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유머다.


[출산이 임박해 산부인과에 간 이모씨, 그만 산부인과 입구에서 분만을 하고 만다. 서럽게 우는 이씨에게 간호사가 위로랍시고 한마디 건낸다.

“슬퍼하지 마세요. 일전에는 화장실에서 분만한 산모도 있었어요”

그 말을 듣자 산모는 더더욱 서럽게 운다.

“그 사람도 바로 저예요 엉엉”]


오늘 아침, 지각을 한 애들이 뒤늦게 출석을 체크하러 나한테 온다 (지역사회의학은 나랑 다른 선생이 진행하는데, 그 선생은 시간이 되면 칼같이 출석을 부르기로 유명하다). 출석부를 들여다보던 학생들, 내가 출석부에다 학생들 발표 점수를 적어놓은 걸 봤다. 점수에 워낙 민감한 학생들이라 자기들 성적이 궁금한지 자꾸들 와서 본다. 그 중 한 학생의 말, “어, 저는 발표 두 번한 점수가 C+, Co 네요!”

다른 애들 점수를 보던 그는 한탄을 한다. “이럴 수가! 내가 제일 못했네!”

그를 위로한답시고 말했다. “아니어요. 더 못한 학생도 있어요”

그 말을 하고나서 출석부를 뒤졌다. 과연 그렇게 성적인 나쁜 학생은 없었다. 어~어~ 하던 내 눈에 한 학생의 성적이 눈에 들어왔다.

“보세요, 이 학생도 C+, Co 잖아요!”

그 학생, 서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한마디 한다. “그게 바로 저잖아요!”


오늘 아침 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어제 리포트 채점을 끝낸 것들을 다시 다 검색했다. 구글과 네이버를 이용해서. 그 과정에서 ‘레포트 월드’나 ‘해피캠퍼스 닷 컴’을 알게 되었고, 베낀 증거를 확인하기 위해 돈주고 감상문을 구매하기까지 했다. 그때의 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터넷에서 베낀 애들이 갈수록 늘어만 갔기 때문. 다섯명, 열명, 그리고 열네명이 된 후에야-의심가는 한명은 좀 더 조사하기로 했다-검색은 끝이 났다. 그렇게 광범위하게 양심불량이 퍼져있는지 미처 몰랐기에 학생들에게 많이 실망했다. 고교 혹은 중학교 2학년 2반 학생이 쓴 감상문을 베낀 학생도 있었는데, 그 학생이 쓴 감상문 역시 다른 무언가를 베낀 거였다. 베끼고, 베낀 걸 또 베끼고, 꼬리를 물고 베낀다. 베끼는 게 쉬운만큼 검색해서 잡아내는 것도 쉽다는 걸 생각했어야 할텐데.


14명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오늘이나 내일 중에 내 방으로 오라고. 벗들이 어제 투표 와 댓글을 통해 충고해준대로, 좋은 감상문을 손으로 두 번 쓰라고 할 생각이다. 학점은 물론 D를 주고. 학생들이 써야 할 감상문은 다음과 같다.

-꼭도라는 분이 쓴 홍상수 론(원하면 여기다 댓글로 올릴께요 정말 잘 쓴 글입니다)

-플레져님의 <미실> 리뷰

-로드무비님의 <유랑가족> 리뷰 (파란여우님, 마냐님 삐지지 마세요!)


어이가 없던 것은 애들이 베끼는 게 잘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10점 만점에 4점, 5점을 준 리뷰들이 알고보니 베꼈다는 걸 알았을 때, 내가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사족: 방금 한 학생이 왔다.

“이거 본인이 쓴 거예요?”란 말에 “아니요”라고 한다. 리포트에 적어놓은대로 “해피캠퍼스죠?”라고 했더니 무척이나 놀란다. 바르게 살라고 말한 뒤 복사한 감상문을 주고-A4로 9장이다-보냈다.


사족 두 번째: 14명에게 문자를 보내니 난리가 났나보다. 애들이 문자로 무슨 일이냐고 묻고, 과대표가 전화를 하고. 한명이 갔으니 지금쯤은 진상을 알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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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8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6-08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감격.
추천합니다.ㅎㅎ
꼭도라는 분의 홍상수론 올려주세요.
읽어보고 싶어요.^^

비로그인 2005-06-08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모씨는 개선되고 있네요.
다음은 병실앞까지 올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하나..잘쓴걸 베낌 어떡합니까. 당연히 못쓴걸 베껴야지 들킬가능성이 낮아지죠.

토토랑 2005-06-08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하루종일 귀가 간지러우시겠어요 ^^;;
왠지 하루종일 '무슨일이야? 너두 문자 받았어? 진짜 하나하나 다 찾아봤을까? 난 문자도 안왔는데 바루 F 인거 아냐? 설마 괜찮겠지? '
이러면서 하루종일 우왕좌왕 했을 학생들의 모습이 그려지네요.. 어쩌면 학생들에겐 잊혀지지 않을 추억을 하나 만들어 주신걸지도 모르겠네요^^;;;

하이드 2005-06-08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2번 말고 한 10번쯤 시키시지.

딸기 2005-06-08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들이 좀 심하네요.

기생충에 감염시켜버리세요

마태우스 2005-06-08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도님이 쓴 홍상수론입니다... 그분의 홈페이지는 http://cocteau.pe.kr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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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록

홍상수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시대의 또 다른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강원도의 힘>으로 관객 만 오천 명을 동원했던 그가, 2년마다 한 편이라는 느린 페이스일망정 꾸준히 영화를 만들 수 있었고, 또 최근작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 이르러서는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 속에 해외 영화제 수상과 흥행성공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은, 관객들의 다양해진 욕구와 영화 작가들의 예술적 자의식이 성공적으로 조우할 수 있는 영화 산업적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것을 증거 한다.

이와 같은 상황 변화가 관객의 욕구에 영화자본이 호응했다는, 영화 외부의 경제적/산업적 요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홍상수 역시 필모그래피가 길어질수록 그의 영화 특유의 '낯섬'과 '냉소'를 덜어가며 더 많은 관객들이 즐길만한 종류의 것으로 자신의 영화를 변화시켜왔다. 물론 이런 변화가 상업적 성공을 목표로 한 전략은 아닐 것이다. 그의 영화에 호의를 보이는 관객이 지식인이나 문인 혹은 (그 경계가 모호하긴 하지만) 영화 매니아들 집단에만 집중적으로 분포해있다는 사실은, 그의 가장 대중적인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개봉 이후에도 그다지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홍상수 영화는 여전히 이상하고 낯설며, 대중적 흥행을 위해 상업 영화가 조장하는 그 흔한 감동 같은 건 한 자락도 흘리지 않는, 건조하고 불친절한 영화인 것이다.

그렇지만 홍상수의 영화에서 변화의 징후는 분명 발견된다. 혹자는 홍상수의 영화가 "느긋해지고 밝아졌다"며 변함 없는 혹은 한층 견고해진 지지를 밝히기도 한다. 이런 변화는 인간 홍상수의 내면적 성숙이나 세계관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홍상수의 영화의 매력들, 즉, 섬세한 구어적 언어감각, 영화형식/구조적 실험 등은 여전히 영화 속에서 빛을 발한다. 동시에 <오! 수정>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변화의 징후들은 급기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 와선 관객에게 농담-가령 문호와 헌준이 중국집 종업원에게 작업을 거는 장면-을 던지며 그의 영화에서 '유쾌함'을 느끼게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건 마치 홍상수가 그의 길지 않은 영화 이력 속에서 그의 주요한 영화적 모티프인 '반복과 차이'를 재현하고 변주하는 듯한 양상이다. 그렇다면, 홍상수는 무얼 '반복'하고 있고 또 어떻게 '차이'를 확대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런 변화는 정말 홍상수 영화를 '볼 만한 것'으로 진화시키고 있는가?

1. 반복

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시작된 홍상수의 영화 작업이 한국영화의 지형도에서 위치하고 있는 방식은 매우 낯설고 새로운 것이어서 마치 느닷없는 화산활동으로 갑자기 솟아오른 섬을 연상시켰다. 지리멸렬한 일상의 한 부분을 아무렇게나 끊어 펼쳐놓은 듯한 그의 영화는 (적어도 한국영화 중에서는) 이전에 결코 본 적이 없는 종류의 것이었고, 평론가들과 영화학도들은 그의 영화가 새로이 제시한 화두들에 대해 리얼리즘에서 해체론에 이르는 다양하고 심각한 이론으로 열렬히 화답했다.

