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귀국하던 날, 집에 온 시각은 오전 열시 가량이었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하자마자 난 깊은 잠에 빠졌다. 잠에서 깨보니 저녁 7시가 거의 다 되어 있었다.

“일어났냐?”

할머니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주말엔 손자랑 얘기도 하고 그러는 게 낙이었는데, 내가 없는 동안 얼마나 심심하셨을까(그래도 전화는 자주 해드렸다). 게다가 돌아오자마자 잠만 자고.

“배 안고프냐?”

“별로 생각이 없는데. 할머닌 배고프세요?”

할머니는 무척 배가 고픈 것처럼 보였다.

“점심을 안먹었더니 배가 좀 고프네. 엄마는 언제 오신다냐? 전화 한번 해봐라,”

 

사진설명: 모사드 요원이 자기 아이를 보면서 왜 자기를 안닮았냐고 투덜거리고 있다.

저녁때마다 할머니는 엄마가 집에 빨리 오셔서 식사를 챙겨주길 기다린다. 정 배가 고프면 혼자 차려 드시기도 하지만, 반찬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니 김치 하나에다 드신다고 한다. 반찬 문제가 아니더라도 혼자 먹는 식사는 맛이 없어서 더더욱 엄마를 기다리는 것 같다. 하기사 TV 보는 것도 취미가 없으신 할머니가 집에서 혼자 얼마나 외로우시겠는가. 하지만 엄마도 엄마 인생이 있고, 힘들기만 했던 엄마의 지난날은 엄마가 삶을 더 재미있게 사셔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엄마는 벌써 67세, 난 할머니한테 이렇게 말했다.

“엄마 곧 오시겠지 뭐. 그때까지 저랑 TV 봐요.”

난 스페인에서 사온 과자를 할머니께 드렸고, 케이블에서 틀어준 <벤허>를 할머니와 봤다. 뭐가 어떻고 어떻다고 열심히 설명을 해가면서. 하지만 어머니는 8시가 다 되도록 오시지 않았다. 그제서야 후회가 됐다. 진작 밥 먹으러 갈 걸. 난 할머니와 함께 가장 맛있는 설렁탕을 만드는 모레네 설렁탕으로 갔고, 할머니는 맛있게 식사를 하셨다. 그리고 나서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엄마, 나 할머니랑 식사 했거든. 천천히 오세요.”

사진설명: 오른쪽 남자가 왼쪽 남자에게 바지를 올려입었다고 핀잔을 주고 있다.

토요일인 오늘, 전날 새벽에 잔 탓에 늦게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여전히 피곤했다. 할머니 어깨를 형식적으로 주물러 드리고 나서 난 다시금 방에 들어가 잠을 자버렸다. 다시 깬 시각은 오후 세시, 난 농구를 보면서 러닝머신을 했다. 할머니가 묻는다.

“배 안고프냐? 점심도 안먹고.”

“전 생각 없어요.”

8킬로를 달렸다. 샤워를 하고 나서 할머니한테 말씀드렸다.

“할머니, 저 약속 있어서 나가야 하거든요. 죄송해요.”

“오냐, 잘 다녀 와라.”

그때가 다섯시 가량이었다.


나가면서 엄마가 늦게 오시면 할머니가 어떻게 저녁을 드실까 계속 걱정이 되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섯차례 쯤 전화를 걸었지만, 수신율이 20%에 못미치는 어머님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미녀를 만나서도 그것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영화 <뮌헨>의 예매를 했다. 상영시각은 7시 반, 시간 여유가 약간 있다. 용기를 내서 미녀에게 말했다.

“저 혹시 할머니랑 같이 저녁 먹으면 안되겠니?”

무척이나 부담이 되는 자리임에도 미녀는 흔쾌히 수락해줬다. 정말 고마웠다. 할머니한테 같이 저녁 먹자고 전화를 건 뒤 택시를 탔다.

“할머니, 친구랑 같이 왔어요.”

“아이고, 어서 오세요.”

