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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생존의 속도
최용식 지음 / 리더스북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조선일보는 경제를 정치화한다. 경제를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따라 본다는 뜻이다. 안그런 곳이 어디 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조선일보는 그 정도가 훨씬 크며, 조선일보의 지대한 영향력을 생각해 볼 때 그런 언론이 ‘1등신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게 재앙일 정도다. 예컨대 조선일보는 97년 외환위기가 닥치기 열흘 전에도 우리 경제는 위기가 아니라고 강변했고, ‘위기설’을 보도하는 외국 언론들에게 ‘한국 때리기를 그만두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외환위기가 왔고, 정권교체가 되었다. 그 후부터 조선일보는 우리 경제를 저주하기 바빠졌고, 그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경제라는 것은 사람들의 심리에 영향을 받기 마련, 연일 우리 경제를 매도하는 조선일보를 보면 과연 그들이 진정으로 우리 경제를 걱정하는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최용식의 <경제역적들아 들어라>를 읽었다. 조중동과 그들의 편에 서서 현실을 왜곡하는 학자들을 ‘역적’으로 칭한 그의 글은 나로 하여금 시원함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그 책은 별로 팔리지가 않았다. 메이져 언론사를 공격한 탓에 매스컴에서 전혀 소개를 안해준 것도 이유가 되지만, 경제학 분야에서 소위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우리나라 사람들이 자격을 얼마나 따지는가!-그리고 경제학에 어울리지 않게 감정적이라는 것도 한 원인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이 많이 팔리지 못해서 아쉬웠던 차에 <대한민국 생존의 속도>가 나왔고, 생일선물로 받은 상품권을 이용해 잽싸게 구입을 했다.
결론부터 얘기한다면 이 책은 일말의 재미도 없고, 유익하지도 않았다. 전에는 잘 몰랐는데 저자는 굉장한 신자유주의자다. 기업인과 금융인을 경제의 최고정책결정권자로 기용하자는 주장은 그렇다 쳐도, 신자유주의가 왜 잘못이냐고 따져묻는 건 좀 어이가 없다.
“지금 세계적으로 번영하는 나라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들도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선택하고 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신자유주의의 특징 중 하나가 복지축소,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은 대개 복지가 막강하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복지라고 할만한 게 거의 없다시피 한 우리나라에서 더 축소할 복지가 어디 있는가? 저자는 영국이 독일을 추월한 것이 신자유주의 노선을 썼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독일이 영국에 뒤졌다면 그건 통일의 후유증 탓이지 노선 탓은 아니다. 대부분의 나라가 공감하는, 토빈세를 비롯한 헤지펀드의 규제에조차 반대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그는 자신이 그토록 비난하는 조중동과 코드가 일치한다.
주장도 그다지 일관성이 없어 보이고, 문자상의 오류도 가끔 보인다. 일일이 지적하고 싶지만 그냥 넘어가고, 결코 공감하기 힘든 주장만 몇 개 나열해 본다.
-2만 달러가 우리 경제의 화두로 정착된 듯하다...이런 목표를 처음 주창한 나로서는 감회가 남다르고 마음도 뿌듯하다; 박정희 시대면 모를까 어떻게 GNP 2만달러가 국가경제의 목표가 될 수 있을까? 그보다는 소득이 공평하게 분배되고, 삶의 질이 얼마나 나아지는가가 목표일 수는 없을까.
-한 기업의 가치가 10억원 정도라면, 우리나라 중산층은 누구나 살 수 있을 것이다; 중산층은 누구나 10억이 있다? 뒤에 “은행융자를 끼고 사면 그렇게 큰 부담은 아니다”란 말이 있어도 이해가 잘 안간다. 재벌2세를 자칭하는 나도 2천만원이 모자라 기업을 못사는데, 저자가 말하는 중산층은 누구일까?
-이혼, 매춘, 동성애 등을 반대해야 진짜 보수다; 이혼과 매춘은 그렇다 쳐도, 동성애 반대가 보수의 조건이란 소리는 처음 듣는다. 동성애라는 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태어나는 것, 그걸 반대하면 어쩌겠다는 걸까. 격리라도 하려나?
-광주사태와 석유파동이 겹치면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용어 정리가 된 마당에, 월간조선이나 쓰는 말을 쓰다니.
-누진세나 사회보장 정책을 통해서 빈부격차를 완화시키기보다는 경제의 안정 성장을 통해서 빈부격차를 완화시키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추천사에서 김근태는 “더욱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는 경제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서 경제와 복지가 선순환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고 썼던데, 분명 그는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빈부격차는 최악의 수준일까? 아니다. 선진국 중에서도 중위권에 해당될 정도로 양호하다; 다시 말하지만 사회 안전망이 전무한 우리나라에서는 빈부격차가 재앙일 수밖에 없다.
한때 그의 존재가 소중하게 느껴진 적도 있었지만, 나와는 생각하는 게 많이 다른 것 같다. 앞으로는 저자의 책을 사지 않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