홍상수의 영화가 새롭게 혹은 낯설게 보였던 가장 큰 이유는 '일상성'에 있다. '일상성'은 영화의 소재 선택의 원칙이라기보다, 영화적 공간을 구성하는 방법론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가 집요하게 추구하는 영화의 리얼리티를 확보하는데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우리의 실제 일상이 그러하듯, 홍상수의 영화에는 뚜렷한 내러티브가 없다. 인과의 맺고 끊음이 불분명한 사건이 아무렇지도 않게 삽입되고, 등장인물들은 사건의 진행에 관계없는 일 근처에서 기웃거리기를 서슴지 않는다. 가령 <강원도의 힘>에는 바닷가에서 동요를 부르던 세 친구가 정확한 가사가 기억나지 않아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 1분 가량 삽입되었다. <생활의 발견>에선 경수가 놀러간 선배 집에서 선배의 조카가 자동차의 문에 손가락이 끼어버리는 사건이 벌어지지만, 이 역시 경수의 이후 여행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홍상수 영화의 이런 느슨한 구조는 일상을 사는 우리의 경험과 인지적 측면에서 매우 유사하다. 실제로 우리의 삶에는 정해진 내러티브가 없으며, 일상의 수많은 사건들 속에서 사후적으로 그 중대함이 드러나는 사건들을 구별해내기란 불가능하다. 홍상수는 흡사 통계적으로 계산된 결과이기라도 하듯 유의미와 무의미의 사건들을 영화 속에 배치하여 실재 세계를 시뮬레이션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홍상수의 영화가 '낯선' 이유는 그의 영화적 사건들이 현실과 다르거나 작위적으로 구성되어서가 아니라, 다른 영화들이 영화 문법에 따라 자기완결적으로 구축한 영화 공간에 관객들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며, 바로 그런 관습화된 관람태도가 파괴되고 영화가 현실에 한층 가까워지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라는 점이 명백해진다. 이렇게 현실의 감각으로 영화 속에 재현된 이미지가 갖는 실재감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갑작스런 살인씬에서 드러나듯 때로 강렬한 정서적 충격을 주기도 한다.

‘리얼리티’라는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홍상수는 영화의 기술적 측면에 많은 제한을 가했다. 즉, 영화가 관객의 감정을 조작하고 등장인물에 정서적으로 공감하게 만들기 위해 발전되어온 다양한 영화적 기교들을 포기한 것이다. 카메라는 롱 쇼트의 거리에서 고정된 위치를 유지하며 원쇼트 원씬으로 처리한다. <오! 수정> 이전의 영화에는 시점쇼트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며, 클로즈업이나 패닝 등 최소한의 카메라 워크도 자제했다. 이를 통해 영화는 이중적인 효과는 얻게 된다. 즉, 순수한 관찰자의 입장에서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여 시각적/물리적 리얼리티를 제고할 뿐만 아니라,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객체로서 관객을 영화 속에 포획하여, 관객 일반이 느끼는 그 비루하고 폐쇄적인 일상의 감각까지 살려냄으로써 심리적 리얼리티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홍상수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또 다른 구성요소는 '언어에 대한 섬세한 감각'이다. 일상에서 금방 채취한 듯한 생생한 구어들은, 불쾌할 정도로 비관적인 홍상수의 영화에서 때로 유쾌한 흥취를 느끼게 한다. 홍상수 영화가 코미디라면 그건 촌철살인의 묘미를 선사하는 대사들 때문이다. <생활의 발견>에서 술에 취한 명숙이가 내뱉은 저 유명한 대사, "우리 어색한 거 깨게 뽀뽀나 할까요?", 혹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헌준이 엑스터시의 순간에 내뱉는 "깨끗하게 해줄게" 같은 어이없고 때로 황당한 대사는 홍상수 영화에 비틀린 유머를 선사한다.

홍상수는 또한 전작들을 통해 정교한 형식적 실험을 반복하고 있다. 개인적 차원의 일상의 범위를 영화의 소재로 도입한 그는, 영화 형식의 미학적 실험을 통해 쇄말주의에 저항한다. 홍상수 자신이 "영화는 형식이 전부"라고 말할 만큼, 영화 형식에 대한 탐구는 그의 영화에 핵심적인 요소다. 그의 영화에서 '형식'은 영화의 내용을 담아내는 단순한 틀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홍상수가 말하고자 하는 삶의 본질은 바로 그 형식을 통해 웅변된다. <오! 수정>에서 디테일의 차이를 보이는 엇갈린 기억들은 삶의 모호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생활의 발견>은 '모방'이라는 모티프를 반복하며 선영의 대학시절 경험담과 경수가 어느 호수에서 만난 여대생을 연결시켜 원형구조를 완성한다. 이렇게 정교하게 직조된 영화 형식은 그 자체로 지적 유희의 쾌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강원도의 힘>에서 동일한 시간대에 강원도라는 동일 공간에서 어슬렁거리는 두 주인공을 분리하여 보여주면서도 '눈이 예쁜 여자'를 통해 두 사람을 연결하는 방식은, 흡사 타란티노의 영화를 보는 듯, 시공간을 짜맞추며 관객이 스스로 영화의 구조를 완성하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이렇듯 홍상수는 그의 영화에서 리얼리티의 극대화를 목표로 느슨한 내러티브와 절제된 카메라 워크로 구축한 영화적 공간에서 섬세한 구어적 감각의 언어를 구사하는 천박하고 속물적인 인간들이 거닐게 하며 정교한 형식적 실험을 완성해 나아가는 방식을 반복해왔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최근작에 이르러서는 점차 변모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안이한 매너리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작가 홍상수의 전략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최근 영화들은 이전 영화들과 어떤 '차이'를 보이고 있는가?

2. 차이

한마디로 홍상수의 영화는 점점 덜 낯설어지고 있다. 우선 넉넉해진 제작비와 함께 제작사의 입김에 떠밀려(?) 상업 영화 영역에서 기량을 닦은 유능한 스탭과 스타 시스템에 기대어 영화를 찍게 되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일 것이다. 스크린에 유지태와 성현아가 등장하는 영화는 김의성과 박진성이 등장하는 영화에 비해 한결 집중하기 수월할 것이고 대중적 파급력 또한 비교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감독 홍상수가 영화에 미치는 장악력을 고려해보면 이런 제작 여건상의 변화는 본질적 원인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그의 영화에 출연하는 스타들은 그들이 다른 상업영화에서 소모되는 방식과 명백히 차이를 보이며 '홍상수적 인간'을 연기한다. 또한 한층 간결해진 구조, 주관적 시점숏의 도입, 그리고 배우에게 가까이 다가서기 시작한 카메라가 스텝의 입김이 아니라 홍상수의 변화된 영화관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앞서 홍상수 영화의 '낯섬'은 기존의 영화문법에서 벗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영화 속에 재현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논하였다. 그렇다면 홍상수는 현실의 반영을 포기하고 그의 영화를 동시대 인간들의 비루함과 자기모순과 염치불구의 성욕을 드러내는 일종의 '우화'로 만들기로 작정했단 말인가? 홍상수 영화의 리얼리티를 그런 단순 도식으로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다. 홍상수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를 찍는다는 사실은, 기계적 객관성을 유지하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필름에 옮기는 대신, 그가 목도한 현실의 본질을 영화 형식을 통해 재구성하여 관객에게 전달하는, 견자의 혜안과 사명을 지닌 예술가로서 자신을 규정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의 영화적 형식이 꾸준히 변해가고 또 우연히도 점차 덜 낯설어지는 것은 현실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한 그의 근대적 기획이 시도하는 다양한 실험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홍상수가 드러내려는 현실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가 드러내는 현실의 본질은 눈여겨 지켜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3. 무의미의 발견

'일상성의 발견'과 그 영화적 재현은 홍상수 영화가 선취한 가장 중요한 업적일 것이다. 사회적 역사적 채무감에서 벗어나, 개개인이 직면한 일상의 경험을 영화의 소재로 삼은 그의 시도는, 거대서사의 몰락 이후의 미학적 진공상태에 빠진 우리 영화계에 새로운 실천적 목표를 설정해주었다. '일상성'을 목표로 한 그의 시도는 철저한 것이어서, 개인의 실존을 역사적 사회적 차원에서 해석하고자 하는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거부한다. 그의 영화에서 애써 역사적 사회적 접점을 발견하고자 하는 시도-가령 <생활의 발견>에서 선영이 운동권 출신인 자신의 남편에 대해 "그 사람은 남을 위해서만 사는 사람이다"라고 말하자 경수는 "난 그런 거 안 믿어요"라고 대꾸하는 장면에서, 이데올로기의 시대에 대한 지식인의 염증을 발견하고자 하는 시도-에 대해 홍상수는 "그냥 그 인물이 그런 말을 함직하다 해서" 그런 장면들을 넣었다며 시큰둥하게 답변할 뿐이다.

