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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잭 1 - 법의관 ㅣ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15
퍼트리샤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노블하우스 / 2005년 2월
평점 :
합본절판
<하트잭>은 내가 지금까지 읽은 네편의 스카페타 시리즈 중 가장 재미있는 추리소설이었다. 사건의 흐름이 예측 불가능하게 진행되다가 결국 범인이 잡히고, 막판 반전까지 있어서 재미가 더해졌다. 스카페타는 우연히 범인을 만나는데, 그러지 않았다면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는 게 소설에서 FBI로 나오는 벤턴의 설명이다. 우연이 개입되는 추리소설은 대개 3류지만, 이 소설은 결코 그런 종류가 아니며 그 우연은 오히려 현실감을 증폭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즉 우연도 우연 나름이라는 얘긴데,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TGI에서 애인과 식사를 하다가 범인이 흘린 오리털을 단서로 그 남자를 잡는 황당한 소설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스카페타는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즉 십년 전에 벌어진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범인을 만나므로 그 우연에 개연성이 있다는 거다. 이제 남아있는 스카페타 시리즈가 세개밖에 없다는 게 슬프지만, 한 작가의 작품을 다 읽었다는 것도 뿌듯한 법이니 부리런히 읽어야겠다.
한가지 슬픈 것은 이 시리즈가 그다지 많이 팔리지 않는다는 것.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를 보니 <해리포터> 시리즈를 제외하곤 추리와 SF 부문 베스트셀러 상위권은 다들 1천 내외, 웬만한 시집들보다도 못한 수치다. 미국에서는 콘웰의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곧바로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한다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렇듯 추리소설이 외면받는 걸까. 2년 전인가 갑자기 루팡과 셜록 홈즈의 작품들이 번역되어 나오는 등 추리소설이 각광을 받는가 했지만 반짝이었다. 머리 쓰는 게 귀찮아서 그런가? 아니면 자기계발서를 읽느라고? 어쩌면 추리소설은 애들이나 읽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럼 애들이라도 읽으면 되잖아? 하지만 그들은 바쁘다. 학교 갔다가 학원에 들러서 집에 오면 밤 10시가 넘는데, 그리고 게임도 해야 하는데, 그런 애들한테 추리소설을 읽으며 머리를 굴리라고 하는 건 아무래도 잔인하다. 하지만 추리소설의 대가이신 물만두님이 “추리소설을 많이 읽어야 추리소설이 더 많이 나온다”고 한 것처럼, 추리소설이 계속 찬밥 신세라면 더 이상 추리문학이 번역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머리를 좋게 해주고 치매를 예방하는 것 말고도 추리 소설이 많이 읽히는 나라에선 전 국민의 탐정화가 이루어져 강력범죄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된다는 통계도 있는만큼, 사양산업이 되어가는 추리소설은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 될 수밖에.
<부자삼촌 가난한 삼촌>같은 책보다 훨씬 읽을만한 스카페타 시리즈가 안팔린 데는 제목이 그다지 선정적이지 않은 것도 한몫을 한 것 같다. 원제와 우리말 제목을 한번 비교해 보자.
1) ‘postmorterm vs ’검시관 혹은 법의관‘; 너무 평범하다. 꼭 법의학 책 같잖아? 그것보다는 ’미녀 법의관‘이 어떨런지.
2) 'Body of evidence' vs '소설가의 죽음’; 이것 역시 지나치게 평범하다. ‘세일즈맨의 죽음’을 따라한 것 같기도 하고. ‘미녀 소설가의 죽음’ 이게 부족하면 ‘돈많은 미녀 소설가의 죽음’이라면 관심이 좀 가지 않을까?
3) 'All that remains' vs ‘하트잭’; 하트잭 그러니까 꼭 도박소설 같다. 차라리 소설의 주 테마인 ‘미녀 커플 살인사건’으로 하던지.
4) ‘The body farm' vs ‘시체농장’; 동물농장도 아니고, 시체농장이 뭔가? 그것보다는 ‘불륜의 증거’가 더 낫다. 실제로 이 소설에는 불륜 장면이 나오니까.
이왕 나온 건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좀 관심을 끌만한 제목을 짓도록 노력해 줬으면 한다. 이 책이 안팔리는 게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다.
* ‘추리소설을 보고 범행을 계획했다’는 사람이 나오는 경우 미국 같으면 해당소설이 불티나게 팔리겠지만, 우리나라는 그 반대다. 해당 소설이 판금되는 것은 물론 추리작가들이 범죄의 온상으로 몰리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그러니 군만두님, 추리소설 중흥을 위해 범행을 하겠다는 생각은 버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