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4월 27일(수)

마신 양: 소주--> 맥주

 

작년에 후배 병원에 가서 스케일링을 받았다. 간호사는 내 입속을 들여다보며 연방 감탄을 했다.

“잇몸이 너무 안좋으세요”

“잇몸이 정말 안좋거든요”


후배는 내게 잇몸치료를 권했다.

“매주 한번씩 한달간 하는데, 그 동안에 술 마시면 안되요”

겁도 났지만 스케줄상 한달은 불가능했다.

“내가 4월에 큰 술자리가 두 번 있으니 그거 지나면 할게”

하지만 큰 술자리는 계속 있었다. 일년 내내. 그래서 난 6개월마다 스케일링을 하는 대신, 잇몸치료는 안받기로 했다.


하지만 스케일링으로 버티기엔 내 잇몸이 너무나 안좋았다. 엊그제 치과에 갔을 때, 후배는 내게 이랬다.

“당장 수술해야겠어요. 이러다 틀니하면 어떡해요”

사실 4월 들어 자발적 출혈이 심심치 않게 있어왔고, 불안해진 난 사리돈 탁스를 사먹으면서 버티려고 했다. 그런데, 그건 별 효과가 없었다. 아니, 약으로 치료하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던 거다. 기가 죽은 난 다음주 금요일에 예약을 했다.

후배: 앞으로 4주간 술 마시면 안되요

나: 안주는?

후배: 그건 상관없죠. 근데 치료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안먹게 될 거예요. 잇몸도 고치고, 술도 끊고, 살도 뺄 수 있으니 일석삼조죠.


내가 그토록 안빼고 버티던 사랑니 4개도 이참에 다 뺀단다. 사랑니만 빼도 죽을 것 같은데, 사진으로 보니 잇몸치료는 더더욱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하지만 남은 여생을 튼튼한 이로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따지고보면 다 내 업보다. 작년에 했으면 좀더 편했을텐데 치과라는 곳은 언제나 막판에 몰린 후에 가게 된다.


후배와 술을 마시던 도중, 난 만남을 미뤄왔던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원빈(가명)아, 너 담주 수요일 괜찮냐? 나랑 그날 술 좀 마셔줘야겠다”

그러자고 하는 원빈에게 난 이 말을 덧붙였다. “몸 만들어 와라. 그날 많이 달려야 한다”

후배와 술을 마시는 동안, 난 술집 인테리어와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광경, 그리고 참이슬 병을 한참동안 둘러봤다. 다음주 금요일부터는 그 광경을 오랫동안 보지 못할 것이기에. 목요일 전까지 술약속을 하나씩 채워나가고 있는 중인데, 지금의 심정은 무서워 죽겠다. 내가 그동안 떠받쳐 왔던 우리 경제는 이제 어떻게 하나? 겨우 살아나는 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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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2005-04-29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한국경제 큰 걱정이네요... 마태님 한몸 아니 한잇몸 희생해서 계속 우리 경제를 떠받치셔야 하는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paviana 2005-04-29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있는 밥만 먹으면서도 경제를 살릴 수 있어요...글구 지금 치료받아야 앞으로 더 오래동안 즐겁게 마실 수 있잖아요..

인터라겐 2005-04-29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독수리오형제가 떠난 지구는 아직까지 끄덕도 안하고 있습니다..
걱정붙들어 매놓고 치료열심히 받으세요... 훗날을 도모하심이....

노부후사 2005-04-29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리돈 탁스가 아니라 파로돈 탁스 아닌가요?

로드무비 2005-04-29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태우스님이 더 걱정인데요?
수술 전날까지 드시다가 날짜 까먹으실까봐!
사리돈 탁스...너무 웃겨요.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시는군요.^^

하이드 2005-04-29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앞에서 마시고 그거 구경만 하세요. 냄새만 맡는건 괜찮을꺼에요.

2005-04-29 1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얀마녀 2005-04-29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사리돈 탁스라는 약이 정말로 있는 줄 알았는데...

마태우스 2005-04-29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님/그게 파리돈인가요? 저 진짜 몰랐어요
속삭이신 분/저 말 잘듣고 착하게 살께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하이드님/냄새만 맡는다...캬, 아쉬운데 그거라도...
로드무비님/그거 유머 아닌데.... 호호, 하여간 어떤 경지에 이르면 의도하지 않아도 웃기게 된다니깐요^^
인터라겐님/님만 믿고 걱정 안하겠습니다. 우리 경제, 책임져 주세요!
파비아나님/그래도..경제는 시기를 놓치면 안된다구요!
줄리님/님이 어서 귀국하셔야겠어요^^

날개 2005-04-29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료받는 4주동안 술유혹을 못끊는다에 한 표..!^^

클리오 2005-04-29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참 고조기시더니, 요즘은 몸이 별로시군요.. 빨리 괜찮아지시길 빕니다.
앗! 그런데 다음 주 금요일이라구요? 청주 번개는 어찌하라고... 차 마실까요? ^^;

비로그인 2005-04-29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큰일 났다.
잇몸치료 그거 무지 아파요.
저 해봤는데.
길에서 만나면 죽여버리고 싶어졌어요
차라리 틀니를 하고 싶어질꺼예요.

