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는 분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그분도 이미 환갑을 넘으셨으니 아버님은 아흔 가까운 연세, 말 그대로 호상인지라 숙연할 필요가 없다는 게 좋았다. 다만 영안실이 전라도 광주라서, 좀 멀다는 게 흠이었다.
1. 기차
이상하게도 요즘 젊은 여성 옆에 앉아본 적이 없다. 최근 내 옆을 장식한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 봤지만, 아저씨나 덩치 큰 청년 말고는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토요일날 아기 엄마가 간만에 젊은 여자였지만, 아기가 시끄럽게 울어 싸서 외려 아저씨가 그리웠다. 광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타 내 좌석을 찾았는데, 역시나 옆자리엔 대머리 아저씨가 앉아 있다. 그럼 그렇지 하고 앉았다. 전날 못잔 탓에 잠을 청했는데, 잠시 뒤 누가 깨운다. 군인이다.
“제 자리 같은데요.”
자다 깬, 약간은 짜증스런 얼굴로 물었다. “몇번이신데요?”
군인은 자기 표를 확인하더니 “아이고, 여기가 아니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부리나케 떠난다. 그 사람과 더불어 내 잠도 달아나 버렸는데, 가만 보니 아저씨가 자꾸 내게 머리를 기댄다. 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역방향 좌석이 비어있기에 그쪽으로 옮겨갔다. 나이가 들수록 왜 점점 남자가 싫어지는 걸까. 오늘 아침 광주에서 천안으로 오는 버스에서도 내 옆자리는 아저씨였다.
잠깐 알아둘 일. 난 아저씨를 싫어하지만, 사실은 나도 아저씨고, 다른 사람들 역시 내가 옆에 앉는 걸 싫어할 터였다. 20대 여성은 말할 것도 없고 오늘 내 옆에 앉은 아저씨 역시 내가 앉아서 실망했겠지.
2. 나이
조교선생이 지지난주 진해에 놀러갈 때, 그네들은 밤 11시 기차를 탔다. 기차에서 1박을 하며 숙박비를 아끼자는 계산. 2년 전까진 나도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밤차를 타고 올라오면 왜 그렇게 피곤한지, 하루 종일 끙끙 앓아야 한다. 그래서 난 멀리 가야 할 때, 웬만하면 거기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올라온다.
어제, 다음날 출근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을 했다. 버스는 이미 끊겼고, 밤 11시 37분 기차를 타면 천안에 새벽 3시면 도착한다. 그걸 타고 와서 내 연구실에서 자 버릴까. 기차 예약을 했다가 관뒀다. 기차를 타고 자는 게 피곤하게 느껴졌고, 새벽 세시에 깨는 것도 싫었다. 그래, 여기서 자자. 조문을 드리고 거기 사람들과 한시간 정도 이야기를 한 뒤, 밖으로 나와서 괜찮은 모텔을 찾았다. 2만5천원에 바퀴벌레도 없고 무슨 장치를 했는지 침대가 따뜻한 그런 곳에서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었다.
3. 노후 보장
요즘 학교 일 때문에 많이 바쁘다. 연구를 평소 열심히 한 건 아니지만, 논문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계속 나를 짓누르고, 이러다 잘리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잘리고 나면 S대 가서 뽑아달라고 해야지.’
어제 영안실에서 마침 남원에 있는 S대 사람을 만났다. 그 얘기를 했더니 내게 이런다.
“마선생이 오면 우리야 좋지. 안그래도 사람이 자꾸 떠나서 문제니까. 미생물 교실 들어오면 되겠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학교가 그렇게 여건은 좋지 않아. 그러니 일단 버티는 데까지 버텨 보고, 정 잘리게 생겼으면 연락해. 내가 자리 만들어 줄게.”
난 잘리기 일주일 전 쯤 학교에 사표를 내고-잘리고 가면 좀 그렇잖아!-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조금은 덜 불안하다.
4. 사족
조교 선생이 몸보신을 해야겠다고 곰탕을 먹잔다. 우리 학교 앞엔 다행히 그럴듯한 곰탕집이 있어서 거길 갔다. 다 좋았는데 일어나다가 벽장을 등으로 건드렸고, 그 바람에 그 위에 올려져 있던 화분 세 개가 넘어져 버렸다. 안깨진 게 다행이지만, 주위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건 역시 쑥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