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생애 단 한번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전략적 글쓰기>란 책을 읽다가 거기 소개된 장영희 선생의 수필 ‘하필이면’에 감동을 받았다. 그러던 차에 책꽂이에 장선생의 수필집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잽싸게 읽어버렸다. 학생들에게 소개할 좋은 수필들을 발견해서 기쁘다.
인상적인 수필 하나. 저자는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토론을 해보라고 했다. 지구가 멸망하기 직전이고, 핵폭발을 피할 동굴에는 딱 여섯밖에 들어갈 수가 없다. 과연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후보자는 다음과 같다.
[수녀, 의사(공산주의자), 눈먼 소년, 교사(일본인), 갱생한 창녀, 여가수, 정치가, 여류 핵물리학자, 농부(청각장애), 나(능력 없는 백수)]
능력이 없어도 ‘나’를 택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였지만, 일본인 교사가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그건 이렇게 정리된다. “그 사람은 우리말 대신 일본말을 가르칠 거잖아!”
그 다음 논란이 되었던 사람은 눈먼소년. 놀랍게도 그 소년은 생존자에 포함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는데, 다음과 같은 말 때문이란다.
“(나라를 세우느라 모두 바쁘겠지만) 누군가 이 소년처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모두 자기 시간을 쪼개 그를 도울 겁니다....남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을 배울 수 있다...그렇게 남을 돕고 함께 나눌 줄 모르는 나라라면, 그런 데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이 말을 했다는 진기라는 학생에게 난 심히 부끄러웠다. 내가 책에다 체크한 나름의 생존자는 다음과 같았으니까.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맞춰 보시라.
‘수녀, 갱생한 창녀, 여가수, 여류 핵물리학자, 나, 농부(밥은 먹어야 하니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좋은 수필집이지만,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노인과 바다>에 대한 글에서 저자는 노인이 물고기와 싸우면서도 ‘사랑과 동지애’를 느꼈다고 한다. 왜? “노인과 물고기는..같은 운명의 줄에 얽혀 있고....자신의 규범에 순응하기 위해 싸우”기 때문에. 그래서 물고기가 죽었을 때 노인은 “연민을 느낀다.” 아쉬운 대목은 이 다음부터다. 저자는 상어 떼를 이렇게 비난한다.
“남의 전리품을 약탈하기 위해 배를 공격하는 상어 떼는 노인과 돛새치와의 정당한 싸움과는 대조적이다...이미 죽은 물고기의 살을 뜯어먹는...비열하고 천박한 기회주의의 표상”
심지어 이런 말도 한다. “노력하지 않고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다 남의 것을 덥석 새치기하는 야비한 기회주의.”
물고기가 노인에게 저항한 게 자신의 규범에 순응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상어 떼가 죽은 물고기에 달려든 것도 자신의 규범에 순응한 게 아닐까. 원래 피냄새만 맡으면 환장하도록 운명 지워져 있는데, 뭘 어쩌란 말인가. 자주 먹지는 못하지만 최고급 요리인 샥스핀이 사실은 상어 지느러미기에 난 늘 상어에게 감사드리며 살아가고 있다. 상어에 대한 장 선생님의 편견이 아쉬운 대목이다.
* 저도 모르는 새 책을 선물해 주신 어느 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