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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 퇴진 요정 김민식 피디의 웃음 터지는 싸움 노하우
김민식 지음 / 푸른숲 / 2020년 2월
평점 :
책에서 서문은 얼마나 중요할까?
인터넷 서점이 자리잡기 전, 그러니까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책을 살 때,
서문은 책을 살까 말까를 결정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책에 대한 리뷰와 별점이 다 공개되는 이 시대에서
서문을 보고 책을 사는 사람은 이전보다 줄어들었다.
하지만 책의 엑기스를 담고 있는 게 서문인지라,
여전히 서문은 힘이 있다.
서문 얘기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이하 질 때)를 읽었기 때문이다.
MBC 피디인 김민식이 공정방송을 위해 싸웠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의 서문은,
지금껏 내가 읽었던 어느 책의 서문보다 더 아름다웠다.
다 읽고 한동안 가슴 벅차하다가,
은근히 화가 났다.
아니 이분은 서문에 목숨을 걸었나? 왜 이렇게 서문을 멋지게 쓰는 거야?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됐다.
“아, 서문은 그저 시작이었고, 훨씬 아름답고 엄청난 이야기가 그 뒤에 나오는구나.”
책을 다 읽고 나자 다시금 화가 났다.
아니 이분은 책에 목숨을 건 거야 뭐야?
이게 민폐일 수도 있는 게,
이렇게 대단한 책을 읽고 나면 독자들에게 다른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 아닌가?
비슷한 시기에 책을 출간해 버린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물론 김민식은 이 책 전에도 나름의 독자층을 거느린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 그의 책들은 한정된 독자층을 타깃으로 삼았다.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는 영어에 목마른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책이었고,
<매일 아침 써봤니?>는 글쓰기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한 책이었다.
그런데 <질때>는 하루하루 비루한 삶을 이어가는 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여기 해당되지 않는 이가 도대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난 저자가 갑자기 큰돈이 필요해진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헐뜯기만 했으니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 한 가지만 쓰고 글을 마치련다.
김민식은 MBC의 투쟁 도중 “김장겸은 물러나라!”를 외쳐 유명해졌다.
내가 그였다면 자신의 투쟁을 어필하는 책을 가장 먼저 출간했을 것 같다.
정권이 교체되고 MBC 노조의 투쟁이 승리로 귀결됐던 그때,
승리의 공신 중 한 명인 김민식의 투쟁기가 나왔다면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겠는가?
하지만 김민식은 그 책 대신 영어공부에 관한 책을 썼고,
그 이후에도 글쓰기 책과 여행에 관한 책을 썼다.
그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컨텐츠의 힘이지,
그가 했던 투쟁 덕을 본 게 아니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잡은 지금, 그는 이제야 자신의 투쟁기를 쓴다.
이 책을 쓴 이유도 “나 열심히 싸웠다”를 자랑하고자 함이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화두로 삼아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버틸 수 있는 팁을 주자는 게 이 책의 목적,
보다 많은 이들에게 <질때>가 읽힌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나은 곳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내가 이 책을 온몸을 다해 추천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