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왔다기보단 제가 쓴 글입니다만... 후배들이 써클지에 실을 글을 써달라고 해서, 낑낑대며 썼답니다. 근데 읽어본 이가 잘썼다고 칭찬을 해서... 여기다 올릴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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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투수 잔혹사
얼마 전 끝난 청룡기 고교야구 결승전에서 진흥고 투수 정영일은 연장 16회까지 무려 222개의 공을 던졌다. 메이저리그로 불리는 미국 프로야구에서 선발투수가 100개 이상의 공을 던지는 게 여간해선 드물다는 것에 비추어 보면 혹사도 이런 혹사가 없다. 하지만 투수 한명에 의존하는 고교야구에서 정영일의 경우는 그리 드문 게 아니다. 안산공고의 김광현도 16강전에서 연장 15회를 홀로 책임지며 226개를 던진 바 있고, 진흥고의 맞상대였던 경남고 이상화는 13회 동안 162개를 던졌다. 문제는 이들이 매일같이 이렇게 던진다는 것. 메이저리그 투수들이 한번 던지면 4일을 쉬는 것과 비교하면, 이들의 팔이 남아나는 게 신기할 정도다. 진흥고 감독은 지나친 혹사가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혹사 맞다. 하지만 이제부터 쉴 것(당연하지. 대회가 끝났는데)”
고교야구 투수들의 잔혹사가 거듭되자 일각에서는 대회 숫자를 줄이거나 투구수를 제한하자는 주장을 내놓고 있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전국대회 4강에 들면 그 고교 선수들이 모두 대학에 진학할 수 있으니 잘하는 선수 한명에 편승해서라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지 않겠는가?(참고로 전국대회 숫자는 과거보다 더 늘어나, 현재 9개의 대회가 열린다).
바톨로 콜론입니다. 진짜 마당쇠처럼 생겼죠?
당연한 일이지만 혹사 앞에는 장사가 없다. 고교 때 혹사를 당한 선수들 중 대학에 가서, 혹은 프로에 진출해서 자기 기량을 펼쳐 보이지도 못한 채 야구인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10억원을 받고 입단한 한기주가 평범한 투수로 전락한 이유를 고교 시절의 혹사에서 찾는 사람이 많다. 효천고 시절 초고교급 투수였던 김수화는 어깨부상으로 롯데 입단 후 제대로 공을 던진 적이 없다. 요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화 류현진은 동산고 2학년 시절 팔꿈치 부상으로 오랜 기간 공을 던지지 않은 것이 어깨를 싱싱하게 보존할 수 있던 비결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이런다. 사람에 따라서 다른 거라고. 공을 많이 던져도 괜찮은 투수가 있고, 그렇지 않은 선수가 있다고.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바톨로 콜론(에인절스)과 리반 에르난데스(워싱턴 내셔날스)를 보면 그 주장이 타당한 듯하다. ‘마당쇠’라 불렸던 이 둘은 지난 6년간 해마다 200이닝 이상을 던졌고, 경기당 투구수도 늘 120개를 넘었다. 하지만 올 시즌, 이 둘은 나란히 부상 때문에 발목을 잡혀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예는 또 있다. 2003년 캐리 우드와 마크 프라이어라는 걸출한 두 투수를 보유했던 커브스 베이커 감독은 등판 때마다 이 두명에게 120개 이상을 던지게 했다. 혹사가 아니냐는 질문에 베이커는 이렇게 말했다.
“얘네들은 보통 투수와 다르다.”
그 해 커브스가 최고의 성적을 올리긴 했지만, 그 둘은 이듬해 드러누워 버렸고, 지금도 여전히 부상에서 신음해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그러니 이렇게 정리하면 될 것 같다.
‘공을 많이 던지면 틀림없이 팔이 망가진다. 다만 그게 좀 늦게 오는 선수가 있을 뿐’
케리 우드입니다. 얼마전 두경기 던지고 또 부상자 명단에 올랐죠...
2. 알코올 잔혹사
그런 혹사는 야구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 남자들도 일상적인 혹사에 노출되어 있는데, 그건 바로 알코올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소주 소비량은 60병을 넘는다. 전국민이 1주에 소주 1병씩을 매주 마셨단 얘기다. 2003년 통계를 본다면 소주가 61병, 맥주 74병에 양주가 1.2병, 술 소비량으로 따지면 슬로베니아에 이은 세계 2위다. 백화점에서 VIP 고객에게 정성을 다하는 이유는 ‘20%의 고객이 매출의 80%를 담당한다.’는 2: 8의 원칙 때문인데, 그 비율은 알코올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되어 열심히 마시는 20%가 술의 80%를 마시고 있다. 술에 지나치게 관대한 풍토여서 그렇지, 술을 마시는 사람 중 상당수는 알코올 중독 진단을 내려도 무방할 듯하다.
