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와: 지도학생과
마신 양: 최근 들어 마신 것 중 최고로 많이
날 좋아하는 지도학생들, 나 역시 그네들이 좋다. 내가 잘해준 것 이상으로 내게 잘하니까.
1차로 회를 먹고, 멀리 가기 귀찮아서 옆에 있는 빠로 들어가 2차를 했다. 예감이 안좋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벨이 있고, 그걸 누르니 아가씨가 나와 자리안내를 한다. 한눈에 비싸 보였다.
“비쌀 것 같은데 다른 데 갈까요?”라는 학생의 말이 재벌2세의 자존심을 자극했고, 난 거기 퍼질러 앉아 술을 마셨다. 학생 하나가 이런다.
“내일부터 라면만 드시는 거 아니예요?”
내 대답, “도시락 싸갖고 다니니까 괜찮아요”
“다음번엔 저희가 대접할께요”
결국 어제도 엉망으로 취했다. 카드를 긁을 때까지의 기억만 날 뿐, 어떻게 집에 왔는지 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난 왜 이렇게 사는 걸까. 그럼에도 오늘 아침 8시 10분에 학교에 간 내가 자랑스럽긴 하다.
사실 어제 좀 짜증이 났었다. 1학년 과목 중 외부강사의 특강을 두 번 하고 한학기를 떼우는 과목이 있었는데, 그 날짜가 4월 8일(금)과 5월 13일이었다. 그런데 예과 학생회에서 4월 7일, 8일 예과 MT를 간단다. 다른 날도 많은데 하필이면 그날이라니.
“왜 꼭 그날 가야 하죠? 4월 2일이나 중간고사 끝나고 가면 안되나요?”
예과 2학년인 학생회장의 말, “4월 2일은 본과 형들하고 행사가 있고, 중간고사 이후에는 예과 수료여행도 가고, 축제도 있어요”
본과 행사와 예과 수료여행, 그리고 축제. 이런 것들이 중요할 수는 있다. 그래도 그렇지, 그딴 게 수업보다 더 중요하다고 우기는 건 정말이지 어이가 없다. 25만원을 주고 외부강사를 부른 거고, 오래 전부터 약속이 되어 있는데 말이다.
다른 날 가라니까 생각해 본다더니, 잠시 후 전화해 계속 고집을 피운다.
“예약도 다 해놨단 말이어요”
난 말했다. 예과 MT면 나도 가야 할 것 아니냐, 그런데 날짜를 정할 때 어떻게 나랑 한마디 상의도 안할 수가 있느냐. 그의 대답.
“상의 드리려고 했어요”
날짜를 다 정해놓고 얘기하는 건 상의가 아니라 통고다. 그리고 MT라는 건 못가면 그만인 것이고, 2학년의 수료여행 때문에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면 1학년만 따로 가도 된다. 그런데 왜 꼭 같이 가야 할까.
“저희 학생회에서 쭉 그렇게 해왔거든요”
이게 말인가. 이러니까 내가 학생회의 존재 의미를 못마땅해 하는 거다. 학생회가 면학분위기를 조성한다든지 한 적은 한번도 없고, 맨날 축제다 MT다 해서 놀 궁리만 한다. 요즘 애들, 학생회 없어도 잘 놀던데.
통화를 하다가 여러번 화가 났지만, 난 좋게 얘기하고 끝을 냈다. 나중에 메시지가 왔다. 4월 11일, 12일에 가자고. 알았다고 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으면 애들이 그렇게 우기지 못했을지 모른다. 사람이 만만해 보인다는 건 가끔은 슬프다. 우리 지도학생들처럼 내 호의에 행동으로 보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사족: 1, 2학년이 같이 MT를 가니, 보나마나 2학년들이 1학년 술이나 왕창 먹일 것 같다. 난 그럼 2학년들이나 왕창 먹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