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사냥꾼 - 이적의 몽상적 이야기
이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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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12월 1일, 운이 좋게도 그날 난 이적이 MC로서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문세의 뒤를 이어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하게 된 것. 그날 그는 말 한번 꼬이는 법 없이 두시간의 데뷔전을 훌륭하게 치러냈다. 전에도 말했지만 이적은 천재였다. 잠깐 같이 있는데도 천재성이 느껴졌고, 그가 내뿜는 기가 워낙 강해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적이 별밤을 맡은 후 청취율은 훨씬 더 높아졌다고 한다.


명 가수에 명 MC인 그가 ‘지문사냥꾼’이란 책을 냈단다. 모 출판사에 계시는 분이 고맙게도 이 책을 내게 선물하셨는데, 먼저 읽은 조교선생은 내게 책을 돌려주며 “참 재미있다.”고 말했다. 나 역시 같은 말을 하련다. ‘이적이 썼다는 걸 감안하면 재미있다.’는 게 아니라, 이적의 명성을 지우고 읽어도 재미있을 법하다. 물론 이적이 아닌 다른 사람이 썼다면 이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리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환타지에 그다지 관심은 없었지만, 그가 그리는 환타지는 내가 감내할 만한 수준이었고, 이야기 속에 소수자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는 게 느껴진다. 굳이 비교하자면, 서 모 씨가 쓴 <대통령과 말미잘>은 물론이고 베 모 작가가 쓴 <나무>보다도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는 컴퓨터가 다운되거나 인터넷이 멈춘다든지, 펜이나 가위가 있어야 할 곳에 없는 건 외계령(외계의 영혼)이 모종의 실험을 하고 있는 증거라고 말하고, 남의 귀를 파주는 걸 직업으로 삼는 ‘제불찰’ 씨를 통해 소통이 막혀버린 사회를 풍자한다.

“제씨 앞에 열린 귀는 실상 굳게 닫혀 있었다.”

다음 대목은 그의 유머감각을 잘 보여준다.

“달팽이관을 통과할 때마다 비슷한 제목의 희대의 명곡을 흥얼거렸다는 소문도 있었으나”

여기서 언급된 희대의 명곡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은 신세대는 아닐 듯싶다. 


이제 아쉬운 점. 책이란 모름지기 읽는 데 다섯시간 이상 걸려야 본전은 된다고 생각하는 내겐 글자도 크고 그림도 많으며-너무 많다-페이지 수도 200 남짓한, 그래서 읽는데 두시간이 채 안걸린 이 책이 아쉽다. 어느 단편들은 괜찮지만, ‘고양이’나 ‘음혈인간으로부터의 이메일’처럼 종잡을 수 없는 단편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종합적으로 말한다면 나처럼 그달의 책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사람, 이적의 팬, 환타지는 뭐든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과감히 1만원-알라딘에서는 9천원에 마일리지 2700점-을 투자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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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5-12-22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달팽이를 들었을때 이적이 천재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뭐 비슷한 곡이 있다더라 하는 소리도 많았고 실제로 엔지니어인 제 친구의 증언도 그러했지만 (표절이 아니라. 가끔 가요계는 비슷한 느낌으로 가 달라고 샘플 시디를 엔지니어에게 틀어준답니다.)아무튼 저는 달팽이라는 곡을 너무나 좋아하고 아직도 좋아합니다. 스스로 희대의 명곡이라 해도 부끄럽지 않은 곡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이 책 읽을까 말까 했었는데 님 리뷰를 보니 댐시 보관함에 담고싶어지네요. 흐흐.

하늘바람 2005-12-2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적 정말로 대단하군요. 저렇게 재주 많은 사람보면 웬지 얄미워요 괜한 심통^^ 함 봐야겠네요.

꼬마요정 2005-12-22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능이 너무 많은 사람은... 부럽습니다.^^;;
왠지 기분전환겸 신선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네요...^^

마태우스 2005-12-22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정님/전 부럽다기보단... 저와 같은 인간이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저 위에 있는 세계의 사람...
바람님/호호 님이 박찬욱을 얄미워하신다고 쓴 글 방금 보고 오는 길입니다. 재주가 그리 많지 않아 다행입니다 님이 절 미워할 리는 없으니깐요
플라시보님/님이 쓰신 달팽이 봤습니다. 곡보다 훨씬 더 감동적인....