결국 홍상수의 영화가 일상성의 재현을 통해 드러내는 현실의 본질은 '우리의 삶이 비루하고 인간은 여건만 주어진다면 비열한 욕망에 몸을 맡기는 추하디 추한 동물이며,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오! 수정> 이전의 영화들은 이런 내용을 말하고 있었다. 가만, 이거 새삼스럽지 않은가? 우리의 삶이 그러하고 인간이 그러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홍상수의 영화를 보며 낄낄대고 웃는 사람은 스크린 속에 재현되는 추태가 바로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다를 바 없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다. 홍상수의 영화는 새로운 정보를 전혀 내놓지 않는다. 관객은 이미 알고 있는 세상사의 지식을 스크린을 통해 확인할 따름이다. 거기에 어떤 즐거움이 있다면, 그것은 숨기고 싶은 자신의 치부가 영화를 보는 타인과 자기 자신에 의해 공공연하게 조롱당하고 있다는 상황이 주는 매저키스틱한 즐거움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홍상수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극장을 찾는 관객은 없다. 홍상수는 뛰어난 작가적 감수성으로 축조한 리얼리티의 공간 속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현실의 모습을 낯설게 만들어 제시하며 우리의 삶이 얼마나 비루하고 너저분하며 지리멸렬한지 신랄하게 드러낸다. 프랑스 일간지의 평가대로 홍상수의 영화에서 "표현된 세계보다 더 보편적이고 더 직접적이고 그러니까 더 가깝게 느껴지는 세계는 없을 것이다." 이 농축되었지만 과장되지 않은 현실의 재현에 충격을 받은 어떤 관객이 자신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도록 노력했다더라는, 바람직한-하지만 그다지 현실성은 없어 보이고, 또 홍상수의 의도도 아닐- 결과를 상상해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관객의 몫이다. 그런 착실한 효과를 기대하지 않더라도 홍상수의 영화는 여전히 볼 이유가 많았다.

하지만 <오! 수정> 이후의 홍상수 영화는 점점 더 봐야할 이유를 상실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최근 영화에 나타난 여러 변화의 징후들 때문이다. 그의 영화가 점점 관습화된 영화 문법을 차용하면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나 <강원도의 힘>에서 발견되던 그 엄정한 관찰자이자 관찰대상의 위치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홍상수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의 위치가 변함에 따라, 홍상수 영화를 본다는 관람경험이 다른 영화의 그것과 변별점을 상실한 것이다. 좀 더 자유로워진 감독과 관객의 시선은 그의 영화 속에 늘어난 유머를 즐기며 등장인물의 섹스 행각이 어떻게 흘러가나 느긋하게 지켜볼 수 있는 여유를 획득했다. 그 너저분한 성욕에 대한 자괴감에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서 홀로 낯뜨거워하지 않아도 된다. 홍상수의 영화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가 친절해지고 낯익어지는 만큼 영화는 남의 이야기가 되어갔다. 영락없는 '음담패설'이 되어간 것이다.

심지어 그의 음담패설은 균형감마저 상실했다. <오! 수정>까지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은 남성과 여성이었다. 그러나 <생활의 발견>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주인공은 남성이며, 영화는 그들이 겪는 섹스 무용담 혹은 후일담을 풀어놓을 뿐이다. 이전 영화에서 욕망의 주체로서 낯선 공간을 배회하던 여성들은 점차 남성들의 하릴없는 섹스 판타지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강원도의 힘>의 지숙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선화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확연하다. 좌절된 사랑의 회한으로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리던 지숙과 달리 선화는 아무런 실존적 고민이 없는 캐릭터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성욕을 드러내는 모든 남자를 만족시키는 기능적 캐릭터일 뿐이니까. 어느 삶의 혹은 환상의 영역에서 저런 여성 캐릭터가 현실감을 갖는지는 자명하다. 윤락가나 섹스 판타지! 어느 평론가의 말과는 달리 선화라는 캐릭터는 홍상수의 영화에서 "여자가 남자를 추월"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음담패설의 나락으로 추락했음을 증명할 뿐이다.

공적이고 역사적인 차원을 거부하고 영화가 다루는 범위를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으로 환원해버린 후, 그 텅빈 서사의 공간을 뭔가 다른 미학적 원칙에 따라 채워나가는 것은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홍상수의 이전 영화들은 그 어려운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나아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최근의 그의 영화들은 그 공간에 이상한 걸 채우려하는 것 같다. 세계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며 냉소를 흘린다면, 세상은 분명 비루하고 위선에 가득 차 있으니까, 그건 납득할만한 태도이다. 하지만 느긋함과 유쾌함을 핑계로 공정하지도 않은 판타지로 영화를 채우려 한다면, 발견되는 건 홍상수 영화를 보는 행위의 무의미함뿐이다. 그런 홍상수 영화는 단지 불쾌한 코미디일 뿐이다.

paviana 2005-06-08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의사회가 구현된듯해서 유쾌,통쾌,상쾌합니다.^^

엔리꼬 2005-06-08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으로 시험문제를 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레포트도 될 수 있으면 베낄 수 없도록 자신의 이야기를 넣어서 내도록 하려고요....

moonnight 2005-06-08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수고하셨어요.

ceylontea 2005-06-08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론... 인터넷 시대의 폐단이군요...쩝//

가을산 2005-06-08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맘착하신 마태님, 두번만 쓰게 하시다니! ^^
이 다음 소식도 전해주세요!

그런데, 전체 정원이 몇명인가요?

클리오 2005-06-08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학기부터는 그런 일이 없겠지요.. 무조건 F를 주겠다고 미리 말하는 것도 치사하지만 한 방법인 듯 합니다... 고생하셨어요...

2005-06-08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5-06-09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아닙니다 마음이 약한 겁니다..
속삭이신 진우맘님/그래봤자 2점밖에 안됩니다(100점 만점)
클리오님/미리 말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고생은요 저보다 클리오님이 더 하셨죠^^
가을산님/두번 가지고도 많이 놀라는 학생이 있더이다... 전체 정원은 50명인데요 그중 30%인 14명이 인터넷을 베꼈죠..
실론티님/인터넷 시대의 폐단일 수도 있지만 글쓰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애들 탓이 더 클 것 같습니다
문나이트님/저보다 문나이트님이 더 애쓰셨지요(이런 덕담은 피하자, 마태야. 말이 안되는 거 니가 더 잘 알잖아?)
서림님/자신의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베낀다면 검색해서 찾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요.. 애들이 글쓰는 걸 이렇게 싫어하는지 미처 몰랐거든요
파비아나님/거듭된 곱창 제의에 왜 한번도 답변을 안하시는 겁니까. 성의있는 답변을 요구합니다
슉슉님/딸기님다운 깜-찍-한 댓글이십니다^^
하이드님/10번 쓰라면 반발하는 애가 있을 거예요. 차리라 F 맞겠다고... 그러면 좀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될지 모르죠...
토토랑님/하핫, 제가 애들한테 세상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 건 맞는 것 같습니다 글구 저 원래 귀는 가렵습니다 ^^
하날리님/말씀 듣고 보니까 그렇네요^^ 이모씨가 개선되고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로드무비님/감격씩이나요... 제가 봐도 정말 훌륭한 리뷰십니다

paviana 2005-06-09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사주시는 건가요? 공짜라면 양잿물이라도 좋다는 신조를 가진터라 ^^;;

파란여우 2005-06-09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안삐졌어요. 절 어찌 보시고....(간신히 대범한 척 하느라고....)^^

찌리릿 2005-06-28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신지 꽤 됀 글에 댓글을 다네요. 감상문, 레포트, 양심이라는 3단어를 보니... 저도 양심에 찔리는 게 있더라구요.
 