볶음밥과 우동 등을 시켰고, 식사 후엔 커피도 타서 먹었다 (난 쿠퍼스). 우동을 아주 조금만 드셨지만, 그 한 시간 동안 할머니가 얼마나 즐거워하셨는지 모른다. 7시를 조금 지나 서둘러 극장에 갔고, 그때부터 <뮌헨>을 보았다. 2시간 반의 상영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영화는 재미있었다. 만약에 내가 미녀와 둘이서 저녁을 먹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난, 할머니 생각에 영화에 집중을 못했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뮌헨은 그저그런 영화로 내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을까. 흔쾌히 수락해준 미녀 분께 감사드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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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02-19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봤는데, 감상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요. 근데 영화 얘기는 하나도 없군요. 2탄을 클릭할 수밖에 없는...

마태우스 2006-02-19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윽... 2탄을 봐도 별게 없는데...^^
새벽별님/반가워요 별님. 전 늘 별님 편이어요

마늘빵 2006-02-19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마태님 주변엔 어쩜 그렇게 얼굴도 마음도 이쁜 사람들만 있는거에요?

모1 2006-02-19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착한 미녀님이시네요. 할머님이 외롭긴..하시겠어요.

로드무비 2006-02-19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과 그 미녀님이 결혼하시면 얼마나 좋을까!=3=3

산사춘 2006-02-19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무비님. 두 분의 착함이 딱입니다요. =3=3 (따라 돔앙가기)

다락방 2006-02-19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마태우스님, 정말 근사한 분이시군요!
저도 뮌헨 굉장히 재미있게 봤는데 말이죠, 이 페이퍼를 보니 뮌헨보다 마태우스님이 더욱 근사해요. :)

실비 2006-02-19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정말 웬지 좋은분같네요.

마태우스 2006-02-19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비님/제가 좋은 사람 같다는 거지요?????^^
다락방님/아니어요 설마 다락방님만 하겠어요^^
산사춘님/어머 춘님 절 버리고 어딜 도망가시려구....
무비님/겨, 결혼.... 으음..............
모1님/제가 더 착해요! 오늘도 할머니 모시고 즐겁게 놀아드렸어요. 북악스카웨이도 가구...맛있는 짜장도 대접하구..^^
아프락사스님/그중 하나가 바로 아프님 아니겠습니까.
 
어느 의사의 고백 - 현대의료체계에 대한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고백록
알프레드 토버 지음, 김숙진 옮김 / 지호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한 과목 전체를 의료 문제에 대한 학생들간의 토론으로 채운 적이 있다. 책도 읽고 선배에게 물어도 보는 등 그 주제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오기를 바랐었지만, 학생들은 그저 인터넷에서 뽑아온 자료를 읽기에 바빴다. 내가 바라던 ‘토론’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학기를 그렇게 보내니 많이 허전했다.


올해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그렇게 토론하면 안돼!”라고 말한 뒤 잘 하기를 기대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난 방식을 달리 해보기로 했다. 작년에 내가 모방했던 게 100분 토론이었다면, 올해는 KBS의 <책을 말한다>를 모방하기로 한 것. 책의 내용을 발표하게 한 후 조원들로 하여금 그 책에 대한 느낌을 말하게 하는 게 내 야심찬 계획이다. 토론이 잘 안된다 해도 한학기 동안 책을 한권씩 읽는 것만으로도 최소한의 효과는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책이 좋은지 나도 잘 모르겠어서 의료에 관한 책을 몇권 샀고, 지금 열심히 읽고 있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만난 게 바로 <어느 의사의 고백>, 의학과 철학을 모두 전공한 토버라는 저자가 쓴 이 책은 의외로 보석같은 책이었다. 저자는 자신이 의사 시절 겪은 체험들을 바탕으로 논지를 전개하는데, 저자의 유려한 문체는 쉽게 내 공감을 이끌어 냈다. 아픈 소녀의 병상 곁에 앉아 고민하고 있는 의사의 모습을 그린 루크 필데스의 그림처럼 과거의 의사는 환자를 한 인간으로 보고 치료에 임했지만, 현대 의학은 경제 논리와 과학 우선주의에 매몰된 나머지 질병 중심주의에 빠져 환자를 인간으로 보는 관점이 부족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

“의사의 가장 핵심적인 자질 중 하나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다...의사들은 과학적 중재자 이상이 되어야 한다.”


저자가 들려주는 일화 중 내가 가장 감동받은 대목 하나. 일주일 전에 만난 환자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과 쾌활한 걸음걸이는 남자들은 물론 여자들의 시선도 끌만 했다....

여자: 안녕하세요? 저를 기억하시죠.

