만, 난 철저하게 외면한다. 건널목에서 누가 돈을 달라면 “죄송하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안면을 까고 다른 곳을 응시한다. 난 많이 변했다.
영등포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보면, 앉을만한 곳이 없다. 노숙자 분들이 자리의 3분의 1 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남루한 옷차림을 한 채 앉아있는 그들, 빈의자가 있어도 주위에아무도 앉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역 직원들이 그들을 의자에서 내몰기 시작한다. 앉은 채로 졸다가 날벼락을 맞은 그들, 왜 사람을 괴롭히냐고 항의하지만 직원들은 이렇게 답변한다.
“재워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줄 알아야지!”
그들 중 일부는 쫓아내는 것에 항의해 패악을 부린다. 난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언젠가 한번은, 그래서 내가 아침을 안먹고 간다고 우겼거늘, 엄청난 설사 욕구를 느꼈다. 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럴 수가. 화장실에는 노숙자 분들이 벌거벗은 채, 단체로 샤워를 하고 있었다. 화장실 문 앞에도 몇 명이 서있는 걸 보니 도저히 일을 볼 마음이 안나, 다른 곳으로 갔다. 그곳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문은 다 닫혀 있고, 노숙자 분들이 큰일을 볼 요량으로 몇 명이 서있다. 나오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이 참, 변소를 점거하면 어쩌라는 거야?”
난 그날 기차에서 일을 봤다.
여름에 너무 더워서 옥상에 올라가 잔 적이 있다. 시원해서 잠이 잘 올 줄 알았는데, 도무지 잔 것 같지도 않고, 다음날 피곤했다. 노숙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을 골병들게 하는 그런 것. 나름의 이유야 있겠지만, 난 그들이 왜 노숙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제 그들은 내게 가까이해서는 안되는 불가촉천민일 뿐이다. 언젠가 서울역 앞에서 노숙자 한명이 내게 뭐 하나만 물어보자고 했다. 난 그를 무시한 채 걸음을 빨리했다. 그가 화를 냈다.
“지금 사람 무시하는 거야? 할말이 있다잖아”
난 걸음을 더 빨리해 그를 떼어놓았다. 그의 말이 맞다. 난 그를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