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에서 절대로 베끼지 마세요. 제가 다 검색해서 F 줄 거예요.”
“못써도 좋으니까 자기 글을 쓰세요. 진짜로 F 줄 거예요.”
헤아리진 않았지만, A4 3장 정도의 소설을 한달 안에 써내라고 하면서 이런 말을 대략 다섯 번 정도는 한 것 같다. 작년에 선배들이 경험을 해서인지 대부분 자신이 만든 소설을 썼다. 하지만 한 학생은 예외였다. 키워드 몇 개를 치고 구글에 넣었더니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소설이 모습을 드러낸다. 속으로 생각했다. “넌 F다!”
문제는 걔가 예과 2학년이라는 것. 다시 말해서 내 과목의 F는 그 학생이 내년에 본과에 올라가지 못함을 뜻한다. 그로 인해 들여야 하는 등록금과 1년의 허송세월을 생각해 본다면, 베낀 데 대한 대가로는 가혹한 면이 있었다. 아무리 내가 베끼지 말라고 여러 번 강조했더라도. 그래서 난, 그 학생이 찾아와서 빌면 버틸 데까지 버티다가 성적정정 기간에 D+ 정도로 고쳐주려고 했다. 이건 마음이 약해빠진 내 고질병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바란 건 그 학생이 자수하는 거였다. ‘베끼고 나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라며 새로운 소설을 내놓는 공상은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난 그 학생의 성적을 F로 입력했는데, 참고로 소설을 아예 안낸 두 학생의 성적은 C0였다.
입력한 당일, 그 학생이 전화를 걸어왔다.
“왜 제 성적이 F죠?”
“소설 낸 거 베끼지 않았나요? 인터넷 검색해보니 그대로 있던데...”
“아니어요. 그거 제가 쓴 거 맞아요. 전에 써놓은 거 제출한 거예요. 취미로 그런 거 하거든요....원하신다면 제가 쓴 다른 작품 보내 드릴께요.”
난 됐다고 했다. 그 정도까지 말한다면 그 학생이 쓴 게 맞겠지. 그 소설이 워낙 대단한 작품이었기에, 학생의 말이 맞다면 그는 우리나라에 드문 의료소설가의 유력한 후보가 되는 거였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간 그날, 난 그 학생의 성적을 A0로 고쳤다.
다음날 아침, 난 다시금 그 소설을 끄집어냈고, 그 블로그를 다시 검색했다. 블로그의 주인은 이름도, 사진도 달랐다. 게다가 거기 달린 댓글을 보면, 소설을 칭찬하는 방문자들에게 주인은 “고마워요”라고 답을 하고 있었다. 다시금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꾸 걸어서 미안해요. 근데 그 블로그 주인을 찾아보니 이름이 다르던데, 어떻게 된거죠?”
“아, 걔 제 친구예요. 제가 소설 보내서 올려달라고 했어요.”
‘댓글은 왜 지가 쓴 것처럼 달았죠?’란 질문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하지 않았다. 대신 난 그 블로그의 주인에게 내 메일주소를 남겼다.
그날 오후, 블로그 주인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그 소설은 제가 쓴 게 맞습니다...개방해 놨으니 다른 사람이 읽고 퍼가는 건 관계가 없지만, 자신의 창작물로 도용하는 건 화가 나네요....”
힘이 빠졌다. 더 이상의 조사는 무의미했지만, 그럴 때만 완벽주의자가 되는 난 “친구라고 우기는데, 혹시 이러이러한 친구 있냐?”는 메일을 그에게 보냈다. 물론 답을 받을 필요는 없었지만.
전화는 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게 싫었으니까. 대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블로그 주인과 연락을 했어요. 자기가 쓴 거라는데, 정말 본인이 쓴 거 맞습니까? 증거를 제게 보내 주겠어요?”
삼십분 후 문자메시지가 왔다. “제가 쓴 거 아닙니다...죄송합니다.”
이미 늦었다. 그 학생은 F다. 자수를 한 경우 처벌을 경감해주는 심정이 이해가 갔다. 막판에 몰려서 실토하는 대신 어제 전화에서 자백을 했다면 협상의 여지는 남아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는 내 읍소를 무시한 채 남의 소설을 베꼈고, 자수를 하지도 않았으며, 내 추궁에 시종 거짓말로 일관했다. 비약일 수 있지만 이런 학생이 나중에 크면 어떤 의사가 될까?
“죄송합니다....염치없지만 만회할 방법이 없을까요?”
몇시간 뒤 날아온 문자메시지다. 나름의 고민은 있었으리라. 하지만 이런 건, 안보내는 게 더 좋았다. 만회를 하는 건 둘째 문제고, 일단은 잘못을 비는 게 순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만회를 얘기한다. 그 문자에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 다른 학생 하나가 메일을 보내왔다.
“제 성적이 F가 나와서 문의드립니다.”
문의를 하기 전에, 베낀 걸 들켰다는 생각은 왜 안할까?” 하지만 그는 “인터넷에서 베꼈더군요.”란 내 메일에 수긍을 했다. 그는 안베꼈다고 거짓말을 하지도, 봐달라고 빌지도 않았다. 죄송하다고도 안한 게 조금 안타깝지만, 그의 태도는 훨씬 더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