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을 여기 올릴까 말까 망설였다. 이곳을 아는 학생들도 있을 텐데, 그들이 본다면 자기들을 비난하는 이 글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란 놈은 직접 만나면 싫은 소리를 못하는지라 이렇게 해서라도 그들에게 말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한번 보고 말 사이라면 몰라도, 앞으로도 그들과 난 계속 만나야 하니까.
1. 물론
학생들은 내게 잘해주려 노력했다. 공항에서는 물론, 식물원 관광을 할 때도 부담을 안주려 혼자 겉도는 날 쫓아다니며 챙겨주려 했다. 술자리에서 과대표와 예과 학생회장이 내 옆에 앉아 날 즐겁게 해주려 노력한 것도 잘 알고 있다.
2. 그럼에도
애들한테 서운한 게 있다. 그 서운함은, 내년 수료여행 땐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안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런 서운함이었다.
1) 작년
작년 수료여행 때, 학생들은 내 비행기표를 왕복으로 끊어줬다. 갈 때 공항에서 가는 티켓을 받았다. 문제는 오는 비행기표. 난 다음날 일찍 갈 거였기에 과대표한테 가는 표를 미리 받아야 했다. 하지만 과대표는 표를 줘야 한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난 ‘다음날 받아야지.’란 생각에 그날은 그냥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과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늦게까지 술을 마시느라 그런지 과대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삼십여분을 기다리는 내 마음은 조금 비참했다. 그까짓 비행기표 때문에 내가 이렇게 아쉽게 기다려야 한다는 게. 하지만 ‘연락 바란다.’는 내 문자 메시지에도 과대표는 전화를 하지 않았고, 시간이 되었기에 혼자 쓸쓸히 숙소를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가 섰다. 공항에 가서 김포행 편도를 구입했다. 회값보다는 훨씬 쌌지만, 그 8만여원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과대표는, 내가 공항에 도착한 뒤 전화를 걸어왔다.
“선생님, 왜 전화하셨어요?”
“아, 저 먼저 간다고요. 무사히 다녀오세요.”
“네.”
2) 올해
대표로부터 “선생님 비행기표는 저희가 끊어 드릴께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늘 미안해하는 난 “제가 그냥 살께요.”라고 대답했다.
“아니어요. 그건 당연히 저희가 해야죠.”
난 마지못한 듯 그러라고 했다.
“선생님, 근데 저희들 식사 사주실 건가요?”
“그럼요. 저녁에 회 살께요.”
공항에서 제주행 표를 받았다. 혹시 몰라서 “가는 표는 제가 살까요?”라고 했더니 아니란다. 그래, 여행사에서 표를 살 때 왕복, 단체로 싸게 끊었겠지. 그러니 과대표의 수중엔 내 서울행 표가 있으리라. 근데 왜 그 표를 안주는 걸까?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난 올해도 표를 달라는 말을 못했다. 그 대신 과대표에게 “내일 7시에 간다.”는 말을 여러번 했는데, 과대표는 여전히 표를 주지 않았다. 물론 표를 내놓으란 말을 못하는 내 성격에 더 큰 문제가 있지만, 알아서 표를 건네주면 안되는 걸까. 말은 안했지만 그날 밤까지 난 표 생각을 여러번 했고, 그러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역사는 반복되었다. 과대표는 자느라 전화를 안받았고, 난 문자 메시지를 보내놓고 펜션 마당에서 기다려야 했다. 일찍 일어난 애들이 하나둘씩 나온다.
“선생님, 일찍 일어나셨네요?”
“아, 네. 먼저 가려구요.”
애들은 아침 식사를 하러 간다. 내게도 가자고 하는 애가 있었지만 괜찮다고 했다. 이십분 이상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에이, 비행기 표, 그냥 내가 산다!”
난 택시를 불렀다. 십분 있으면 온단다. 마지막 기회다 싶어 과대표를 찾았다. 방 하나를 뒤져보니 없다.
“과대표는 어디 있나요?”
십오년 전 교수님이 내게 똑같은 말을 했다면 난 내가 직접 과대표를 찾아왔으리라. 하지만 그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기 저 앞 건물에 있을 거예요.”
난 그 건물로 갔다. 1층엔 없다. 2층에 올라갔다. 방이 두 개 있는데 문이 닫혀있다. 갑자기 돈 몇만원 때문에 이러는 게 짜증이 나서, 그냥 내려가 버렸다. 가방을 들고 길가로 나갔다.
몇 명이 묻는다. “가시게요?”
“네.”
십오년 전이었다면 아마도 우린 잘 가시라고 선생님을 배웅했을 거다. 하지만 우리 애들은 단 한명도 십미터 밖에 있는 길가까지 날 배웅하지 않았다. 혼자 찻길에 서서 택시를 기다리는 마음은 쓸쓸했다. 21세기에 배웅을 바라다니 내가 너무 권위적인 게 아닌가 싶었지만.
과대표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한참 간 뒤에 과대표의 목소리가 들린다.
“전데요 저 지금 가려구요.(그러니 비행기표를 내놓으세요!)”
“아 네.”
“남은 여행 잘 가고 학교에서 봐요(비행기표는 왜 안주는데?)”
“네 잘 가세요 교수님.”
내가 과대표였다면 지금 어디냐고 물었을 테고, 비행기표를 주기 싫다면 최소한 배웅하는 척은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과대표의 태도는 너무 건조했다. 난 작년과 똑같이 8만8천원을 주고 비행기표를 끊었고, 그 돈 때문에 마음이 상해 비행기 안에서 책이 눈에 잘 안들어왔다.
3. 결론
애들에게 난 봉으로만 취급되는 게 아닌가 싶다. 회를 사줄 때만 “와와” 소리를 듣지만, 먼저 떠날 때는 아무런 환송도 받지 못하는 걸 보면 말이다. 서른아홉명에게 회-그리 비싼 곳은 아니지만-를 사주고, 먹을 게 떨어진 것 같아 갈치와 소라를 테이블마다 추가시켜줬는데 말이다. 그러고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여행 이틀 전 과대표가 내게 찾아와서 돈이 모자란다는 얘길 한 것. 20만원 정도가 모자란다는데, 그렇다면 5천원씩 더 걷을 일이지 왜 내게 오는 걸까. 하지만 충실한 봉인 난 학생들한테 뭐라도 사주라는 명목으로 교수 상조회에서 주는 20만원을 아낌없이 과대표에게 줬다. ‘그래, 내 비행기표도 사주는데 뭐.’ 하지만 가는 비행기표를 내가 끊고 나니 비행기표 대신 20만원을 챙기는 게 훨씬 나았다는 생각도 든다.
일정상으로 보면 그들은 토요일인 어제 6시 50분쯤, 김포에 도착했을 것이다. 내가 과대표라면 “(덕분에,까진 아니라도) 저희 잘 다녀왔어요.”라고 연락을 했겠지만, 내 전화는 전혀 울리지 않았다. 벌써부터 걱정을 한다. 내년에 또 예과 수료여행을 가자고 하면 뭐라고 거절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