모1 2005-12-22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적이 소설을 냈다고 몇달전인가 신문에서 본듯 하네요. 소설집에 관심이 별루 없어서 한눈으로 보고 그냥 흘려버렸었는데..제목이 지문사냥꾼이었군요. 그런데 이적이 그리 말을 잘하나요? 전 패닉노래도 달팽이 밖에모른다는...하하..

아밀리 2006-01-05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문 사냥꾼 살까 말까 하다가 다음 기회로 미뤘는데, 마태우스님 리뷰 보고 사기로 결심. 패닉....이적의 가사도 진표군의 소년,적 감성도 좋아하지요.
 

 

 

이 책 줄거리는 안다. 그래도 꼭 읽어볼 테다..

 

 

 * 저 잘났다는 페이퍼입니다. 너무 미워하진 말아 주세요.

-----------------------------

전화가 왔다. 전에 내가 나온 방송을 들었다면서, 내가 낸 책의 제목을 묻는다.

"그게 헬리코박터 뭐라는 거였는데, 정확히 뭐죠?"

그는 내게 그 책을 어디 가서 사면 되냐고 물었고, 난 그냥 내가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는 고맙다면서 주소를 불렀고, 난 그 다음날 등기로 책을 보냈다.


"아주 공감이 많이 됩니다."

다음날 전화를 걸어온 그는, 내게 이런저런 건강상담을 했다.

"제가요, 당이 좀 있어요. 지난번에 검사한 결과를 보니까, 제 친구도 의사가 있는데요, 혈당이 200이 넘는다고, 안좋은 거라고 하네요. 다른 건 이상이 없다는데..."

난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설명을 해줬고, "6개월에 한번씩 건강검진만 받으시면 크게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해줬다. 그는 고맙다고 전화를 끊었다.


이런 일이 나흘째 계속되었다.

"선생님 말씀 들어보니까 아무 걱정할 게 없어지네요. 고맙습니다."

평균 소요시간은 대략 십분 가량, 솔직히 이제 좀 그만했으면 싶었다.

"선생님, 너무 고마워서 제가 이다음에 천안 갈 때 한번 들르겠습니다."

"아, 네 그러세요."

다시 따르릉.

"선생님, 제가 내년 3월쯤에 간다고 했는데요, 가족들이랑 상의해보니까 3월은 곤란하다는데요. 다시 날 잡아서 연락 드리겠습니다."


어제 아침에도 전화가 왔다.

"선생님 주소가 ㅌㅌㅌㅌ가 맞습니까?"

"네."

"제가 뭘 좀 보내드리고 싶어서요. 괜찮으시겠어요?'

"뭔데요?"

"아 뭐 큰 건 아니고, 조그만 거 하나 보내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곧 그 일에 대해 잊어버렸다.


연말정산 서류를 내러 교학과에 갔다가, 등기 한통을 받았다. 주소를 보니 그 사람이었다. 뭔가 하고 봤더니, 세상에 우편환으로 30만원이 들어있다. 갑자기 심난했다. 이게 웬 돈일까. 왜 이 사람은 내게 돈을 보낸 걸까. 돈에 대해 엄격하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돈을 그냥 받아 넣지는 않았을 터, 더군다나 결벽증 비슷한 게 있는 내가 이걸 그냥 받을 수는 없었다. 난 그에게 편지를 썼다.

[.... 왜 선생님께서 제게 돈을 보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전 선생님께 이 돈에 값하는 일을 한 적이 없고, 지금 전 잘 먹고 놀만큼의 돈을 학교에서 받고 있습니다...]


가장 그럴듯한 해석은 내가 그에게 친절하게 해준 게 고마워서 돈을 보냈다는 것. 하지만 과거의 어느날, 내가 현재 누리는 지위와 여기 오기까지 얻은 지식이 내가 잘나서 된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기에, 나같은 사람에게 의료상담을 하는 사람에겐 무조건 잘하기로 마음먹었었다. 그와의 통화는 그러니까 그 실천에 불과할 터, 오늘 오후 퇴근길에 우체국에 들러 그에게 우편환을 다시 보내야겠다. 우편환이라는 게 받는 사람 본인이 아니면 돈으로 바꿔주지 않는지라 처리하는 데 애를 좀 먹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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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5-12-21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 자랑질 페이퍼 릴레이 끝난지 언제인데....ㅎㅎㅎ