플라시보 2005-04-29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저도 아직 사랑니 안뽑았는데 님은 무려 4개나 뽑고 하날리 말씀에 의하면 죽음과도 같은 고통의 잇몸치료를 받아야 한다니... 무사히 살아나시길 기원합니다.^^

마냐 2005-04-29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정말 제목과 내용의 기기묘묘한 조화임다. 내참......글구 걱정 마세요. 제가 마씨가문의 깃발을 들고 마태님 몫까지 마셔드리죠, 까짓거. 뭐...흠흠.

마태우스 2005-04-30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님만 믿겠습니다. 마씨 가문의 명예는 이제 마냐님의 갸냘픈 어깨에...^^
플라시보님/무섭습니다...
하날리님/아아 안그래도 무서운데 으윽...
클리오님/차 마시는 화목한 번개가 되선 안되겠죠?? 방법을 강구해 보리다
날개님/전 끊는다에 두표! 마태랑 부리요!
 

 

 

 

 

일시: 4월 26일(월)

마신 양: 맥주 3캔, 소주 한병

1. 머리

근 3개월 이상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처음엔 세상에 대한 반항심에서 시작한 거였는데, 나중에는 그걸 합리화하는 이유를 만들기 시작했다. 머리 기니까 어려 보인다느니, 술이 더 세졌다느니... 하지만 결국 머리를 자르기로 한 것은 불편이 극에 달해서였다. 머리가 눈을 가리니 답답했고, 잠깐만 방심하면 뻗쳐 버려 아주 가관이었다. 덥다는 것, 그리고 머리가 무거워 짜증이 난다는 것 등등을 감수하면서 계속 머리를 기를 마음은 점차 없어졌다.


그래서 머리를 잘랐다. 근데 너무 짧게 잘랐다. 어떤 이는 “웬 고딩이냐”고 하고, “군대 가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원래 그럴 마음은 없었는데. 단지 이발소 직원과 의사소통이 잘못된 것 뿐인데. 그 전에는 뻗치는 머리를 제어하느라 모자를 쓰고 다녔다면, 지금은 짧은 머리로 인해 깍두기처럼 보이는 게 싫어 모자를 쓴다. 쭉 머리를 길러서 그런지, 지금도 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2. 노숙

머리를 자른 날,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전갈을 받았다. 일단 집에 가서 짐을 챙긴 후, 강남성모병원 영안실에 갔다. 이 친구 저 친구와 얘기를 하다가, 고스톱판이 벌어졌다. 맞고 승률이 17%에 달할 정도로 고스톱을 못치는 나는 그저 옆에서 관망만 했다. 하지만 선수 하나가 집에 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1만 5천원 가량을 땄다.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다르다.


마지막 판을 돌리고 나니 새벽 4시였다. 다음날 아침 9시에 수업이 있던 터라 7시 버스는 타야 했다. 어디 가서 눈이라도 붙이고 싶었지만, 한번 잠들면 죽어도 못일어날 것 같았다. 애들은 집에 가고, 난 병원 옆에 있는 고속터미널로 갔다. 플라스틱 의자 네 개에 몸을 누이고 잠을 청했다. 자려다 갑자기 불안해진 나는 지갑의 돈을 다 꺼내 양말 속에 넣었고, 신용카드도 따로 챙겼다. 어떤 상황에서도 잘 자는지라 1분도 안되어 잠이 들었다. 그런데. 경비가 날 깨웠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버스 기다리는데 왜 안된다는 걸까. 어차피 사람도 없는데. 그는 나를 노숙자로 본 것일까. 그래도 양복까지 입었는데 말이다. 할 수 없이 앉아서 잤다. 그리고 첫차를 타고 학교에 갔고, 비몽사몽간에 수업을 끝냈다. 정말 피곤했다.


3. 친구 아버지

남에게 폐를 안끼치는 갑작스러운 죽음은 누구나 원하는 바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죽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친구 아버님도 그랬다. 3년쯤 전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아버님은 전립선암까지 걸리는 등 갖은 고생을 하시다 돌아가셨다.


