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진 게 없는 나라일수록 세상에 자신을 알릴 뭔가를 갖고 싶어한다.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타워를 비롯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1, 2, 4위가 모두 아시아라는 건 이런 심리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지지리도 못살던 시절, 우리나라도 높은 것에 무지하게 집착을 했다. 한때 가장 높은 빌딩의 상징이었던 3.1 빌딩도 그랬지만, 더 우스운 것은 아파트가 산 중턱에 지어졌다는 거다. <인물과 사상> 이번호를 보니 외인아파트를 남산에 지을 때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한다. 평지도 아닌 산 중턱에 지으려니 안전도가 의심받아 재고를 요청했더니 당시 서울시장이 이렇게 말하더란다. “높은 곳에 지어야 각하께서 잘 보실 것 아니냐”
강남이 개발되기 전이었던 그 당시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에 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게 외인아파트였다고 하니, 서울시장의 아첨도 그럴 법한 일이다.
문제는 견고함이었다. 아파트가 튼튼하기만 하다면 산 중턱이 아니라 꼭대기인들 어떠하랴만, 불행히도 그때 지어진 아파트의 대부분이 부실공사의 소산이었다. 수십명을 죽게 만든 와우아파트 붕괴에서 보듯, 당시 건축물은 정치자금과 각종 인허가 비용으로 다 뜯기고 남은 돈으로 지어진 것이었으니, 제대로 지어질 리가 없었다. 내가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지진이 빈발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릴 적 엄마를 따라 영화를 보러간 적이 있다. 그때 <대지진>이라는 영화의 예고편을 봤다. 일본이 주 무대였는데, 3.1 빌딩과 상대도 안되게 높은 건축물들이 폭삭 무너지고, 땅들이 쫙쫙 갈라졌다. 그게 어찌나 무섭던지, 그날 난 일본의 한적한 시골에 사시던 할머니한테 전화를 걸어서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거기 살지 말고 빨리 우리나라 와요. 거긴 너무 위험해!”
영화만큼은 아니라 해도 일본은 꽤 지진이 일어나는 나라고, 몇 년 전 일어났던 고베 대지진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아무 일이 없어도 다리가 끊기고, 백화점이 제풀에 무너지는 우리나라에서 그런 강도의 지진이 일어났다면 이 땅에서 남아나는 건축물이 뭐가 있을까?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 심심치 않게 지진이 발생한다. 다행히 유리창이 깨지는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법이다. 숱한 인명을 앗아간 쓰나미 참사가 일어났을 때 난 이렇게 말했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 이건 보통 지진이 아니라, 판 자체의 변화 때문에 일어난 것 같다”
신문기사 역시 내 말을 뒷받침해 줬는데, 사실이 그렇다면 그간 지진의 안전지대였던 우리나라도 마냥 안심만 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만일 지진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높은 곳에 있으면 딱 죽기 좋고, 지하로 가면 매몰된다. 그래서 난 구명조끼를 입고 성수대교로 가련다. 한번 무너졌던 다리를 다시 세운 터라 가장 튼튼한 공법으로 지어졌을 테니까. 혹시 무너진다 해도 구명조끼를 타고 둥둥 떠다니다 사태가 진정된 후 뭍으로 올라오면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진이란 게 예고를 하는 게 아니니, 내 소박한 꿈은 그저 꿈일 뿐이다. 그저 지진이 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
* 다른 분들이 알라딘이 빨라졌다고 해서 그냥 그런 줄 알았는데요, 어제 점심 때 쯤 신청한 책이 오늘 배달되는 걸 보고 기절할 뻔했습니다. 이쯤되면 빨라도 너무 빠른 거 아니어요?<--괜한 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