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그막에 이게 무슨 주책인가 싶기도 하다. 갑자기 내가, 메이져리그 야구팀의 모자를 사모으는 데 재미가 들려 버렸다.
사실 난 메이져리그 매니아다. 박찬호가 데뷔하기 전부터 난 그쪽 야구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박찬호가 그쪽에 간 96년 이후에는 “내가 미국 야구를 보다니, 기적같은 일이야!”라고 외치면서 야구를 봤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99년 학교에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 시험을 목요일날 보자는 학생 대표의 말에 “안돼! 그날은 박찬호 등판하는 날이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은 물론 안그런다). 혹시 내가 백수가 된다면, 매일 아침을 메이져리그 야구를 보는 걸로 시작할 거다.
테니스를 칠 때 쓸 모자를 분실해서 “야구 모자를 하나 사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스페인 미녀는 내가 안되어 보였는지 언젠가 만났을 때 뉴욕 양키스 모자를 내게 선물한다.

그림설명: 색깔은 이게 아니지만, 재질은 비슷한 것 같다.
2만7천원쯤 한다던데, 내가 받은 감동은 그 이상이었다. 물론 내가 양키스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모자는 너무도 예뻤다. 그게 시작이었다.
모 여자분을 만나러 이태원에 갔을 때, 리어커에 전시된 메이져리그 팀 모자들을 본 나는 발을 떼지 못했다. 난 물었다.
“저거, 2만원 넘겠지?”
“절대 안넘어.”
“넘으면?”
“그럼 내가 차액 물어줄게.”
리어커에 가서 물어보니, 모자 하나의 가격은 7천원이었다. 내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오클랜드 팀의 모자를 샀다. 노란색과 초록색이 어우러진 멋진 모자.

그림설명: 이건 좀 비싼 모자고, 내가 산 건 싼 거라 그런지 이렇게 좋진 않다. 백화점에서 이렇게 생긴 모자의 가격을 물어보니까 4만원이 넘더라.
7천원이라니, 너무 싼 거 아닌가? 내친김에 하나를 더 샀다. 2개를 사서 그런지 13,000원에 해줬다.

그림설명: 이건 보스턴 레드삭스의 모자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팀은 보스턴인데, 김병현이 떠난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다.
집에 와서 모자 세 개를 쌓아놓고 있자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들여다만 봐도 좋았다. 그 모자를 쓰고 테니스를 치니 훨씬 더 잘 쳐지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 난 메이져리그 서른개 팀의 모자를 몽땅 사야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메이져리그 팀의 모자라고 다 멋진 건 아니었지만, 아무리 후진 모자라도 일반 모자 중 좋은 것보다 훨씬 나으니까. 이건 물론 내가 메이져리그 매니아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아는 미녀 분이 천안에 놀러와서 같이 버스를 타고 서울에 왔다. 터미널에 내려서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메이져리그 모자를 파는 가게가 눈에 띈다. 혹시나 싶어 얼마냐고 물어봤다.
“5천원이요!”
“혹시 두개 사면 좀 깎아주나요?”
“에이 이사람아! 하나 팔면 천원 남는데!”
난 거기서, 평소에 사고 싶었던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모자를 샀다. 에이 자가 아주 멋지게 쓰여진, 14년 연속 지구1위 팀의 모자를.

그림설명: 인터넷 사이트를 보니 가격이 2만5천원쯤 하던데, 5천원짜리 모자는 아무래도 질이 훨씬 떨어질 것 같다. 혹시 더러워지더라도 빨면 안되겠지?
그리고 나서 박찬호가 작년에 있던 텍사스 팀의 모자를 샀다. 파란 색이 아름답게 빛나는 어여쁜 모자. 언젠가 두산 모자를 3천원에 산 적이 있는데, 너무 후져서 거의 버리다시피 하고 있다. 2천원 차이밖에 안나는데 어쩜 이렇게 틀린지.

그림설명: 박찬호가 작년에 이 모자를 썼을 때가그의 메이져리그 10년 생활 중 가장 멋있었다. 내가 써도 멋있을까?
다섯 개를 머리맡에 쌓아놓으니 뿌듯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앞으로도 사고 싶은 모자가 한둘이 아니다. 샌프란시스코, 콜로라도, 애리조나, 시애틀... 모자 서른개를 머리맡에 쫙 펼쳐 놓으면 얼마나 멋질까? 하나씩 둘씩 모아서 메이져리그 서른개를 모조리 사버릴 생각이다. 예산 조달을 위해 기생충 생활을 얼마 동안 해야겠다.^^
* 혹시 ...어느 모자가 제일 멋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