특기할 만한 것은 친구의 어머니였다. 3년간 아버님 곁에서 수발을 하신 우리 엄마와 달리, 친구 어머니는 남편을 광주에 있는 요양원에 보내놓고 당신의 삶을 사셨다. 친구도 만나고, 해외여행도 하고. 우리 어머니는 단 하루도 댁에서 주무신 적이 없는데. 편하지도 않은 보호자 의자에 등을 대고 주무셨었는데. 돌아가신 당일에도 새벽 1시 쯤 집에 가서 주무시겠다고 병원을 나서는 광경은 3일장 내내 빈소를 지킨 우리 어머니라면 상상도 못할 것이다.


우리 어머님이 더 훌륭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난 우리 어머님도 친구 어머님처럼 하셨으면 어땠을까 싶다. 병원에서 가장 까다로운 환자로 소문난 아버님에게 어머님이 보여준 놀라운 헌신은 간호사들의 찬사를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머님이 잃으신 것도 있었으리라. 약해진 건강도 그렇지만, 간병의 와중에 그나마 남아있던 정까지 다 떨어진 건 아닐까.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어머님은 누구보다 섧게 우셨지만, 그건 고인에 대한 그리움에서 기인했다기보다 아름다운 추억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난 남편에 대한 서러움 탓이 아니었을까. 간병 중 어머님이 아버님께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아프면 당신이 나 돌봐줄 거야?”

아버님의 대답은 이랬다. “간병인 붙여 줄게”

이건 좀 불공평하다.


4. 벽제

관을 들고 산을 올라가 본 기억도 벌써 4-5년 전의 것, 그만큼 화장이 대세인 것 같다. 친구 아버님 역시 벽제에 가서 뜨거운 불 속으로 밀어 넣어졌다. 벽제에 갈 때도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화장터의 유족 대기실을 보는 순간 갑자기 뜨거운 것이 몰려왔다. 우리 아버님도 저렇게 태워졌었지 하는 생각에. 눈물도 났고, 심장박동도 빨라졌다.


4년 전 그날, 하얀 가루를 유골함에 담기 전에 직원은 큰 못 하나를 보여줬다. 그 못은 아버님의 허리뼈에 박혔던 것, “저런 걸 몸에 박고 지내셨구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지금 아버님은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까. 거기서도 여전히 화를 잘 내실까. 그러고보니 지척에 있는 아버님께 찾아간 지도 꽤 오래 된 것 같다. 이번 일요일, 아버님을 만나러 가봐야겠다. 잘 지내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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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8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터라겐 2005-04-28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머리... 기왕 기르신거 바람머리 해서 배용준처럼 마사마라도 해보셨을 좋았을껄 하는 생각이....
2. 노숙... 잠들기전 준비하시는 자세..훌륭하십니다...머리속에 넣고 있다가 나중에 기회가 오면 꼭 그리 하겠습니다.
3. 친구아버지... 정답은 없다. 정말 사랑한 사람도 병간호앞에선 두손을 든다죠.. 친구어머님..그렇지만 제 개인적으론 속상합니다..CF에서처럼 난 소중하니깐요..를 외치신다면 어쩔수없지만 왜 자꾸 비정(?)하게 들리는지 모르겠습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4. 벽제... 친정아버지..올해 71살 되셨습니다..저흰 절대로 벽제갈일이 없을것 같아요.. 아빠 말씀이 나 불에 꼬실리면 죽어서 니들 잡아먹는다..좀 무섭지만 저희 아빤 분명 약속지키실 분이라서....

허리뼈에 있었다는 큰못이 자꾸 생각나네요...

마태님 글이 오늘은 축 처진게 힘이 없어 보입니다..기운내세요...

stella.K 2005-04-28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를 자르셨다니 시원하시겠네요.
누구의 죽음이든 보면 여러가지 만감이 교차되더라구요. 전 불효자식이어요. 아직도 이리 못가고 있으니...눈물이 날 것 같아서...그래도 마태님은 아버님 뵈러 다녀오세요.^^

플라시보 2005-04-28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아직 부모님이 살아계셔서 잘 모르겠지만 가끔 그 분들이 돌아가시면? 하는 생각을 하는 것 만으로도 괜히 우울해집니다. 함께 살지도 않고 그다지 효녀도 아니지만 그냥 그 분들이 존재하는 것 만으로 저에게 큰 위로가 되는것 같습니다.