얼마 전, 제 여자친구의 여동생, 그러니까 앞으로 결혼할 제 신부의 동생, 그러니까 처제(될 사람)가 저에게 SOS를 보내왔습니다.
"형부(꼭 아쉬울 때는 "형부"라고 부릅니다. 보통 땐 "아저씨" 또는 호칭없이... ㅠ.ㅠ),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거죠?"
"("형부"라는 호칭에 아주 좋아라하며...)뭔데?"
"저... 제일 싫어하는 과목 과젠데요... 독후감 쓰기에요..."
"에이.. 아무래도 그렇지, 책을 잃어야 쓸 수 있는 과젠데.. .내가 할 수 있나?"
"그래도, 형부는 한국사를 좋아하잖아요"
"그렇긴 하지.."
"책은 제가 드릴테니까.. 대충 읽고 간단하게 써주세요"
이러면서, 10분간... 된다 안된다고 옥신각신... @##$%#$%^$%^#^@$
 
결국... 승락을 하고 말았는데.. 그 책을 받아보니, 정말 한국사를 좋아하는 저로서도 딱 읽기 싫은, 잃어도 별로 얻을게 없을 것 같은 책이었습니다. 소재는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과 그들이 전쟁에 대한 이야기인데, 왜 그걸 대학교 1학년들이 교양으로 알아야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가더군요. 다만 과목의 강사 자신이 4년 전에 쓴 책이라는 사실 밖에는...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가 300포인트 정도 밖에 안되는 몇권 팔리지 않은.. ㅠ.ㅠ)
 
대학교 신입생들이라 조교가 그냥 적어준 대로 듣는 교양 과목인데, 삼국시대에 고구려에서는 어떤 무기를 썼고, 신라 병사들의 전투복은 어떤 모양새였는지를 말해주는 책을 왜 읽으라고 하는지 저도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것도 삼국시대 전쟁 소사를 읽고, 무슨 감상을 적어 내라고 하는 것인지....('처참했군요.', '아, 그당시에 그런 무기도 있었군요!'라는 말 밖에는... ㅠ.ㅠ)
 
그러나, 예비 처제의 부탁인데, 행여 점수라도 낮게 나와서, 예비 형부로서의 점수라도 깍일까봐.. 책을 읽을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오래전의 일인데다(삼국시대니...),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전쟁 세사였고, 더군다나 고증이 불가능하여 저자의 상상력이 위주로되어 역사책인지 소설책인지 구분 조차되지 않아 도저히 마음이 내키지 않아, 4분의 1만 읽고 접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해피캠퍼스"였습니다. 오만가지 리포터가 다 있어서, 교수가 어떤 과제를 낸다고 해도 걱정할 게 없다는 TV CF에서 본 바로 그 레포트 사이트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비슷한 감상문을 찾긴 찾았는데, 이건 빼껴쓰려고 해도 쓸 수가 없는 아주 못 쓴 감상문이었습니다. 책을 옳게 다 읽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군데군데 발췌해서 쓴 어이없는 감상문!
 
그런데 다운로드 받는데 2천원이나 쓴 저는 "이런 도둑놈!"이라는 욕을 할 수 밖에 없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깨끗하게 내가 직접 쓰자라고 결심을 했습니다.
솔직하게 썼습니다. '책이 별로 흥미가 없어서, 4분의 1밖에 안 읽고 쓴다.'부터 시작해서, 감상문이라기 보다는 책 비평문 비슷한 걸 썼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읽어보니, 이러다가 처제의 이 과목 점수가 D밖에는 안 나오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가다듬고 또 가다듬어 두리뭉실한 감상문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는 '이런 재미도 없는 과목에, 누구도 읽기 싫어할 책을 신입생들에게 (사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살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책을 구해서 읽고 감상문까지 쓰라고 하는 강사가 너무 원망스럽고 미웠'지만, 지금 마태우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남의 부탁을 받고 대신 레포트를 써주는 저의 도덕성이 더욱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작은 법 위반이나 약속어김을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저...
정말 반성해야겠습니다.

마태우스 2005-06-29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찌리릿님/글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저도 잘못하는 거 겁나게 많은데.... 우리 같이 반성해요^^
 

 

 

 

 

애들이 뭔가를 착각한 모양입니다. 저에 대해서 잘 몰랐나봐요. 제가 남는 게 시간밖에 없고, 집요하다는 것을요.


1학년 세미나라는 과목은 외부강사가 두 번 강의를 하는 걸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평가를 해야 하겠기에 애들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학기 안에 책이나 영화 하나를 보고 감상문을 써라. 그걸로 평가를 대신하겠다”

이 말도 덧붙였습니다.

“인터넷 같은 데서 베끼지 마세요. 제가 인터넷 검색 할 거예요”


사실 진짜로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봄날은 간다>에 대한 다음 영화평을 보니 검색을 하고 싶었어요. A4 1장만 내도 된다고 했는데 그 학생은 무려 5장이나 되는 묵직한 레포트를 제출했더군요.

[허진호의 영화 봄날은 간다는 사랑에 관한 담론, 그 중에서도 사랑의 상처와 치유에 관한 담론이다...허진호의 영화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사랑이 시간으로, 시간이 사랑으로 끊임없이 이동한다...봄날은 간다에서 사랑의 에쎈스가 추출될 수 있었던 것, 반 박자의 차이가 사랑의 날카로움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이거, 무슨 영화 전문가 같지 않나요? 구글에서 검색을 했습니다. 의외로 쉽게 답이 나오더군요.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분 당선작인 이재현님의 작품이더이다. 겁도 없이 이런 걸 베끼다니, 절 너무 무시하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그 다음부터 전 구글과 네이버를 수시로 검색하면서 리포트 채점을 했습니다. 걸리는 학생이 의외로 많더군요. 한 학생은 <슈렉>을 선택했어요. “모든 등장인물이 동화나라의 규격화된 틀을 깨지 못해 몸이 근질거린다는 투다”라는 문장에서 ‘규격화된 틀’을 검색했더니 대번에 필름 2.0의 리뷰가 나옵니다. 후반부는 깜찍하게도 시네서울의 김철휘 기자의 리뷰를 그대로 베껴왔더이다. 어떤가요. 이게 앞의 학생에 비해 좀 더 성의가 있다고 인정될 수 있을까요? 오히려 더 나쁜 건 아닐까요?


<아이 앰 샘>의 리뷰는 “외출공포증”과 “아빠의 지능을 추월해 버리는” 이걸 넣고 검색한 끝에 2학년 2반 김연지가 쓴 리포트임이 드러났습니다. 고2 아니면 중2 것을 대학생이 베낀 거죠. 단 한글자도 안틀린 그런 리포트를 아직 때묻지 않았을 대학 1학년생이 버젓이 제출한 겁니다.


어떤 학생은 영화 사이트에 난 시놉시스를 그대로 갖다 붙였어요. 또다른 학생도 마찬가지인데요, 이들은 그래도 자기 의견을 집어넣었으니 D+는 줄 예정이어요. 그럼 지금까지 밝혀진 세 학생은? 당연히 F죠. 1학년 세미나 연자로 온 선생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양심이다. 실력 차이로 환자가 죽고 사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양심이 나쁜 의사는 환자에게 엄청난 해를 끼칠 수 있다‘

그런 강의를 듣고 겨우 한다는 게 리포트 베끼기일까요. 최신 영화를 안보고 왜 죄다 옛날 영화만 보나 했더니, 최신 건 적발되기가 쉬워서 그런 건가봐요. 인터넷을 오려붙여 리포트를 낼 수 있는 편안한 시대지만, 검색 역시 그만큼 쉽다는 걸 망각한 처사지요.


교학과에 갔습니다. 의대는 학년제라 한 과목에서 F가 나오면 2학년 진급이 안되거든요. 그래도 혹시 예과 2학년 때 1학년 세미나를 들을 수 있냐고 물어봤어요. 안된답니다. 그때부터 갈등이 생겼어요. 그것 때문에 애들한테 1년을 더 다니게 한다는 것이 잔인하게 느껴집니다. 애들이 막무가내로 빌텐데, 학부모까지 동원할텐데 견뎌낼 자신도 없고요. 참고로 전 딱 한번 F를 준 적이 있습니다. 기생충학 기말고사를 안본 학생이 전화를 해서 “왜 안봤냐”고 물으니 “과음했어요”라고 하기에, 두말없이 F를 줬었지요. 의대에서 F 주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은데, 전 이미 전력이 있다는 거예요. 자, 어떻게 할까요. 1년간 1천만원의 등록금과 1년의 허송세월을 감당하게 하는 게 날까요, 아니면 불러서 야단을 치고, 리포트를 다시 내게 한 뒤 학점을 줄까요. 마음이 심난해서 결정을 못하겠네요. 지금 남아있는 리포트 중에는 베낀 애가 없을까요.