남자: 물론이죠.

여자: 저..혹시 커피 한잔 안하실래요? 저희 집이 이 근처인데.

남자: 안되는데...의대생들은 바빠요.

여자: 그러지 마시고 같이 가요. 제가 멋진 시간을 만들어 드릴게요. 전 당신이 좋아요.

그녀는 그녀와 함께 할 모든 매력적인 기회를 약속하며 눈앞에 서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

“우리는 헤어졌고, 나는 뒤돌아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저자는 말한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녀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다고. 그가 수석졸업을 하고 이렇게 훌륭한 의사가 된 것은 바로 그런 엄청난 인내심에 있을 것 같다.(내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이렇게 훌륭한 책의 판매가 부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엔, ‘어느 의사의 고백’이란 제목이 너무 평범한 것도 이유가 될 듯하다. 요즘 얼마나 고백이 난무하는지, 고백이란 말을 들어도 아무도 관심이 없지 않는가. 알라딘서 ‘고백’으로 검색을 해보니 ‘사도세자의 고백’을 비롯해 무려 218권이 뜬다. 그러니 그런 제목보다는 ‘의사여, 인간이 되라!’라든지 ‘과학아 비켜라, 윤리가 간다!’같은 제목이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고 학생들이 어떤 느낌을 말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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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8 0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06-02-18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의사들은 정말 의사일가 싶어요. 왜 여자들은 부끄러워서 내과도 가기를 꺼리는데 의사인데 뭐 하거든요.^^ 정말 사심없을까? 그러나 마태님의 저 환자와의 만남이야기는 사심이 엿보이네요^^

Mephistopheles 2006-02-18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강생으로 구석에 숨어 앉아 토론 구경하고 싶네요..^^

2006-02-18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우맘 2006-02-18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요즘은 전공 관련 서적에 올인하고 계시는 겁니까? ^^

생각하는 너부리 2006-02-18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미있는 수업이 될 거 같아요. 대학에서 그런 재미있는 수업을 들을 수 있다니 그 과 학생들 정말 행운이네요. 그런 수업을 통해 모두 인간적인 의사선생님이 되면 좋겠어요. 근데, 정말 제목 잘 지으세요. 그 길로도 나서 보세요.

마태우스 2006-02-19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부리님/학생들이 행운이 아니라, 제가 행운이지요. 하고 싶었던 수업방식대로 해볼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게요. 제목 잘 지었단 말이죠 호호. 인정해주시니 감사^^
진우맘님/올인까진 아니지만 평소보단 더 읽는 편이지요. 완전히 돌아오신 것 같네요^^
속삭이신 분/감사드립니다. 언제 꼭 곱창 먹어요!
메피님/사실은요 저도 애들이 어떻게 할까 기대가 커요.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도 크다던데.... 나이든 학생 있으면 메피님인 줄 알께요^^
하늘바람님/제가 원래 사심 없는 사람으로 유명하잖습니까. 믿어 주십시오 하늘바람님. 다른 의사들이 사심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얘기를 거의 안하는 것으로 보아...
속삭이신 분/이렇게 지어야 한다고 해놓고 제가 사실 제목을 잘 붙인 건 아니죠^^ 아무튼 제 글에서 영감을 얻는다니 감사드려요.

