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한주의 술을 정리한다.
41번째: 3월 28일(화) 
과외를 같이한 친구들과 3개월에 한번씩 만나고 있는데, 이날이 그날이었다. 미식가가 하나 있어서 저녁을 늘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게 장점. 이번에는 쭈꾸미였다. 신사역 부근에 위치한 쭈꾸미집은 맛도 대단했지만 물이 아주 좋아서 ‘한번 더 가고픈 집’으로 내 머리에 각인되었다. 젊은 여자들끼리 온 테이블이 몇 개 있던데, 쭈꾸미에는 여성들에게 어필할 뭔가가 있는 걸까? 감자탕이나 곱창을 먹고나면 불판에 비벼먹는 맛이 또 일품이지만, 그 어느것도 쭈꾸미를 먹고 난 뒤 비벼주는 밥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 맛에 취해 지나치게 많이 먹어서, 2차를 가서는 남들 모르게 허리띠를 풀고 있어야 했다.
거기까진 좋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예정된 코스로 가려고 하기에 집에 간다고 했더니 친구가 막 화를 낸다. “너 임마, 간만에 만나서 재미있게 놀려는데 너 왜그래?”
끌려가서 보낸 시간은, 솔직히 내게는 과히 좋은 것은 아니었다. 끌고 간 친구가 돈을 냈으니 좀 낫지만. 아, 역시 거절은 어렵다.
42번째: 3월 30일(목) 
‘곰님’과 함께 영화를 보고 술을 마셨다. 어림잡아 주량이 소주 다섯병쯤 되는 곰님과 대적한다는 건 불속에 뛰어드는 나방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라 쉬엄쉬엄 술을 마셨다. 내가 좋아하는, 대학로의 한 식당에 가서 소주를 마셨고, 2차로 ‘로제’라는 흑맥주 전문점에 갔다. ‘로제’는 내가 학교를 다닐 때도 있었는데, 그 시절의 술집이 다 간판을 바꾼 뒤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몇 안되는 곳이다. 고교 동문회를 할 때 거길 갔었던 기억이 난다. 10명 중 8명이 그 집에서 오버이트를 할 때, 비교적 정신이 말짱했던 난 이 사람, 저 사람의 등을 두드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기지 못할 때까지 술을 먹이던 악습이 굳건히 남아있던 시절의 이야기지만, 지금도 그런 사람은 있다. 아무튼 로제는, 여전히 운치있고 싼 좋은 술집이었다. 쉬엄쉬엄 마셨지만 집에 갈 때는 정신이 혼미했다. 곰님은 참 좋은 사람이다.
43번째: 3월 31일(금) 
모시기 힘든 미녀분, 그리고 또다른 미녀분을 모시고 술을 마셨다. 전날 곰님과 갔던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는데, 그건 순전히, 내가 자신있게 권할만한 집이 그집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국물이 맛있고 계란말이가 맛있고 추억의 도시락이 있는 그집은 금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고, 우린 대략 십분 가량을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토요일밤보다 금요일이 훨씬 더 붐비게 된 건 벌써 오래 된 일인데, 그래서 2차는 내가 아는 가장 조용한 집으로 가고 싶었다. 사람도 없고 음악도 크지 않아서 도란도란 얘기할 수 있는 곳에. 하지만 그날은 금요일이었고, 그곳은 대학로였다. 어두컴컴한 조명에 주인 혼자 턱을 괴고 앉아 있는 게 그집의 일상적인 풍경이었지만, 그날은, 우리가 일어날 때쯤엔, 테이블이 꽉 차서 빈자리가 없었다. 술자리가 파한 뒤 야구모자를 파는 리어커를 발견한 게 신기해 뉴욕 양키스 모자를 사가지고 집에 왔다. 소주 한병에 맥주 세병을 마셨지만 정신은 말짱했던, 그래서 지하철을 타고 올 수 있었던 밤.
44번째: 4월 1일(토) 
만우절이라 종일 거짓말만 일삼던 하루.
“나 쌍거플 하러 왔어요.”
“박찬호가 타자로 전향했데요.”
이런 거짓말을 지겹게도 해댔던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사촌들과의 술자리. 남동생과 매제를 제외하면 다들 말술이라 몸을 좀 만들었어야 하건만, 난 잠이 부족해 반쯤 감긴 눈을 하고 모임에 나갔다.
황소곱창은, 전에도 그랬지만 그날도 곱창이 별로 없다면서 “곱창 4인분”을 주문하는 우리한테 “곱창 둘에 양 둘을 먹어라.”고 협박했다. 곱창이 떨어지면 새로운 손님을 못받으니 이미 들어온 사람들에겐 곱창 대신 딴 걸 팔아먹겠다는 속셈. 물론 말도 안되는 일이었지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법, 맛있는 곱창을 먹기 위해선 비굴하지만 그쪽 비위를 맞춰야 했다. 그 곱창과 더불어 1차에선 한병 이상의 소주를 먹었고, 2차에서는 사촌형이 제조해준 폭탄주를 먹었다. 그리고 이어진 3차. 난 몹시 힘들고 지쳐 있었다. 맥주를 좀 마시다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그곳을 탈출했고, 그 덕분에 다음날 테니스를 무리없이 쳤다. 술이 나보다 약한 매제와 나랑 주량이 비슷한 남동생이 집에 잘 들어갔는지 궁금하다. 그 궁금증은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지만, 뭐 무소식이 희소식이니까.
45번째: 4월 3일(월) 
간암으로 투병 중이신 전 학장님이 재임 시절 당신을 도와준 사람들을 불렀다. 말이 ‘도와준 사람’이지, 모이고 보니까 그분이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여 있다. 하기야, 일이란 원래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거 아닌가. 비싼 항암제 때문에 많이 어려우실텐데-한달에 800만원 이상 든다고 들었다-우리에게 소고기를 사주셨다.
“돼지를 많이 먹지만 가끔씩은 소도 먹어줘야 해요.”
안티가 없고 누구나 다 좋아하는 멋진 분, 내가 여자였다면 당장 프로포즈 하고픈 그 선생님이 왜 간담도암으로 고생하셔야 할까.
그냥 저녁만 먹고 온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가볍게 하고 갔는데, 의외로 많은 술을 마셔야 했다. 소주잔이 연거푸 날아왔다. 음주운전에 반대하는 나는 차를 가지고 온 맞은편 사람의 술을 다 책임져 줬다. 물론 거기엔 얄팍한 속셈도 있었다. 그 차를 타고 수원까지 같이 가려는. 하지만 그가 세 잔의 술을 어쩔 수 없이 마셨을 때, 난 내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알았다. 2차를 갔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술자리가 끝났다. 난 KTX를 타고 집에 왔고, 당연한 귀결이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래도 지난주엔 두 번의 휴식일이 있었다. 하지만 피로가 누적되서 그런지 그 전주보다 훨씬 더 힘들었던 한주. 이번주는 다행히 스케줄의 여유가 있지만, 강의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다. 이러다간 날밤도 새야 할 판. 오늘은 예과 MT를 따라가야 하니 술을 무지 마실 테고 돈도 원없이 쓸 거다. 그리고 내일은 서울에서 무슨 워크숍이 있고, 강의준비를 해야 할 목요일엔 내가 존경하는 지식인의 부름에 응해야 한다. “안나오면 할복할 거예요^^”라는 문자를 보고 어찌 안갈 수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