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딴지일보에서 이번 김치파동에 대해 써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썼는데요, 실릴지 안실릴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여기다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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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에서 검출된 기생충알 때문에 사람들은 공황에 빠졌다.

“김치에 기생충알이 있다니 정말 분노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깍두기나 무말랭이를 믿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제 그들은 앞으로 영원히 김치를 먹지 않을 기세다. 당연히 김치 업계는 난리가 났다. 기생충알이 검출된 회사에서는 심.지.어. 나한테까지 연락을 해서 “제발 누명을 벗겨달라.”고 읍소를 한다. 하지만 난 너무 걱정 말라고 그분들께 말씀드리고 싶다. 그간 있었던 몇 번의 먹거리 파동으로 미루어 볼 때 한두달이면 모든 게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런 때일수록 아이디어가 중요한 법, “물에서 키운 배추로 담은 김치” 같은 걸 개발한다면 오히려 대박이 날 수도 있다.


김치에 기생충알이 있었던 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동안 기생충 검사를 하지 않았기에 몰랐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동안 김치 때문에 무슨 대단한 문제가 있었냐 하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우리나라의 회충 감염률은 0.1% 미만, 정확히 말하면 0.05%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약국으로 달려가고, 약국에서는 회충약을 쌓아놓고 판다. 그렇게라도 해서 심리적 위안을 얻는 게 나쁜 건 아니겠지만, 어째 선후가 좀 뒤바뀐 느낌이다. 정상적이라면 이렇게 되었어야 한다.

-회충 환자가 갑자기 많이 늘어난다.

-당국은 기생충학 탐정인 마태수를 불러 이 사건을 맡긴다.

-마태수는 다각도로 연구한 끝에 미녀와 결혼을... 아니 회충의 소스를 알아낸다.

-식약청장 앞에 선 마태수는 김치를 손에 들고 돋보기로 한 부분을 확대한다.

"보십시오"

식약청장은 돋보기에 눈을 댄다.

"아무것도 안보이는데?"

"당연하죠. 회충알은 돋보기로 안보입니다. 하여간 여기엔 회충알이 우글우글합니다. 이 김치야말로 회충의 급속한 감염을 가져온 원흉이었던 겁니다. 당장 김치를 못먹게 하고, 씻는 과정을 더 확실히 하도록 조처하고,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유해성을 검증받고 판매하게 해야 합니다."

-식약청장은 마태수의 손을 꽉 쥔다.

“고맙소. 당신이 또다시 우리나라를 구했소. 은혜에 보답하는 뜻에서 엄정하와 소개팅을 시켜주려는데, 괜찮겠소?”

“저야 뭐... 감사드리죠.”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간다. "요즘 회충이 어디 있어?" 이래가면서.

-근데 갑자기 김치에서 회충알 몇개가 나온다.

-사람들은 회충 환자가 된 양 단체로 약국에 달려가 회충약을 먹는다.

-김치는 안팔리고 김치 회사들은 난리가 났다. 이거, 앞뒤가 바뀐 것 같지 않은가?


김치 회사들의 김치에서 회충알이 나온 것은 제조 과정에서 첨가된 게 결코 아니며, 배추에 원래부터 묻어 있던 게 검출된 거다. 가정집에서 담구는 김치라고 해서 특별한 배추를 썼을 리는 만무한 일, 집 김치나 공장 김치나 기생충알이 있을 확률은 같다. 그러니 “집에서 담군 것만 먹는다."고 자랑할 일은 절대 아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자. 시중에 있는 김치들에 기생충알이 우글거린다면, 김치를 안먹을 수 없는 우리는 단체로 회충에 걸렸어야 한다. 근데 회충 환자가 과연 몇명이나 있는가? 올해 우리 병원에서 딱 한명 봤다. 그럼 작년에는? 한명도 못봤다. 김치에 회충알이 있다고 해도 그게 인체에 감염될 만큼 성숙하지 못한 게 대부분이고, 김치에서 3개월간 감염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연구가 있긴 하지만, 그건 몇몇 특출난 놈들의 성적일 뿐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다. 회충에 걸리는 경로는 결코 김치가 아니며, 그것보다는 밥 먹을 때 손을 잘 안씻는 습관이 회충 감염의 주요 원인이다. 그러니 손 안씻고 음식을 먹으면서 김치만 안먹는 행위는 같은 팬티를 보름 입으면서 바지만 매일 갈아입는다고 “나는 청결한 인간이야.”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언론의 보도에 이은 국민들의 집단 히스테리, 이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저 멀리 영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쇠고기를 아예 안먹었지만, 한두달 지나니까 고기집은 다시금 미어터졌다. 만두파동이 나니까 만두를 안먹고, 라면파동이 나니까 또 라면을 안먹는다. 닭을 조리해 먹으면 안전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조류독감이 무섭다고 닭을 안먹었다. 조류독감이 유행한다던 그 시기에 유일하게 죽은 사람은 비관자살한 닭집주인 뿐이었다. 조류독감이 또다시 유행할 조짐을 보이는 요즘, 언론에서는 “국내에서 50만명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느니 하면서 불안감을 조성하고, 순종적인 국민들은 조류와 담을 쌓음으로써 닭집 주인들의 탄식을 자아내고 있다. 기자들은 왜 닭을 못잡아 먹어서 난리일까? 어릴 적 단체로 닭한테 쪼인 적이 있기라도 한 걸까? 최소한의 일관성이라도 있다면 오래 살려고 저러나보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일까. 혹시 우리네 삶이 너무도 재미없어서 이런 방식으로 노는 건 아닐까. 이번엔 뭐 하나 먹지 말아보자고 언론이 얘기하면 우우 하고 다들 안먹고, 이번엔 저걸 먹지 말자고 하면 또 우르르 쫓아간다. 자꾸 하니까 재밌다. 언론은 계속 희생양을 찾고, 언론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은 희생양을 같이 조지면서 쾌감을 얻는다. 그래서 이런 먹거리 파동은 계속된다. 하지만 우리가 재미로 던지는 돌팔매 속에서 개구리인 식당 주인들은 하나둘씩 죽어간다.