깍두기 2005-04-28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깍두기같이 보이는 게 어때서 그러세요? 흥!

moonnight 2005-04-28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효도해야겠어요 ㅠㅠ 가끔 오늘이 부모님을 뵙는 마지막 날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깜짝 깜짝 놀라곤 합니다. 건강하신 부모님을 가진 축복을 왜 항상 느끼진 못하고 사는 건지.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힘내세요. 토닥..

클리오 2005-04-28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께서 피곤하고 마음이 안좋으신 것 같아 제 마음도 별로입니다. 무겁게 가라앉은 날이겠지만, 마음껏 허우적대다가 가뿐하게, 빨리 떠오르소서!!

하루(春) 2005-04-28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벽제 화장터에 딱 1번 가봤는데, 솔직히 그 날 너무 많이 울어서 아니, 그 전부터 그랬죠. 아무튼 자꾸 그 날의 장면이 떠올라서 벽제라는 말만 들어도 침울해지고, 숙연해집니다. 한 줌 재로 변하는 사람의 몸이라니...

2005-04-28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4-29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설날에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어요. 일요일에 아버님 뵈러 가신다니 생각난 김에 아버지께 들러야겠어요. 많이 피곤하셨을테니 푹 쉬십쇼.

마태우스 2005-04-29 0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님/네, 정말 피곤했어요. 지하철에서 그냥 누워 자고 싶었다는.....
속삭이신 분/님의 자상함이 느껴지는 댓글입니다. 미모에 자상함까지...
하루님/흙으로 돌아가든 한줌 재로 변하든 허무하기는 마찬가지인 듯...
클리오님/몸살 났어요... 하지만 마음이 안좋진 않습니다^^
문나이트님/어머 제가 일깨워 주다뇨? 님 효녀인 거 저는 물론이고 남들도 다 알아요
깍두기님/까, 깍두기님...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고...........그러니까..................
플라시보님/전 님을 믿습니다
스텔라님/항상 믿음에 충만한 삶을 사는 스텔라님이 왜 불효자란 말입니까.
인터라겐님/제가 좀 처져 보였군요. 몸이 워낙 피곤해서 마음까지 그런가봐요... 간병에 정말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희 어머님은 너무 극단적인 헌신을 했어요....머리는....한번 보여드리고 싶네요. 호호
새벽별님/제가 이번주에 안가면 담주 월요일에 머리핀 꽂고 출근하겠습니다
속삭이신 분/제가 존경하는 거 알죠? 근데 추천은 안하셨군요. 다 아는 수가 있죠^^


 
향랑, 산유화로 지다 - 향랑 사건으로 본 17세기 서민층 가족사
정창권 지음 / 풀빛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조상 대대로 여성을 비하해온 뿌리깊은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그 잔재가 지금도 남아 여성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생각해 왔던 내게 <향랑, 산유화로 지다>라는 책은 좀 충격이었다. 이 책에 의하면 “16세기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는 고대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여권 존중의 전통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남자가 여자 집으로 가 혼례를 치루고 그대로 눌러사는 처가살이가 보편적이었고, 재산도 아들과 딸이 균등하게 상속을 받았단다. 여성 탄압의 역사는 17세기 중반, 주자학이 전사회적으로 침투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하니, 여성탄압이 우리 민족의 본성은 아니었나보다.


저자는 향랑이라는 실제 여성의 삶을 토대로 당시의 사회상을 담담히 그려낸다. 향랑은 17세에 칠봉이라는 세 살 아래의 난봉꾼과 순전히 돈 때문에 결혼을 하는데, 결혼을 한다고 난봉꾼이 선비가 되는 것은 아니어서 칠봉은 여전히 주색잡기에 열심인데다, 심지어 하녀와도 바람을 피웠다. 거기서 그치면 좋으련만, 바르게 살라는 향랑의 타이름에 폭력으로 응수하기 일쑤였기에, 견디다 못한 향랑은 결국 이혼의 길을 택한다. 하지만 ‘출가외인’을 신봉하던 향랑의 친정에서는 그녀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믿었던 숙부마저 향랑을 내친다. 결국 향랑은 자신의 슬픈 인생사를 나무하던 소녀에게 털어놓고서 낙동강 강물에 몸을 던진다. 그녀의 나이 겨우 스무살이었다. 뒤늦게 그녀는 ‘열녀’로 추천되는데, 이건 사실 말이 안된다. 향랑이 재가를 못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 당할까봐 두려워서였지, 난봉꾼인 첫 남편에게 절개를 지키자는 뜻은 결코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녀가 ‘열녀’로 추천된 까닭은 사또가 자기 재임 기간에 동안 뭔가 업적을 세워 보자는 욕심의 결과물이었다.


