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 몇십분부터 갑자기 콸콸하더니 앞산의 가운데 앞쪽 작은 공원의 분수가 콸콸...
햇볕이 덜 따가워지면 친구랑 분수 보러 놀러나가야지.
분수분수분수~~오, 멋지겠군! (예전에도 본 적 있지만서도...)
분수가 깨끗해서 에버랜드 퍼레이드처럼 동네 아이들 다 몰려 나와 물 끼얹으며 놀면
얼마나 재미날까?
신기한 사실은, 분수를 하는 물은 더러워도 분수가 오를 때는 생수처럼 티없이 깨끗해 보인다는 거다.
하얗고, 맑고, 투명하고...
그래서 분수를 볼 때마다 그 물을 맞으며 깔깔 웃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요즘 곳곳 공원에 분수가 나오는데...
우리 집 바로 앞이라 소리도 참 듣기 좋다.
오늘 하루도 분수처럼 힘차게!]

지족초6년박예진님이 7월 27일에 쓴 글이다. ‘분수 소리를 들으며’란 제목의 이 글은 분수에 대한 여러 가지 상념을 그리고 있다. 나로 하여금 지족초등학교가 최고로 좋은 학교라는 걸 알려준 박예진님의 이 글을 분석해보자.
-오후 2시 몇십분부터...분수가 콸콸; ‘2시 몇십분’이라는 대목은 그 자체가 시적이기도 하지만 정확하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하는 예진님의 성격을 드러내 준다. 3시 3분에 밥을 먹어놓고 “3시에 먹었다”고 쓰신 가시장미님, 반성 좀 해야 한다. “콸콸”이라는 표현력도 놀랍다. 물이 펌프에서 마구 나오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형용사는 그전에 분수물이 솟는 걸 표현하기 위해 아프락사스님이 썼던 “쭉쭉”에 비해 훨씬 상큼하다.
"분수물이 솟는다. 쭉쭉! 아! 쮸쮸바 먹으러 가야겠다!"(2004. 09.12 '분수의 추억'에서)
-햇볕이 덜 따가워지면...놀러가야지: “감 익으면 놀러가야지”라던 파란여우님의 글에선 감을 먹어야겠다는 탐욕이 느껴진다. 하지만 ‘햇볕이 덜 따가워’라는 구절에서 우리는 어떠한 탐욕도 느낄 수 없다. 다만 지금 날씨가 너무 더워서 움직이기 싫다는 예진님의 고운 마음만을 느낄 뿐이다.
-분수분수분수~~오, 멋지겠군!: ‘분수’를 세 번 강조함으로써 분수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다. ‘오’라는 감탄사가 시의적절하게 들어간 것도 시너지 효과를 낸다. 서재계의 거장이었던 진우맘님도 전에 비슷한 표현을 한 적이 있다. “배고파배고파배고파---오, 닭다리가 땡겨!”
-분수가 깨끗해서 에버랜드 퍼레이드처럼 동네 아이들 다 몰려 나와 물 끼얹으며 놀면
얼마나 재미날까?; ‘동네아이들이 다...놀면’이라는 이 구절은 저자의 ‘사해동포주의’를 드러내 준다. 자기 혼자만 놀기도 바쁜데, 동네 아이들을 챙기는 마음이 정말 예쁘지 않는가? 이번 추석에 올라온 하이드님의 글 마지막 구절과 비교해 보자. “추석이라 좋은 음식이 많다. 문 잠궈놓고 혼자 먹고 있다. 와구와구와구”
-신기한 사실은, 분수를 하는 물은 더러워도 분수가 오를 때는 생수처럼 티없이 깨끗해 보인다는 거다; 분수에 쓰인 물은 더럽지만, 분수의 줄기가 오를 때는 깨끗해 보인다는 이 구절은 이번 글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뜻을 내포한 이 대목은 어떤 것이든지 사용하기에 따라 그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음을 말해준다. 어렵게 입수한 진주님의 중3 때 글과 비교해 보자.
“분수를 구경했다. 물이 올라가다니 참 신기했다. 나도 분수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분수같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그 의미가 와닿지 않는다. 혹시 중력에 역행하는 사람?
