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먹고 오후 내내 잤더니 밤에 잠이 안와서 TV를 틀었다. '키핑 더 페이스'란 영화를 한다. 얼굴만 봐도 웃긴 벤 스틸러가 목사로 나온다. 그는 찬송가를 왜 그렇게 재미없게 부르냐면서, 손뼉도 치고 춤도 추면서 부르라고 하면서 교회를 무도회장으로 만든다. 그의 파격적인 설교와 진행방식에 교인들이 반한 것은 당연한 일. 이 장면을 봤을 때 난 <할렐루야>를 생각했다. 박중훈이 돈을 노리고 가짜 신부로 위장취업한 그 영화 말이다. 당연히 벤 스틸러도 가짜 목사일 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글쎄 그게 아니다. 그는 진짜 목사였다!

영화는 소꼽친구이던 남자 둘과 여자 하나가 어른이 돼서 다시 만났는데, 여자가 겁나게 미녀여서 둘 다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영화에서는 우정이 깨지지 않고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사실 성별이 다른 셋이 계속 잘 지내는 건 어려운 법이다. 둘이 좋아해 버리면 나머지 하나는 공중에 붕 떠버리지 않는가. 같이 놀자니 훼방놓는 것 같고, 들러리 서는 것 같기도 하고. 중요한 것은 그러니까 사심을 버리는 거다.

4년 전 여자 둘과 모임을 결성했던 적이 있다. 이름에 다 'ㅅ'이 들어간다고 S 모임으로 명명된 그 모임은 'S'가 새겨진 반지까지 맞추는 등 한동안 잘 나갔다. 그 중 한명이 대단한 미녀였지만 내가 사심을 갖지 않았던 탓에 오래 갈 수 있었는데, 별 것 아닌 이유로 다툼이 생기더니 결국 깨지고 말았다. 그러니까 사심을 버린다고 해서 모임이 잘되는 것은 아니다.

2년쯤 전부터 다른 여자 둘과 모임을 만들었다. 역시 난 사심을 갖지 않았고, 그 중 한명이 내게 가졌을지도 모르는 사심도 외면했다. 그것이 지난 2년간 모임이 깨지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사심을 버리는 것이 모든 것의 해결책은 될 수 없지만, 모임이 굴러가는 데 있어서 전제조건은 되는 셈이다. 이 모임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계속 사심을 갖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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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5-03-01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혹시 에드워드 노튼이 천주교 사제로 나오는 영화요? 저 사람은 랍비...ㅋㅋ
전 상당히 재밌게 봤습니다. 아마도 노튼이 삼촌에게 바친 영화였지 않았나..하는데요. 첫머리인지 끝머리인지에 무슨 노튼 삼촌에게, 라는 글이 뜨거든요. (삼촌이 신부님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봤던 기억이...)

sooninara 2005-03-01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노튼에게 바친다라고 자막이 나오더군요..그게 노튼 삼춘이었어요? 몰랐네.. 저도 텔레비젼에서 봤는데 너무 잼나더군요. 그런데 여자가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이쁘긴 한데 너무 서구적이라서 전 싫어요..

하루(春) 2005-03-01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eeping the Faith 좋은(개인적으로) 영화라고 생각해요. 또 보고 싶군요.

soyo12 2005-03-0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벤 스틸러가 랍비역이었고,
음 이영화가 에드워드 노튼의 감독 데뷔작이라 그 당시 노튼을 제 리스트에 넣을까 말까를 고민하던 입장이라 극장에서 봤었지요.^.^:;
여자 쥔공을 보고 같이 보던 한 오빠가 거의 기절하고, 저는 노튼을 보면서 정신을 빼놓으려 했던 기억이, ^.~

마태우스 2005-03-02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요님/음, 그 여자주인공이 오빠 타입이었나봐요? 매력적으로 나오긴 합디다만, 제 타입은 아니어요^^ 남자도 참 잘생겼더만요
하루님/앗 그래요? 음, 전 뭐 그냥....하핫.
수니님/그래요, 좀 서구적이라 느낌이 안오더군요. 전 역시 우리나라 여자들이 훨씬 이쁩니다
치카님/저도 그 자막 보고 뭔가 있다 싶었어요. 근데 곧 잊어버렸죠. 하핫.