세상에 사람의 생명만큼 중요한 것은 없고, 아무리 훌륭한 제도도 인간의 죽음을 강제해선 안된다. 향랑이 열녀건 아니고를 떠나서, 누군가를 열녀로 봉하고 추앙하는 전통은 참으로 잔인한 것이다. 그건 남편이 죽으면 부인더러 따라 죽으라는, 말도 안되는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고 있으니까. 스무살밖에 안된 꽃다운 여자를 죽이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강변한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섬기지 않으니...” 하지만 세조 때의 사육신을 제외한다면 난 임금이 죽었다고 신하들이 모조리 따라죽은 예를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 자기들은 두 임금, 세 임금을 버젓이 섬기면서 왜 여자들에게는 그런 희한한 가치관을 강요하는 걸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자가 죽어야 우리 여성들이 살아나는 것은 확실하다. 참고로 말하면 주자는 지금도 죽지 않았고, 예전만큼은 아니겠지만 꽤 위세를 떨치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을 선물해주신 비발샘님께 감사드린다.


* 질투하면 안된다는 조항 등을 담고 있는 칠거지악도 본디 여성 억압적인 제도가 아니라 ‘칠거지악을 범하지 않으면 아내를 쫓아낼 수 없다는 여권보호책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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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5-04-25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찬성 그래서 남자는 너무 이기적이다,,,,,

클리오 2005-04-25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를 교실에서 가르치고, 아무리 역사학의 연구성과를 내어도.. 이렇게 대중화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 (더구나 이 분은 국문학자라 하니, 요즘 제가 읽은 역사책들 거의 역사학계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도 조금 각성/비애스러운 일이기도 하구요.. )

kleinsusun 2005-04-25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의 여성들,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 추천합니다.
신사임당도 친정에서 이율곡을 키웠어요. 우리가 얼마나 왜곡된 역사를 교육 받았는지 알수 있어요. 이런 책들을 읽는 마태님, 짱 멋있어요!

2005-04-25 1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라시보 2005-04-25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예전에 다큐멘타리로 봤었습니다. 저도 우리나라가 내내 그렇게 여성을 억압한줄 알았는데 유교가 전파되기 전만 해도 아니었더라구요.

panda78 2005-04-25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며칠 전에 이 책 읽었답니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아주 합리적인 사회였다는 것에 놀랐어요. 수선님 추천작 [조선의 여성들.. ]도 책꽂이에 꽂혀 있으니 오늘 한번 꺼내봐야겠네요. ^^

하루(春) 2005-04-26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셨군요. 비발샘? 비발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좋은 분이신 것 같군요. ^^

비로그인 2005-04-26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핵심을 가려 쉽고 재미있게 쓰셨군요. 내공도 내공이지만 소신대로 쓰는 게 최고에요. 그쵸? 흐..

수퍼겜보이 2005-04-27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 서재에서 왔어요. 교양국사총서 '한국의 법'이라는 책을 봐도 조선시대의 법제도가 20세기 중반의 대한민국보다 나은 면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답니다~

마태우스 2005-04-29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흰동이님/아 그렇습니까? 그래도 다행입니다. 여성비하가 전통이 아니라서요. 글고보니 인사가 늦었네요. 혹시...강아지 키우시나봐요?
복돌님/그럼요 흐흐
하루님/비발샘님은 알라딘의 정신적 지주십니다^^
판다님/오오 님과 저는 역시 통한다니까요^^
플라시보님/앗 이걸 다큐멘터리로 했었나요? 몰랐습니다
수선님/님이 추천하신 명저, 꼭 읽어보겠습니다
클리오님/그렇죠 학자들만의 역사보단 대중과 함께하는 역사가 더 좋죠..
울보님/남자 이기적인 거 맞습니다^^
 
고품격 유머 - 성공하는 리더를 위한 고품격 시리즈 3
이상준 지음 / 다산북스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웃기려고 타조 흉내나 내는 날 안타깝게 바라보던 미녀가 있었다. 그녀가 내게 <성공하는 리더를 위한 고품격 유머>라는 책을 선물했다. 그녀의 마음은 십분 이해하지만, 이 책은 내게 그리 유익하지 않았다.