지나치게 많은 공을 던지는 게 투수의 팔이 망가지는 첩경이듯, 술 앞에 장사는 없다. 아는 은사님 중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이 계시다. 평소 올곧은 성격으로 바른 말을 잘하는 그분은 알코올 앞에서도 전혀 굽히는 법이 없으셨는데, 그리 술이 약한 편이 아닌 내가 술을 먹다가 죽음의 공포를 느껴 도망간 적이 있을 정도다. 아무리 마셔도 자세가 흐트러지는 법이 없고, 아침에 해장술로 소주 서너 병을 드시는 일도 허다하니, 소위 말하는 ‘주선(酒仙)’이라 할만하다. 내가 꼭 극복해야 할 분으로 생각했던 그 선생님은 하지만 50을 넘기면서 부쩍 건강이 나빠지셨다. “몸이 옛날 같지 않다.”면서도 대여섯 병의 소주를 반주로 드셨던 그분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은 충격이었다. 환자복 때문일까. 술집에서 술병과 싸우던 모습과는 달리 병실에서 뵌 선생님은 무척이나 왜소해 보였다.
“등산모임이 있는데, 산에 한번 가면 말이야, 소주 몇 박스를 들고 간다고. 열 명이서 50병을 다 먹고 내려온다니까.”
병실에서도 선생님은 그 시절을 생각하고 있었다. 안타까운 얼굴로 무용담을 듣는 내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퇴원하고 나서 소주나 한잔 하자.”
지난 봄 학회에 선생님은 오지 못하셨다. 그 전 학회 때도 그랬지만, 올 봄에도 선생님은 입원 중이셨다.

사정이 이럴진대 우리는 너무들 술을 많이 마신다. 마시는 술의 양이 남성성의 정도로 간주되니, 술을 많이 마신 건 부끄러움이 아닌 자랑이 되어 버린다. 내가 공보의 시절 만났던 친구는 늘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했다.
“어제 말이야, 1차에서 소주 두병을 마셨어. 그리고 2차를 맥주 집으로 갔는데, 거기서도 한 다섯병 마셨지 아마. 그리고 또 3차를 갔는데...”
공중보건의 시절의 아침은 늘 서로의 무용담을 비교하는 자리였다. 한명의 무용담이 끝나면 다른 친구가 그에 질세라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곤 했다. 무용담이 다 그렇듯 소주 세병이 다섯 병으로, 새벽 2시에 집에 간 게 3시로 과장되는 경우가 흔했다. 그건 마치 진흥고 투수 정영일이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나 어제 공 220개 던졌다. 그저께도 180개 쯤 던졌지. 오늘은 한 200개 던져볼까?”
그 말을 바꿔 말하면 이렇다.
“나, 건강한 삶의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야.”
정영일의 경우야 감독이 시키니까, 팀이 이겨야 하니까 그런다고 치자. 우리는 왜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수명 단축을 향해 달려가는가. 내가 사는 홍대 앞에서 취한 얼굴로 비틀거리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술 말고는 다른 놀이가 없는 척박한 문화에도 원인이 있지만, 술을 친목의 수단이 아닌, 그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여기는 풍토가 더 문제다.
3. 나의 잔혹사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나 역시 누구 못지않게 많은 술을 마신 전력이 있어서다. 내가 술을 마신 건 다른 이유가 없다. 고교 때 술을 못 먹게 했기 때문이다. 입시준비의 중압감에 시달려야 했던 내게 대학은 술을 먹으면서 망가져야 하는 곳이었다. 술을 마시면서 고뇌하는 척 하는 거야말로 대학생다운 것이라고 착각을 한 나는, 내가 마치 우주의 존재론적 고민을 혼자 짊어진 양 술을 마셨다. 사실은 술을 마시고 난 뒤 기분이 고양되는 걸 즐겼으면서.