 

 

 

 

 

지갑에 뭘 잔뜩 넣고 다니면 지갑이 빨리 닳는다. 이걸 난 4년 전에 알았다 (그래, 참 빨리도 알았구나!) 내게 지갑을 선물한 여자애가 그 말을 해줬다. 난 지갑에다 쓸데없는 걸 너무 많이 넣고 다닌다면서.

그 애 생각이 갑자기 나서 지갑을 열어봤다. 신용카드 두장, 전화카드가 한 장 있다. 주민등록증에 운전면허증이 있고, 증명사진이 4장 있다. 이번주 5천원에 당첨된 로또 표가 있고, 영화볼 때 할인을 받을 수 있는 KTF 카드와 SK 카드가 하나씩 있다. 그밖에.
-OK 캐쉬백 카드
-천안에서 버스 탈 때 쓰는 교통카드가 한 장
-철도회원카드
-파파이스 할인 카드가 있다.
-어디선가 받은 명함들, 세상에 12장이나!
-헌혈 증서 한 장
-등기 영수증이 두장

명함을 제외한다면 뭐 그렇게 쓸데없는 건 없는 것 같다. 명함도 맘에 드는 음식점이나 술집 같은 거라, 다시 찾아가려면 갖고 다녀야 한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카드가 이십장은 족히 되더만, 그에 비하면 난 양호한 편 아닌가. 근데 내 지갑은 왜 이렇게 빨리 닳는 것일까. 돈을 너무 많이 넣고 다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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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5-03-01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런 글같지도 않은 글로 또 한편을 채우는구나. 2주 연속 5천원 받더니 재미들렸나 봐?

부리 2005-03-01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하고싶은 얘기가 뭐야? 돈 많다구?? 아니면 지갑을 험하게 쓴다고?

sweetmagic 2005-03-01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명합지갑을 따로 써요 ..적립카드나 할인 카드도 같이 쓰구요
님도 그렇게 해 보세요 ㅎㅎㅎ

明卵 2005-03-01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뭘 많이 넣고 다니면 지갑이 빨리 닳는다는 거, 저 몰랐어요! 음... 지금 보니 안 쓰는 카드가 5장(쓰는 건 겨우 3장;;)이나 들어있고 비디오 쿠폰도 잔뜩에, 명함도 쓸데없이 몇 장 들어가 있네요. 빼버려야지!!
(설마, 이렇게 빼고 나서 갑자기 쓸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하고 생각중.)

샤크 2005-03-01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의 댓글이 더한걸요.

2005-03-01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샤크 2005-03-01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으로 자아분열놀이하면 재밌나요? 바쁘시겠당 >.<

마태우스 2005-03-01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윗매직님/명함수첩을 따로.... 명함수첩 사주세요!!
샤크님/오옷 님의 이미지를 볼 때마다 무섭습니다. 바닷가에 온 기분도 나고^^
속삭이신 분/제 말이 그말입니다.
명란님/근데 그것들이 다 필요한 것들이니 갖고 다니는 거겠지요. 닳는 거 알아도 줄이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 있답니다.
샤크님/자아분열 놀이가 좋은 건요, 댓글이 없어 썰렁할 때랍니다. 그리고 추천이 4갠데 다섯개를 채우고 싶다 이럴 때도..^^

sweetrain 2005-03-02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님, 지갑 사드려요?

paviana 2005-03-02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둘중에 하나만 가지고 다니세요...만약 지갑을 분실했을때 여권이 없으면 겁나 귀찮습니다..내가 나임을 증명하기가 증이 없으면 어려운 세상이니까요...

