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어린이대공원에는 청룡열차라는 게 있었다. 용 모양의 기차가 구불구불한 레일을 달리며 공포감을 자아내는 열차인데, 지금으로 봐서는 간에 기별도 안갈 정도겠지만 당시에는 무서움의 대명사쯤으로 여겨졌다. 그 열차를 퍽이나 타고 싶었었다. 하지만 아버님은 한번도 우리를 어린이대공원에 데려가 주지 않았고, 더 무서운 탈것들이 등장하면서 청룡열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활발히 여자들을 사귀던 20대 때, 놀이기구를 타러 다닌 적이 여러번이다. 드림랜드의 열차를 비롯해서 에버랜드의 롤러 코스터 등은 잠깐 나를 무섭게 했지만, 그것도 두세번 타고나니 하나도 안무서웠다. 그보다 뒤에 생긴 게 롯데월드의 ‘신밧드의 모험’인가 그랬다. 그건 코스가 좀 더 길고 굴곡도 제법 있었지만, 두 번째 탈 때는 눈을 말뚱말뚱 뜨고 있었다. 그때 난 선언했다. 우리나라의 탈것들 중 나를 무섭게 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서른이 넘어가면서, 그리고 여자와 놀러가는 대신 죽자고 술만 마시게 되면서 놀이공원은 서서히 뇌리에서 잊혀졌다. 사실 놀이공원은 공포에 떠는 여자 앞에서 남자다움을 과시할 기회, 하지만 나이가 나이니만큼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애가 있으면 모를까 우리 또래 애들 중 놀이공원에 가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겠는가? 퍼져 앉아서 술을 마시는 게 재미있지, 놀이기구 한번 타려고 뙤약볕에 몇십분씩 줄을 서는 건 도저히 할 짓이 아니었다.
그러다 자이로드롭이 나왔다. 롯데월드에서 만든 건데, 상공 높은 곳까지 천천히 올라갔다 와- 하고 내려오는 그 기구. 근처에 갔다가 자이로드롭에서 울려퍼지는 비명 소리를 들으면서 한번쯤 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제법 무서워 보이는 그 기구는 하지만 탄 사람의 얘기에 의하면 별로 무섭지 않단다(근데 소리는 왜 지르는 거지?) 자이로드롭을 필두로 무서운 놀이기구들이 몇 개씩 생겼다. 연예인들을 그 기구에 태운 뒤 무서워하는 표정을 즐기는 TV 프로도 나왔다. 그래봤자 얼마나 무섭겠나 생각하고 무시했다.
하지만 무섭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었다. 번지점프가 나온 것. TV에서 사람들이 타는 걸 보니 난 죽어도 못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에서 보다 안전한 헬기레펠-줄타고 내려오는 것-을 타다가도 정신을 잃었는데, 그 무서운 걸 왜 타겠는가? 가끔씩 번지점프 중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안타길 잘했다고 자위했다.
요즘 TV가 있는 기차를 탈 때마다 ‘상상원정대’를 보곤 한다. 이경규 등이 미국의 라스베거스에 가서 거기 있는 놀이기구에 도전하는 프로. TV를 보면서 난 그걸 만든 인간의 상상력에 그저 경악할 뿐이다. 300미터 상공에서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 엑스 스크림을 비롯해서, 거기 달린 모든 것들이 나로서는 무섭기만 하다. 우리 놀이기구에 탈 때는 연예인들이 일부러 무서운 척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엑스스크림은 그걸 타는 연예인들의 공포가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어떤 미국인은 좋아라고 손까지 흔들며 탔지만, 윤정수나 이윤석 등은 눈도 뜨지 못한 채 비명만 질렀다. 내가 탔어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낼 수가 있는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사람은 공포를 체험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희한한 동물이다. 물론 그 공포는 자신이 다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 하에서의 공포일 뿐, 놀이기구에서 하루 한두명씩 죽어나간다면 아무도 그걸 타지 않겠지. 청룡열차가 지금 기준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공포의 상징인 엑스 스크림도 십여년만 더 지난다면 그저 그런 놀이기구로 전락할 것이고, 그걸 대체할 또다른 기구가 나오겠지. 엑스 스크림은 여건상 불가능하니, 올 여름에는 오랜만에 에버랜드나 한번 가볼까 싶다. 공포 체험이 목적이 아니라, 예전에 사귀었던 여인들과의 추억을 떠올리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