먹는 거 가지고 장난치는 거, 아주 나쁜 짓이다. 근데 우리는 지금 그러고 있다.


* 여기서 말하는 먹거리 파동엔 인간이 먹지 못하는 걸 가지고 불량식품을 만든 업체를 포함하는 건 아닙니다. 법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회복할 길이 없이 치명타를 받은 업체들만을 지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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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5-11-08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면 안되죠.. 그리고 이 글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됩니다...

숨은아이 2005-11-08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다각도로 연구한 끝에 미녀와 결혼을... "에서 푸하하.

깍두기 2005-11-08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전문가인 마태우스님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김치에 기생충알이 있다는 보도를 보고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배추를 끓일 수도 없는 거고, 살균소독할 수도 없는 건데 기생충이 아주 없을 수는 없는 거 아냐?"
이랬다가 몰매맞을 뻔 했다는 거 아닙니까.
물론 기생충이 없다면 더 좋겠지만.

아영엄마 2005-11-08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생충 문제로 들썩거리기에 그렇지 않아도 님이 글 한 편 정도는 쓰지 않으려나 생각하고 있었어요. ^^

물만두 2005-11-08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문제를 왜 근절시키지 못하는지 답답합니다...

이네파벨 2005-11-08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너무나 잼있고 훌륭한 글입니다.
할수만 있다면 제가 엄정하 목덜미를 잡아다가라도 소개팅을 시켜드리고 싶을 정도로....

혜덕화 2005-11-08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미있다는 말밖엔 못하겠네요. 최근 우연히 님의 서재에 들렀는데, 하루가 유쾌합니다. 저는 우스운 이야기도 진지하게 만들어버리는 썰렁파에 들어가는데, 님은 진지한 이야기도 우습게, 재미있게 하시네요. 팬이 되었어요._()_

달팽이 2005-11-08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사회를 들끓게 하는 마녀사냥으로, 언론플레이로 당하는 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전문가의 입장에서 시원하게 풀어주시니 좋군요..
뭇 생명체가 수많은 기생충과 공존하듯 때로는 인간도 기생충과 공존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답변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천리향 2005-11-08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그동안 눈팅만 했던 사람인데요.
주위 사람들에게 님의 이 글을 꼭 보여주고 싶어서
제 홈피에 복사해가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물론 출처는 확실히 밝히겠습니다.

류사 2005-11-08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알았네요.
식약청장이 엄정하랑 친하다는 사실...
식약청 홍보대사였었나 보죠~~
-윤희에게 말만 듣다 한번 들려봤습니다. 꾸뻑~

로드무비 2005-11-08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마태우스님의 글은 모두 읽어봐야 한다니까요.^^

날개 2005-11-08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재밌게 잘 읽었어요.. 추천!

LAYLA 2005-11-08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히히 저도 뉴스에서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 파는 김치는 못 믿겠어요 역시 직접 담궈 먹어야.." 하면서 김치담그는걸 '배우러' 다니는 아줌마들 보면서 웃었어요.
어짜피 내년엔 또 사먹을 거면서...^^

stella.K 2005-11-08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인데요 뭐. 빨리 마태님 새책을 읽어봐야 하는데...요즘 좀 바빠서요. ㅜ.ㅜ
전 어제 후배랑 칼국수 먹었는데 같이 딸려나온 김치 감탄을 하며 먹었어요. 어쩌면 그리 맛있던지. 전 기생충과 상관없이 식당 김치 잘 안 먹는 편이거든요. 안 버리고 재활용한다는 말도 있고, 맛도 별로고 해서요. 그런데 어제는 유난히 더 열심히 먹었다는 거 아닙니까? 기생충 보다 음식도 재활용하는 위생관념이 더 문제 아닐까요? 추천하고 가요.^^