하늘바람 2005-12-21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생각안나는데 저 책이 영화로 나왔었죠? 제가 아주 좋아하는 영화예요 거기서 네로두의 시라는 시가 나왔는데 시가 내게로 왔다는 그 시에서 얻어진 제목이죠. 아 다시 보고 싶네요. 제목이 뭐더라^^

하늘바람 2005-12-21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변명 읽고 싶네요. 그것이 늘 언제나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을 복용했었는지라 ^^ 서점가면 찾아볼게요

세실 2005-12-21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능력 있으십니다~~~ 염장성 맞습니다. 부럽습니다.
저도 공부좀 열심히 할껄~~~~

엔리꼬 2005-12-21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그 영화는 '일 포스티노'입니다. 오전 11시 cbs 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시그널 음악이 그 영화의 ost입죠.. 마태님.. 30만원이면 정말 큰 돈인데, 그걸 드리는 것으로 봐서 엄청 고마우셨나봅니다.

chika 2005-12-21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우린 3만원도 엄청 큰 돈인지라 왕래가 드문데, 30만원이 왔다갔다 하는 현장을 보니 놀랍사옵니다. ;;
근데 정말 그분은 진료상담을 하셨다고 생각하는거 아닐까요? ^^;;

플라시보 2005-12-21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저는 뭐 꿀이나 인삼 그런 정겨운 물건을 생각했다가 두둥 30만원이라니 (바보. 제목이 우편환인거 볼때는 뭐했냐?) 돌려드리길 잘 한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30만원을 받을 이유는 없을것 같아요. 물론 그 분은 고마워서 그런것이겠지만요. 암튼 잘 하셨어요. 님^^

야클 2005-12-21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달사고 같습니다. 어떤 분이 제게 30만원 보내주신다고 해서 제 주소를 불러드린 다는게 제가 그만 '무의식중에' 마태님 주소를 불러드렸군요. 일단 그분께 우편환 보내시고 마태님은 제게 30만원 어치 곱창을 사시는 게 가장 합리적인 최선의 해결책으로 보입니다. 참, 황소곱창집에서 곱창 다 못먹고 남기면 키핑이 가능한 지 모르겠습니다. 어유 30만원이면 몇 인분이야 *..*;;

진주 2005-12-21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제가 상담해도 될만한 건수 있으면 제 연락처 알려 주셔도 돼요....

엔리꼬 2005-12-21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만나실 때 저도 불러주세요.. 억지로 3만원어치는 먹어드릴께요. 술 안먹고 3만원어치 먹을 수 있나 몰라

숨은아이 2005-12-21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이어지는 전화 끝까지 친절하게 받기 어려운데, 멋지셔요.

마태우스 2005-12-22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왜이러십니까 부끄럽게....
서림님/황소곱창은 술 없이도 5만원어치까지 먹을 수 있습니다.
진주님/아 네 그러겠습니다^^
야클님/황소곱창은 키핑 안되더군요. 글구 님, 너무 유머 수준이 높아만 지는군요. 격차 느낍니다.
플라시보님/아침에 미안하다고,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고 전화 왔습니다. 보석류 같은 소박한 거였으면 받았을텐데...^^
치카님/진료상담을 해도 그렇죠 기껏해야 3천원인데.... 게다가 전 돌팔이잖아요...^^
새벽별님/혼자 사신답니다. 많이 외로우시긴 할 것 같아요. 그래서 고마움을 그런 식으로라도 표현하고 싶었을 거예요.
서림님/알 포스티노...서림님 멋지십니다. 척하면 척이시군요. 영화 말고 책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세실님/그, 그리 말씀하시면 제가 넘 부끄럽죠...
하늘바람님/알라딘 분들은 제가 다 보내드리는데..주소만 말하세요.
파비아나님/자랑질 페퍼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파비님이시죠. 친구가 좋아해서 고민이라는 님께 '나랑 사귀자"고 했다는 대목,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모1 2005-12-22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인복이 있으십니다. 부럽습니다. 후후..
 
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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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비숍님의 서재에서 이런 펌글을 봤다.

“알랭 드 보통의 시대가 온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아멜리 노통브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사랑받는 외국작가 3인방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 셋이 모두 퇴조하면서 보통이 무섭게 뜨고 있다는 거다. 정말 그렇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난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국내는 서민 씨, 국외는 베르베르를 꼽았었다. 하지만 <뇌>를 읽으면서부터 베르베르와 멀어지기 시작했고, 노통브와는 올해 완전히 갈라섰다. 베르베르와 갈라선 이유는 소재의 진부함이었고, 노통브와 그리 된 이유는 특유의 대화체에 완전히 질려버린 탓이다. 그 공백을 폴 오스터나 존 그리샴같은 작가들이 차지하려 하지만 재미와 교양에 대한 내 갈망을 충족시켜 주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그러던 차,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보통이란 자가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버린 것.