투표기간 : 2005-06-07~2005-06-08 (현재 투표인원 : 48명)

1.
27% (13명)

2.
2% (1명)

3.
25% (12명)

4.
39% (19명)

5.
2% (1명)

6.
4%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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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5-06-07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첫번째로 투표했어요.^^
불러서 점잖게 한말씀만 하세요.
다시 "제대로" 안써오면 F 나간다고..
시간강사하는 친구들이 정말 성적나오면 전화에 불 난다고 하더군요.
핑계없는 무덤들은 왜그리 많은지....

야클 2005-06-07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러다가 "진짜 니가 쓴거니?"물어본 후 뻔뻔스럽게 "네!" 하면 F주세요. 엉엉 울면서 빌면 D주시구요. ^^

sooninara 2005-06-07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번..왜? 그래야 아이들이 다시 리포트 써서 마태님이 페이퍼 또 쓸거리 생길것 같으니까^^

물만두 2005-06-07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포트 다시 쓰라고 하세요. 대신 무지 어려워 인터넷 보고 베끼지 못할 걸루요. 이런...

비로그인 2005-06-07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히 다시 쓰게 하는데 반드시 인터넷에서 배껴 오라고 그러세요
이걸 교수님 이 찾아내면 F, 못찾으면 A 준다고 그러세요

▶◀소굼 2005-06-07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홍.야클님 의견에 찬성할래요;
일단 3번 표.
전 또 알라딘 서재에 있는 리뷰를 누군가 베낀 줄 알았네요;[좋은 거 많은데;;]

비로그인 2005-06-07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졸리가 좋아요.
졸리 한테 투표했어요.

oldhand 2005-06-07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번이요. 4번. 좀 응징받아야 할 일인것 같습니다.

플레져 2005-06-07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번이요.
그리고, 꼭 말씀하세요. 나, 검색 대마왕이다, 라고!!

수퍼겜보이 2005-06-07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 는 없나요?

하이드 2005-06-07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 그렇게 살면 안되죠. 쓴맛을 봐야해요. 1년이 아니라 10년을 더 다니는 한이 있더라도.

미완성 2005-06-07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4번요.
혼나는 건 한 번 잔소리 듣고 끝나는 거잖아요. 숙제 왕창 내주시고 D+을 주심이...
또 베끼면 F, 어때요?

진/우맘 2005-06-07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번. 대신, 영화평은 세 개....열 개는 너무 많군요. 반감을 살 지도. ㅡ,,ㅡ

난티나무 2005-06-07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맘 같아선 1번... 그러나 현실을 감안하여 3번을 찍습니다. 또 그러나, 다시 레포트를 받더라도, 그것이 에이뿔따구 감이더라도 한두 등급(?) 낮추어 점수를 매기시길 바랍니다. 아, 찍고 보니 4번도 괜찮은 것 같아요... 3번과 4번을 합치세요~~~^^

파란여우 2005-06-07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음 같아선 1번인데요,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기 위해서 4번으로 했습니다

가을산 2005-06-07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끼기'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건 어때요?
두꺼운 논문이나, 생각에 도움이 되는 글을 본인의 손으로 5번 써오기ㅡ 이런걸루요.
숙제를 내주면서 필적을 미리 받아두시구요.

깍두기 2005-06-07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이 지정하는 기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한 후, 마태님이 그 강의에서 준 점수 중 최하점을 주는 겁니다.

진주 2005-06-07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E학점은 없는 걸까요 으흐흑..
저는 4번 눌렀어요.

노부후사 2005-06-07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시절까지 레포트라는 건 인터넷에서 배끼는 것이라 당연하게 생각해 온 아이들입니다. 아마도 영화보고 그 자리에서 웃고 떠드는 법만 배웠지 이때껏 글쓰는 법은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을 겁니다. 아이들 잘못도 물론 있지만 그 따위로 가르친 한국의 교육체계의 책임 또한 큰 것이죠.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혼을 내고 싶으시다면 그냥 깔끔하게 F를 주세요. 그러나 그 아이들을 공부 시키고 싶으시다면, 마태님께서 생각하시기로 영화감상문을 쓰는 초심자가 읽고 참고할 만한 글을 손으로 배껴쓰게 하세요. 그런 다음 다른 아이들보다 학점을 한 단계 낮춰 주시면 되겠죠. 글 쓰는데 배껴쓰는 것만큼 좋은 공부가 없죠. 아이들보고 F학점과 배끼는 것 중에 선택하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sweetmagic 2005-06-07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애들은 레포트는 절반 이상이 인터넷에서 배낀 자료 투성이던데....에효....)

논문에서 한 설문조사를 지들이 한 것 처럼 발표한 애도 있었어요.
속상해요. 교수님께 고대로 일러바칠 수도 없고 흑흑흑.....
힘없는 조교는 안타까움에 가슴만 칩니다.
여하튼... 전 가을산님 의견에 한표

로렌초의시종 2005-06-07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호하게 1번

마냐 2005-06-07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마음이 약한게 탈. 4번. 하지만, 저것보다 훨씬 강도높은 '죄에 상응하는 벌'이 있어야...

어룸 2005-06-07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야클님 의견에 찬성찬성 대찬성^^

mannerist 2005-06-07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너가 존경하는 어느 분은 예전에 의대를 몇 년 다니시다 진로를 바꾸어 사학과 교수가 되셨지요. 그 분께서 자신의 인생을 바꾼 스승의 말로, 예과 첫 시험때 어느 의대 교수님의 말이었다고 합니다.

"너희는 인간의 생명을 다룰 자들이다. 다른 이들의 거짓은 메울 수 있는 물적 손해에 그칠 뿐이지만 너희들의 거짓은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것 정도야. 라는 생각 버려야 한다. 이번 뿐이야, 이것정도야. 하는 마음은 습관이 되어 몸에 남는 법이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자들에게 거짓이 머무를 자리는 없다."

클리오 2005-06-07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러서 혼낸다..에는 찬성 못합니다. 마태님께서 단호하게 어디 혼이나 내실 수 있겠습니까.. 1년 더 다니는 것에는 저도 좀 저어되긴 합니다만, 어찌되었건 대가는 받아야 된다고 봅니다..

인터라겐 2005-06-07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기타 눌렀어요...
그 학생들 등록금 내주는 건 부모님이신데...그분들도 자신의 아이들이 어떻게 학교생활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뭐 자기 자식이 힘든 국영수 공부하느라 체육못했다고(고딩과목을 예로 든건 예전 우리 다닐적에도 있었던 문제인지라... 그때도 애들이 시험볼때 체력장같은거 소흘히하고 그랬는데 거기서 점수안나왔다고 엄마들이 떼거지로 몰려온적 있었거든요..) 그거 가지고 뭐라구 하냐구 말한다면 어쩔수 없는 부모님들 이시겠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란걸 확실히 보여줘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만약 내 자식이 저런다면 그냥 확~ .... 천만원씩이나 하는 등록금을 날리기엔 그 학생의 죄는 미우나.... 그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그런데 그 부모님들이 돈 많으면 제외....)

결론은 자신의 행동을 글로 써서 부모님께 확인서를 받아오게 하는거죠..좀 유치해 보이긴 하지만...

갈대 2005-06-07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베끼기에 한 표 던집니다. 분량은 한 학기 수업 시간 전체에 달하는 시간을 쏟아부어야 할 만큼은 되어야 할 테니 연습장 꽉 채워서 100쪽 정도면 적당할 것 같은데요.