저자는 저속한 유머와 고품격 유머를 이렇게 구분한다. “성, 화장실, 욕 등 형이하학적 소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품위 있는 유머는 정치풍자, 시사, 사회 트렌드 등과 같이 형이상학적 주제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형이상학에 대한 저자의 정의도 뜬금없게 느껴지지만, 정치풍자나 시사 코메디가 고품격 유머라는 것 역시 황당하기만 하다. 언로가 꽉 막혔던 군사독재 시절에는 정치풍자가 사람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줬지만, 대놓고 대통령 욕을 할 수 있는 요즘에 정치코메디의 필요성이 뭐가 있을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유머들은 저자가 “직접 만든 창작물들”이니 무단으로 전재하는 것을 삼가라고. 이 구절을 읽을 때 난 긴장했다. 도대체 어떤 고품격 유머들을 선보일까 하는 기대감에서. 품격을 갖춘 유머를 강조하는 저자의 작품을 하나만 감상해 보자.

[시골을 떠난지 3년만에 영섭이가 서울서 체어맨을 타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마을 사람들은 영섭이가 큰 성공을 한 모양이라고 칭찬했다. 근데 영섭이가 TV에 나왔는데 농구 경기장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끝은 이거다. “영섭이는 치어맨이 되어 있었던 것”

음하하하. 너무도 대단한 고품격 유머라 쓰러질 뻔했다.


재미없기 그지없는 ‘교수집단’이 “타 직업 종사자들에 비해 평균적인 품위유머감각의 수준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는 저자의 말에 한번 웃었고, 개그맨들은 “수단가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웃기는 것에 올인”하며 그래서 “방귀, 똥, 섹스, 불륜, 바보짓” 등에 몰두한다는 저자의 말은 이 사람이 과연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허탈한 웃음을 짓게 했다. 저자가 <웃찾사>를 한번만 봤더라도 이런 소리를 안할 텐데. 개그맨을 무시하는 저자와 달리 요즘 사람들은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들을 써먹으면서 남을 웃기지 않는가.


이왕 읽은 게 아까워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은 끝에 난 드디어 공감이 가는 구절을 만날 수 있었다.

[“유머가 형 적성에 맞아요?”

내가 유머 사업을 한다고 하니까 한 후배가 의문의 눈초리를 보내면서 한 말이다]

그렇다. 그 후배의 눈은 정확했다. 하나도 안웃기는 사람이 유머 책을 쓴다니, 주위 사람들은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이 책에 나온 수많은 유머들이 쥐털만큼의 웃음도 주지 못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래도 저자가 자신의 유머를 ‘고품격 유머’라고 주장한다면, 난 이렇게 말해 주련다. “그래. 너 고품격 유머 해라. 난 계속 늑대 울음소리나 흉내내겠다. 오오오-----”

실용서는 역시 쓸데가 없다는 편견을 재확인해준 이 책의 리뷰와 관계없이, 미녀와 나의 우정은 계속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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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4-25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저두요... 우리 저품격 사이트에서 만나요^^

플라시보 2005-04-25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 나름대로 저속한 유머를 남을 헐뜻거나 비웃어서 웃기는것 (예를 들어 뚱뚱한 사람들에게 돼지나 뭐 기타 동물을 비유해서 웃기는것 등등) 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 책의 저자는 생각이 다른가보군요. 저도 님과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적인 것 만이 고품격 유머라고 생각하는데 동의할 수가 없네요. 그리고 저자가 고품격 유머랍시고 한게 참... 유머의 사전적 뜻 부터 좀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네요. 유머란 일단 웃기는거 아닌가요? 흐...

마태우스 2005-04-25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맞습니다. 유머란 일단 남을 웃겨야 하는 거죠. 근데 저자는 그게 전혀 안되어 있답니다^^

마태우스 2005-04-25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리뷰가 다섯개인데요, 하이드님 리뷰를 제외하고는 다 출판사 직원 분들의 홍보 리뷰 같더군요.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라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유머에 굶주렸는지 알 것 같네요. 읽고나면 속았다, 싶겠지만요.

LAYLA 2005-04-25 0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000원이란 책값도 놀랐고 부분 베스트 셀러 15위란건 더 놀랍네요

딸기 2005-04-25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리뷰 정말 잘 읽었습니다. 추천!

인터라겐 2005-04-25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뭐 웃는것에 무슨 고품격이니 그런걸 따진단 말예요.. 그냥 아이가 하는 행동에서 웃을수 있다면 아이의 행동이 곧 유머고...친구의 말한마디에 웃어넘어갔따면 그것역시 유머일텐데 말예요.... 웃기려고 작정하고 사는 인생이 어딨겠어요..
삶자체가 한편의 코메디라고 하는데 말예요... ㅎㅎㅎ 그래도 마태님 이책을 선물해주신 미녀님을 생각하셔서 타조 흉내는 잠시 접으심이...