처음으로 읽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란 책은 그의 진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여자와 사랑하다 헤어진다는 단순명쾌한 줄거리에 복잡다단한 심리묘사를 덧붙여 아름다운 장편소설로 만들었는데, 그 책에 충격을 받은 나는 닥치는 대로 그의 책을 사들이고 있다. <불안>은 <프루스트에게 물어보세요>에 이어 내가 읽은 보통의 세 번째 책이다. ‘불안’이란 주제로 얼마나 길게 얘기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책을 읽기 시작하자 금세 사라졌고, 읽고 난 뒤 한 사흘 정도는 뿌듯함에 사로잡혀 식사량을 늘렸던 것 같다. ‘보통’은 우리가 불안해하는 이유를 적나라하게 해석해 주는데,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이 직장에서 잘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내게 어떤 길을 제시해 주지는 못하고,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해법들을 읽는다고 해서 그 불안감이 없어지진 않는다 (하긴, 그 해법은 이미 알고 있다. 논문을 써라! 그것도 많이!). 하지만 고대와 현대, 그리고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저자의 방대한 지식을 접하면서 나 스스로가 유식한 사람이 되는 듯한 착각에 빠지고,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즉 보통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고픈 유혹을 느끼게 된다. 대개 세편쯤 읽고나면 식상할 만도 하건만, ‘보통’은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새로움을 던져준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우리가 늘 접하면서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기에 더더욱 감탄스럽다.


저자인 ‘보통’은 69년생, 나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어리다. 변진섭이 ‘홀로된다는 것’을 부를 때 “내 동년배가 노래를 부르네?”라며 신기해하다가 서태지가 나왔을 때 “나보다 어린 사람한테 오빠라고 하긴 좀 그러네.”라고 하다가, ‘언타이틀’이 ‘날개’라는 노래를 불렀을 때는 “야, 내가 어떻게 고교생이 부르는 노래를 좋아하고 있냐.”고 했던 기억이 난다. 곧 적응을 해 양파나 영턱스 노래를 열심히 따라불렀지만, 이제 노래 뿐 아니라 책에서도 나보다 젊은 작가들이 주류를 이루게 된 것 같다. 삼십대가 열흘밖에 안남은 지금, 그게 조금 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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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5-12-21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마태우스님의 나이공개

paviana 2005-12-21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불안하시면 논문을 아주 많이 쓰시며 됩니다..ㅎㅎ 참 아주 훌륭한 이란 말이 빠졌네요.

줄리 2005-12-21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나이로 쓰세요. 그럼 여전히 30대시잖아요^^ 원래 유명인들은 만나이 쓰지 않나요?

chika 2005-12-21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전 음반가게 가서 '슈퍼 주니어'가 유명해요? 라고 물었다가 요즘 최고로 뜨는 그룹 중 하나라는 얘길 듣고 좌절했어요. 아이들과 너무 거리가 먼 세대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걸 절감해서..ㅠ.ㅠ

어째 댓글이 리뷰 '불안'에 대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불안'에 대한 것으로 흐르는거 같슴다. ;;;;

플라시보 2005-12-21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이 책도 슬며시 읽고싶어 지네요. 보통의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는 꽤 길게 읽었던것 같습니다. 재미는 있었는데 왜 그렇게 오래 걸리던지... ^^

하늘바람 2005-12-21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의 시대 음 얼른 사랑이야기부터 읽어봐야겠어요

마태우스 2005-12-21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재미없으면 어쩌죠..... 다른 분이 읽으신다면 겁부터 나요..
플라시보님/보통 책은 다 오래걸려요. 내공이 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치카님/오오 정말 훌륭한 리뷰 분석입니다. 불안에 대한 게 아니라 불안으로 흐르는....와와... 10점!
줄리님/전 만나이 안씁니다. 당당하게 중년에 맞서겠습니다
파비아나님/아닙니다. 훌륭한 논문보다 조금 덜 훌륭한 논문을 많이 쓰는 게 좋습니다..
하늘바람님/어머 모르셨단 말이어요???

