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엄마 친구분의 사인회에 갔다. 엄마는 “너까지 올 거 있냐”고 만류했지만, 어릴 적부터 잘 알던 분이고, 사인회라는 게 사람이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 예전에 비하면 많이 늙으셨지만, 친구분은 날 금방 알아보셨고, 겁나게 고마워해 주셨다. 그분이 내게 부탁을 하신다.
“인터넷에 리뷰 좀 잘 써줘”
공신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라 영 아닌 책을 좋다고 알라딘에 쓸 마음은 없었기에 “교봉에 올릴께요”라고 말한 뒤 집에 가는 길에 받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30년간 사형수들을 교화하는 일을 하느라 애쓰신 분이긴 해도, 뭐 그저그런 얘기가 쓰여 있을 걸로 생각했다. 하지만 책은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그분의 글솜씨도 보통은 넘었다.
2. 교화
“교도소에는 전혀 교화 기능이 없습니다. 소년원 있던 애가 교도소 가고 그러는 거예요”
교도소에 오래 근무한 분의 얘기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사람이란 변하지 않는다. 난 소심한 내 성격이 싫지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남은 나날도 그 소심함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언젠가 내가 기르던 개-벤지 오기 전에-를 때린 적이 있다. 그럴 짓을 했으니 그런 거였지만, 그러고 나서 어찌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사람을 때리는 건 그보다 더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하겠지. 하지만 생명체를 죽인다는 건 그보다 훨씬 더 나아간 거다. 하물며 다른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우리와는 좀 다른 종이라고 생각한다. 한명도 아닌, 여러명을 죽였다면 그는 우리와 많이 다를 것이다.
김대두라는 사람이 있었다. 1974년 무렵 17명을 죽여서 세상을 놀라게 했던 그는 당연하게도 사형수가 되었다. 그에 관한 기사를 본 엄마 친구가 편지-희생자를 위해 기도하라고-를 했고, 그게 인연이 되어 친구분은 김대두를 비롯한 사형수들을 돌보는 사람이 되었다. 책에 의하면 김대두는 그녀에게 많은 감화를 받았고, 다른 재소자들에게 믿음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었단다. 교도소 사람의 말에 의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 사형을 당하던 날에도 그는 하느님을 기리는 찬송가를 불렀다고 한다. 이게 과연 가능할까? 책에 적힌 말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난 그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바뀐 줄 알고 풀어줬다면, 그리고 사회의 냉대와 궁핍이 그에게 닥친다면 김대두는 다시금 칼을 들지 않았을까. 노름을 해봐야 인간성을 알 수 있듯이, 수감 생활이 모범적으로 바뀌었다고 완전히 사람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다른 사형수들도 일기나 편지를 통해 자신의 범죄를 참회하고, 십자가 등을 만들어 선물하기도 하지만, 난 이웃에 사면받고 나온 사형수가 산다면 불안해서 잠을 자지 못할 것이다. 대도 조세형이 다시금 도둑질을 한 것처럼, 한번 살인한 자는 또 살인한다는 걸 믿기에.
백동호라는 사람이 쓴 책에는 김대두 얘기가 나온다. 자신이 감옥에 갔을 때, 세수를 하려고 줄을 서 있었단다. 그때 누군가가 자기 앞으로 새치기를 하기에 따졌더니, 그가 욕을 하더란다. 키도 작은 게 까분다고, 백동호는 그를 때려눕혔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가 바로 김대두. 사형수란 보이는 게 없는 법이라, 티껍게 구는 사람이 있으면 잔인하게 보복을 한다고 그에게 다른 재소자들이 말해 줬다.
“간수의 눈을 쇠꼬챙이로 찌른 적도 있고...” “어디 감방의 김씨는 칼로 찔렸다지?”
무서워진 백동호는 김대두에게 찾아가 절하며 빌었다. 그때 김대두가 한 말이 이거였단다.
“난 세상에 너처럼 인간성 안좋은 새끼는 처음 봤어!”
17명을 죽인 살인마가 폭력으로 들어온 사람에게 인간성 운운하다니, 그야말로 코미디 아닌가. 이랬던 사람이 아무리 종교의 힘이 대단하다 해도 바뀐다는 게 말이나 되나? 죽기 전에 좋은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걸 바뀌었다고 할 수는 없다.
3. 어머니
친구분이 김대두의 어머니를 찾아갔을 때, 어머니는 김대두가 어릴 적엔 착하고 인정이 많은 아이였다고 회고했다. “가난이 그를 그렇게 만든 거지...”
하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모두 김대두가 되는 건 아니며, 내 기억에 의하면 어머니 눈에 자기 자식은 언제나 착한 존재다. 중학교 때, 애들을 상습적으로 괴롭히던, 저렇게 나쁜 놈은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던 학생의 어머니가 학교에 불려온 적이 있다. 담임에게 그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더란다.
“우리 아들은 참 착하고 효자예요”
사랑에 눈이 멀면 진실을 보지 못한다.
4. 사형제
친구분은 당연히 사형 반대자다.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신 분들 중에는 사형 폐지론자가 많다. 하지만 난 사형에 찬성이다. 절대로 사회에 나가서는 안될 악질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책에 나온 강ㅌㅌ의 사연-술먹고 강간하고 불을 질러 죽였는데, 자신은 기억이 안나지만 친구는 강ㅌㅌ가 다 한 거라고 진술-에 억울한 면이 있는 것처럼, 재판이란 인간이 하는 것이며 실수는 있을 수 있다. 나도 그런 사람까지 사형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김대두나 유영철처럼 죽인 사람이 다섯을 넘는 경우에만 국한했으면 좋겠다. 한명 죽인 것은 실수라고 쳐도, 다섯명 쯤 죽이면 이론의 여지가 없지 않는가? 아무리 진보가 좋은 거라 해도, 난 유영철같은 사람이 거리를 활보한다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 사형이 살인을 예방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확실한 것은 사형당한 사람은 더 이상 살인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5. 에필로그
알라딘엔 리뷰가 하나도 없는데, 교봉에는 리뷰가 무려 10개나 있다. 분량이나 내용으로 보건대 열성적인 지인이 다 올린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다고 잘팔리는 건 아니지만, 리뷰 하나없이 책만 덩그라니 있으면 참 외롭다. 그 마음, 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