그래야 미녀님이 선물한 보람을 느끼시죠^^

sweetmagic 2005-04-25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 이 책 정말 웃기는데요 !

stella.K 2005-04-25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괜찮을 것 같아 보관함에 넣놨었는데 빼도 될 것 같군요. 별이 하나라니...마태님 유머가 더 좋아요. 음...이를테면 스카라 극장 옆 손자장면집이 맛있더라는 뜬금없는 글 한줄에 웃었다는 거 아닙니까?^^

kleinsusun 2005-04-25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태님은 타조 흉내를 내시는군요.저는 이무기 흉내를 내는데...^^
아마도 그 미녀는 제목만 보고 책을 산 것 같네요. 책 선물 조심해야 겠당.
"고품격 유머"의 저자는 지금도 어디에서 "썰렁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을 것 같은데...

클리오 2005-04-25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깝게 보아오던 미녀.. 라니, 님의 유머가 통하지 않는 미녀도 있는가보군요.. ^^

2005-04-25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얀마녀 2005-04-28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고품격 유머따위 필요 없습니다. 마태우스님이 최고에요.

마태우스 2005-04-29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님/하하 감사합니다. 9일날 뵙죠^^
속삭이신 분/돌 안던지기로 약속을 해도 잘 안되네요....으음......
클리오님/아니 뭐 그렇다기보다, 더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숭고한 뜻이었죠
수선님/이무기 흉내라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타조와 이무기의 만남을 추진해야겠군요^^ 그 저자가 하는 사업, 아마 잘 안될 겁니다.
스텔라님/그렇죠? 역시 스텔라님은 절 좋아해요^^
매직님/호호 전 님이 훨씬 웃겨요
인터라겐님/유머에 대한 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님과 매직님, 글구 웃음에 관심있는 분들이 모여 유머 연구회 같은 거 만들면 좋겠어요
딸기님/딸기님의 추천을 받으니 황송하오이다.
라일라님/그니까 유머에 굶주린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봐요....안타까운 일이죠
 

 

 

 

 

유전을 어느 정도 믿는 편이다. 아버님이 대머리셨기에 나도 혹시, 하는 공포감에 시달리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런 것도 유전이 되는 줄은 미처 몰랐다.


몇 년 전, 우리 사돈댁, 그러니까 누나의 시아버님이 말을 타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다. 그것 때문에 고생을 좀 하셨는데, 아까 리뷰나 한편 쓸까 하는 찰나에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나의 셋째 아들이 신갈에 있는 승마장에 갔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쳤다는 것. 일단 응급처치는 했는데 미덥지가 않아 강남성모병원 응급실로 가고 있단다.


가서 보니까 뭐 그리 심하게 다친 것은 아니었다. 입술이 좀 찢어지고, 머리에는 큰 혹이 났으며 그 예쁜 얼굴에 상처자국이 났지만, 생명에는 하등 지장이 없어 다행이었다. 누나의 목격담에 의하면 말에서 떨어지고 나서 말에게 밟힌 것 같다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매형 빽으로 성형외과 선생을 불러왔고, 그 선생은 아주 친절하게 처치를 해주었다. 입술을 몇바늘 꿰맸고, 얼굴 상처에는 반창고를 붙여 줬다. 애가 다쳤을 경우 처음에 중요한 것은 생명에 지장이 없도록 조치를 하는 것이지만, 그 뒤에 할 일은 성형외과 의사에게 진찰을 받는 것이다. 입술의 상처에 모래가 들어갔으면 빼줘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면 나중에 점으로 남고, 찢어진 입술을 꿰매지 않으면 벌어진 채로 상처가 아문다. 미용이 중요한 시대이니 불러서 조언을 듣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울고 있는 조카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나: 말이 밟고 지나갔니?

조카: (고개를 흔든다)

나: 큰일날 뻔했다. 말이 밟았으면 삼촌 얼굴처럼 된다.

조카: (놀란 얼굴로 날 쳐다본다)

순간 어떤 환영이 떠올랐다. 나도 어릴 적 말을 탔던 것 같고, 떨어진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내 얼굴을 밟고가는 말, 절규하는 엄마의 얼굴.... 엄마가 그런 얘기를 안하는 걸로 보아 단순히 환영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면 넷이나 되는 형제자매 중 내 얼굴만 이렇게 생겼을 리가 없잖아?


확실히 강남성모병원은 빽이 잘 통한다. 매형이 중국에 출장 중이라 “저...xx 선생 아들이 다쳐서요”라고 했더니 성형외과 레지던트가 둘씩이나 와서 인사를 한다. 그걸 보면서 놀랐다. 동숭동에 있는 S 병원은 그런 게 전혀 없다. “저 xxxx년에 졸업한 사람인데요”라고 말을 해도, 한참 후배일 인턴-혹은 레지던트-는 이렇게 반문해 사람을 무안하게 한다.