울보 2005-12-21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언젠가는 꼭 읽겠습니다,

드팀전 2005-12-21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베르,노통,하루키에 이어 알랭 드 보통의 시대라...
그러고 보니 전 보통의 책을 한권도 안읽었는데...앞의 3명도 제가 별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안 봐도 그만인가 ㅎㅎㅎㅎ

아영엄마 2005-12-21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오래 붙잡고 있었던 기억이 남아 보통의 책은 우선순위에서 좀 밀릴 것 같아요. 전 역시 서민님 같은 작가분이 좋아요. ^^

마태우스 2005-12-22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어 저도 그 작가 좋아하는데... 깊이는 없지만 만나보면 생각도 없이 사는 듯하더라구요^^
드팀전님/보통은 보통을 모르지요^^ 노통과 베르베르도 안읽어도 상관없는 작가...하지만 하루키는 한번쯤 읽으시는 게 작업에 유리합니다. 앗 님은 유부남이시죠...
울보님/이름에 '보'가 들어가면 보통을 읽어야 한다는 설이 있어요

체리마루 2005-12-22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퍼가요 ㅋㅋㅋ; 흠; 모르는 작가들이 난무 (?) ㅎㅎ; 책 열심히 읽어봐야겠어요 ㅋㅋ

모1 2005-12-22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셋다 관심없는 작가네요. 아니 보통이란 사람까지요. 베르나르 베르베르..개미 한창 뜰때..읽어볼까? 하다가 말았고..가운데는 모르겠고..하루키는 뭔가 읽은듯은 한데 뭔지 인상깊지도 않고...하하...결국 앞으로도 친하지 않을 사람들일듯..

드팀전 2005-12-23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통과 베르베르도 한두권씩은 봤는데 ..왜 열광하는지...?
하루키는 지금도 가끔씩 봅니다.일단 빨리 읽히니까 ㅎㅎ 예전에 몇몇 여인이 절 보고 하루키와 정서가 비슷하다는 둥(외모는 아님.아마 여러장르의 음악을 좋아하고...약간 허무 냉소적인 태도때문) 하루키의 주인공과 비슷하다는 둥 그런 이야길 했더랬죠.하루키 주인공들이 겪는 희안한 일들이 별로 낯설지 않아서 그랫나.하여간 이미 오래전일....볼에 살도 붙고 뱃살도 나오고..켁켁...그때가 그립다.아우..

나막신 2006-01-06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읽으면서 정말 보통이 좋아졌어요. 그의 인문학적 지식의 풍부함을 느끼면서 보통같은 사람이라면 만나지 않고도 사랑에 빠질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minfact 2006-01-28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하루키와 베르베르,폴 오스터에 보통이 더해지겠네요. 머지않아 보통의 책 모두를 갖게될 것 같아요. 노통은 이제 안녕해야겠구요. 가능하다면 보통의 영어판도 보고싶네요..

마태우스 2006-03-20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팩트님/답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여, 영어판이라니, 존경스럽습니다.
나막신님/저도 그 책 읽고 보통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
드팀전님/뱃살이 나와봤자 저만큼 나왔겠어요 제가 십년 전에는 정말 날씬했는데..
모1님/그 둘과 보통은 다르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모1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요. 어쩌면 한두권 더 읽으면 식상할지도 모르겠어요^^
새콤한귤님/아앗 허섭한 제 리뷰를 퍼가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하리하라의 과학블로그 - 현대과학의 양면성, 그 뜨거운 10가지 이슈 살림 블로그 시리즈 4
이은희 지음, 류기정 그림 / 살림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은 자기 소신 없이 사는 사람을 비웃는 말이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어느 정도 그런 경향이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많은 사람들이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다닌다면 나도 왠지 그걸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알라딘에 갑자기 ‘하리하라의 과학블로그’ 서평이 무더기로 올라오던 시절, 난 그 책이 알라디너의 필독서라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주문했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서 전문지식을 풀어나가는 책들이 많아지는 건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 책은 낮춰도 너무 낮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끔 했다. 균을 키우다 실수로 자란 곰팡이 때문에 페니실린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비롯, 뻔히 다 아는 걸 예로 들면서 “신기하지 않냐?”고 묻는 대목이 나올 때마다 책 뒤에 붙은 가격표를 들여다봐야 했고, 두시간여만에 책장을 덮고 나서는 허탈감에 빠지기도 했다. “당연하게만 여겼던 일상들을 비뚤게 바라보면 달리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의지는 어디로 간 걸까? 물론 저자의 문체는 친절하기 짝이 없고, 비문 하나 없이 매끄러운 문장도 칭찬받을 점이지만, 아파트를 살 목적이 아니라면 친구를 따라 강남에 가는 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니란 생각을 했다. 과학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는 좋을 수도 있겠지만, 항생제나 시험관아기, 장기이식 같이 내 학부 때 전공과 비슷한 주제를 다룬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아마 이 책을 사지 않았을 터, 책을 사기 전에는 꼭 목차를 한번 훑어볼 일이다. 이 책을 통해 건진 것은 책의 제목이 내가 알았던 것처럼 ‘하라하라’가 아니라 ‘하리하라’라는 것, 그리고 그 뜻이 창조의 신과 파괴의 신의 결합형이라는 걸 알게 된 점이다. 한가지 더 말하자면, 미모와 전문지식, 그리고 글쓰기 능력을 갖춘 분의 존재를 알았다는 것도 이 책을 읽은 소득이라 할 만하다.