Mephistopheles 2006-02-20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구석에 숨어도 소용이 없겠군요..못보던 덩어리 하나가 구석에 쪼그리고 눈만 부라리고 있음 저인 줄 아세요..^^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 - 다윈 의학의 새로운 세계
랜덜프 네스.조지 윌리엄즈 지음, 최재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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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리뷰 50개 중 별 다섯을 준 책을 세어보니까 무려 22권이나 된다. 44%가 별 다섯이라면 내 별점은 좀 후한 편인 것 같지만, 그게 다 양서만을 읽어서 그런 거라고 스스로를 변명해 본다. 네스와 윌리엄즈가 쓴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라는 책은 별 다섯 개를 주는 게 미안할만큼 재미있는 책이다. 물론 책이 내 전공 분야와 연관된 거라 더욱 재미있었을 테지만, 안그런 분이 읽는다고 해도 충분히 재미있을 것 같다.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왜 자연선택에 의해 제거되지 않았는가를 밝히는 게 이 책의 주제인데, 전달하는 정보의 양이 워낙 방대하고 하나하나가 다 흥미로워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다. 저자는 말한다. 감기에 걸렸을 때 열이 나는 건, 감염에 맞서 싸우려고 자연선택에 의해 특이적으로 형성된 하나의 적응이라고. 그러니 열을 인위적으로 내리는 일은 감염을 연장시켜 “사람들을 더 아프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해열제를 쓰지 말라고 권하는 것은 아니다. 열을 내려서 얻는 이득과 손해를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신중한 의견을 제시하는데, 마지막 장까지 발휘되는 신중함은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다. 진화라는 것이 최상의 목표를 향해 부단히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는 저자의 주장은 내게 깨달음을 주었고, 알러지가 우리 몸에 존재하는 이유 역시 무릎을 치게 만들만큼 흥미로운 것이었다. 남태평양 섬의 원주민을 대상으로 기생충 박멸을 시켰더니 알러지 환자의 비율이 3%에서 15%로 늘었다는 사실은 전공이 전공이니만큼 내게 또다른 흥밋거리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질병 유전자가 제거되지 않고 남아있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저자가 든 다른 세가지 이유에도 다 공감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네 번째 이유가 가장 마음에 든다.

“인간만이 자연선택에 적응하여 스스로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종이 아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거의 유일한 생명체고, 지구도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온 나같은 사람에게 이 말은 무척이나 충격적이다. 어느 페이지를 펴도 주옥같은 말들이 나열되어 있는 책을 읽고나면 머리 속이 꽉 찬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는데, 굶주림에 허덕이던 스페인에서 이 책은 내게 특히 많은 위안을 주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고 나면 드는 느낌, “함부로 책 같은 걸 쓰지 말자. 당분간은 숨어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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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02-18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이 더 끌리던데...

  뭐, 그냥 그렇다구요. ^^


마태우스 2006-02-18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하루님, 그런 책도 있군요. 엔도님 리뷰를 보니까 좋게 써놓으셨네요. 정보 감사합니다.

라주미힌 2006-02-18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이 병에 걸리고, 늙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
우리는 '자연'이잖아요.. 거스를수록 거추장스러운 삶... 그게 또 인간의 삶.

2006-02-18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둥개 2006-02-18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아니 품절인 줄 알았으면 추천하지 않았을 것을!!! 꺼이꺼이. 흥흥. ^.^

딸기 2006-02-18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보관함에 넣으려고 봤더니 품절이자나요!

마태우스 2006-02-19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맞다...이거만 교봉에서 따로 주문했었네요 제가.
검둥개님/죄송합니다. 흑...
속삭이신 분/제가 원래 만화책은 잘 안보는 편이어요. 하지만 이번에 만화책도 하나 포함하려고 계획 중이었어요. 그래서 헬로우 블랙잭 그걸로 하려고 했는데, 신이치 이것도 재미있나요? 꼭 답변 해주시길!!
라주미힌님/님의 높은 경지야 제가 어찌 감히 헤아리겠습니까 늘 감사드립니다.

2006-02-19 1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삼색 공감 - 사람, 관계, 세상에 관한 단상들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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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을 묶어서 책을 낸다는 건 어찌 보면 성의없게 보일 수도 있다. <삼색공감>은 명저 <사람 vs 사람>의 저자 정혜신이 몇 년간 쓴 글들을 모아서 낸 책, 하지만 난 이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 일이 있었던가 싶은 과거 얘기-심지어 2002년 대선 때 일까지-를 언급하기도 했지만, 정신과적 지식에 기초한 분석력과 저자의 뛰어난 글솜씨 덕분에 이 책에 흠뻑 빠져들어 버린 것.


그중 한 대목. 국회의원 7명이 불우이웃을 도왔다는 선행이 신문에 소개되었단다. 주인공은 바로 김영삼 씨. 그에게 3천만원을 1차로 건낸 국회의원은 “마음이 찡할 정도”라고 했단다.

“YS가 대통령 시절 월급의 95%를 연금으로 받고 있고 국고 지원으로 비서관을 3명까지 둘 수 있지만 비서관 7명에 가정부, 운전기사, 주방장까지 고용하고 있어 돈이 많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해프닝을 이렇게 비유한다.

