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프랑스를 간다면 다들 부러워한다. 근데 난 아니다. 이상하게도 난, 외국에 가고 싶었던 적이 한번도 없다. 그게 나도 이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난 이런 말을 하고 다녔다.
“난 말야, 나이 마흔이 되면 ABC 여행을 할거야. 마흔살에는 A로 시작되는 나라를 다 가는거야.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호주... 그 다음 해에는 브라질을 가고....Q나 X같은 알파벳도 있으니 60쯤 되면 모든 나라를 다 가게 되는 거지.”
매우 그럴듯해 보이던 이 계획은 마흔이 가까워짐에 따라 점점 마음에서 멀어졌다. 모아놓은 돈이 없는 것은 그렇다 쳐도, 지금 난 논문을 열심히 써야 할 처지라는 점, 같이 갈 사람이 없다는 점이-사실은 맨 앞의 이유가 진짜지만-발목을 잡는다. 포도가 시다고 한 여우처럼 난 내 계획을 점차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게 말이나 되냐. 아르헨티나 갔으면 브라질도 갔다 와야지 왜 거기서 호주를 가?”
하지만 갑자기, 스페인에 가게 되었다. 전화통화만 할 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미녀분이 혼자 가기 무섭다고 마드리드에 가잔다(내가 그녀의 미모를 안 건 사진을 봤기 때문이다). 여행목적? 그녀의 육성을 그대로 옮겨본다.
“거기가 술이 싸대요. 원없이 마실 수 있잖아요?”
비행기삯을 생각하면 별반 그럴 것 같지도 않지만, 미녀의 요청을 거절하는 게, 그래서 그녀 혼자 여행을 가게 하는 게 도무지 말이 안된다. 엄마한테 이 소식을 전했다.
“엄마, 나 어떤 여자와 스페인 가게 되었어.”
우리 어머님, 친구분과 전화 몇통을 걸더니 갑자기 집을 나간다. 나중에 어디 다녀 오셨냐고 물으니 면세점에 가서 살 것들을 찍고 오셨단다. 여행 날짜는 2월 초인데, 정말 빠르기도 하다.
술을 먹으러 가는 여행이지만 매일 그럴 수는 없는 법, 레알마드리드 축구경기는 너무 비싸니, 슈도 마드리드 팀의 경기를 볼까? 그나저나 스페인을 맨 처음으로 가면 ABC 계획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S로 시작했으니 STUDENT 여행이나 해볼까. 즉 스페인-터키-우루과이-영국-노르웨이-ㅌ? ㅌ? 아, 한국과 같은조에 편성된 토고가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