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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난마 한국경제 - 장하준.정승일의 격정대화
장하준 외 지음, 이종태 엮음 / 부키 / 2005년 7월
평점 :
박정희에 대해 강준만은 이렇게 말한다. “경제발전의 공은 인정하지만, 그 밖에 나쁜 짓을 많이 했다”
이에 대한 진중권의 반론, “경제발전을 인정하는 순간 박정희는 추앙되어야 할 인물로 격상되는 것이다”
소위 개혁진영에서는 그래서 박정희가 한 경제개발은 장면 정권 때 세운 발전계획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며, 당시 상황에서는 박정희가 아니라 누구라도 경제를 발전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더구나 그 발전이란 것도 노동자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1997년 외환위기의 싹을 만든 것도 바로 박정희니,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훨씬 더 좋은 나라에 살고 있을 거라는 게 그들의 말이었다. 물론 난 이런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했고, “못사는 나라에서는 빵이 곧 인권이니 박정희는 인권을 신장시킨 사람”이라는 조갑제의 궤변을 비웃어 줬다. 경제발전의 공을 박정희에게 돌리며 그를 찬양하는 젊은이들을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고.
저쪽 사람들이 아직도 노무현을 좌파라고 믿는 것처럼, 한번 정립된 생각이 뒤집어지기는 어렵다. 특히 나이에 따른 경직성까지 더해져 다른 이의 말 때문에 내 주장이 바뀐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말싸움을 피하려 그 앞에서는 “어, 그러니? 내가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겠네”라고 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너 그냥 그렇게 살아”라고 한 적도 있다. 그런 내가, 설득당했다. 장하준.정승일 박사의 ‘격정대화’ 때문에 내가 경제발전에 대한 박정희의 공헌을 인정하게 된 것.
이 책에 의하면 박정희 시절 우리는 세계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보였으며, 역사적으로 경제발전을 추진하지 않은 나라가 없었음에도 우리만큼 성공한 나라는 거의 없다. 박정희는 ‘노동자를 착취해 수탈한 부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투자하도록 강요’했고-“그 배짱 좋은 정주영 회장도 못하겠다고 버티는 것을 박정희가 윽박질러 만들게 한 것이 현대조선 아닙니까?(장하준, 63쪽)”-자본을 통제함으로써 자본가들이 돈을 해외로 빼돌리지 못하도록 했다. 그는 우리 경제를 시장의 룰에 맡기는 대신 후진국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반시장적 정책으로 높은 성장을 이루어 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가혹한 착취는 다음 말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민중에 대한 수탈 없이 경제 개발의 계기를 만든 나라는 아직 없는 것 같다는 사실이 슬프기만 합니다(이종태, 69쪽)”
설득을 당해놓으니 갑자기 허무해진다. 경제가 제일이라면서 박정희를 찬양하는 무리들과 앞으로는 어떻게 싸워야 하나?
이밖에도 저자들은 우리 경제가 어려워진 원인이 신자유주의와 더불어 소위 개혁세력들의 잘못된 처방, 즉 부채비율을 200%로 한다든지 주주자본주의를 추구한다든지 하는 것에 있다고 하는데, 워낙 카리스마 있게 말을 하는지라 그저 수긍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한마디로 정부가 우리나라 경제발전 단계에 맞지 않는 정책을 쓴 거죠..겨우 1만달러 넘긴 처지에서 투자 안하고 성장 안하고....정말 안타까운 일...(129쪽)
-한국 경제의 문제점들은 경제개혁이 잘못 실행되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잘 실현된 결과라고 봐야 합니다(133쪽)
기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단기수익 올리려고 노조 탄압하고 해외에서 저임금 노동자 수입하다보면 당장 기업이 살아날 것 같은데 장기적으로는 업그레이드를 못하게 됩니다. 결국 망하는 거죠”(171쪽).
저자들은 위기에 빠진 경제를 구하기 위해서는 정부, 자본가, 노조 등이 머리를 맞대고 나아갈 바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들이 제발 이 책을 읽고 자신들의 문제를 깨닫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한마디 더. 책에서 보면 장하준과 정승일은 어찌나 코드가 잘 맞는지, 마치 한사람이 계속 얘기하는 느낌이다. 죽이 잘 맞는 동료를 갖고 있다는 것, 그건 둘 모두에게 커다란 행운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