마태우스 2005-11-08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칭찬 감사합니다. 그리고 스텔라님같은 자세로 살아야 건강한 겁니다. 진짜 위험에는 초연하면서 기생충에 경악하는 풍토를 보면 인간이 참 비합리적인 존재라는 걸 느낍니다
라일라님/젊으신 분이 어쩜 그리 총명하십니까^^
날개님/아아 날개님...역시 님은 제 스타일입니다^^
로드무비님/아이 부끄럽게 왜그러세요...이주의 토크토크 보니까 순전 님의 글만 올라와 있더군요^^
류사님/아아 이윤희님의 친구시라면 님도 멋진 분이시겠군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노님/님 방명록에 댓글 남겼는데요, 혹시 못보실까봐 말씀드립니다. 여기 쓴 건 사실 여러 사람들 보시라고 올리는 거니 퍼가셔도 됩니다. 그리고 님도 홈피 하시면서 부업으로 알라딘에 오세요^^
달팽이님/하하, 전문가씩이나... 부끄럽구요, 님의 질문에 답변 드립니다. 사실... 아, 이런 말씀 드려도 되나 모르겠지만... 위험한 몇몇을 빼놓고는 인간이 몸 안에 기생충 한마리씩 키우는 게 뭐 그리 힘든 일은 아니지요. 어떤 책을 보니 인간은 지구의 기생충이라는데,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알레르기 질환이 늘어나는 것을 기생충의 격감과 연결지어 설명하는 학자도 있구요, 음, 하여간 기생충이 옛날보다 줄어든 건 또다른 위험에 노출되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생충의 잘못은 분수를 넘어섰다는 거죠. 회충이 70%씩 감염되었는데 어떻게 인간이 그걸 참을 수가 있겠습니까. 대대적인 탄압을 받은 건 당연한 거죠... 그때 좀 자제했었어야 하는데..
혜덕화님/아이 쑥스럽게 왜이러세요. 팬이란 말도 당치 않습니다. 이곳 알라딘에서는 모두가 다 친한 친구랍니다. 어쨌든 제가 누군가를 즐겁게 해드렸다는 거, 기분 좋네요.
이네파벨님/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물만두님/제게 맡겨 주십시오. 부리한테 시키면 잘 할 겁니다^^
따우님/호홋, 제가 쓰기엔 좀 과격한 말이었나봐요^^
아영엄마님/아주 우연치않게 쓰게 되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기분 좋습다^^
깍두기님/우리가 코드가 맞다는 건 전 진작부터 알았습니다. 제 스타일이예요!
숨은아이님/호호.... 미녀가 나와야 제 글같지 않습니까??
실론티님/실론티에 항기생충 제재가 들었다고 써볼까요?^^


울보 2005-11-08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동네 화요일이면 오는 김치장수가 있는데요,많은사람들이 그 김치를 사먹는데요,
오늘도 어김없이 그런데 한아주머니가 이번일때문에 김치먹기가 그렇다고 하니까 이 김치아줌마 말씀 그럼 구충제 먹고 드세요라고 했다네요,,그런데 일리 있는 말인지요,,,ㅎㅎㅎㅎ

soyo12 2005-11-09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음식물 문제에 대해서는 늘 무념 무상으로 대응합니다. ㅋㅋ
그런데 전 만두파동 벌어지면 갑자기 만두가 땡기고,
김치 파동 벌어지면 김치가 더 땡기고,
니모를 보고 있으면 회가 더 먹고 싶고, 단순하게 보여지는 것은 다 먹고 싶어하는 스타일이네요.^.~

산사춘 2005-11-09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는 거 가지고 장난친다'는 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시는군요.
역시 멋있으십니다.

수퍼겜보이 2005-11-09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치 직접 안 담는 주부까지 마녀사냥을 당하는 게 꼴보기 싫었는데 속이 시원하네요~
 

 

 

 

 

‘유령신부’를 본 것은 이런 이유였다. ‘네시부터 술마시면 너무하니까’. 극장에 갔더니 시간대가 맞는 게 유령신부밖에 없었고, 동기가 그렇게 불순해서 그런지 영화를 보는 내내 ‘술을 어디서 마시지?’같은 생각만 했다. 한시간 10분의 짧은 상영시간이 다행으로 느껴진 건 내가 너무도 술이 고팠거나, 팀 버튼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한 소치일 것이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난 미녀 둘과 술을 열심히 마셨다. 소주, 맥주, 그리고 다시 소주.

1차: 대학로에 있는 식당인데, 이름은 모르지만 사람은 늘 바글거리는 곳이다. 거기서 난 묵은지가 가득 들어있는 찌개에 소주를 마셨다. 우리 테이블이 야외였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맛있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들에게 난 한점 먹어보라고 권하고 싶었다. 그 묵은지의 맛과 황홀한 국물을 어찌 잊겠는가.


2차: ‘해적선’이라는 생맥주집에 갔다. 500cc 짜리 잔이 얼음으로 되어있는 그 집은 다 마시고 나면 그 얼음을 던져서 과녁에 맞추는 경우 음료수나 안주 같은 선물을 준다. 그것 때문에 난 열심히 생맥주를 마셨는데, 정말이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술집이다. 내가 11월 중 번개를 한다면 필경 어제와 같은 코스로 가리라. 던지기에 자신 있는 알라디너 분들, 열심히 연습해 놓으세요.


3차: 미녀 하나가 조개구이를 잘하는 집이 있다고 한성대 입구까지 우리를 끌고갔다. “어, 문 닫았네?”하고 나자빠지는 그녀, 할 수 없이 우리는 근처 아무데나 들어갔다. 안주가 조개가 아니면 어떤가. 좋은 친구인 그녀들과 있으면 즐겁기 짝이 없는데. 그녀들 역시 “우리끼리 있으면 너----무 재밌지 않아요?”라고 말했는 걸 보면, 우린 정말 궁합이 잘 맞는 친구들이다.


“팀 버튼에게 죽음이란 이렇게 사람들의 관계를 갈라놓는 무시무시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분은 이 영화의 소감을 이렇게 멋들어진 언어로 정리했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이 유령의 존재를 모른 채 결혼서약을 하다가 시련을 겪는 걸 보면서 내가 느낀 건 이거 하나였다. “엉뚱한 여자에게 사랑 고백을 하면 무지하게 고생한다.”