-하얗고, 맑고, 투명하고...; 분수 물줄기를 보면서 형용사를 세가지나 쓸 수 있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글을 쓰다보면 이런 이유로 번민할 때가 많다. 표현을 다양하게 해야 있어 보이는데, 떠오르는 단어가 없을 때. 낡은구두님의 이 글은 그런 고민의 편린을 보여준다.
“배가 고프기도 하고, 밥이 먹고 싶기도 하면서....에 또..... 하여간 헝그리하다”
-그래서 분수를 볼 때마다 그 물을 맞으며 깔깔 웃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예진양의 발랄성이 가장 잘 표현된 대목이다. 분수 물을 맞으면서 깔깔 웃다니, 이 얼마나 깜찍한가! 깜찍함으로 이름을 날리는 세실님이 올해 2월 분수에 대해 쓴 글의 일부다.
“분수를 볼 때마다 그 속에 들어가서 동전을 줍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이것 역시 깜찍했지만, 예진양에 비하면 2% 부족하다.
-요즘 곳곳 공원에 분수가 나오는데...우리 집 바로 앞이라 소리도 참 듣기 좋다; 시인이자 철학자인 水巖(수암)은 이런 말을 했다. “분수는 시각적 효과가 강한 기구입니다. 하지만 분수가 내는 소리에 주목할 때 우리는 비로소 시인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수암님의 말대로라면 “분수가 내 피부처럼 하얗구나!”라고 감탄했던 sweetmagic보다는, 예진양이 시의 세계로 한발 더 가까이 들어간 게 아닐까.
-오늘 하루도 분수처럼 힘차게!; “올라갔다 그냥 떨어지는 분수여! 덧없구나!”는 유명한 시를 쓴 ‘놀자’님이 분수에서 ‘삶의 회의’를 느꼈다면, 예진양은 분수에서 힘찬 기상을 보았다. 이 또한 젊은 예진양으로서는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문학평론가 라주미힌은 우리 시의 문제점이 “젊은 시인들이 지나치게 인생무상 같은 허무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분수처럼 힘차게’ 살 것을 다짐하는 예진양의 시는 침체에 빠진 우리 문단에 한줄기 희망이 되어 줄 것이다.
문학평론가 라주미힌
예진양의 글을 해석하기 위해 다른 서재분들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정말 죄송하지만, 사실 나라고 다를 바가 없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5학년 때 내가 쓴 일기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5학년과 6학년은 일년 차이지만, 글의 깊이는 천지차이다. 6월 8일의 일기를 전문 그대로 싣는다.
[오늘 특별활동을 하였다.
나는 미술부이다.
미술그리는 것은 참 재미있다.
오늘 특별활동 시간이 조금 지나서 다 그렸다.
잘 그린 아이들은 나와서 들고 있으라고 하였다.
나도 들고 있었다.
3일 동안에 1장을 그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모두 4장을 그렸다.
이틀에 그릴 때도 있다.
이번 주에도 월요일이 현충일이기 때문에 2일 동안 다 그렸다.
오늘 다 그리지 못한 아이들도 있었다.
아마 다음주에 그릴 것 같다.
오늘은 우리분단이 청소하는 날이다.
좀 빨리 한 것 같았다.
4시 20분에 끝났다.
집에 오는데 가방이 무척 무거웠다.
나는 집이 가까웠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러면 태권도장 다니기가 불편하다.
멀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도 가깝고 태권도장도 가까웠으면 좋겠다.
오늘은 우리집개 주사놓기 때문에 보느라고 숙제를 빨리 못했다.
내일은 빨리 하겠다]
한 장을 채우려고 애쓴 흔적이 보이지만, 내용은 정말이지 한심한 수준이다. 이게 무슨 일기인가. 5학년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선생님이 그 밑에 이렇게 쓰셨다. "재미있는 일기를 썼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내가 지금은 평균 수준의 글이라도 쓰게 된 건 지난 몇 년간 읽었던 책 덕분인 것 같다. 책을 많이 읽는 예진양이 내가 대학 때 쓰던 수준 이상의 글을 쓰는 것처럼.
전에도 말했지만 난 예진양의 미래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지금 이정도를 쓴다면 나중에는 어떤 모습일까? 미래의 꿈나무로 사랑받는 박예진양, 우리가 기대하는만큼 멋진 여인으로 성장해 주기를. 꼭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지 않더라도, 문학을 사랑하는 여인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