책을 읽던 중 79페이지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복제양 둘리를 만든 사람과 함께 파안대소하고 있는 황우석 박사, 책이 출간된 10월만 해도 그는 이 나라를 구원해 줄 메시아였다. 그로부터 석달이 지난 지금, 그는 희대의 사기꾼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현대과학의 뜨거운 이슈’로 이 책에 소개된 10가지 주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학계는 정직만이 통하는 곳이라는 게 아닐까. 아직도 난, 마음이 참담하다. 


사족:

1. 저자는 147쪽에서 당뇨병의 발생원인을 “에너지원의 지나친 섭취로 포도당이 많이 존재하게 되면”이라고 했는데, 다시 말하면 단걸 많이 먹어서 당뇨에 걸린다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내가 알기에 당뇨병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고, 1형 당뇨의 경우 자가항체가 췌장을 공격해서, 2형은 비만으로 인해 인슐린에 저항성이 생겨서, 라고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2. 161쪽, “그간의 물가인상률을 반영한 현재 노벨상 수상자의 상금은 12만달러(1억3천만원) 정도”

올해 수상자들은 천만 스웨덴 크로네, 우리돈으로 13억원을 받았으며, 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와 비슷한 액수를 수령했다.


3. 175쪽, “프랑스의 문호 샤르트르는 사진이 라이벌인 카뮈보다 늦게 선정된 것에 대해 항의하는 표시로 노벨상을 거부해 괴짜라는 소리를 들었지요.”

호사가들에 의해 이런 소문이 나돌기는 했지만, 그건 참여지식인의 대명사 샤르트르를 모독하는 말이다. 나 역시 정확한 거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알제리 독립전쟁에 미온적인 카뮈에 대해 반감을 표시하기 위해, 혹은 노벨문학상이 서구작가들에게 치우쳐 공정성을 잃었다고 주장하며 거부했다는 설도 있다. 샤르트르가 자신을 노벨상 수상자로 만들어준 <구토>에 대해 이렇게 말한 것도 거부 이유가 될 만한다.

“죽어가는 어린아이 앞에서 『구토』는 아무런 힘도 없다”

어느 설이 맞는지는 몰라도 샤르트르라는 인물을 안다면 “카뮈보다 늦어서”란 말은 하지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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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1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owup 2005-12-2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알라딘에서 엄청 깨지는군요.

하이드 2005-12-21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제양 둘리에요?

하늘바람 2005-12-21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저는 쉽게 설명해 주어서 좋았는데요 다른 책들은 너무 어려웠거든요

stella.K 2005-12-21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태님이 진짜 강남에 오신 줄 알았어요. ㅋㅋ.

줄리 2005-12-21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모와 전문지식, 그리고 글쓰기 능력을 갖춘 분을 알게 되신걸루 만족하시면 되겠네요. 미모로우신 분들에게 많은걸 바라시면 안되신다고 어디선가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플라시보 2005-12-21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전 복제양 이름이 돌리로 아는데...^^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는 꽤나 재밌게 읽었는데 이 책은 별로인가봐요? 흐..