마태우스 2005-03-02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비님/아직은 쓸만합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
파비아나님/맞아요. 그래야겠어요. 운전은 가끔 하니까 면허증을 갖고 다닐래요
 

 

 

 

 

내가 머리가 안좋다고 말하면 화를 낼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 난 머리가 나쁜 것 같다. '미션 임파서블' 1편이 내겐 난해한 영화로 분류되어 있듯이 난 영화 줄거리를 파악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말귀도 잘 못알아먹는다. 내게 S대라는 타이틀마저 없었다면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남들이 다 '뭔가 있겠지'라고 생각을 하던데, 그걸로 버티고 있다)

그래도 난 연예인들보다는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다 (이건 사실 편견이다). 난 공부를 쭉 하면서 머리를 훈련시킨 반면, 그들은 그러지 않았으니까. 평소 <브레인 서바이벌>에 나오는 문제들을 틀리면서도 "흥, 내가 밥먹으면서 봐서 그런 거지, 집중하면 다 맞춘다고!"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엊그제, 무슨 생각에서인지 난 TV 앞에 쭈그리고 앉아 <브레인 서바이벌>을 집중해서 봤다. 결과는 비참했다. 단 한명만 틀릴 정도로 쉬운 문제는 물론이고 절반이 틀린 문제, 대부분 틀린 문제 등 난이도를 가리지 않고 틀렸다. 애들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화면을 보여준 뒤 "여기 나오지 않은 동작은?"이라고 묻는 질문도 틀렸고, 호빵 안먹은 용만이는 연거푸 틀렸으며, 글자 조합하는 것도 홍경민보다 한참 느렸다. 그러고나니 프로가 끝난 뒤에도 멍하니 앉아 '난 왜 이럴까?'를 생각해야 했다.

어제 아침엔 갑자기 전철을 타고 학교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급행을 타려면 7시 50분 신도림 역에 가야 하는데, 내가 도착한 시각은 7시 47분. 그때 주안행 급행이 왔다. 일단 탔다. 자리가 비어서 앉았다. 방송이 나온다. "이건 주안행이니 천안 갈 사람은 다음 역에서 내리라"고. 생각을 해봤다. 어차피 주안을 지나 천안에 가는 건데, 주안까지라도 앉아서 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안내리고 버텼다. 전철은 미끄러지듯 달렸다 (급행이니까). 앞으로 몇정거나 더 가야하나 세려고 가방에서 지하철 노선도를 꺼낸 나, 기절할 뻔했다. 천안까지 가는 노선은 수원 쪽이고, 주안.인천 방면과는 전혀 다른 길이었던 것.

황급히 전철에서 내린 나는 다시 신도림 역을 가기 위해 반대편 전철을 탔고, 빼곡이 들어찬 사람들 틈에서 몇정거를 가느라 거의 녹초가 되었다. 결국 난 영등포 역에서 기차를 타고 천안에 가야 했는데, 예약을 했던 기차는 이미 떠난지 오래라 입석으로 한시간여를 달려야 했다. 이 바보. 천안.병점.수원인데 그걸 왜 천안.주안.신도림으로 알고 있었담? 어제 아침의 해프닝은 머리가 나쁘면 고생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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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5-03-01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았다. 인정해주마. 너 머리 나쁘다!

sweetmagic 2005-03-01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제가 보기엔 님도 .............ㅎㅎㅎㅎ

파란여우 2005-03-01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반가워요. 잘 사겨 봅시다.흐흐^^

날개 2005-03-01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마태님이 겪으셨던 일을 종종 겪지만, 끝까지 머리 좋다고 버팅겨 볼랍니다..흐흐~

샤크 2005-03-01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 나쁜 님이 서울대 의대 다니셨으니 저는 저능아인가봐요.
그런 겸손같지도 않은겸손 함부로 하는거 아닌데, 머리가 나빠서 그러나요?^^;

울보 2005-03-01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신랑도 그런데 아주 큰 길치라서...

sooninara 2005-03-01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였으면 혼냈을텐데..마태님이니 참을께요..
그리고 공부 잘한다고 다 머리 좋은것은 아니잖아요..공부 머리 따로..잔머리 따로..ㅋㅋ 머리 좋아보이려면 잔머리가 좋아야..

marine 2005-03-02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브레인 서바이벌 보면 맨날 틀려요 특히 전원 만점 나오는 문제는 꼭 틀려서 내가 바보 아닌가 싶다니까요 오히려 퀴즈 문제에 강하고 순발력 요하는 문제는 영 아니더라구요

