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 오래 된 얘기다. 내 친구 하나가 결혼을 했다. 친한 친구라 공항까지 따라갔는데,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던 그 친구는 돈이 너무 많아서 주체를 못하겠다면서 300만원을 맡아달라고 했다.
“신혼여행비 내가 챙겨놨는데 장인어른이 돈 주시고, 고등학교 친구들이 100만원을 또 주더라? 이 돈 들고 어떻게 돌아다니겠냐.”
우리 중 한명-알파라고 하자-이 그 돈을 맡았고, 친구는 신부와 함께 비행기를 탔다.
두달쯤 지난 뒤 그 친구가 내게 전화를 걸어와 하소연을 한다. 놀랍게도 알파가 그 300만원을 안준다는 거다.
“아니, 그걸 아직도 안줬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남의 돈을 갖고 있는 걸 불편해할테고, 만나서 주진 못한다해도 계좌로 보내주는 성의는 보여야 했다. 근데 그 친구는 두달이나 그 돈을 품고 있었고, 심지어 집들이 때도 돈을 안줬던 거다.
“달라고는 해봤냐?”
“그럼. 계속 전화하는데 곧 준다고 해놓고 계속 안주는 거야.”
돈 앞에는 피도 눈물도 없다해도 이건 좀 경우가 다른 거 아닐까? 빌려준 것도 아니고 신혼부부가 잠깐 맡긴 돈을 자기 맘대로 쓰다니, 너무하지 않는가. 신혼부부이니 돈 들어갈 곳이 좀 될텐데 말이다. 사업을 하던 그 친구는 차도 수시로 바꾸고, 부인에게 몇백만원짜리 반지를 생일선물로 줬다고 자랑할만큼 씀씀이도 컸다. 견물생심이란 게 이런 경우를 놓고 말하는 것일까? 나중에 전화를 해보니 결국 알파는 그로부터 두달이 또 지난 뒤에야 돈을 갚았단다.
매주 테니스를 치는 멤버들 중 펀드매니저가 있다. 말하는 걸 보면 꽤 잘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멤버 중 하나가 그에게 돈을 맡겼다. 그게 아마도 작년일 거다. 그때 친구는 아파트 중도금을 내야 하니까 올해 5월까지는 돈을 달라고 했다.
“돈 많이 불어나면 한턱 내죠.”
내가 알기에 펀드매니저는 고객이 맡긴 돈을 주식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는 사람, 고객이 원하면 돈을 줘야하고, 주식을 팔면 돈은 금방 회수될 터였다. 그런데 그 펀드매니저는 웬일인지 돈을 주지 않고 미루기만 했고, 내 친구는 계속 속을 태웠다. 5월은 7월이 되고, 7월은 8월이 되었다.
“저, 10월 12일까지는 틀림없이 돈을 주셔야 합니다.”
내 친구의 말에 펀드매니저는 알았다고 대답을 했지만, 그건 말뿐이었다.
“야, 그 사람, 이제 내 전화도 안받아.”
매주 테니스를 치는 사이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매니저는 테니스 모임에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우린 3주간 테니스를 치지 못했다. 다행히도 결말은 해피엔딩이었다.
“돈 받았다. 너 혹시 그 사람한테 뭐라고 하지 마. 알았지?”
친구의 말이 아니었더라도 난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분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하여간 신기했다. 펀드매니저는 고객이 맡긴 돈을 관리하다 원하는 때 돌려주고 수수료를 받는 사람일텐데, 왜 그는 5개월이 넘도록 돈을 주지 못했을까? 친한 사이건, 매주, 아니 매일 만나는 사이건 돈 거래는 웬만하면 안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