여성은 누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면 그 남자를 다시 본단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술김에 좋아한다고 말했던 여자 중 하나는 그 후 날 집요하게 괴롭혔었다. 취중진담이란 말은 내게는 진리가 아니었는데, 하여간 그 뒤부터 난 술을 마실 때 그런 얘기를 할까봐 조심한다. 어젠 혹시 실수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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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5-11-07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전 '여성'이 아닌가봐요. 누군가 나보고 좋아한다고 하면 기꺼이! 멀리 해 줬는데 말이지요. ㅡ.ㅡ

부리 2005-11-07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치카님이 좋아요! 설마 저도 멀리하실 겁니까?

싸이런스 2005-11-08 0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묵은지가 뭐여요?

혜덕화 2005-11-08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참 재밌네요. 아침에 미소로 하루를 열게 하는군요. "엉뚱한 여자에게 사랑고백을 하면 무지하게 고생한다"도 맞는 말이지만, 그 엉뚱한 여자가 고백의 진실성을 믿고 마음 고생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 아프네요. 앞으론 그런 실수 하지 마시길.....

paviana 2005-11-08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안 괴롭히잖아요..믿어주세요..ㅎㅎ

마태우스 2005-11-08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아아 님께도 제가 고백을 했군요. 음, 그러고보면 취중진담이 늘 거짓말은 아니란 말이야...
혜덕화님/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그 여자분이 마음고생한다는 생각을 못했네요...
싸이런스님/묵은지란 김치를 일년이상 묵힌 것으로 맛이 아주...기가막히다는...

H 2005-11-08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뜬금없이 고백을 들으면 다시 봐지긴 하더라구요. 그 사람이 무서워요...ㅋㅋㅋ
눈치를 주면서 천천히 다가오는 게 좋은데... 폭탄선언처럼 되어버리면
정말 다시 봐요.
 

 

 

 

폭력으로 얼룩진 영화가 폭력에 대한 욕구를 대리만족시킴으로써 사회 평화에 기여하는가, 아니면 폭력을 더 부추기는가. 무술영화를 보고 밖에 나가면 나도 한번 무술실력을 발휘하고픈 마음이 든 적도 있고, 영화 속의 폭력이 너무도 지나쳐 평화롭게 살고픈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로라 공주’는 최소한 내게는 전자에 속하는 영화였다. 친일파는 물론이고 가공할 국가테러에 대해 책임져야 할 애들이 응징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면서, 그리고 용서와 어설픈 봉합으로 점철된 우리나라의 드라마들에 짜증이 나던 터에, 악은 언제나 응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오로라공주’에게 어찌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겠는가.


영화의 줄거리에 대한 어떤 말도 스포일러가 될 터이니 두가지만 얘기하고자 한다.

첫째, 키스씬.

이 영화에서 대단한 것은 극중 조연이 엄정화와 키스씬을 한 것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햄버거’로 나오는 뚱뚱하고 안생긴 남자배우가 그 주인공인데, 남자 주연이 여자 조연과 키스씬을 벌이는 일은 흔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고 할만하다. 게다가 엄정화가 좀 섹시한 여배우인가? 그 장면을 보면서 “조연도 할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둘째, 때린 후 묶자.

‘네트’라는 영화에서 배에 탄 산드라 블록은 자기를 죽이려는 남자를 술병으로 후려쳐 쓰러뜨린다. 그 다음에 그녀는 선실로 들어가 디스켓을 찾는데,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 남자는 다시금 일어나 그녀를 괴롭힌다. 한번 때려서 남자가 쓰러진다 해도 그건 진정으로 쓰러진 건 아니다. 몇 번은 더 쳐야 다시 못일어날 테지만, 그게 너무 잔인하게 느껴지면 손과 발을 묶기라도 해야 한다. ‘오로라공주’에서 엄정화는 골프채로 남자의 머리를 가격하는데, 그 후 방심하다가 남자에게 역습을 당하고 만다. 남자 역시 엄정화를 쓰러뜨리고 전화를 거는 여유를 보이다 치명적인 일격을 당하는데, 도대체 왜 상대가 일어날 것을 예상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때리고 묶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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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5-11-07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글을 남기긴 처음이네요.
너무 우스워서 하하하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때리고 묶자" 명언입니다.

마태우스 2005-11-07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안녕하세요? 호호, 리뷰 쓰고 허섭해서 어쩌나 싶었는데 웃어 주시니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코드도 맞는 거 같으니 앞으로 친하게 지내도록 해요.

하루(春) 2005-11-07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저기다 저 책을 넣으셨어요? 인상적이었던 스틸을 넣어주세요.

다락방 2005-12-06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리고 묶자, 에 올인.

마태우스 2005-12-06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홋 다락방님, 님도 꼭 그렇게 하세요. 사진이 정말 잘나왔네요^^
과일님/호호 그렇죠?
하루님/그게요...다 제 귀차니즘 때문이죠.

하늘바람 2005-12-08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리고 묵자 너무 웃겨요. 그런데 저 이영화 보고팠는데 놓쳤네요.
 

 

 

 

 

 

오늘은 ‘달의 제단’의 작가 심윤경님이 글쓰기에 관한 강의를 한 날이었다. 수업을 들은 예과 애들 중 오늘의 강의가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아챈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일부 애들은 토익 공부를 했고, 어떤 애들은 자기들끼리 떠드느라 바빴다. 물론 대부분은 심작가의 강의를 잘 경청했고, 수업 후 질문도 몇가지 했지만.


