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청과제의 연구계획심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연구는 안해도 그런 곳에 가면 열심히 듣고 질문하고 하거든요. 그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모르는 번호입니다. 무시했습니다. 또 옵니다. 그럴 리는 없지만 미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보세요.”
“저 고xx 의원 보좌관인데요.”
아아, 그 목소리를 제가 어찌 잊겠습니까. 그렇게도 그리던 윤xx 보좌관님이셨습니다. 저를 아예 잊으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봐요. 반가워서 당장 만나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돈받고 심사하는데 그러면 안되죠. “이따 할께요.”라고 한 뒤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뒤 40분 동안, 전 흥분에 겨워 발표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닌 척 했지만 그동안 제가 좀 외로웠거든요. 오죽하면 그분이 보낸 메일을 인쇄해서 갖고 다니며, 심심할 때마다 읽었겠어요. 그분이 저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에 그간의 외로움이 다 날아갑디다.
일이 끝나자마자 전화를 드렸지요.
“여보세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멋졌습니다.
“아, 네 윤 보좌관님이시죠? 저 서민입니다.”
반가움에 들뜬 저처럼 보좌관님도 제가 반가웠나봐요. 그분은 예의 그 멋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가 보낸 메일 있잖습니까. 사적인 메일을 그렇게 인터넷에 공개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아, 보좌관님이 드디어 제가 인터넷에 살포한 글을 보셨나봐요. 글 쓴지가 벌써 2주가 훨씬 넘었는데 말이죠. 그럴 줄 알았다면 보좌관님 보기 편하게 고의원님 홈페이지에 올려드릴 걸 그랬네요. 메일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니 보좌관님이 메일 때문에 많이 힘드셨나봐요. 그러니 미미한 존재인 제게 직접 전화까지 주셨겠죠. 갑자기 미안해졌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렸죠.
“아니 그럼 메일로 그따위 협박을 해도 되는 겁니까. 교수 예절교육이란 말, 살다살다 처음 들어봅니다.”
이 사진은 본문의 내용과 하등 상관없어요
메일 공개가 옳다는 건 물론 아니어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그 메일은 전혀 사적인 게 아니었어요. 저희 학교 총장님-전 딱 두 번 만나뵌-을 언급하시고, 저희 학교 측에도 같이 소송을 건다며 학교 변호사랑 얘기하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저희 학교 교수님들에게 예절 교육을 시키겠다고 했지 않나요. 그리고 그분이 누구십니까.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 나리의 몇 안되는 보좌관님이 아니십니까. 국민의 세금으로 사시는 분이 협박메일을 보내놓고 사적인 걸 공개했다고 펄펄 뛰는 게 타당한가요. 그분이야 국회의원 빽이라도 있고, 총장 정도는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겠지만, 일개 교수고 조교 앞에서만 센 척하는 저로서는 인터넷에 호소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뭐가 있겠어요? 그분의 메일보다는 한겨레에 쓴 제 글-김치를 용서해주자는-이야말로 훨씬 사적이죠.
보좌관님은 제 말에 굉장히 감동한 듯했습니다.
“변호사 친구한테 사적인 메일을 공개해도 괜찮냐고 한번 물어 보세요.”
제가 다칠까봐 걱정해주시는 저 센스, 과연 사려깊은 보좌관님이셨어요. 유비무환이란 말을 만드신 분이 혹시 윤xx 보좌관님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가슴이 뭉클해져서 한마디 했죠.
“아니 그걸 왜 제가 물어봅니까. 당신이 물어보세요!”
그는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우리가 나눈 대화는 인사말을 포함해서 겨우 대여섯마디, 제가 그의 연락을 기다린 정도에 비하면 너무 짧지요. 제가 혹시 그분께 결례라도 한 게 아닌지 생각해봤어요. 아, 생각이 났어요. 제가 감히 그분께 ‘당신’이라고 부른 거. 하지만 높은 분을 부를 땐 원래 ‘당신’이라고 하잖아요. 그만큼 우리의 친분이 각별하다는 뜻도 되고요. 또 뭐가 있을까요. 아, 안녕히 계시라는 말을 미처 못했네요. 원래 높은 분들은 예절에 민감하고, 특히 윤보좌관님은 평소 예절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이잖아요. 다음에 또 보좌관님이 전화를 걸어 주신다면 끊기 전에 꼭 이렇게 말씀드릴 거예요.
“윤보좌관님, 건강에 유의하시고 하시는 일 두루 평안하시고, 의원님 잘 모시시고, 다음에 또 전화 주세요. 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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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보좌관님이 보내주셨던 메일입니다.
[ ...실망시키지 않도록 대응해 드리겠습니다.
적당한 때에 당신네 학교총장, 의과대학장부터 교수예절교육부터 제대로 시키라고 강력하게 컴플레인을 제기해 드리겠습니다. ...법적인 대응도 검토하겠습니다.
.....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소송이 제기된다면 피고는 교수님과 단국대학교가 공동으로 피고가 될것입니다. 단국대학교 의과대학의 교수님 신분으로 글을 쓰셨기에 단국대학교도 공동피고가 될것입니다. 친구변호사만 같이 상의하지 마시고 학교변호사와도 같이 상의하시라고 미리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