“그런데요?”

그런데요라니. 좀 잘 봐 달란 뜻인 걸 몰라서 묻냐? 친한 후배 하나는 노골적으로 이런다. “피곤하게 근무하는데 선배라고 밝히면서 잘봐달라고 하면 거부감이 생긴다”고. 한 학년의 족수가 많아서 그런지 우리 학교 애들은 선후배간의 친밀도가 극도로 낮다. 하기사, 같은 학년 애들끼리도 말을 안해본 사람이 꽤 되는 터에, 선후배까지 챙길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그렇지, 선배라고 밝히면 좀 잘해주면 안되나? 자기들도 그 병원에 천년만년 있는 게 아닐테고, 나중에 나처럼 아쉬운 소리를 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냥, 그게 좀 부러웠다. 빽이 있건 없건 아이가 다친 경우라면 성형외과 선생들이 친절하게 치료해 주면 더 좋겠지만.


* 우리 조카의 치료가 다 끝나갈 무렵, 젊은 여인 둘이 응급실에 왔다. 그 중 한명은 한눈에 보기에도 두들겨 맞은 티가 역력했다. 아직도 그런 놈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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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5-04-24 0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마태우스님 빽보다 매형되시는 분의 빽이 더 든든한건가요? ^^;;

진주 2005-04-24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도 연구실서 찍은 사진 보니까 갸름하니 선이 (나름대로)이쁜 얼굴이시던걸요(남자한테 이쁘다고 하면 실롄가요???)- 여튼...말이 밟고 지나간 얼굴은 아녀요^^

플라시보 2005-04-24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빽이 있건 없건 잘 치료해주고 친절했으면 좋겠다는 말에 동감합니다.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은 병원 빽 같은게 있을릴가 없죠. 아직까지 병원이란건 특권층을 의미하니까요. 제가 그래서 치과를 못가잖아요. 빽 없어 아프게 치료할까봐. 흐흐흐흐^^

야클 2005-04-24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술실력도???

클리오 2005-04-24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에 밟히셨다니요.. 그냥 유머시겠지만, 님 얼굴 그렇게 심하신거 아니예요~ 그리고 모든 것을 다 갖춘 님이 생긴 것까지 꽃미남으로 생기셨다면, 신은 어디에 계신지 하늘을 원망했을 겁니다. ^^ (오홋! 승마장이라니 갑자기 다른 '신분' 차이가 밀려 오면서~)

비로그인 2005-04-24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은 사람 밟지 않아요.
그래서 진압용으로 잘 쓰죠 (울나라 말구요)
왜 그러냐구 물어 봤더니 (말 한테 물어 본거 아닙니다)
본능적으로 그런데요,
이상한거 잘못 밟았다가 자기 발 삐나 걱정해서 그런다더군요.
마자요. 발 다친 말은 아무소용이 없잖아요. (회 해먹든가 해야지)
그러니까 생명같이 소중한 발을 사람 밟는데 쓰겠어요? (쓰다보니 오늘도 좀 이상하게 결론이 나는군요)

비로그인 2005-04-24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하나 데이빗린치가 만든 엘리펀트맨이란거 있잖아요..거기선 코끼리한테 밟혀서
그렇게 됬다는데 혹시 불가능한건 아니니까 말 한테 밝히면 홀스맨인가요..

2005-04-24 1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5-04-25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날라이님/홀스맨...호호^^ 역시 님의 유머는 대단하세요. 글구..말이 사람을 밟지는 않지만, 놀래서 앞으로 달려나가다 밟을 수도 있잖아요. 조카도 그래서 큰일날 뻔...
클리오님/제 얼굴이 그리 심한 게 아니라고 아무리 말씀을 하셔도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는 회복이 안되더군요. "너 어쩜 그렇게 생겼니"라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요......
야클님/술실력은 아버님 근처에도 못가죠. 아버님은 소주로 따지면 다섯병 이상 드세요. 근데 전...으흐흐흑.
플라시보님/정말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매형 얘기를 하기 전에는 다들 본체만체.........
진주님/호호 말이 살짝 밟았나보죠^^ 코가 납작하고 눈이 작은 걸 보면 말입니다
아영엄마님/음 매형은 현재 성모병원에 계시니까...다른 곳이긴 하지만...그래서 성모병원 계열에서는 절대적인 빽이 있지요. ^^

2005-04-25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4-27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주 2005-04-27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조용하신가요? 좋은 소식도 있던데. <이주의 리뷰>당선되셨어요. 축하해요^^

2005-04-28 0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