작가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있는 나는 심작가가 수업 후 그냥 가면 어쩌나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고, 심작가는 점심을 함께 한 데 이어 커피까지 먹고 갔다. 그리고 그 동안 걸려온 전화는 “저희 신문에 칼럼 좀 써주세요.”나 “다음 책은 저희랑 같이 합시다.”같은 게 아니라 “고객님!”으로 시작하는, 별반 영양가 없는 전화였다.


심작가의 강의를 들으며 느낀 건, 그녀가 참으로 똑똑한 작가라는 사실이다. 말을 하다보면 한두번 정도는 말이 꼬이는 게 우리네 삶인데, 심작가의 말엔 하나의 삑싸리도 없었다. 전에 이런 사람을 딱 한번 만난 적이 있다. ‘패닉’이란 그룹을 만들었던 이적 씨, 별밤을 맡은  첫날부터 그는 완벽하기 짝이 없는 진행을 했다. 말실수가 하나도 없어 별밤 작가들로부터 ‘기계’란 소리까지 들었던 이적, 오늘 심작가의 강의를 들으면서 난 그를 잠시 떠올렸다. 처음 쓴 장편을 가지고 바로 등단을 해버린 건 심작가의 천재성 때문이지 결코 우연한 건 아니었을 거다.


강의 중 심작가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소질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관심법, 나는 밥을 먹으면서 그게 정말이란 걸 확인했다. 커피를 마시고 난 뒤 심작가는 “서울 가는데 모셔다 드릴까요?”라고 했다. 내가 스케줄을 확인한다며 바쁜 척을 하자 그녀는 관심법의 진수를 보여준다. “할일 없는 거 다 알아요.”

결국 난, 학교로 돌아가 내방 불을 껐고, 심작가의 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그 동안 나눴던 주옥같은 얘기들을 여기다 쓸 수는 없겠지만 심작가의 유머가 정말 대단하다는 것만 밝힌다. 유머평점 10점 만점에 8.3 정도? 점심을 같이 먹은 심작가의 친구도 보통은 아니어서 그 둘이 구사하는 유머에 난 그저 웃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유머만 그런 게 아니었다. 중국집에서 점심용으로 나온 코스요리를 둘은 하나도 남기지 않았고-난 배불러서 빵을 약간 남겼다-커피를 마시면서 케이크까지 먹는 여유를 보였다. 여기서 난, “좋은 글은 밥에서 나온다.”고 말했던 에릭 시걸의 경구를 떠올렸다.


심작가는 그때 교보 싸인회에 와준 알라디너들에게 감사한다고, 언제 한번 번개에 나가겠다고 했다. “토요일보다는 평일이 좋아요.”라고 했던 심작가는 “생각해보니 주말이 좋아요.”라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녀의 스케줄에 맞춰서 번개를 한번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심작가님, 강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미모와 유머를 갖추신 친구분께도 좋은 시간을 같이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 추신: 강의 후 심작가의 싸인이 담긴 책 세권을 나눠줬다. 문제를 내서 맞춘 사람에게 줬는데, 3번째 문제가 이거였다.

“심작가가 몇 살로 보이나?”

눈치빠른 애들이라면 정답으로 생각한 스물둘을 고르겠지만, 이것들이 정치적인 마인드가 없어서 그런지 91학번의 나이를 계산해 “서른셋!” “서른넷”을 외친다. 어떤 애가 “서른!”이라고 하기에 “정답에 근접하고 있다.”고 힌트를 줬는데, 그 다음 애가 “서른 다섯!”이라고 한다. 정답은 결국 스물다섯이라고 한 학생에게 돌아갔지만, 애들이 이렇게 직언만 해서야 어찌 큰사람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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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5-11-07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훗~ 재미있는 후기이군요. 그 분과 알라디너들과의 번개라~ 그 후기도 기대되오니 스케줄을 잡아보셔요 .^^

로렌초의시종 2005-11-07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마태님. 부러워요~~~ >.<

엔리꼬 2005-11-07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작가님... 오호 첫 장편소설로 등단.. 말 그대로 재원이군요.. 그렇다면 심재원? 으흠.. 이건 아냐.
에릭 시걸의 동생 스티븐 시걸은 이미 밥의 중요성을 알아서인지 언더시즈2에서 주방장으로 변신한 모습을 보이더군요... (저의 유머지수는 몇점? 뼈아플테지만 새겨 듣겠습니다.)

chika 2005-11-07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 스물!! 그렇군요.

마태우스 2005-11-07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림님/제가 그런 유머 안된다고 했었죠?^^ 스티븐 시걸은 웃겼어요. 호호. 노력하는 자세가 아주 돋보입니다.
치카님/호호 저 넘 귀엽지 않습니까^^
행복나침반님/그죠? 한번 써가지고 철커덕 되다니, 정말 대단하죠. '달의 제단' 어여 읽으시구요... 내년 상반기에 나올 심작가의 차기작을 기대해 주세요.
로렌초님/님도 번개 나오심 되죠!
아영엄마님/날 잡아보겠습니다. 대학로에 근사한 술집을 하나 알아뒀어요.