마태우스 2005-03-02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나님/어머나 님도 그렇군요. 전 퀴즈 문제에도 그다지 강하진 않습니다. 남들이 맞추는 문제는 못맞추고, 못맞추는 문제 중에는 아는 게 몇 개 있어요^^
수니님/감사합니다 참아 주셔서. 제가 또 잔머리는 겁나게 굴리는데^^
울보님/저만큼 길치겠어요? 길치들 다 모아놓고 시합 한번 했으면 좋겠어요^^
샤크님/죄송합니다. 그냥 저는 노력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어쩌면, 술을 하도 마셔서 머리가 나빠진 것일 수도 있겠네요
날개님/오오 우아한 날개에서 비롯된 님의 자신감이 존경스럽습니다 (님도 빨리 커밍아웃 하세요!!)
여우님/설마 여우님도??
매직님/하핫 님은 확실히 부리보다 절 좋아하세요^^
 

 

 

 

 

일시: 2월 28일(월)
마신 양: 막걸리---> 비싼 술로 마무리.
안좋았던 점: 아침에 눈이 안떠져서 테니스를 못감. 좀 심하게 마셨던 것 같다.

자기 하고픈대로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별로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는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사는 삶에 조금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직장에서도 내 시간을 낼 수 있고, 처자식이 없으니 그 이후의 시간도 내 자유다. 휴일날 집에서 하루종일 뒹굴든, 낮술을 마시고 뻗어 자든 내가 마음 먹기에 달렸다. 그렇긴 하지만 이따금씩 사는 게 내 의지대로 안될 때가 있음을 느낀다.

어제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민아, 오늘 회 떠놓을 테니까 빨리 와"
다섯시쯤 학교에서 빠져나와 기차역으로 가는데, 전화가 온다.
"민아, 오늘 한잔 어때?"
집에 가서 회를 먹는 것도 좋지만, 2월의 마지막을 술과 더불어 불사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 그러자고 했다. 여느 때처럼 난 열심히 수다떨고 더 열심히 마셨다. 문제는 어제가 아니라 오늘이었다.

오늘 아침, 겨우 눈을 뜬 나는 가슴벅찬 스케줄을 짰다.
12시까지: 독서
12-2시: 글쓰기
2시-4시: 농구 보면서 러닝머신
4시 이후: 독서

특히 중요했던 건 농구. 농구광인 나에게 오늘 벌어지는 경기는 놓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정도 빅게임이라면 한시간 동안 10킬로는 달릴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며 가슴이 부풀었다. 그런데 누나가 애들을 데리고 점심 때 온단다. 누나가 오면 팬티만 입고 뛰는 게 불가능하고, 애랑 놀아줘야 할 것 아닌가. 난 엄마한테 '죽어버리겠다'고 협박, 누나를 못오게 만들었다. 조금 있다가 여동생이 전화를 했다. 온단다. 내 협박에 못이겨 엄마는 외출을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애들을 많이 낳아 놓으니 휴일만 되면 교대로 융단폭격이다. 오늘 같은 날 어디 야외로 놀러 갈 일이지 왜 우리 집에 오는 걸까? 점심 한끼 해결하고 좀 쉬다 가려는 속셈인데, 거듭 말하지만 엄마가 팔이 부러져 오른팔밖에 못쓰는 상황이 아닌가.

2시쯤, 난 TV를 보면서 러닝머신을 했다. 3킬로쯤 달렸을 때 엄마가 다가왔다.
"어쩌냐. 여동생이 이 근처까지 왔다고, 들른단다"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동생은 매제, 애 둘과 함께 들이닥쳤다. 러닝머신을 포기하고 샤워를 하고 나오니까 엄마는 부엌에서 "왜 집에 있으면서 나간다고 거짓말을 했냐"는 여동생의 추궁을 받으면서 로스고기를 자르고 계셨고, 매제는 TV를, 애 둘은 벤지를 괴롭히고 있었다. 3.1절을 애랑 놀아주며 보내기가 정말 싫었던 나는 약속이 있다고 집을 나왔고, 지금 PC방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좋아하는 농구 경기도 못보고, 운동도 못하고. 코가 비뚤어지게 술을 마시고 싶지만, 그래봤자 내 손해일 뿐이라는 생각에 참고 있는 중이다. 왜 삶은 내 마음대로 안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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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3-01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슬프고 처연한 글 정말 오랜만에 읽는 것 같아요.
흑흑 마태우스님, 지금 PC방인가요?
저도 마음가는 대로 하자면 어두운 극장 객석에 혼자 푹 파묻혀
영화를 보고 있어야 합니다.