호랑녀 2005-06-07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의견에 한표. 예, 갈대님 의견대로 한 100쪽 정도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아님 그냥 F맞으라 하구요.
아, 레포트 베껴 낸 그 영화 시나리오를 베껴쓰라고 하면 어떨까요?

sweetmagic 2005-06-07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나리오 베끼기 거 참 좋네요 ㅎㅎㅎ

마태우스 2005-06-07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직님/그, 그럴까요?? 지금 갖고 있는 시나리오가 없는데.....
호랑녀님/영화 시나리오를 구할 수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100쪽이라..살인적이군요^^
갈대님/알겠습니다. 그럼 베끼기 숙제를 내주는 걸로 하겠습니다. 혹시 시나리오 하나 구해주실 수 있는지요
인터라겐님/부모님께 걱정을 끼쳐 드리는 건 좀...걔들도 다 컸다고 생각할텐데... f맞으면 부모님이 뜨긴 할텐데요, 그 전에는 저희끼리 해결해 볼께요^^
클리오님/사실 1번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역시 알라디너 분들은 인정이 많으십니다...대가 받고 그냥 D 주던지 할께요
매너리스트님/님 말씀이 맞습니다. 인간의 생명을 다룰 학생들이 벌써부터 그런 짓을 한다는 게... 그래도... 진급을 안시키거나 그만두게 하기엔 저희가 마음이 약하네요
투풀님/불러서 물어보면.... "네"라고 할 애들이 있을까 무섭습니다. 인간에 대해 정말 실망할 것 같아서요... 그 방법은 두렵습니다
마냐님/님도 마음이 약하시군요^^ 어떤 벌이 좋을까요
시종님/젊은 패기로 1번을...^^ 그게 원칙이겠지요. 하지만 나이가 드니까 사람이 보수화되는 건 어쩔 수 없네요..죄송합니다. 원-만-히 해결할께요
따우님/불러서 혼내는 것도 무섭지만, 한번 해볼께요.... 이 사건의 경우엔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에피님/고교 때부터 몸에 익은 거란 말이죠... 인터넷의 폐해일까요. 쉽게 숙제하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진주님/으음, 진주님도 4번... 점차 가닥이 잡혀 갑니다. 리포트 3개 쓰라고 해야겠어요. 그 정도면 벌로 될 것 같지 않아요? 시나리오는 너무 가혹하단 생각이 들구요
신깍두기님/애들이 시험 기간이라 봉사를 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아무튼 D 주는 건 공감대가 형성된 듯...
가을산님/리포트를 쓰게 하되 본인의 손으로 직접 쓰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우님/나이 드신 분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4번이네요. ^^ 저처럼요
난티나무님/님도 역시 인정에 이끌리시네요^^ 죄는 밉지만.... ^^
진우맘님/님 말씀대로 3개를 손으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영화를 다시 보게 할 것인지, 아니면 기존 감상문을 베끼게 할지는 생각해 볼게요
사과님/님의 착한 마음씨에 감동해서 F 줄 생각은 완전히 버렸습니다(사실은 아까 아까 버려놓고선..)
하이드님/역쉬 20대의 패기^^
흰둥이님/D-는 왜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을까요. 저는 최하가 D+인 줄 알았어요
플레져님/와 오랜만이네요. 검색 대마왕이다...호호. 리뷰 대마왕님!
올드핸드님/응징받아야 한다는 데는 대충 동의하셨네요. 근데 그냥 A+ 준다에 투표한 한분은 누굴까요?
하날리님/아아 하날리님이셨구나. 졸리, 안젤리나 졸리 정말 좋죠!
소굼님/소굼님 리포트를 베끼게 할까요??
만두님/리포트 베끼게 하는 걸로 대충 가닥이 잡히나요??
수니님/어머 저 글 쓸 거리 겁나게 많습니다! 이제 리포트 얘기는 그만 쓰려구요^^ 좀 우려먹긴 했지만..
야클님/다들 직접 썼다고 할까봐 무서워서 못물어보겠습니다.... 슬픈 현실...
파비아나님/곱창 먹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담주 쯤에 먹어요! 투표 감사합니다


세실 2005-06-07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3번요. 눈물이 나오도록 따끔하게 혼내키고, 다시 해오라 그러면 1석 2조의 효과(마태님은 위대해 다 알고 뭐, 절대 베끼기는 하지 말자)는 거둘듯 합니다.

로렌초의시종 2005-06-07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달리기 싫으시면 F주시고 바로 어디에 숨어버리셔요 ㅋㅋㅋ

sweetmagic 2005-06-08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봄날은 간다 대본 있어요 근데 띄엄띄엄으로 53장 밖에 안돼요 .

balmas 2005-06-08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번에 한 표요~
뭘 모르고 그런 것일 수도 있잖아요, 한 번은 용서를 해줘야죠.
저는 애들이 보고서 베껴올까봐, 베낄 수 없는 숙제를 내준답니다. *^^*
그게 상당히 효과가 있더군요.

2005-06-08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yonara 2005-06-08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은 단호하게 1번입니다만...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3번이 적당하지 않을까요!?
-발마스님, 대학생이나 된 사람들한테 뭘 몰라서 그랬다는 건 다른 학생들을 오히려 모욕하는 겁니다... 흑.. ㅠ.ㅠ; -
그리고 다시 한 리포트에서 감점해서 점수를 주는 게 타당하다고 봅니다. 제때에 제대로 한 학생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서 말입니다.
시간이 촉박하다면 그냥 D가 마땅할테구요... ^^;;;

2005-06-08 1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6-08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05-06-08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 ㅠㅠ 괘씸하지만 F는 현실적으로 무리일 거 같네요. -_- 전 3번 또는 4번입니다. 자신들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절절이 느끼도록 만들어주고 벌숙제-_-는 반드시 손으로 쓰게 만드는 의견에 찬성입니다. 마태우스님 학생들에게 실망하셨을 거 같아서 마음이 좀 그러네요. ;;

딸기 2005-06-08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읽었어요.

솔직히... 황당하네요. (뒷북쳐서 죄송합니다만)
제가 학교 다닐 때, 미술전람회 갔다와서 감상문 써내라는 과제가 있었어요.
숱한 아이들(저를 포함해서)이 거짓말로 썼지요.
예를 들면 팸플릿만 보고, 대략 본듯 써서 낸다든가.
그땐 인터넷이 없어서 그랬나?
무려 신춘문예 당선작을 베껴내다니, 그런 생각을 요즘 아이들은 어떻게 할까.

로드무비 2005-06-08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제야 읽었어요.
4번 찍었습니다.^^

마태우스 2005-06-08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비님/무비님 리뷰가 그들을 감화시킬 것으로 생각합니다
슉슉님/뒷북이라뇨... 페이퍼는 읽고플 때 읽는 겁니다. 때가 없는 거죠^^ 팸플릿만 보고 본 것처럼 쓴다면 그건 제가 바라는 바입니다. 글쓰기 능력을 함양하는 게 목표거든요
문나이트님/손으로 두번이면 만족하시죠??
사요나라님/그냥 두번에 D, 이거면 후하다고 생각해요. 보통은 유급 안하려고 사흘 정도 빌곤 하지요...학부모까지 동원해서요. 근데 14명이나, 휴...
발마스님/애들은 왜 영화나 책을 그리도 싫어하는 걸까요. 두달이나 시간을 줬는데...
매, 매직님/53장이면.... 으음...
로렌초님/이번 한번만 봐 줍시다. 제가 강력하게 말을 안했었으니깐요...마음은 F지만..
세실님/제 마음 아시죠??
따우님/한 학생이 반항하더이다. 너무 가혹하다나 뭐라나.. 기가 막혔습니다
 

 

러닝머신을 뛴 거리는, TV에서 얼마나 재미있는 걸 하느냐에 달려있다. TV가 재미없으면 달리는 게 지루하고 힘들지만, TV에 빠지면 내가 달린다는 사실조차 까먹게 된다.


1. 6월 3일(금)

밤 10시부터 축구를 했다. 우리집 앞 맥주집은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광화문도 그렇단다. 아무리 그래도 난 3년 전처럼 흥분할 수 없었다. 월드컵 한달을 제외하고는, 축구는 내게 남의 일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난 빅게임이 있는 시간에 맞춰 퇴근을 했고-사람이 없으니까-새벽에 축구를 보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래도 봐야지” 하고 튼 축구는 너무도 재미가 없었다. 그걸 보면서는 단 1킬로도 달릴 수가 없었기에, 케이블에서 하는 <조폭마누라2>를 보기 시작했다. 케이블에서는 영화를 틀 때 중간광고를 삽입하므로, 그때마다 축구 쪽으로 채널을 돌렸다. 축구가 한숨만 나온 반면, 영화는 의외로 재미있었다. 이 영화가 그렇게 욕을 먹었던 그 영화인가 싶을 정도로. 기억을 상실한 신은경이 마초 남자들을 혼내주는 장면, 그리고 서민들과 애환을 나누며 지내는 장면은 흐뭇하기만 했다. 아쉬운 게 있다면 웃기려고 삽입한 장면들이 하나도 안웃겼다는 것. 하지만 더 후진 영화가 천지인데, 이 영화에 왜 그렇게 비난이 쏟아졌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얼마나 뛰었는지 계기판을 보니 내가 뛴 거리는 대략 6킬로, 간단한 샤워를 한 뒤 누워서 영화를 봤다. 끝나고 나서 축구로 채널을 돌렸다. 0-1로 지고 있다. 옛날 같으면 가슴이 찢어질 일이지만, 의외로 담담했다. 난 더 이상 축구팬은 아니었다. 박주영의 동점골에 일어나 환호하긴 했지만.