로즈마리 2005-11-07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 ㅋ 특히 유머러스하다는 점에 더 부럽..그러고 보니, 마태님도 부럽거니와 심작가도 부럽네요. ㅋ

조선인 2005-11-08 0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릭 시걸의 명언. 푸하하하하하
전 유머가 안 되니 웃는 걸로. *^^*

세실 2005-11-08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 달의제단 챙겨놓고 아직 못읽었는데 오늘 당장 읽어야 겠군요~~~
저도 심작가님 번개때 꼬옥 가고 싶어요~~~

moonnight 2005-11-08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대단하신 분이군요. 그런 분과 친분을 쌓으신 마태우스님 역시 유명인이십니다. ^^

마태우스 2005-11-08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나이트님/유명인과 친분이 있다고 저까지 유명인이 되나요^^ 전 문나이트님과 친분이 있다는 것도 충분히 자랑스럽습니다
세실님/서울까지 오실 수 있어요???? 오시면 저야 좋지만...
조선인님/하하, 그런 유머에 웃어주시다니 고맙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마태우스 2005-11-08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즈마리님/유머의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일단 경지에 이르고 나면 그 열매는 달리라. 이건 세계적인 유머리스트 노마 가르시아파라가 한 말입니다^^

니르바나 2005-11-08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글 속의 작가 심윤경님은 참 매력적인 분이시군요.
“할일 없는 거 다 알아요.”
이런 대사치는 작가들이 그리 흔치 않지요. ^^)

stella.K 2005-11-08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릭 시걸이 정말 그런 얘기를 했단 말입니까? 심 작가도 심 작가지만, 심 작가를 불러 글쓰기 강의를 하는 그 학교도 좋은 학교 같아요. 의대생들한테 그런 강의 과목도 있다는 거 첨 알았어요.^^

부리 2005-11-08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그럼요. 아무나 할 수 없는 말이죠. 정말 유쾌하고 좋은 분이었답니다.
스텔라님/제가 한거죠! 으쓱.

stella.K 2005-11-09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쉬...!^^
 

 

 

 

 

‘나의 아름다운 지옥’을 읽고난 이후 권지예가 낸 책은 되도록이면 사려고 했다. 괜찮은 여성작가가 나왔구나 싶었으니까. 자전적인 이야기로 도배한 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자기 얘기를 그렇게 재미나게 풀어나갈 수 있다면 소설가로서 자질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 버렸다. 그 다음에 산 ‘폭소’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었고, 차기작인 ‘꽃게무덤’은 사놓고 오랫동안 못읽고 있었다.


나는 가끔 그저 내가 신기할 뿐이다. 못났건 잘났건 내가 낳아놓은 소설들을 보면 말이다. 내 속에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었나 싶다. 아이의 탄생이 어미의 존재이유가 되듯이 태어난 작품은 나를 또 소설가로 존재하게 한다.”

권지예가 쓴 작가의 말 중 일부다. 표절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서 들춰본 ‘꽃게무덤’, 그 책날개에 써 있는 작가의 말은 나를 무척이나 씁쓸하게 했다. 작가의 말대로 소재를 차용한 것이라 해도 그건 ‘내 속에..숨어 있’던 이야기는 분명 아니니 말이다. 작가의 말을 내 식대로 바꿔본다.

나는 그저 권지예가 신기할 뿐이다. 못났건 잘났건 자기가 창조한 이야기를 소설로 써야지, 다른 사람의 경험담을 자기 얘기처럼 쓰다니 말이다. 작가가 존경받는 이유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데 있다면, 남의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각색하는 작가를 작가라고 부를 수는 없다.”


소설은 표절이었다. 책 내용 중 일부와 문장을 아예 통째로 베껴왔고, 환자가 죽고나서 어머니가 자살하는 결말까지 어쩜 그리도 똑같은지 모르겠다. 미리 출처를 밝혔으면 모르겠지만, 이 정도가 표절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표절이라는 걸까? 하지만 정과리를 비롯한 동인문학상 심사위원들은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소설 하나를 토씨 하나 안틀리고 베껴야 표절이라는 걸까? 심사위원 중 하나인 이문열은 이렇게 말한다.

작가에게 치명상이 될 ‘표절’ 의혹을 너무 쉽게 제기하는 것 같아 참 난감하다.”

아니다. 그의 정신이 아무리 썩어빠졌더라도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그가 작가라면, 그리고 아직도 작가로서의 양식을 가지고 있다면 “작가에게 치명상이 될 표절을 작가가 된 지 몇 년도 안된 이가 너무 쉽게 하는 것 같아 절망했다.”라고 말했어야 했다. 이문열을 국민작가라고 부르는 분들, 제발 좀 생각 좀 하시라.


박경철 씨는 환자 가족 분들에게 허락을 받고, 수정을 해서 글을 썼다. 권지예가 환자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지는 못할지라도 원저자인 박경철한테는 사전에 알렸어야 했다.

[권지예 씨는 “박경철 씨가 책을 출간하기 전 인터넷에서 본 글을 소설의 소재로 가져왔다가 이후 그 글이 수필집으로 출간된 것을 알고 박씨에게 e-메일을 보냈으나 답신이 없었다”고 해명한 뒤 "다음 판을 낼 때 소재의 출처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메일 한번 보냈으니 자기도 할만큼 했다는 투로 들린다. ‘시골의사’를 낸 출판사에 전화만 해도 박씨의 휴대폰 번호 정도는 알 수 있을텐데. 그리고 소설가는 그게 책으로 나오지만 않는다면 인터넷의 사례들을 허락도 없이 베껴도 되는 것일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인터넷 매체가 많잖아요. 작가들도 인터넷에서 힌트를 얻어 쓰기도 하고 그래서 저도 그렇게 했는데 선생(박경철)의 글을 받아서 이런 글을 썼다는 것을 그 다음 책 찍을 때는 명시하겠다고 얘기했어요.”