마태우스 2005-03-01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흑흑.. 제 슬픔을 알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곳 피씨방에는 저같이 가출한 사람들이 꽤 있는 듯하네요. 사실 극장 생각도 했는데요, 오늘 휴일이라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더이다. 사람 많을 때 혼자 영화보면 좀 처연해 보이잖아요. 밥은 피씨방 근처의 분식집에서 카레덮밥으로 떼웠답니다.

마태우스 2005-03-01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누나 아들한테 전화가 왔는데요, 우리집에 왔는데 어디냡니다. 여동생이 누나한테 전화해서 누나네까지 부른 모양... 집나오기 정말 잘했단 생각이 듭니다. 저 오늘 애볼 기분이 아니거든요.

파란여우 2005-03-01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마음이...아파요....가까운데 사시면 같이 묵찍빠라도 하면서 노는 건데....흑

니르바나 2005-03-01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착한 매제를 생각해서 마태우스님 참으세요.
일요일은 참으세요가 아니고 공휴일은 참으세요가 되었군요.

부리 2005-03-01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 마태야. 니가 참아라!

부리 2005-03-01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저 묵찌빠 잘해요^^
니르바나님/그러겠습니다. 님을 봐서 참지요^^

로드무비 2005-03-01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어디서 방황을 하고 계신지...흑.

마태우스 2005-03-01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 불러서 술마시려다, 어머님이 속상해하실 것 같고, 벤지도 많이 힘들 것 같고, 저도 배가 고프고 해서 집에 가려구요 지금. 근데 이 피씨방 너무 잘되요.

울보 2005-03-01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이 놀아주세요..
부리님의 위로도 안되나요.
날은 점점 추워지는데 아직도 방황을 하시나요..
이젠 컴백홈하시지요.....

마태우스 2005-03-01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께요. 이제 그만 글쓰고 집에 가렵니다. 친구가 술마시자고 해서 지금 이리로 오고 있다는데, 오지 말라고 전화를 해도 안받는군요. 그래도 갈거야!
 

 

 

 

 

* 얼마 전에 주문했습니다. 은희경은 제가 '무조건 산다'는 파일에 있는 작가입니다.

공중보건의로 복무하던 시절, 난 그야말로 날라리였다. 낮에는 낮술, 밤에는 밤술을 마셨고, 허구한 날 테니스만 쳤다. 그때 나만큼 한가한 친구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사법연수원에 다니던 K였다. 어디나 그렇지만 사법연수원도 판.검사가 되려는 사람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변호사가 되겠다는 사람은 탱자탱자 논다. 성적이 안좋아 변호사를 지망해야 했던 K는 나와 같이 테니스를 치곤했는데, 그가 테니스를 치다말고 갑자기 기침을 한다. 기침이야 할 수 있지만 기침에 피가 섞여 나왔으니 놀랄 수밖에. 우리나라에서 객혈을 한다면 아직까지는 결핵을 생각해야 하는데, K 역시 결핵이었다. 결핵은 9개월 정도 약을 먹어야 완치가 되지만, 며칠만 약을 먹으면 금방 증상이 좋아져 환자들이 약 복용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K는 내 말을 쫓아 약을 열심히 먹었다.


고시공부에 시달리느라 만년 솔로였던 K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것은 그때였다. 눈이 다소 높은 그의 뜻대로,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여성이 그의 앞에 나타난 것. 둘은 열심히 사귀었고, 결혼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K가 내게 물었다.

“나 결핵인 거, 말 해야 하니?”

난 말하지 말라고 했다. 결핵이라는 게 무슨 결격사유는 아니지만, 몇 달만 더 약을 먹으면 완치가 될 거 굳이 말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내 말대로 K는 여친에게 그 사실을 숨겼다.