맥스무비 별점평 4.27


2. 6월 6일(월)

황금의 3일 연휴라지만, 난 그다지 잘 보내지 못했다. 사랑니를 뺀 상처가 도대체 아물지 않았던 탓. 아픔을 이기려고 타이레놀을 때려먹고-왕창 먹는다는 뜻-자고, 깨고나면 또 타이레놀을 먹었다. 그러다보니 황금같은 이틀간 책도 별로 못읽은 채, 잠만 잤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밤 10시쯤 러닝머신을 시작했다. 뭘 하나 틀었더니 <역전에 산다>를 한다. 김승우와 하지원이 주연한 그 영화. 이 영화에는 나만 아는 추억이 있다.


어느 사이트에 젊은 영화감독이 글을 올렸다. 자신이 <역전의 명수>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데, 이 영화의 감독인 박씨가 <역전에 산다>라는 제목을 붙여버렸다는 것. 영화 내용상 그런 제목이 붙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의 영화는 <역전의 명수> 말고는 붙일 제목이 없다는 것 등을 들어 그 감독은 박씨가 자신을 물먹이기 위해 일부러 그런 제목을 택했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영화판이란 곳은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며, 시나리오를 다 써줬는데도 감독이 지가 시나리오까지 쓴 양 행세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히치코크는 훌륭한 감독이다). 어찌되었건 <역전에 산다>는 흥행에 실패했고, 올해 드디어 개봉한 <역전의 명수>(정준호.윤소이) 역시 관객동원에 실패, 두 편 다 감독의 인생을 ‘역전’시키지 못했다.

이건 역전의 명수

이건 역전에 산다


 

그럼에도 난 <역전에 산다>를 재미있게 봤다. 보는 영화마다 재미있게 봤다니 눈이 있긴 있느냐고 의심하겠지만, 이걸 보면서 러닝머신 9킬로를 쉬지않고 뛰었으니 재미있게 본 건 확실하다. 매력적인 배우 하지원이 자신의 매력을 별로 발휘하지 못하지만, 그녀는 원래 존재 자체로 보는 이를 즐겁게 하는 배우고, 두 세계를 오가는 스토리도 제법 흥미로웠다. 단점을 찾자면 무수히 지적을 할 수 있겠지만, 좋게만 평가하는 건 내가 심리검사의 CP(chief parent, 지배적 어버이) 점수가 3점으로 기록적으로 낮다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거다. 한가지 의문. 그렇다면 내가 혹평한 영화는 도대체 뭐야?? 참고로 맥스무비 별점평은 역전에 산다 5.47, 역전의 명수 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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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5-06-07 0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노트북인가 하는 영화는 재미없었다고 한것 같은데요??
전에 마태님 페이퍼에서^^

플라시보 2005-06-07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개 다 하는건 봤는데 제대로 못봤어요. sbs의 네임리스도 보긴 봤는데 보다가 졸다가 해서 무슨 내용인지를 모르겠더라구요. 쩝

줄리 2005-06-07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마태님의 영화 리뷰는 점수를 잘 줄수가 없네요.. 전 영화리뷰에 대한 점수 무지 잘 주는데 도대체 이 리뷰는 뭔가요?^^ 솔직히 말하면 무지 산만해요. 아무리 재밌다고 우기셔도 재미 없다는걸 깊이 느끼게 해주는 리뷰라고나 할까요? 하여간 그래서 추천도 안해요 - 흐 언제는 꼭 한거 같지요? 글쎄요 했을수도^^

인터라겐 2005-06-07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둘다 안봤으니 뭐라 말할수 없고...ㅎㅎ 마태님 서재지붕이 너무 귀여워요..
매일 매일 즐거운 일이 빵빵 서재지존 마태우스... 인정합니다...서재지존 마태우스...

2005-06-07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엔리꼬 2005-06-08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인공이 역전에 사나요? 용산역? 서울역? (썰렁)

마태우스 2005-06-09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림님/하하 정말 썰렁하네요^^
인터라겐님/지붕은 진우맘님이 만들어 주셨답니다. 귀엽게 봐주셔서 감사.
줄리님/어맛 글쿤요. 사실은 30위를 노리고 급조된 페이퍼인지라... 산만한 거 맞구요, 영화도 산만하게 봤어요. 님이 추천에 그렇게 공명정대하시니, 담부터 님 추천을 받으면 기분이 한결 좋아질 것 같습니다
플라시보님/한번 본 영화가 아니면 맘잡고 봐야지, 대충 보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더이다...
수니님/그니까 그 노트북은 얼마나 후진 영화냐는 게 제 주장의 핵심입니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6 범우 한국 문예 신서 56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장정일이 쓴, 여섯 번째의 독서일기를 읽었다. 장정일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다. 그런 것 치고는 희한하게, 난 그의 작품들을 거의 읽지 않았다. 시야 원래 읽지 않으니 그렇다쳐도,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말고는 그의 소설을 한편도 읽지 않았다니 신기하지 않는가. 참고로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3분의 1쯤 읽다가 말았다. 새디스틱한 행동이 나오면서부터는 도저히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던 까닭이다. 그럼에도 내가 그를 좋아하는 건, 글에 대한, 그리고 이 사회에 대한 장정일의 철학 때문이다. 얼마 전 출간된 <생각>도 그렇고, <독서일기> 또한 장정일의 원칙과 철학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독서일기>는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스승이라 할 만하다. 내가 철이 없을 무렵, “책 리뷰 쓴 거 모아서 책이나 내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그게 한심한 생각이라는 걸 깨닫게 해 준 책이 바로 <독서일기>다. ‘아, 내공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면 독서일기를 쓸 수 없구나’ 하는 걸 알려준 이외에도 독서일기는 내게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내가 지금 쓰는 서평-뭐 그리 대단한 건 아니지만-은 다 장정일한테 배운 거다. 특정인을 사숙하다보면 문체까지 따라하기 마련, 내 서평에 장정일의 말투가 반복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붕어빵은 사치스러워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필자는...”이란 구절은 내가 쓴 <기생충 제국> 리뷰의 “기생충이 가장 진화한 생명체라고 주장하는 저자는..”의 시조격이며, 내 서평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 “이 소설은..인간 세상을 이렇게 설명한다”는 식의 말투도 사실은 독서일기에서 빌려온 거다. 따라한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 나빠하는 나지만, 그 대상이 장정일이라면 오히려 즐거울 수 있다. 내가 달리 ‘빠’인가.


나름대로 신간을 열심히 찾아 읽는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 장정일이 선택하는 책은 왜 이리도 다른가 싶다. 그가 기술한 책들이 내가 읽은 것들보다 훨씬 멋져보이는 건 오버라 해도, 다음에 나올 <독서일기 7>에서는 겹치는 책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 더. 색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독서일기에 나온 책을 나중에 읽고 “그때 장정일은 어떻게 생각했었지?”가 궁금해 독서일기 전체를 뒤질 때가 여러 번이었다. 딱 한번, 색인을 만든 적이 있긴 한데, 그 다음부터는 다시 없어졌다.


<상식 혹은 희망, 장정일>을 읽다가 마음아픈 적이 있었다. 가방끈이 짧은 장정일은 대학을 나온 다른 작가들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나야 불러주는 곳이 없겠지만, 당신들은 어디 문창과 교수라도 되지 않겠냐” 왜 이런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자신이 알뜰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말하는 대목이었던가?-글쓰기에 대한 원칙이 어느 누구보다 확고한 장정일이 단지 가방끈 때문에 교수가 못된다는 현실이 마음 아팠다 (장정일이 교수를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장정일은 KBS <책을 말한다>의 사회자로 나온다. 아직 그 프로를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그의 진가를 알아보고 사회자로 등용해준 KBS에게 장정일의 팬으로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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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2005-06-07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지런한 연휴를 보내셨군요. 그리고, 마태님의 리뷰가 책 한 권으로 묶여져나온다면 꽤 멋질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세실 2005-06-07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1993년도에 쓴 1권(?)만 달랑 읽었어요~
박학다식함에 쇼크 받았었죠. (나는 뭐했나....)
그 책에는 겹치는 책이 좀 있던데, 마태님 글 읽어보니 7권도 읽어보고 싶네요~

하루(春) 2005-06-07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 장정일이 TV, 책을 말하다에서 "피버 피치는 불타는 그라운드라는 뜻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정말 뒤집어졌죠.