“다음 책 찍을 때 명시하겠다”, 이걸 무슨 큰 선심 쓰는 것처럼 말하다니 우리 권지예 씨도 기득권층이 다 된 것 같다. 안걸리면 마는 거고, 걸리면 “담부터 니 이름 넣어줄게.”라니. 인터넷에서 베끼는 게 관행이라는 그녀의 말도 어이가 없다. 그딴 식으로 글을 쓰면 개나 소나 다 작가겠네?


소재가 딸리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문제는 그 다음이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그 작가를 믿고 책을 산 독자들에 대한, 그리고 박경철 씨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연쇄살인을 한 것도 아닌데 그쯤 하면 봐주지 않겠는가. 하지만 권지예는 지금 휴대폰도 끄고 잠적한 모양이다. 잠잠해질 때까지 숨어있기, 민초들의 항의는 무시하기, 이것 역시 우리의 기득권층이 보이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등단한 지 8년만에 그녀는 기득권층이 사는 법을 완전히 터득했나보다.


다시 말하지만 작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존재고, 창조는 본디 신의 영역에 속한다. 그래서 난 표절을 작가의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놈의 나라는 왜 그렇게 표절에 관대한지, 표절을 저지른 사람이 사과 한마디 없어도 별탈없이 작가 생활을 한다. 이인화는 페스티쉬라고 우기지, 신경숙은 걸리고 나니까 “실수”라고 우기면서 표절의혹을 제기한 박철화를 맹렬히 공격하지, 권지예는 “이메일 보냈는데 답장이 없다.”면서 그 책임을 박경철에게 뒤집어 씌우지... 문단이 이런 희한한 작태들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라.”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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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5-11-06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실을 제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심증은 가네요. 요새 참 씁쓸합니다.

이매지 2005-11-06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말 한마디에 작가로써 매장당할 수도 있겠지만, 잘못은 인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아직 두 작품 다 읽어보지 못해서 표절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리고, 이문열은 국민 작가라는 칭호가 너무 큰 감투 아닐까요? -_ -; 작품 같은 작품. 뭘 썼다고 -_ -;

하루(春) 2005-11-06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이런 얘기였군요. 충격.. 솔직히 충격이에요. 동인문학상까지 받은 작품집이... 사보고 싶었는데 일단 보류해야 겠네요.

panda78 2005-11-06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문열이 언제부터 국민작가였대요오- 어우어우-
권지예, 그런대로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정말 만정 다 떨어졌습니다.
"작가들도 인터넷에서 힌트를 얻어 쓰기도 하고" <- 댁은 힌트를 얻어 쓴 게 아니라 베낀 거잖수? 문학상까지 받은 작품집에 이름 넣어줄 테니 가만히 있으라구? 으이구..

2005-11-06 0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Joule 2005-11-06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간만에 또 님과 저의 합일점을 찾은 것 같아 기쁩니다. 저는 문체 보다는 정신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족속입니다. 문체만 번드르르한 일련의 한국소설들을 보며 생각합니다. 그들은 왜 소설을 쓰는가.

미완성 2005-11-06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이 죽어가고 있다며 그 책임을 책 안 읽는 '무식한' 사람들에게 뒤집어 씌우려던 사람들이, 숫제 문학을 쓰레기로 만들어 버리는 짓을 목도하고 말았습니다. 관련 기사를 읽으며 어찌나 황당하던지, 지구인과 외계인이 처음 통신을 주고 받아도 이것보단 이질적이지 않을 거다..싶더만요. 특히나 가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의 탈을 쓰고 감정에 호소하려는 권..의 행태에는 혀를 찰 수 밖에 없네요.
한국문학은 커다란 종양 덩어리를 안고 죽어가고 있슴다. 죽어가고 있는 문제와는 별도로, 그 징글징글한 종양 덩어리가 아직은 신선한 피가 자알- 돌아가고 있는 다른 부위로 전이될까봐 그래서 아예 몸 전체를 덮어버릴까봐 그게 겁납니다.

Joule 2005-11-06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멍든사과님 오랜만이에요. 페이퍼만큼이나 멍든사과님의 댓글도 아주 명품입니다. 멋진 말씀입니다.

미완성 2005-11-06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오바한 거 아냐? 해서 지울까하는 생각으로 왔더니 쥴님의 댓글이...;
제 위에 있는 쥴님의 댓글이 올려진 시간을 보고선 오, 아직 안 주무시는구나- ㅎㅎ 혼자 웃었는데 또 이렇게 뵙네요. 방가방가 쥴님 >ㅇ< 귀, 귀엽나요;

모1 2005-11-06 0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문열씨가 국민작가로도 불리나요? 몰랐어요.(순수하게요. 그를 잘 알지 못하거든요. 수업시간에 배우게 되는 작가들빼고는 잘 모르는 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선택, 삼국지...이것 3편밖에 읽어보지 못했어요. 모두 억지로 숙제하냐고 읽었던 책들

모1 2005-11-06 0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원체 안봐서....뭔소린지 잘 모르겠어요. 후후...둘다 모르는 책들..??