다락방 2005-12-21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정말 마태님이 강남에 오셨다는 줄 알고 마중나가려고 했는데 말이죠. 하하 :)

마태우스 2005-12-21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헉 님이 마중나가신다면 언제라도 강남에 갈 용의가 있습니다. 왠지 님이 졸리처럼 생각되요...^^
플라시보님/아따 돌리나 둘리나 그게 그거죠^^ 이전 책은 재미있었나보죠??
줄리님/으음, 예리하신 줄리님. 미모와 예리함을 모두 갖춘....
스텔라님/강남 저 자주 갑니다. 어제도 갔는걸요
하늘바람님/아니 뭐...이건 순전 저한테 그랬단 거예요. 그냥 제 전공과 관계있는 게 많이 나와서요..죄송합니다.
하이드님/리뷰의 수많은 주옥같은 글들 중 하필 둘리에만 촛점을 맞추는 이유는 무엇이지요. 바르게 사셔야죠 이젠.
나무님/저 말고도 새벽별님이 사자후를 토해놓으셨더군요...제 리뷰로 인해 그 미녀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님/사실 저도 과학은 잘 모르거든요. 근데 이건 과학보다 의학 쪽에 가까운 게 많아서 좀 그랬어요.

하루(春) 2005-12-21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님 수준과 언뜻 비교해도 님이 더 높잖아요. 이 책의 대상은 중고생 아닌가요? 몇 분이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요.

플라시보 2005-12-21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제가 생물학에 대해 전혀 아는게 없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시간에 매우 좋아라 하며 수업들은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는 꽤나 재미있었습니다. 이 책은 영 아니라니 실망스럽네요. (그리구요. 돌리랑 둘리는 달라요. 왜냐. 둘리는 아기 공룡이거든요. 감히 양 따위와는 비교되지 않는다구요. 거기다 1억년전 옛날을 또 얼마나 그리워한다구요..낄낄)

마태우스 2005-12-22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아 저는 계속 둘리라고 알고 있었답니다. 한번 그렇게 머리에 박히면 교정이 잘 안되더라구요. 이분의 첫 작품은 재미있었나보죠? 그렇군요...
하루님/제가 본 리뷰엔 그런 말이 없었단 말이어요 엉엉. 중고생용이라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모1 2005-12-22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적이 없어서....앞으로도 볼 생각이 없기도...그런데 당뇨병 원인 안 밝혀진 것이랑 노벨상 상금이 100만달러쯤한다는 것은 저도알고 있는데 저자가 틀려서 놀랍군요.
 

 

 

 

 

 

프란체스카 작가가 시네 21에 개 얘기를 썼다(제목은 ‘나는 개를 좋아한다.’). 내용은 이렇다. 고교 시절 작가의 집에서 콜리라는 개를 키우게 되었는데 이름이 벤이었다.

[지 배설물을 맛나게 먹다 나만 보면 ‘형~’ 하고 바보처럼 웃던 변견들만 키우다가...거만해 보이기까지 한 콜리종을 보니 ‘역시 외제가..’ 하는 맘이 들더라.]


이렇게 벤과 잘 지내다 집안 형편 때문에 벤을 더 이상 키울 수 없게 되었는데, 벤을 다른 데 팔고나서 6개월이 있다가 ‘간디처럼 말라’ 있는 벤이 자기 집으로 들어왔다. 벤은 다른 집에 팔려간지 이틀만에 도망을 쳤고, 100킬로가 넘는 그곳에서 도망쳐 온 것이다.

[애견센터 사장이 다시 벤을 데리러 왔다. 처음 팔려가던 날 벤에게 이빨이 있었음을 처음 알았을 정도로 벤은 사납게 짖고 반항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의 반항도 없이 차에 올랐다. 하지만 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를 보며...]