[독자들은 자연스럽게....참고서에 등장했던 전설적인 예문 하나가 연상될 것이다. “우리집은 가난하다. 가정부도 가난하고 정원사도 가난하고, 운전기사도 가난하다.”(143쪽)]


툭하면 ‘고뇌에 찬 결단’ 운운하는 정치인에게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식에서 벗어나 자기 설득이 쉽지 않은 일일수록 고뇌의 무게를 강조하는 목소리는 자꾸 높아진다. 헤드폰을 낀 채 말을 하는 사람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상대방의 청취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자기 목소리가 안들리니까 그런 것과 같은 원리다.(223쪽)”


하지만 이 책에서 두가지 이해 안가는 대목이 있었다. 첫 번째는 노무현에 대한 편향으로, 검사와의 대화 자리에서 화를 낸 걸 “필요한 순간에 적절하게 화내는 것은 능력”이라고 쓴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거야 뭐, 사람이란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두 번째, 82쪽에 실린 글의 앞부분을 저자는 이렇게 시작한다.

“눈을 감은 채 여자친구와 입을 맞추던 남자가 슬며시 눈을 떴더니 여자가 입맞춤을 하면서 동그렇게 눈을 뜨고 자기를 바라보고 있더란다. 놀란 남자는 입을 떼었고, 결국 여자친구에게 절교를 선언했다.”

뭐 그런 놈이 있나 싶었는데, 저자는 이런 말로 그 남자를 옹호한다.

“그렇지 않아도 될 순간에조차 각성상태에 돌입해 있는 사람을 보는 일은 불편하다.”

아니 키스할 때 눈 좀 떴다고 절교를 한다면 그놈이야말로 이상한 놈이 아닌가. 그러는 자기도 눈을 떴으니 그걸 알았으면서. 물론 그 글은 정신적 혼미 상태에 있는 주성영 의원을 비판한 것이지만, 그답지 않게 앞에서 든 예가 적절치 않아 읽는 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혜신은 참 괜찮은 작가이며, 소수자에게 주로 향해있는 그의 시선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지난 5년간 벌어진 일을 정리하고픈 분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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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6-02-18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남자vs남자를 사서 모셔놓고 있어요. 마태우스님이 극찬을 하셔서 아껴서 읽으려고요.

타지마할 2006-02-18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저는 이 책을 읽고도 리뷰를 어떻게 쓰면 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리뷰는 이렇게 쓰는 거라고 가르침을 주시네요. 고맙습니다.

모1 2006-02-18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가정부, 운전기사 이야기 본것 기억이 나네요. 보면서 좀 황당했었죠..