마태우스 2005-06-07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어머 그분이 조크도 할 줄 아시나봐요.... 예상 밖인걸요^^
세실님/저도 얼마나 놀랐는데요. 그때는 겹치는 게 있었는데요, 이번 거는 하나도 없어요. 중국이랑 음악, 서구 역사 얘기가 유난히 많이 나와서...
사과님/책으로 낼 생각도, 그렇게 해줄 출판사도 없을 거예요. 그대신 제가 맘에 드는 리뷰 뽑아서 제본을 할 생각은 있어요. 기념으로요^^ 10권쯤 할 건데요 사과님은 하나 드릴께요!

파란여우 2005-06-07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직접 1권만 색인을 만들어 놓고 그 다음부터는 못만들겠더라구요. 아이, 귀찮아서^^*..마태님 개성이 드러난 리뷰긴 했는데 한 꼭지 집어주는 스포일러는 약해보입니다.그래서 추천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갈등 중!!^^

세실 2005-06-07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이 맞아요. ㅠㅠ 오늘이 아니라 어제 였다는.....

히나 2005-06-08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독서일기 6권은 직업적인 필요성에 의해 책을 읽느라 그랬다는군요 (아마 삼국지를 집필하느라 그랬겠죠?)

마태우스 2005-06-08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노우드롭님/그런 것 같았어요. 직업적인 필요성...^^ 역시 예리한 ...
세실님/울지 마세요 뭐 그런 걸 가지고..^^
여우님/갈등만 하고 결국 추천 안하셨군요 흑흑. 님 리뷰 때문에 기죽어서 못썼어요 책임져요

마냐 2005-06-09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장정일의 독서일기 6권부터 거꾸로 봐도 되냐여? ^^;;;
 

 

 

 

 

아침 9시 반부터 오후 6시 반까지 학회가 있었다. 토요일날 오랜만에 공부를 하려니 싫었고, 그래서 유난히 더 지루했다. 일본 사람들과 같이 하는 거라 주 언어가 영어, 발음이 뻔하니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그러기가 싫었다. 하나 더 있다. 엊그제 뺀 사랑니 때문에 얼굴 한쪽이 완전히 부었고, 통증이 심해 타이레놀 ER을 때려 먹으면서 발표를 들었다.


약기운으로 인해 잠이 쏟아졌다. 커피나 마실까 하고 밖으로 나갔더니 많은 사람이 나와있다. 밖에 나가있는 사람의 유형은 다음과 같이 나뉜다

1형: 발표도 하고 열심히 들을 뿐 아니라 질문도 열심히 하는 사람

2형: 자기 발표만 하고 늘 밖에 있는 사람

3형: 발표는 안하지만 열심히 듣는 사람

4형: 발표도 안하고 듣지도 않는 사람


각 유형의 예를 소개한다.

1형; 내 지도교수

학회에서 질문을 가장 많이 하는 분이다. 논문도 많이 쓰고 발표도 열심히 한다. 하지만 이분은 커피 중독이다. 하루 열잔 이상 마시는 것 같은데, 커피가 없으면 안절부절 못하신다. 밖에 나갈 때마다 꼭 한번씩은 만날 수 있지만, 커피만 드시고 금새 들어가시는지라 밖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타입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2형: J 선생

내가 존경하는 분이다. 아주 열심히 하시고, 아는 것도 참 많다. 키고 크고 다리도 길며 성격 또한 화끈하다. 술을 아주아주 잘한다. 맹장수술 한 지 일주일만에 술을 마신 적도 있는데, 배가 아프다면서 계속 소주를 마시는 투혼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이분은 자기 발표할 때랑 관심 있는 주제가 안나오면 주로 밖에 계시다 (나오면 언제나 볼 수 있다). 이분과 떠들다가 “이만 들어가보겠다”고 하니까 당신은 “학교(고대) 투어나 하겠다”며 저쪽으로 걸어간다. 대단한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3형: 나

발표를 안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난 학회 때는 정말 열심히 듣는다. 초록에 줄을 빡빡 그으면서, 그리고 토론 시간에 오간 질문과 답도 모두 적을 정도. 학회 때만 열심히 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그게 어디냐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어제 역시 오후에 한시간여를 논 걸 제외하면 학회 내내 충실히 들었고, 저녁 술자리에 불참하고 집으로 왔다. 뷔페였는데...아쉽다.


4형: 내 친구 P

어제 난 테니스를 치는 바람에 40분쯤 늦게 학회장에 갔다. 접수 받는 아가씨가 웃으면서 내게 “꼴등이세요!”라고 했는데, 이 친구는 그 뒤 30분을 더 있다가 왔다. 나처럼 학문에 별 뜻이 없어 보이며, 난 그래도 학회라도 가지만 이 친구는 학회도 잘 안온다. 하지만 술은 잘 마셔, 위에 언급한 J 선생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어제 학회가 끝난 뒤 저녁 모임에 가냐고 물어보니까 “그럼 가야지! 그것 때문에 왔는데”라고 말해 “역시!”란 감탄이 나오게 했음.


혼합형: 군대 친구 S

군대에서 만난 친군데, 제대 후 기생충학을 전공, 나와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학문에 대한 정열도 제법 있는 편이지만, 술을 마시면 아주 끝장을 본다. 학회를 듣긴 듣는데 꼭 들어야겠다는 마음은 없어 유혹에 약하며, 한번 나가면 안들어가는 스타일.

어제 오후, 초록집에 줄을 그으며 발표를 듣는데 이 친구가 문자를 보낸다.

S: 열심히 들으시네요

나: 아 뭐 보통이죠. 님도 본받으셔야죠. 근데 졸려 죽겠어요.

S: 저두요

나: 그럼 우리...밖에서 만날까요


S와 난 커피를 뽑아가지고-난 평소엔 커피 안먹는다. 잠 쫓을 때만...-벤치에 앉았다. 한참 얘기하는데 친구 P가 다가와서 셋이서 얘기를 했다. 주로 어떤 얘기를 했을까.

“왜 이렇게 안끝나냐. 지겨워 죽겠다”

이런 얘기를 한시간이 넘도록 했다. 정말 대단하지 않는가. 지겹다, 지겹다를 한시간 가량이나!


사람을 직업별로 따지면 공부하는 직업과 안하는 직업으로 구분할 수 있을거다. 교수는 당연히 공부하는 직업, 그래서 교수들은 다들 열심히 할 것 같지만, 그 안에서도 계층이 나눠진다. 떠드는 애를 제거하면 또 다른 애가 떠들듯이, 노는 교수를 다 몰아낸다고 해도 노는 교수는 또 생겨날 것이다.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방향으로 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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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6-05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혼합형.
근데, 공부안하는 직업은 어떤게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안 떠오름.

balmas 2005-06-05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방향으로 가니까^^"에 추천 하나요~

토토랑 2005-06-05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천재 유교수의 생활 이란 만화의 한컷이 생각나네요 ^^;;
거기도 학회 참가 하는데,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나오거든요 ~

2005-06-05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둥개 2005-06-06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수님들도 학회 중에 문자를 보내시는군요. ㅎㅎㅎ

클리오 2005-06-06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학회에 가서 점차 알아듣게 되면서, 집중력이 높아지게 되더라구요. 전에는 졸거나, 밖에서 커피 마시거나 했거든요.. 근데 뻔한 이야기가 반복되면 정말 싫어요...

진/우맘 2005-06-06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헐, 지루한 학회 중 벌어진 진/우맘과의 치열한 문자 설전은, 왜 쏙 빼시는 겁니까?
CP 낮고 엉덩이는 큰 마태님!!!!!!

마태우스 2005-06-07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아 맞다! 그걸 빼먹었네요. 음, 사실은 우리 관계가 알려지는 게 두려워 일부러 빼먹었습니다^^ 글구 저 요즘 엉덩이가 반쪽이 되었습니다
클리오님/집중력이 높아지다니 대단하십니다. 전 첫 학회 이후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검정개님/나이드신 교수님들은 보낼 줄 몰라서 못보내는 거랍니다^^
토토랑님/아아 그렇습니까?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한 법이죠
발마스님/과학적인 단어를 앞으로 꼭 집어넣어야겠어요^^ 추천 받게요
하이드님/공부 안하는 직업...........글쎄요.... 글고보니까 그러네요
따우님/4번은요, 발표할 거리를 일부러 안만드는 사람이랍니다. 그니까 님은 2번이어요
새벽별님/학회 가면 저랑 놀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