개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류의 글을 보면 가슴이 찢어진다. 도대체 어떻게 100킬로가 넘는 먼 거리를 헤매가면서 집을 찾았을까. 그 6개월간 그가 치러야 했던 고생은 어느 정도였을까. 겨우 찾은 주인과 헤어져 팔려가는 신세가 된 심정은 과연 어떨까. 삼보 컴퓨터 광고모델을 했던 개-스토리만 똑같고 개는 다른 개였지만-에서 보듯, 이런 일은 가끔씩 보도되는 일이다. 산책을 했어도 집 주위가 고작이었을텐데 먼 길을 찾아오는 걸 보면 정말 개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모든 개가 그런 능력이 있는 건 아니다. 우리 집에서 오냐오냐 키웠던 벤지, 녀석이 고양이를 쫓아가느라 딱 한번 내 시야에서 벗어난 적이 있다. 슬리퍼를 신고 있어서 벤지를 놓칠 수밖에 없었는데, 한참을 헤매다 찾지 못해 잃어버렸나보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다행히 벤지는 아버님에 의해, 집과 전혀 관계없는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하여간 난 녀석이 다른 영험함은 있을지언정 집을 찾는 능력은 떨어진다는 걸 알았다. 그 뒤부터 벤지와 나갈 때 슬리퍼를 신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벤’이라는 이름 때문에 생각이 나는데, 나도 중학교 때 벤이라는 개를 기른 적이 있다. 하얀 색의 새색씨처럼 생긴 진돗개였는데, 어찌나 순한지 짖을 줄도 몰랐다.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면 얌전히 머리를 내밀던 벤은 어느날 집 밖으로 나가자마자 산책을 하던 앞집 치아와를 물어죽이고 만다. 그 얘기를 듣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 맑은 눈망울에 그런 흉포함이 숨겨져 있었다니. 앞집에다 돈을 물어주고 나서 아버님은 미련 없이 벤을 다른 곳에 팔아버렸고, 그때까지도 놀람이 가시지 않았던 난 벤을 파는 것에 대해 아무런 반대도 하지 못했다.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면 이렇다. 그때 우리 집에는 치아와가 한 마리 있었는데, 녀석은 날 가장 좋아했다. 우리 누나가 치아와한테 ‘올케’라고 부를 정도로. 치아와는 집안에서 공주처럼 지냈고, 벤은 밖에서 추위에 떨며 머슴처럼 지내야 했다. 그래서 벤이 세상의 모든 치아와를 미워하게 되었던 건 아닐까? 이유야 어찌되었든, 벤이 어딜 갔든지 우리집에 있는 것만 못했을 터, 그때 반대하지 않았던 게 지금은 미안하다 (호랑이같은 아버님을 생각하면, 반대를 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테지만).


개에 얽힌 에피소드는 언제나 짠하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소외를 개가 대신해줄 수는 없겠지만, 개가 없었다면 이 세상은 훨씬 삭막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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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2-20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녀석은 날 가장 좋아했다. 우리 누나가 치아와한테
‘올케’라고 부를 정도로.

무지 짠한 얘긴데 마태우스님은 이렇게 사람을 울리고 웃기고
하신다니까요.^^

플라시보 2005-12-20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개에 관한 이야기들은 언제나 짠해요. 왜냐면 그 애들이 뭔가를 바래서 혹은 목적이 있어서 그러는게 아니라 그냥 100% 좋아서 그러는 거니까요. 사람들은 그러기 힘들잖아요. 순수하게 100% 좋아서 뭔가를 행동하는 것. 이걸 보니 저도 레비가 생각나요. 으... 우리집 개 레비. 짜식이 비오면 되게 떨었었는데...보고싶어요.

검둥개 2005-12-20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개들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분명 지금보다두 훨씬 삭막할 거라는 데 백 퍼센트 동의한답니다. ^^

가시장미 2005-12-20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참에 형도 말이 아닌 개로 이미지를 바꾸지그래? 검둥개님 이미지랑 쌍을 이루게 될 것 같은데? 하얗고 멋진 개 이미지 없수? ^-^;; 근데, 벤이라는 강아지와 벤지라는 강아지가 다른거야? 헤깔려~~ ㅋㅋ 나도 털이 포근한 강아지 갖고 싶은데~~ 산타할아버지가 선물로 안주시나? =_=

2005-12-20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nda78 2005-12-20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개가 없었으면 얼마나 이 세상이 삭막했을지..
개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짠해요... 개가 우는 걸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쓰라려요. 나의 개 이야기라는 일본 영화 보면서도 어찌나 가슴이 먹먹하던지요.

마태우스 2005-12-21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님도 저처럼 개를 좋아하시는군요. 개 생각만 하면 언제나 짠하지요...
속삭이신 분/파트너는 판다님 어떤가요? 전 원래 제가 식사 대접하려고 그런 제안을 한 거예요. 님 실력이 만만치는 않을거예요. 전 사실 친지 얼마 안되었어요.
가시장미님/이미지를 자주 바꾸면 다른 분들이 헷갈리잖아!! 이 이미지 고수할거야. 파란여우님이 주신 거거든...^^
검둥개님/아아 님도 해리라는 멋진 자식이 있으시지요^^
플라시보님/레비라 하면 레비스트로스에서 따온 겁니까. 님은 필경 그랬을 것 같다는...
무비님/저희 누나가 유머감각이 약간 있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