마태우스 2006-02-19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1님/그죠? 전 그거 보면서 재미있어서 막 웃었던 기억이..
타지마할님/제가 추진하는 게 리뷰의 페이퍼화랍니다^^ 정통리뷰는 플레져님 등이 잘쓰시죠^^
안개속토끼님/극찬 받아 마땅한 책인데요, 님께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여자들이 의사에게 어떻게 속고 있나 - 어느 의사의 고백
로버트 S. 멘델존 지음, 김세미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라는 책을 썼던 의사 멘델존이 ‘여자들이 의사에게 어떻게 속고 있나’는 책을 냈다. 현직 의사가 의료계의 잘못된 관행들을 무자비하게 비판한 책이라는 것만 해도 관심을 가질 만하지만, 책이 그리 많이 팔린 것 같지는 않다. 안팔리는 책을 쓴다는 공통점이 있는 내가 그 원인을 분석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너무 흥분해서 쓴 티가 역력했다. 전문가답게 냉정하면서도 차분하게 하나하나 현대의학의 잘못을 꼬집는 걸 독자들은 더 원하는 게 아닌가 싶다. 둘째, 의학을 비판하면서 너무 많이 나간 듯하다. 병원이 아닌 집에서 아이를 낳는 게 훨씬 더 좋다고 주장하는 건,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현대의학에 세뇌가 되어서 그럴지라도, 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기 십상이다. 셋째, 번역이 너무 늦게 되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의료의 실상은 주로 1980년대이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20년은 너무도 긴 세월, 저자가 비판하는 80년대의 상황이 지금은 더 열악해지었을지언정, 독자들은 멘델존의 비판을 흘러간 과거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건 별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멘델존이란 이름도 왠지 ‘멘델스존’의 아류인 것 같아서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물론 난 이 책의 문제제기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책 뒷표지에 나오는 것처럼 남자가 우울증을 호소하면 의사가 카운슬링을 받으라 하지만, 여자가 그러면 대번에 항우울제를 처방하는 경향이 의료계에는 분명 있다. 히스테리라는 게 사실은 ‘자궁’을 뜻하는 단어인 것처럼, 남자 일색인 의료계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었으리라. 폐경이 되면 자연히 크기가 줄어드는 자궁근종 때문에 자궁적출을 하는 일은 얼마나 흔한가. 남자의 고환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고환을 잘라내라고 하진 않을 거면서 말이다. “수입이 수술 건수에 달려 있는 의사의 경우 월급을 받는 의사보다 50-100% 더 많은 수술을 시행한다.”는 통계치도 수술 여부가 의사의 자의적인 판단에 더 좌우되는 게 아닌지 의심을 품게 해주고, 가만 둬도 잘 태어날 아이에게 유도분만이나 제왕절개가 지나치게 자주 행해진다는 저자의 주장도 의료계가 반성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하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저자의 흥분이 지나쳐 객관성을 잃어버린 듯한 것이 아쉬운 대목이다. 예컨대 “여러분의 외과 주치의는 훌륭한 훈련을 받았고 신중하기 때문에 절대로 실수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서는 안된다.”는 구절을 보자. 환자가 가짜약을 먹고도 낫는 플라시보 효과는 의사에 대한 신뢰가 치료에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의사가 실수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는 게 의사와 환자 중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건강검진 하면서 찍는 엑스레이가 암을 유발한다는 주장, 정기검진이 도움이 안되며 오히려 그로 인해 생기는 질환이 훨씬 더 많다는 주장 등은 “서른 넘으면 건강검진 받으셔야 해요.”란 말을 남발하고 다니는 나에게 어리둥절함을 선사했다. 건강검진 덕분에 조기에 위암을 발견해 지금도 비교적 건강한 삶을 누리고 계신 은사님을 저자가 본다면 과연 뭐라고 할까? 도발도 때로는 필요하지만, 이 책에서 난 냉정함이 아쉬웠다.

 

* 그나저나 냉열사 님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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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6-02-17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엔 마태님도 이 소설을 읽으셨구나 했는데 전혀 다른 내용이군요. 그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나 같이 의학에 문외한은 혹하는데가 있습니다. 마태님이 알려준 문제점만 알고 있다면 이 책은 나름대로 읽을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군요. 제목을 왜 그렇게 붙혔는지도 알것 같습니다.^^
그나 저나 저도 가끔 궁금해요. 정말 냉열사님은 어디서 뭘 하실까요? 가끔 짠하고 나타나시면 좋을텐데...흐흐.

2006-02-18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생각하는 너부리 2006-02-18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제목이 너무나 맘에 들어요. 글의 핵심을 잘 집어내고 있고, 다른 소설 제목과도 같으니 재미도 있고. 몇 편 쓰지도 않지만 리뷰를 쓸 때면 제목 붙이는게 참 어렵더라구요. 리뷰제목 붙이기에 대해 한 수 배우고 가요.

모1 2006-02-18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아..그렇구나...했어요. 그랬군요..

마태우스 2006-02-19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1님/아 이 책 읽으셨군요.... 반갑습니다.
너부리님/제가 언젠가 리뷰 특강이란 걸 연재했었는데요, 그때 제목 붙이는 법에 대해서도 강의를 했답니다. 플레져님이나 마냐님이 정말 제목을 잘 붙이신답니다^^
속삭이신 분/제가 평소 인간관계를 잘해서 왕따는 안되었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스텔라님/그러게 말입니다. 언제 짠 하고 나타나심 좋겠어요^^

비로그인 2006-03-14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여기 이렇게 쨘! 하고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
님! 반갑습니다. 언제나 님의 서재에 들러 리뷰 먼저 확인하는 지라 지금 열심히....그런데 헉헉! 제가 없는 동안 또 얼마나 책을 읽으시고 리뷰를 쓰신 겁니까? 지금 한 편 한 편 읽느라 숨차 죽겠습니다.
저야 신문 통해 님의 정겨운 얼굴과 글들을 계속 접하곤 있었습니다만, 이렇게 리뷰 쓰신 걸 읽으니 알라딘에 들어 와 있다는 게 실감이 나네요. 반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