그에게는 길게만 느껴졌을 9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K는 완치되지 않았다. 그에게 병을 일으킨 건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결핵균이 아니었고, ‘비전형(atypical) 결핵’이라는 걸 유발하는, 약에도 잘 안듣는 균이었다. 병원에서는 약을 바꾸고 별짓을 다했지만 결핵은 낫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결혼 날짜는 다가왔고, 그는 결국 결핵에 걸렸다는 사실을 털어놓아야 했다. K의 부인이 된 그 미녀는 K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해야 했고, 결혼 후 일년 반이 지났을 무렵에야 K는 지긋지긋한 결핵과의 전쟁을 마칠 수가 있었다. K의 부인은 그때 일을 이렇게 회상한다.

[이젠 우리 서방님 아프다고 울던 일들이 옛 기억이 되었으면 합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서방님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저는 6개월된 바다(가명. 애 이름)을 업고 병실로 도시락을 싸서 갔었지요. 차마 딸까지 병실에서 잘 수 없어서 아픈 사람을 혼자 병실에 덩그러니 두고 XX와 둘이 꼭 껴안고 울면서 잤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니 콧등이 시큰하네요.


지난 7월 XX병원으로 향하는 바다아빠를 보면서 이번에는 혹시나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했었는데...... 어찌나 기쁘던지요!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우리가 그소중함을 얼마나 잊고 사는지 다시한번 생각했답니다]


K는 얼마 전에 둘째를 낳았고, 지금은 골프도 치면서 건강하게 잘 산다. 부인의 성격으로 보아 처음부터 결핵 얘기를 꺼냈어도 별 문제는 안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K에게 거짓말-말을 안한 거지만 결과적으로는 거짓말이겠지-을 강요한 것은 K가 내 친구였기 때문이다. 혹시나 그녀가 K를 싫어하게 되면 어쩌나 싶어서. 만약에 내가 K 부인의 친구였다면 그 사실을 숨기고 결혼한 K를 비난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찌되었건 결혼 후 그녀를 볼 때마다 난 일말의 미안함을 느껴야 했는데, 내가 미안하지 않도록 K 부부가 앞으로도 쭉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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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5-03-01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 부부보다 더한 마음고생을 하셨군요. 마태우스님
친구 잘되라고 하는 마음을 헤아렸다면 오래도록 K부부는 잘 사실겝니다.

줄리 2005-03-01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짓말이라.... 거짓말 한걸루 자서전을 써두 책한권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네요.

파란여우 2005-03-01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하는 노래 가사가 떠오릅니다. 마음이 따듯한 거짓말을 하는 마태님을 부리는 왜 그렇게 미워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군요. 혹시 무슨 약점이라도 잡히신건지...^^

샤크 2005-03-01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다네 가족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근데 마태님 글이랑 첨부된 책이랑 관련이 있는거에요? 늘 궁금했어요 ^^;

2005-03-01 1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oninara 2005-03-01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남편이 결핵이라면..흠 저도 모르겠네요..
어쨋든 바다네 가족이 행복하다니 다행입니다..

마태우스 2005-03-02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님/으음, 한번쯤 망설이게 만드는 병이 맞긴 맞군요
속삭이신 분/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샤크님/책은..제목과 관계있는 것을 알라딘에서 골라서 붙입니다. 아무래도 인터넷서점이니까 책을 한권 깔고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여우님/부리는요 사랑받고 싶은 거랍니다. (이상하다...사랑 받는 것 같은데...)
dsx님/아이 무슨 말씀을.... 다 그렇죠.
니르바나님/비정형 결핵만 아니었다면 아무일 없을텐데, 하필 그거일 게 뭐랍니까^^

nugool 2005-03-02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조건 산다 파일에 있는 작가인데요, 이번 작은 솔직히 좀 실망입니다. 그동안과는 좀 다른 뭔가를 보여주려고 너무 애썼나봐요. 전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냥 하던대로 하지. 아직 식상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써놓고 나니 페이퍼 내용과는 상관없는 댓글이군요.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