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네 21에서 이연걸의 인터뷰를 읽었다. 리안 감독의 <와호장룡> 중 리무바이 역의 캐스팅 제의를 받은 사람은 원래는 이연걸이었단다. 하지만 이연걸은 아내의 출산 때문에 그 자리를 거절하고 주윤발이 대신하게 되는데, 작품성이 뛰어난 그 영화를 거절한 게 아쉽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연걸은 이렇게 답한다.
“전혀 아쉽지 않다. 영화는 30-40편 찍을 수 있지만, 아이는 그렇게 낳을 수가 없다.”

아내가 힘들게 아이를 낳을 때 옆에 있어 주는 거, 어찌보면 당연한 그 일을 우리 윗대 어른들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랬다간 난리가 난다. 얼마 전 끝난 마스터스 대회에서 우승한 필 미켈슨은 아내와 아이들의 생일이 겹치면 대회 출전을 하지 않는 자상한 아빠다. 그는 시즌 첫대회인 메르세데스 챔피언십에 출전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이유는 학교의 윈터브레이크로 그 기간 중 아이들이 집에 있기 때문. 그에 관해 기억나는 일화 하나. 99년 메이져 대회인 US 오픈에서 필 미켈슨의 아내가 출산이 임박했다. 미켈슨은 아내에게 다짐을 받았다. “양수가 터지면 바로 연락해라. 경기를 포기하고 가겠다.”
실제로 그는 경기 내내 삐삐를 휴대하고 있었는데, 그에게 기자가 질문을 했다.
“우승이 눈앞에 있어도 가겠느냐?”
미켈슨의 대답, “당연하다.”
미켈슨은 페인 스튜어트와 숨막히는 접전을 펼쳤고, 1타 차이로 2위를 하고 만다. 다행히 미켈슨의 아내는 대회가 끝난 다음날 출산을 했는데, 미켈슨이 우승을 포기하고 아내에게 가겠다는 말은 정말이지 대단한 것이다. 미켈슨이 비록 정상급 선수였음에도 메이져대회 우승이 하나도 없다는 게 큰 약점으로 지적되어 왔기 때문. 그가 팬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다.
유명한 사람들의 일화보다 더 감동을 주는 건 역시 보통 사람의 얘기, 내가 가끔 나가는 테니스 클럽에 한 부부가 있다. 40대인 부인은 지금도 귀여운 미모를 자랑하고, 한창 때는 정말 날렸을 것 같다. 남자는 50대로 부인과 나이 차이가 좀 난다. 외모가 그리 뛰어나진 않지만 키가 크고 늘씬하며 테니스도 잘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이 남자분이다. 파트너의 잘못으로 경기를 져도 화를 한번도 낸 적이 없고, 터무니없는 걸 아웃이라고 우겨도 군말없이 받아들인다. 어쩜 저렇게 성격이 좋을 수가 있을까 싶어서, 밥을 먹는 자리에서 부인한테 물어봤다.
나: 민선생님은 생전 가도 화를 안낼 분 같은데요, 집에서도 그러나요?
부인: 저희가 결혼한지 23년이 되었는데 이 사람이 아직까지 화내는 걸 못봤어요. 목소리를 높인 적도 없다니까요.
나: 와....대단하세요.
남편: 목소리를 낮출 줄은 아는데, 높이는 데는 소질이 없어요(웃음)
그 정도 살았으면 옆 사람이 양귀비라도 한번은 지겨울 만도 한데, 어쩜 그럴 수가 있을까. 밖에서 보이는 모습과 집에서의 모습이 판이한 사람도 많은데, 민선생님은 집에서도 그렇게 화를 안내신다니 그야말로 군자다. 그 전까지는 미녀와 결혼한 그분이 부러웠었는데, 지금은 그 미녀분이 부럽다. 결혼해서 애를 낳은 친구들은 다 나를 부러워하고, 나 역시 부부가 아무리 행복해도 솔로만 못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부부의 행복에는 미치지 못할 것 같다. 수줍게 웃는 민선생님과 대견한 듯 바라보는 부인의 모습에서 그 부부가 생이 다하는 날까지 쭈욱 아름답게 살아가리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