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서 욕을 안들어먹는 직종이 어디 있겠냐만, 그 중 대표적인 게 바로 공무원이다. 물론 공무원들은 억울함을 표시한다. 박봉에도 열심히 일하는데 ‘복지부동’이니 ‘무사안일’같은 꼬리표를 선사하며 비난만 해대니 기분이 좋겠는가. 그 항변에도 일리는 있다. 뇌물을 받는 공무원은 사실 일부고, 관청 같은 데 가보면 윗사람만 놀고 있을 뿐 아랫사람들은 정신없이 바쁘잖은가. 게다가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해대는 민원인까지 상대해야 하니, 그 고충이 결코 작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것은 그 일부가 워낙 강력한 포스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슨 일을 하려면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죄다 그 ‘일부’니, 일부를 제외한 다른 공무원들이 억울함을 감수하는 수밖에.
48층짜리 건물에서 임대료를 챙기며 어렵게 살아가는 나, 얼마 전 관할 소방서에서 사람이 나왔다. 대략 3년마다 한번씩 나오는 것 같은데, 우리가 보기에 그 3년은 무척 짧았다.
“이거 뭐, 문제가 아주 많습니다.”
거드름을 피우며 입을 여는 그 소방관은 어머니가 내미는 십만원짜리 봉투를 받고서야 태도가 약간 누그러졌다.
“이게 안되어 있고요, 저것도 저렇게 놔두시면 안됩니다.”
소방관 나리는 흰 종이에 깨알같은 글씨로 지적사항을 적어내려갔다.
“에, 이거 혼자 하시려면 힘드시니까 제가 잘 아는 업체에 부탁하면 아마 잘 해줄 겁니다.”
그는 부리산업(가칭) 전화번호를 적어주고는 다른 건물에 수금을 하러 가버렸다.
“저 사람이 우리가 마음에 안드나봐. 왜 저렇게 퉁명스럽냐.”
내가 대답했다.
“당연하지. 3년 전에는 20만원 줬잖아.”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이왕 맡기는 거 패키지로 부탁을 하자는 생각에 소방관이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했다. 통화를 하다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회사 대표는 얼마 전까지 관할 소방서에서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나가 회사를 차린 사람, 이런 경우가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그들은 그렇게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매우 정중한 태도로 견적을 내겠다고 했으며-소방관 시절에는 아마도 목이 뻣뻣했을텐데-“그 정도면 얼마 안나올 겁니다.”라는 덕담까지 했다. 나중에 팩스로 날아온 견적서를 보고 난 거의 기절할 뻔했다. 통로유도등-건물 계단 사이에 녹색으로 된 사람이 뛰어가는 모습을 한 표지판으로, 형광등이 켜져 있어야 한다. 불이 꺼진 건 대부분 형광등 수명이 닳아서니 그것만 교체하면 된다-한개당 재료비가 무려 3만5천원, 인건비가 3만원으로 기재가 되어 있다. 3년 전 다른 업체에서는 1만원이던 감지기가 개당 5만원이고 인건비는 6만원. 모두 합쳐 재료비 66만원에 인건비가 76만원으로 총 142만원이다. 3년 전 소방관이 지정한 업체에서 했을 때는 87만원 정도였는데, 지적 사항은 그때보다 적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배로 뛰었다. 그 대금 중 40% 정도는 그 소방관들에게 전달될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키는대로 안하면 불이익을 받을 위험이 있지만, 난 그 업체에 전화를 해서 못하겠다고 거절해 버렸다.
오늘 아침, 난 전파사에 가서 재료들을 샀다. 통로유도등 한 개의 가격은 2천원, 아까 그 업체가 부른 값이 3만5천원이니 심하지 않는가? 계단을 내려가며 불이 꺼져있는 통로유도등을 갈았다. 7개를 가는 데 걸린 시간은 20분 내외, 거기 든 재료비는 14,000원. 즉 오늘 아침에 내가 번 돈은 41만4천원이었다. 수신기를 설치한다든지, 화재시 경보음이 울리는 장치를 손본다든지 하는 건 내게 벅차겠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할 생각이다. 하다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든다. 아예 이 길로 나서는 게 어떨까. 정말 양심적으로 업체를 하나 차리고, 소방관과 결탁하는 대신 다른 업체들이 받는 돈의 3분의 1만 받아도 이익이 나지 않을까. 내가 기술을 조금 익혀 사장을 하고 직원은 하나면 된다. 우리 둘이서 소방관의 횡포에 시달리는 수많은 건물들의 소방점검을 하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올 8월에 승진에서 탈락하고, 1년 후 쓸쓸히 학교를 떠나는 게 조금은 덜 걱정된다. 그나저나 소방관 나리들이 설치는 한, 공무원들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 저기, 48층 건물이란 말을 진짜로 믿으시는 건 아니겠지요?^^