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책을 거론하는 이유는 출판사에서 사재기 하다가 걸린 책이기 때문이죠.
내가 책을 내는 출판사에서 날 좋은 작가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좋은 글을 써서가 아니라, 자기 책을 가장 많이 사는 작가이기 때문일거다. ‘책은 저자가 사서 뿌리는 것’이라는 이상한 신조를 가진 나는 그 신조에 걸맞게 돌릴 사람이 많다. 처음에 출판사에서 받은 100권이 동나는 데는 딱 나흘이 걸렸고, 그 다음부터는 사서 돌린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책을 사는데, 알라딘에서는 겨우 스무권밖에 안샀고, 예스 스무권, 그리고 나머진 다 교보다. 원래는 교보 우수회원 정도였는데 어느새 프라임 회원이 되었고, 적립금도 세상에, 몇만원이 쌓였다(엊그제 다 썼지만).
그렇게 사는데도 늘 책이 모자란다. 어제 저녁에 술을 마시러 가면서 책을 돌리려 했는데, 집에 책이 하나도 없는거다. 내가 돌린 것도 있지만 엄마도 강적이다. 싸인 해놓으라고 하더니만 어제 아침에 싸인을 해놓은 스무권을 다 돌리셨단다. 그뿐이 아니다. 어제 새벽에 들어온 나에게 엄마는 사람 이름이 가득 든 쪽지를 내민다. 족히 스무명은 될 것 같은 그 명단. 지금까지 쓴 책보다 훨씬 낫다는 주위 사람들의 평에 마냥 신이 나신 듯하다.
“다음주에 동창들 만나고, 성당 사람들도 만나야 하고... 한 40권 있어야겠는데?”
엄마의 말씀에 난 웃고 말았다. 나보다 더 흥분하신 우리 엄마, 귀엽지 않은가요?
아무튼 그렇게 질러댔더니 교보의 ‘기술/공학/의학’(왜 건강란에 분류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부문에서 내 책이 4등을 달리고 있다.
사재기를 하는 마음은 그리 편하진 않다. 필요해서 사는 거라고 최면을 걸어도 늘 죄의식이 느껴진다. 얼굴이 팔릴까봐 조직을 동원하기도 하지만, 혼자 살 때도 많다. “출판사 중 사재기를 안하는 출판사가 어디있냐”고 하던데, 그렇게 오인받을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그래서 이 계산대에서 세권, 저기서 세권, 저 멀리 있는 계산대에서 4권, 책 표지에 내 얼굴을 박아놓지 않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세권 다 같은 책이시네요”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철렁하고, 귀찮다고 열권을 한꺼번에 사던 내 친구는 이런 질문을 받기도 했단다. “혹시 출판사 직원이세요?”
오늘, 엄마, 할머니와 교보에 갔다. 할머니가 차에서 기다리는 동안 엄마와 내가 사재기에 나섰다. 난 한쪽 구석에 숨어서 지켜보고, 엄마는 내 지시대로 작전을 수행했다. 핸드폰이 울린다.
“재고가 없다고 해서 다섯권만 사고 열권은 집으로 보내주라고 했어. 잘했지?”
우리 엄마는 역시 생색의 여왕이시다. 사재기를 한 보람을 만끽하며 교보 뒤에 있는 ‘미진’에서 메밀을 먹었다. 역시 메밀은 ‘미진’이 최고. 메밀을 좋아하시는 우리 할머니는 국물을 연방 부어가며 다 드셨는데, 마지막으로 먹은 게 20여년 사촌오빠가 사준 것이라고 한다. 외식이라고는 거의 안하신 우리 할머니, 내가 너무 소홀했구나 싶었다. 가기 전에는 “그냥 집에 가서 먹자”고 우기시더니만. 집에 오자마자 엄마가 준 명단대로 싸인을 하고, 이따 만날 친구들을 주려고 네권을 챙긴다. 사재기와 더불어 시작하는 보람찬 하루다.
PS 슬픈 얘기 하나. 지난 화요일, 학교 사람들에게 돌리려고 책 주문을 했다. 이왕 하는 거, 교보, 알라딘, 예스에 각각 10권씩을 주문했다. 그때가 점심 시간이 가까울 무렵이었는데, 조금이라도 유리하라고 알라딘에서 가장 먼저, 그다음 교보, 그리고 예스가 마지막이었다. 그래봤자 2분 차이밖에 안났겠지만. 1등을 한 건 예상외로 교보였다. 주문한 지 24시간이 조금 지난 시각-그러니까 수요일 오후 1시 반쯤?-교보에서 책배달이 왔을 때 난 많이 놀랐다. 시킨 지 하루면 거의 광속이지 않는가? 예스는 그 다음날 왔는데, 늦게 온 이유는 ‘재고가 없어서’였던 것 같다. 목요일에 여섯권이 왔고, 금요일에 다시 네권이 왔다. 수요일에 발송을 했다는 알라딘에서는 예스의 2차 배송이 끝난 금요일에야 배달을 해줬다.
한때 알라딘의 배송이 무지하게 빨랐던 적이 있었다. 시키면 하루만에 거의 왔다. 우리가 모두 놀라서 ‘웬일이냐’는 글을 남겼을 무렵, 알라딘 측에서는 “지금 시스템을 고치고 있는데 이거만 끝나면 더 빨라진다”고 말했었다. 시스템이 완성되기 전 며칠간은 책 배송이 매우 느렸지만 아무도 거기에 불평하지 않았던 건 완성된 시스템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시스템이 완성된 이후, 알라딘은 다시금 예전으로 돌아간 듯하다. 화요일에 시킨 게 금요일에 왔다면 다른 서점들보다 하루 내지 이틀이 늦은 것인데, 나야 하루이틀 늦다고 신경쓰지 않지만 속도를 중시하는 분들은 굉장히 많다 (사실 서비스가 좋고 나쁘고의 절대적인 기준일 거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PS. 혹시나 해서 어제 또다시 교보에 책 주문을 했는데, 역시나 오늘 아침 책이 배달되어 버렸다. 교봉, 도대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