로드무비 2005-11-06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절 이야기가 있길래 뭔 말인가 했더니 이런 스토리였군요.
음, 많이 얍삽했네요. 권지예 씨!
실수를 했다면 제대로 정리를 잘하고 넘어갈 것이지.
타격이 크겠어요.

사마천 2005-11-06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표절 논란에서 쉽게 빠져나가기 어렵겠군요. 기대를 많이 받던 작가인데.

눈보라콘 2005-11-06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냈다는 이메일 내용도 양해를 구하는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마태우스 2005-11-06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마천님/그러게요. 저 역시 괜찮게 보던 작가였는데 말입니다
로드무비님/참 신기해요. 꼭 상 반납까지 가지 않더라도 정말 죄송하다고 하면 될 것을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요?
모1님/박경철 씨 작품은 경험담에서 나온 수필집이구요, 권지예 건 단편소설 모음인데요 그 중 하나가 수필집에 나온 걸 차용했어요. 글구 이문열을 국민작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그와 정치적 지향이 비슷한, 다시말해 냉전극우반동에 남녀차별주의자들입니다.
사과님/님은 언제나 쥴님만 좋아하세요. 저랑도 놀아요. 글구 저 역시 님의 댓글에 추천하고 싶어요. 님이 페이퍼를 쓰셨다면 훨씬 더 멋진 페이퍼가 나왔지 않았을까요...
쥴님/흐음, 요즘 님과 제가 같은 생각을 하는 지점이 꽤 여러번 있네요. 몸 만들고 있는 것도 그 중 하나겠지요^^ 하여간 반갑습니다
속삭이신 ㅍ님/아아 멋진 댓글입니다. 모르던 정보를 주셨고, 또한 님의 문학적 내공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동인문학상을 타지 않았다면 아마도 문제가 커지지는 않았을 거라는 님의 생각에 동감을 표합니다. 동인문학상이 조선일보 주최라는 것도 이 사건의 배경 중 하나가 되었겠지요?
판다님/그러니까 믿을 건 알라디너밖에 없어요. 판다님, 앞으로도 쭉 친하게 지내요
하루님/아아 님이 내신 숙제를 아직 못했습니다. 7년 후배한테 전화하니까 자긴 모르겠다고... 조만간 숙제할께요.
이매지님/기득권층은 원래 잘못을 인정하는 데 겁나게 인색해요. 일본 애들도 '유감'이란 표현을 쓰던데 우리나라 애들도 별반 차이가 없어요. 문제되면 "왜곡되었다"고 한다든지...
페일레스님/그러게 말이어요. 씁쓸, 착잡, 이런 표현들이 머리 속에서 맴돌더이다.


마태우스 2005-11-06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님/아 그런가요? 제가 파란님 덕분에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그때 그 글, 감사드려요.

로렌초의시종 2005-11-06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의 자식 유괴해다가 키우면서 퍽이나도 뿌듯했던 모양이로군요? 그렇게 애들 안 낳으면 누가 소박이라도 준다고 했나보지요?

2005-11-06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1 2005-11-06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어떻게 표절을 하고도 그리 떳떳하게(?) 행동을 할 수 있는지...그것도 소설가라는 사람이요. 마태우스님 덕분에 좋은 사실 알았습니다. 자세한 설명 감사해요.

manheng 2005-11-06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지예씨의 글들을 참 좋아했었습니다... 특히 ' 내 가슴에 찍힌 새의 발자국' 이란... 소설을... 이 사건을 보고 참 많이 씁씁했었죠. 기대하는 작가였는데 말이죠. 애인한테 배신당한 느낌이랄까... 하여간 그러네요

2005-11-06 1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1-07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즈마리 2005-11-07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씁쓸....

마태우스 2005-11-07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즈마리님/제 맘이 바로 그렇습니다.
스노우드롭님/위의 두 책 안읽었다고 무식한 건 아니죠. 그리고 뒤에 말씀하신 거, 삼류소설로 남을 속이는 데서 쾌감을 얻는 제게 좋은 가르침이 된 듯 싶습니다^^
속삭이신 미녀님/정말 감사합니다. 지금 수정했구요, 답은 우편으로 하겠습니다. 단풍 좀 줍구요^^
만헹님/그러게요. 나름대로 글을 잘쓰는 작가였는데...우리가 좋아하는 다른 작가들 중에도 무슨 일이 닥쳤을 때 실망스런 모습을 보일 사람이 꽤 있겠지요. 그 일이 터지지 않았을 뿐
모1님/아닙니다 저도 파란님과 파란여우님 글 보고 이 사건을 알았는걸요. 다 서로 돕고 사는 겁니다
속삭이신 분께/어머나 세상에.. 님을 이용해서 올라간 그 사람, 지금도 잘 살고 있습니까? 정의는 언제나 이긴다는 말은 다 거짓이던데...
로렌초님/그랬나봅니다^^

moonnight 2005-11-07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덕분에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네요. 권지예씨. 그래도 괜찮은 작가라고 생각했더니만 이런 일이 있었군요. 서글픕니다.

2005-11-07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yonara 2005-11-07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우리나라 땅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군대, 정치, 교육, 먹거리... 예술까지... 참.. -,.-#

울보 2005-11-07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도 권지예작가 좋아라햇는데 뱀장어 스튜보고 그녀의 책을 읽엇는데,,,,
정말로 이런일이,,,에이 씁쓸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