하지만 용돈이 늘 부족하고, 그래도 공부의 스트레스를 받던 그때는 양반에 속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월급이라는 걸 받게 되자 난 점점 술을 많이 마시게 되었다. 핑계야 있었다.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를 우리 집에서 반대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분명 핑계였다. 술을 마심으로써 해결되는 건 하나도 없었지만, 난 그걸 빌미로 5년간이나 술을 마셨다. 스티븐 킹은 이런 말을 했다. 소설가들 중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많은데, 그건 술이 작품 구상에 도움이 돼서가 아니라, 그들이 사실은 알코올 중독자이기 때문이라고. 나 역시 그랬다. 괜히 술이 먹고 싶으니까 나를 둘러싼 여러 가지 어려움을 이유로 든 거였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술을 마실 이유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관성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관성은 어느 정도 지나면 없어지니 자전거에 비유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한번 달리면 계속 페달을 밟아야 넘어지지 않는 자전거 말이다. 몇 년간 술을 마시는 동안 내 주위에는 순전히 술친구만 남게 되었고, 난 그들과 돌아가면서 술을 마셔야 했다.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지 않고 술값도 곧잘 내니, 난 그래도 술친구로는 제법 괜찮은 인간이었다(서른 전까지는 지나치게 많이 마셔 쓰러지는 일이 허다했지만, 그 이후엔 조금은 자제를 해 내 발로 집에 간다). 알코올 조직은 갈수록 커져만 갔고, 매주 다섯 번을 마셔야 조직 관리가 될 지경이었다. 학생 시절 술을 자주 마시던 친구가 술을 마실 때마다 달력에 별표를 하는 걸 비웃던 난 술자리 횟수가 많아짐에 따라 술 마신 걸 체크하는 달력을 따로 마련해야 했다. 기록을 하는 이유가 경각심을 갖고 술을 좀 줄여보자는 의도였던 것과는 별개로, 나날이 늘어만 가는 숫자는 나로 하여금 뿌듯함과 더불어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1997년의 기록은 그래서 수립됐다. 12월 26일, 그해를 닷새 앞두고 난 298번의 술을 마셨다. 보통 사람 같으면 두 번 정도 더 마시고 300번을 채우는 걸로 만족하겠지만, 딱 삼백 번을 채우는 게 비겁하게 느껴진 난 밀린 친구들을 불러서 남은 닷새를 술로 지새웠다. 오래 갈 줄 알았던 303회의 대기록은 이듬해 깨졌다. 1월 1일부터 오르기 시작한 술 카운트는 그 해 마지막 날 305번째 술을 마실 때까지 쉼이 없었다. 당시 난 늘 초췌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가끔씩 헛구역질을 했으며, 무의식적으로 소주잔을 기울이는 동작을 취하는 ‘알코올 손목 증후군’에 시달리기도 했다. 술을 같이 마신 사람이 다르고 모인 이유가 다 달랐지만, 내가 술을 마신 이유는 딱 한가지였다. 내가 알코올 중독이었다는 것. 내게 금단증상이 없었던 것은 그런 걸 느낄 여지를 주지 않았던 탓이고, 술이 내 사회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았던 것은 비교적 널널한 공중보건의 생활을 할 때였기 때문이다.
4. 맺는 말
99년, 직업을 갖게 된 이후 술 마시는 빈도는 크게 줄었다. ‘크게’라고 해봤자 180번 내외니, 거의 이틀에 한번 꼴이다. 나름대로 느끼는 바가 있어 조직을 대폭 축소해 나가고 있지만, 조직이란 게 무한 확장의 속성을 갖고 있어서 그리 쉽지만은 않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렇게 술을 마시는 동안 별다른 탈 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건 행운인 것 같다. 내시경을 한 번도 안 해 봐서 내 상태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후배한테 간 초음파 검사를 받아본 결과 중등도의 지방간 진단을 받았으니 다른 곳이라고 크게 성할 것 같지는 않다. 거듭 말하지만 일주일간 매일 공 150개씩을 던졌는데 팔에 탈이 없다면 그건 운이 좋은 탓이지, 팔이 고무로 된 거라서 그런 건 결코 아니다. 그리고 매번 운이 좋을 수만은 없는 법, ‘마당쇠’로 불렸던 바톨로 콜론이 그랬던 것처럼 무리를 거듭하면 결국엔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우리 주위에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신화적으로 술을 마시는 분들이 있어왔다.
“소주 댓병 있잖아? 그걸 끼니때마다 반병씩 마시면서도 아흔 셋까지 사셨다고.”
술이 건강을 해친다는 설에 방패막이가 되어 주는 그분들은, 사실은 엄청난 폭음 속에서 운 좋게 견뎌 낸 몇 안 되는 분들이다. 그분들보다 훨씬 더 많은 분들이 술과 관련된 각종 질병으로 세상을 떴을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지금보다 길었다면 그분들이 계속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로저 클레맨스입니다.
1962년생인 클레멘스는 우리나이로 마흔네 살이던 지난해 13승에 방어율 1.87을 기록했다. 타선지원만 있었다면 20승도 가능했을 성적인데, 그는 그 나이에도 150킬로가 넘는 강속구를 던졌다. 통산 341승을 올렸고 올해도 2천만 달러 가까운 연봉을 받은 그가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면, 혹은 마크 프라이어를 망친 베이커 감독 밑에서 선수생활을 했다면 진작에 은퇴했지 않았을까. 과연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클레멘스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마크 프라이어가 되겠는가. 한마디 더. 술을 잘 못 마시는 동료나 후배에게 술을 강요하는 분들이여, 망가지려면 혼자 망가져라. 베이커 감독은 시카고에 있는 한명만으로도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