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한 장마,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책입니다
그전에는 비만 오면 강아지처럼 좋아하곤 했는데, 요즘 들어 비오는 날이 싫어졌다. 다름 아닌 신발 때문. 왼쪽 신발의 뒤꿈치 부분이 벌어져, 그 사이로 물이 들어간다. 젖은 양말을 신어본 적이 있는 분이라면 그 느낌이 얼마나 싫은지 이해할 수 있을게다. 비가 오는 날엔 다른 신발을 신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실 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신발이 딱 하나 있다. 테니스 칠 때 신는 운동화가 있지만, 양복 바지에 운동화를 신는 건 참으로 꼴불견이다.
아주 어릴 적부터, 난 언제나 신발이 하나였다. 신발이 있는데 또 산다는 것은 사치로 생각했기에, 두 개를 가져본 시절은 거의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건 변함이 없어, 신발 하나를 떨어질 때까지 신고는 한다. 언젠가 이런 취지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신발 하나만 죽어라고 신으면 발냄새가 날 뿐 아니라 신발이 쉴 시간이 없어져 더 빨리 닳는다. 당장 돈이 들더라도 두 개를 번갈아 신으며 3년을 버티는 게 하나를 1년 신는 것보단 훨씬 경제적이다. 그리고 하나만 신으면 발냄새 난다”
이론과 실천은 다른 법, 난 왜이렇게 신발 사는 돈이 아까운지 모르겠다. 그보다 더 비싼 술은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면서.
어릴 적 <여학생>인가 하는 잡지에서 당시 잘나가던 배우였던 이혜숙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때 이혜숙의 구두가 90컬레쯤 된다는 말에 기절하듯 놀랐다.
‘그, 그러면....매일 갈아신어도 석달마다 한번씩 차례가 돌아오네?’
물론 지금은 그녀가 왜 그렇게 많은 신발이 필요했는지 이해한다. 여자란 존재는 옷색깔이나 스타일에 따라 다른 신발을 신어야 하고, 심지어 핸드백도 바꿔야 하니까. 이럴 때 보면 아무렇게나 차려도 되는 남자가 편하다(나만 그런가?) 그래도 그렇지, 신발 한 켤레로 버티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을까.
굳이 따지자면 내게 신발이 없는 건 아니다. 아버님과 내 발의 사이즈가 비슷하니, 멋쟁이셨던 아버님이 남겨주신 구두들을 신으면 되니까. 하지만 희한하게도 난 구두에 대해 지독한 반감이 있다. 어릴 적 구두로 맞은 것도 아닌데-그러고보니 구두쪽으론 맞아봤다-구두 신는 걸 무지하게 싫어한다. 중2 때인가, 신발 자율화를 위한 설문조사에서 이렇게 썼던 기억이 난다. “학생이 무슨 구두냐. 그냥 운동화 신게 해라!”
중3 때, 결국 신발이 자율화되었을 때도 난 값싼 학생화만 줄기차게 신었고, 구두 신은 애들을 이상하게 봤다. 나이가 들어 양복을 입어야 할 때도 난 구두 대신 랜드로버를 신었다. 그래서 지금은, 랜드로버만 신는다.
랜드로버도 가격이 결코 만만치 않다. 내가 지금 신는 것은 엄마가 소개해준 여자랑 잘될 때, 같이 가서 산 거니까... 작년 9월 정도에 샀나보다. 그때 12만원인가 주고 사면서 “무지하게 비싸네”라고 속으로 뇌까렸던 기억이 나는데, 겨우 9개월 쯤 신고서 새 신발을 사야 할 처지에 이른 것이다. 걷는 폼도 약간 이상하고, 걸어다니는 대신 생활 속에서 운동을 한답시고 줄기차게 뛰어다닌 댓가가 아닐까 싶다. 내 돈 주고 신발을 사려니 벌써부터 돈이 아깝다.
당분간은 이 신발로 좀 버텼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가 안와야 하는데, 이번주가 장마라니 심난해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